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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105화


종리추가 농가의 허름한 방 하나를 빌려 투숙했다.

객잔에 머물면 잠자리도 편하고 음식도 좋고 모든 면에서 한결 나았지만 종리추는 늘 농가를 이용하곤 했다.

겨울 내내 불기를 들여놓지 않은 방은 눅눅한 습기로 가득했다.

모진아도 불평 한마디 늘어놓지 않았다.

그나마 중원에 와서야 푹신한 침상을 사용했지 남만에서는 땅바닥에 엎드려 자는 날이 다반사였다. 풀잎이라도 깔고 누우면 신간이 편한 날이었고.

그것보다는 야산에서 보았던 일이 모진아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가 보기에도 혈영신마를 어찌해 볼 방도는 전혀 없었다. 어찌하기는커녕 만나는 일조차 용이치 않았다.

종리추의 뜻이 혈영신마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우울함은 더욱 깊어졌다.

모진아는 솔직히 자신 없었다. 한결같이 강해 보이는 무인들의 도산검림(刀山劍林)을 뚫고 들어갈 자신이.

‘미친놈! 어쩌자고 사람 목을 매달아서 혈기를 내걸어. 죽으려고 환장했지. 그렇잖아도 눈이 시뻘개져 달려드는 작자들에게 나 죽여라 하고 선전포고하고 있으니.’

종리추를 힐끔 쳐다보았지만 종리추는 침상에 누워 움직일 줄 몰랐다.

천정만 바라보고 있다.

검게 퇴색한 나무 기둥이 을씨년스럽게 뼈대를 드러내고 있고 색 바랜 거미줄이 너덜거렸다.

갑자기 종리추가 입을 열어 말했다.

‘모진아, 족장 입장으로 말해 봐. 낯선 자가 있어. 누군지는 몰라.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심성은 어떤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혈영신마.’

‘그자가 위험에 빠져 있는데 도와줄 길이 있기는 해.’

‘주공은… 활로를 찾았단 말인가!’

모진아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하지만 부족 전부를 죽음으로 몰아넣을지도 몰라. 상당히 위험하거든. 십중팔구는 그럴 거야. 천운을 기대해야 하지.’

‘……’

‘그런 대가를 치러도 얻는 건 없어. 아니, 오히려 화근이 될지도 몰라. 전혀 낯 모르는 타인이기 때문이지. 모진아, 모진아 같으면 구하겠나?’

‘아뇨.’

모진아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는 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묻는 즉시 고개를 내둘렀다.

‘주공, 손 떼는 게 어떻습니까?’

그는 한술 더 떴다.

‘전 주공께서 혈영신마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주공 말씀대로 혈영신마는 십망을 선포받은 중원무림의 공적, 그런 자를 구하다가 잘못되는 날에는 살문 전체가 초토화됩니다. 주공께서도 보았듯이 놈은 피에 굶주린 혈귀입니다. 무공은 있을지 몰라도 머리가 없어요. 혈기를 내걸다니. 미친놈.’

‘그렇지. 미친놈이지……’

‘……??’

모진아는 종리추가 너무 순순히 동조해 오히려 의아했다.

‘사람이 마인이 되는 데는 세 가지 원인이 있어. 하나는 정신 이상이야. 말 그대로 미친 거지. 사람을 죽여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자…… 두 번째는 한(恨)이야. 한이 하늘에 닿으면 자기 목숨쯤은 가볍게 내버릴 수 있어. 반대로 말하면 세상에 두려운 게 없어지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지. 사람을 죽이든 사람 뼈로 목걸이를 만들든 이후의 결과가 두렵지 않게 돼. 나머지 하나는 우리야. 돈을 받고 청부 살인을 하는… 따지고 보면 우리도 미친놈들에 속하지.’

‘……’

모진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도 종리추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는 중원에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원한 없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을 죽일 때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영토를 확장한다든가 구원(仇怨)이 있다든가 하는……

적어도 돈을 벌 목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죽일 놈이다.

