나 혼자 만렙 뉴비 864화
864화. 과거의 망령 (3)
[패밀리어 박쥐들이 ‘형태 변화’에 들어갑니다!]
박쥐의 모습에서 작은 단창의 형태로.
그리고.
수많은 단창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검은 꼬챙이의 형태로 변했다.
파츠츠!
‘개벽의 계시록’을 사용한 엘리스가 망령나무의 낫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가속’과 ‘강화’ 그리고 ‘돌파력’과 ‘파괴력’이 놀라울 만큼 상승합니다!]
각각 무려 +50 스탯씩.
두 개의 성유물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건. 시련의 탑 전체에서 단 하나.
진조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뿐이었다.
거대한 혈액 운석과 날카로운 검은 꼬챙이가 위와 아래에서 격돌했다.
쿠쿠쿠쿠콰콰콰콰콰콰!!!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지축이 뒤흔들렸다.
스파크가 사방으로 어지럽게 튀어나갔다.
힘과 힘.
자존심과 자존심의 격돌.
태고에 찌들어버린 초대와 순수함을 지키는 역대 최고와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키키키키키킥!”
“입 다물거라. 썩어빠진 시체 따위가…!”
‘순혈의 왕관’이 주인의 분노에 공명하며 더욱더 진한 피보라를 일으켰다.
・・・엇비슷하다.
그걸로 충분하다.
진혁이 판단을 내리는 즉시 아공간에서 또 다른 무기를 불러왔다.
우우웅!
공간이 갈리며 심상치 않아 보이는 창이 나타났다.
야크세달의 창
170만이라는 다소 아쉬운 공격력에 투창이라는 단발성 옵션이 붙긴 했지만,
‘엘더갓들의 전용 투창술’을 사용할 수 있어 상황과 조건에 따라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근접 공격으로는 효과가 없었어.’
분명 목과 얼굴에 치명상을 입혔음에도 놈은 피해 자체를 받지 않은 것 마냥 굴었다.
이상한 회차에서 가져온 특이한 성유물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저 인간형 몸이 사실은 본체가 아니고 진짜는 저 구름 어딘가에 숨어있다는 거겠지.
확인을 해서 경우의 수를 줄여나가야 한다.
그것도 최대한 빠르고 정확도 있게.
‘이제 슬슬 위험한 단계야.’
파츠츠츠! 과거의 망령도 지금까지 상대한 그 어떤 적보다 이질적이고 까다로운 상대였으나, 지금 깨어나려고 하고 있는 또 다른 놈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외우주의 군주 ‘아자토스’의 수면 상태가 ‘깊은 잠’에서 ‘얕은 잠’으로 바뀝니다.]
[봉인의 왕관이 대상의 현현을 강력하게 저지합니다!]
천재지변.
이미 탑의 각 층계는 아자토스가 잠에서 깨어나려 하는 것만으로도 격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해일과 지진 화재와 폭우가 몰아치면서 수많은 생명들을 공허의 품으로 귀의시켰다.
이제 곧 있으면 저 무지막지한 놈이 나타나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리리라.
그 전에 어떻게든 50층을 정복하고 탑의 정상에 올라야 한다.
파앙!
진혁이 창을 위로 던졌다.
“바보 같은. 위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건가. 혈액 운석을 맞춘다고 하기에도 너무 어정쩡하구나.”
다음은 무얼 할지 궁금해하던 과거의 망령이 실망한 듯 주억였다.
그러자.
“던진 게 아니라 토스 한 거야.”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토・・・스라고?”
“그래. 배구에서 하는 그거. 너는 탑 안에 갇혀 있느라 배구 용어 자체가 좀 어색하려나?”
내가 무릎을 꿇은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듯.
토스 역시 강력한 한 방을 위한 준비동작이다.
그리고 그 스파이크는…
저 하늘 위.
꾸구구국!
마검을 든 테레사가 마안과 성안을 개안했다.
‘신성의 왕관’이 절반 정도 검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압!”
숨을 크게 들이마신 테레사가 전력을 다해 마검을 휘둘렀다.
투콰아아앙!
창이 사라졌다.