종리추가 죽일 놈이다.

만인으로부터 죽일 놈이라고 자탄받는 사람이다. 방심한 상태로 잠을 청하면 누가 와서 목을 베어갈지 모를 처지다.

그는 왜 자신을 그렇게 몰아갔는지…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안타깝기만 했다. 하지만 어쩌랴.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노릇이니… 살수들이 살아서 태산준령에 오를 수 있다면 이룩한다는 사무령을 향해 치달릴 수밖에.

‘나는 혈영신마가 첫 번째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

‘온전히 미친놈은 아니라는 말씀이신데 그런 자가 사람을 죽여서 혈기에……??’

말을 잇던 모진아는 피식 웃고 말았다.

‘드르렁……!’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종리추처럼 잠이 빨리 드는 사람도 없을 게다. 잠자려고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잠이 드니……

‘귀여운 주공. 구하고 싶으시면 구하십시오. 앞을 막는 놈은 이놈이 처리하겠소.’

장성한 청년이었지만 모진아는 종리추가 귀엽기만 했다.

언제 잠이 들었을까?

모진아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종리추부터 찾았다.

다행히 종리추는 탁자에 앉아 있었다.

‘주, 주공!?’

모진아는 깜짝 놀라 외쳤다.

종리추는 아직도 핏물이 떨어지는 인피를 다듬고 있었다.

‘조금 더 자.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어.’

종리추는 태연하게 인피를 다듬었다.

모진아는 장무의 인피를 버리고 새로운 인피를 뒤집어썼다.

종리추는 눈썹 한 올 깜빡이지 않고 정신을 집중하여 분장에 몰두했다.

인피와 살갗이 맞닿는 부분, 그리고 살색……

모진아와 종리추는 삼십 대의 건장한 장한으로 변했다.

‘제 이름이 뭡니까?’

‘하후민(夏候珉).’

‘하, 하후… 민! 벽혈도(碧血刀) 하후민 말입니까?’

종리추는 대답 대신 새파란 도광이 번뜩이는 대도를 내밀었다.

‘으음……!’

모진아는 신음을 터뜨리며 대도를 받았다.

모진아는 세 명의 인피 주인을 알아냈다.

벽도삼걸(碧刀三傑).

도(刀) 문파 제일가(第一家)라는 하후가(夏候家)의 세 아들이다.

그들은 이미 하후가의 정통 도법을 십성 연마하여 후기지수(後起之秀)로 부각되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하후 가주가 용이라면 벽도삼걸은 호랑이 세 마리라고. 하후 가주가 하후가를 도문 제일가로 만들었다면 벽도삼걸은 중원 제일가로 부흥시킬 것이라고.

그런데 그런 호랑이들이 죽었다. 간밤에 감쪽같이. 그것도 인피가 벗겨진 채.

종리추는 자광이 번뜩이는 적룡검을 천으로 둘둘 말아 등 뒤로 비껴 메고 허리에는 번개 문양이 새겨진 대도를 찼다.

번개는 하후가의 독문 표식이다.

도법이 섬전처럼 빨라 ‘섬전(閃電)’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가문의 문양으로 굳어져 버린 표식이다.

“주공의 이름은 뭡니까?”

“하후량(夏侯亮).”

“첫째군요. 그런데 저는 왜 둘째도 아니고 셋째입니까?”

“벽도삼걸 중 하후민이 가장 난폭하거든. 모진아 성격과 맞을 것 같은데, 싫은가?”

“흐흐흐……!”

모진아는 음흉스럽게 웃었다.

종리추의 말속에서 진한 피비린내를 맡은 까닭이다.

종리추와 모진아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야산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이 포권지례를 하며 인사를 건네왔다. 그중에는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총명이 번뜩이는 청년 협사, 재색이 뛰어난 미녀들……

벽도삼걸의 교분은 무척 넓고 깊어 각계각층에 골고루 퍼져 있는 듯했다.