[고유능력 ‘바람의 영역’이 발동됩니다!]
바람의 흐름을 통해 가속된 야크세달의 창
[엘더갓의 전용투창술 ‘무스라마’가 발동됩니다!]
‘마력’을 이용한 3중 가속.
이게 엘더갓들의 전용투창술에 담긴 비밀이었다.
그리고 진혁은 ‘바람의 영역’을 통해 공중에서 3중 가속을 사용한 상태였다.
펑! 퍼어엉! 파아아아아앙!
마력으로 보호했음에도 고막이 찢겨나갈 정도의 굉음.
야크세달의 창이 검은 가시들과 창들을 박살 내며 목표물에게 쇄도했다.
이번 목표는 심장.
머리 쪽이 안 된다면 다음 타켓은 역시나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장기였다.
힘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엘더갓의 가호가 깃들어 있는 이상 웬만한 성유물을 통한 회피는 아예 불가능하다. 최소한 야크세달의 창에 담긴 엘더갓의 격 그 이상의
“포기하지 않는 건 칭찬할 만하다만….”
[309회차 ‘운명을 되감은 아라크네의 거미줄’이 발동됩니다!]
허공에 나타난 거대한 검은 거미가 여러 겹으로 된 거미줄을 펼쳤다.
푹!
푸푹!
푸푸푸푸푹!
야크세달의 창이 가차 없이 거미줄을 뚫으며 날아갔지만, 뚫을 때마다 눌어붙는 거미줄의 탄성으로 인해 속도가 급감했다.
평범한 거미줄이 아니라 엘더갓의 격마저 훼손시키는 종류다.
・・・끼이익!
결국.
창날이 과거의 망령으로부터 약 1m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멈췄다.
“무슨 놈의 능력이….”
“마음만 먹으면 원거리 공격을 다 막아버릴 수 있다는 건가요.”
힘이 쭉 빠지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저딴 거미가 거미줄을 계속해서 짜낸다면 중간에서 모조리 막혀버릴 테니까.
“그런 뜻이다.”
히죽.
과거의 망령이 달콤한 미소를 머금었다.
절대방어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줬노라 라고 말하듯이.
…라고 확신하게 한 다음.
툭.
어느새 간격 깊숙이 들어간 천유성이 발도 자세를 잡았다.
“한여름도 아니고, 거미줄이 너무 많군.”
“너..! 어느새.”
“이만 죽어라.”
오의 ‘홍광(光)’.
‘매화발검(梅花拔劍)’.
붉은 섬광과 함께. 보이지 않는 하얀 백매화가 사선으로 선을 그었다.
서걱!
이번엔 확실히 심장이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끄으으….”
격렬하게 요동치는 검은 운무.
주인의 고통을 대변하는 것처럼.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손들 역시 파르르 떨렸다.
울컥울컥!
검은 피가 폭포수처럼 솟구쳤다.
“으으윽. 아파. 아파. 아파. 아파…!”
회복이 되질 않는다.
잘린 심장이 미친 듯이 펄떡이는 게 저 멀리서도 보였다.
“성공했어요!”
환하게 웃는 테레사와 달리 진혁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큭!”
천유성 역시 반쯤 넣으려던 검을 다시 뽑으며 급격하게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아파 아…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안 돼. 안 돼. 안 돼. 진짜 난 연기는 못 해 먹겠다니까.”
과거의 망령에서 나오는 비명 소리가 미친 듯한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이번에도 실패다.
아니.
두근! 두근! 두근!
“고마워. 내 심장을 노려줘서.”
[339회차. ‘불길한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합니다!]
***
엘리스는 초대 가주의 공격을 상쇄하는 데 성공했으나. 야크세달의 창과 천유성을 통한 이중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머리도 심장도 아니다.
그렇다면 약점이 될 아주 작은 단서라도 찾아야 되는데.
[‘탐식의 눈’이 대상을 꿰뚫어봅니다!]
[‘이면 아래 감춰진 탐식의 눈’이 대상의 관찰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탐식의 눈’의 발동이 취소됩니다!]
찌릿!
“으으윽….”
진혁이 빠르게 한쪽 눈을 가렸다.
“왜, 뭔가 보기 어려우더냐? 아니면 네놈 눈에 고질병이라도 생겼던가?”
빌어먹을 놈.
‘눈’에 대한 방비도 완벽하다.
아마 다양한 패턴을 섞어서 재차 공격하더라도 전부 막히겠지.
몸에 새겨진 경험과 본능이 모든 경로가 통하지 않으리라 경고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저 심장은 거칠게 요동치며 검은 운무 속으로 미친 듯이 피를 쏟아내는 중이었다.
‘효과가 뭐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지는 타입인가? 아니면, 오히려 또 다시 공격받았을 때 더 성장하는 타입이려나.’
추측해봐야 뾰족한 방법은 없고 신중하게 공략해야 할 시간도 없다.
“머리통이나 심장이 아니라도 어딘가에 약점은 있을 터. 그냥 한 줌도 남김없이 모조리 날려버리면 죽게 되어 있다.”
“기다려. 놈은 아직도 카드를 잔뜩 쥐고 있을 거야.”
저 넘치는 여유를 미루어 장담하건대, 최소한 아직 보여주지 않은 회차가 100개 이상은 남아 있을 거다.
언제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되어 죽겠다는 표정에 확신이 더욱 선다.
“그렇다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기만 할 순 없어요.”
테레사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맞습니다. 그랬다간 배드엔딩으로 가는 막차가 오길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죠.”
[성유물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사용했습니다!]
[성유물 ‘빌리 더 키드의 권총’이 소환됩니다!]
황혼의 총과 빌리 더 키드.
두 개의 권총이 손가락을 타고 빙그르르 회전했다.
아껴두었던 최강의 카드를 사용할 차례가 온 것이다. “쳇.”
옆에 있던 천유성이 짧게 혀를 찼다.
지난 과거.
중거리와 원거리를 넘나드는 진혁의 공격에 굴욕적으로 당했던 기억들이 떠오른 탓이다.
심지어 고무탄만 쓰는 진혁한테도 패한 적이 있었기에 총만 보면 본능적인 혐오감이 튀어나왔다.
“힘 조절이 안 돼서 아군까지 말려들게 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 그러니 서포팅 위주로 다들 부탁해.”
“알겠다.”
“응. 짐도 부족함 없게 공백을 채워보도록 하마.”
“예!”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철컹! 콰앙! 투쿵! 철컥!
과거의 망령 뒤에 떠 있던 것들이 검은 총과 대포의 형태로 바뀌었다.
[415회차 ‘피에 굶주린 마탄의 사수’가 발동됩니다!]
[433회차 ‘어둠 속에서 기다리는 자가 발동됩니다!]
[452회차 ‘좌표지정 즉사의 탄환’이 발동됩니다!]
[495회차…]
[… 615회차 ‘멸망을 고하는 융단폭격’이 발동됩니다!]
무려 38개.
‘총’이나 ‘대포’에 관한 능력만 저 정도다.
“나 역시 원거리 전을 썩 싫어하진 않는다.”
“그런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이를 악물고 긁어 모아놨네. 마치, 누구를 상대할 때를 대비한 것처럼.”
“하하하. 아무렴, 정상을 정복한 고인물 사냥에 허점이 있어서야 되겠느냐?”
현실의 천유성이 만에 하나 패하더라도.
자신이 나서게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계산해 모든 대비를 끝내두었다.
당연히 진혁의 원래 직업인 ‘레인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가장 공을 들였지.
완벽한 맞춤형 카운터.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사용해봤자 오히려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 가게 하는 지옥행 티켓이었다.
“원래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서 이 무료함을 달래야겠다. 정말이지 감동도 감흥도 없는 시시한 결말이로군.”
다른 차원.
이것 역시 몇 번인가 들어봤었다.
“아델이나 메드레이 같은 귀환자들이 있던 세계를 말하는 거냐?”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있겠느냐?”
과거의 망령이 키득 웃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이상한 곳이네.”
“뭐, 간단하게만 말해주자면 ‘단 하나의 차원’에 관한 거다. 달(月)과 별(星)로 이루어진 힘의 흐름을 따라는 곳이지.’
“어차피 네가 관심을 가질 일은 아니다. 여기에 있는 것들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이곳에서 뼈를 묻을 테니까.”
그것을 기점으로.
타다다다다!
퍼어엉!
수많은 총탄과 포탄세례가 이어졌다.
진혁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타타타타앙!
‘속사의 권총’에 ‘무한의 탄알집’이 발동되며 날아오는 모든 공격을 막기 위한 탄막이 만들어졌다.
허공에서 무수히 많은 불꽃들이 춤을 추었다.
매캐한 연기가 솟구치며 성단과 성운들을 가렸고.
쿠쿠쿠쿠쿠!
짙게 깔린 검은 운무 사이로 수많은 외눈알들이 희번뜩거리며 나타났다.
아까 전에 심장에서 쏟아진 피를 먹고 태어난 놈들이다.
‘태고의 존재들까지 만들 수 있는 거였나.’
미친 건 둘째치고 가만히 있다간 피를 먹고 더 많은 놈들이 태어날 게 틀림없었다.
툭.
진혁이 앞으로 달렸다.
이미 재장전을 마친 과거의 망령 역시 모든 도주 경로를 계산하고 집중포화를 시전했다.
“키에에에!”
“케에에에!”
검은 운무 사이로 나타난 외눈알들 역시 보라색 광선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몸을 크게 회전시킨 진혁이 순식간에 20m가량을 왼쪽으로 도약했다.
퍼퍼퍼퍼펑!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가 사라졌다.
타-아아앙!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서 날라 온 탄환이 진혁의 머리를 꿰뚫었다.
퍼거걱!
“얼음으로 만든 가짜구나. 하지만, 언제까지나 통할까?”
저격 관련 능력만 3개.
거기에.
우우우웅!
진혁이 서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좌우 약 800m 반경이 ‘킬링 필드’로 지정되었다.
남은 시간은 약 3초.
융단 폭격이 이뤄지기까지 딱 그 정도 남았다.
‘어지러울 지경이네.’
혀를 찬 진혁이 생각보다 손을 먼저 움직였다.
고른 것은 2개.
[’11개의 저주가 깃든 마열 섬광탄’][‘신성의 가호가 새겨진 백린 연막탄]
파아아앙!
눈부신 빛줄기에 섞여 끔찍한 열기를 가진 하얀 불꽃이 주위를 휩쓸었다.
“눈속임으로 벗어날 생각이라면 너무 멍청한데. 어디로 도망치든 빠져나가지 못할 거다.”
과거의 망령이 조소했고.
“도망치려는 거 아닌데.”
진혁이 응수했다.
목소리가 들린 곳은 꽤나 의외의 장소였다.
하늘 높이.
진혁이 두 자루의 권총을 총집에 넣은 채 자세를 잡고 있었다.
“후후. 그럼 폭격을 맨몸으로 맞으면서 마지막 발악이라도 할 셈이더냐?”
“그럴 생각도 없어. 폭격 따위는 어차피 맞지 않을 거니까.”
사격 게임에 취해 잊고 있었나 본데.
이쪽도 혼자서 온 게 아니다.
[‘대천사의 방패’를 소환합니다!]
[‘아타락시아의 휘장’ – 소환 ‘블랙 캐슬’]
검은 성벽과 그 뒤에 덧씌워진 신성 방패.
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쾅!
융단 폭격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둘은 절대 능력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허공에서 자세를 잡은 진혁이 양손의 손가락을 까딱였다.
[고유성창 ‘황야의 무법자’가 발동됩니다!]
“석양이….”
일단 뽑히면 대상을 죽일 수 있는 즉사기.
당연히 과거의 망령 또한 마찬가지로 거대한 검은 권총 두 자루를 꺼냈다.
[고유성창 ‘무한히 회귀하는 황야의 무법자’가 발동됩니다!]
“석양이….”
두 개의 능력이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에 발동되었고,
“진다.”
하나로 합쳐진 목소리를 끝으로,
타앙!
탄환이 바람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