‘이거 사람을 잘못 고른 것 아냐? 식은땀 나서 죽겠네.’

모진아는 낯선 사람이 인사를 건네올 때마다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종리추는 태연하게 맞이했다.

“저번에는 정말 너무하셨어요. 어쩜 그렇게 가실 수 있어요?”

“하하! 난화(蘭花) 소저, 미안하오. 약속이 있어서…..”

‘나, 난화 소저? 미치겠네.’

“들었어요. 청도삼패(靑島三覇)가 비무를 청해왔다면서요? 흥! 감히 누구한테 도전을 하는 거야. 주제를 모르니까 목숨을 잃지.”

“아직 무공이 미숙한 탓이오. 진기를 주체하지 못해 살도(殺刀)를 뻗어내고 말았소.”

“자책하지 마세요. 청도삼패를 죽인 게 괴로워서 백일 불공을 드린 일까지 알고 있어요. 뭐 하러 그래요? 그런 사람들한테……”

종리추는 처음 보는 여인과 한참 동안이나 수다를 떨었다.

그는 막힘이 없었다. 하후양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하게 지켜본 사람처럼 호탕하게 웃기도 하고 신광(神光)을 쏘아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종리추가 무림 고수들뿐 아니라 젊은 무인들까지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단지 누구라는 것을 넘어 그들의 성격, 인간 관계까지 아주 깊이.

종리추는 ‘난화’라는 여인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한 후에야 한숨 돌렸다.

종리추와 모진아는 점점 더 파고들어 일금 지역을 넘어섰다.

일금을 지키는 무인은 없었다. 무인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심산(心算)하여 혈영신마와 싸울 사람은 일금 안으로 들어섰고, 단지 포위만 할 사람은 일금 밖으로 물러섰다.

일금 안쪽은 한산했다.

그곳도 많은 무인들이 북적거렸지만 일금 밖이 워낙 무인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한산해 보였다.

밖과 안이 구별되는 점은 또 있다.

밖은 문파의 구분 없이 마구 뒤섞여 있지만 안은 문파 별로 질서정연하게 정돈되어 있다.

종리추는 미리 사전 답사라도 해놓은 듯 서슴없이 속인(俗人)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교대할 시간이야. 서두르게.”

군웅(群雄)이 대표로 내세운 사람은 종리추와도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중원삼정 중 한 명인 삼절기인.

그는 소문대로 오른쪽 허리에는 검을, 왼쪽 허리에는 도를, 등 뒤에는 창을 비껴 메고 있었다.

삼절기인은 전에도 악을 원수처럼 미워했지만 그의 세 제자가 암습을 당해 죽은 이후로는 악을 증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파 무인들 중에 손속이 가장 잔인한 사람을 꼽으라면 삼절기인이 거론될 정도다. 다른 사람에게는 가볍게 훈계만 들을 잘못이라도 삼절기인은 사지 육신 중 하나를 잘라 버린다. 혈영신마 같은 마두는 반드시 죽인다. 그것도 쉽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최대한 늦춰 공포를 배가시키면서.

그는 세 제자의 죽음은 친자식을 잃는 것보다 애통해했다.

그는 살문 멸겁 계획을 들었다. 그러나 그가 달려왔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공동파, 그리고 살천문의 손에 살문은 기둥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폐허가 된 살문을 뒤졌다.

혹 숨이 붙어 있는 자가 있으면 되살아나지 않게 죽여야 된다면서.

묵월광이 삼절기인의 세 제자를 죽인 것은 살혼부가 구지신검을 죽인 것과 같은 우행(愚行)이다.

십여 명이 몸을 일으키자 종리추가 불쑥 나섰다.

“소생, 하후가의 하후량입니다.”

중인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들 중 고수 아닌 사람이 없다. 그 누구와 싸워도 일대일의 비무라면 얼마든지 자신 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다.

“무슨 일인가?”

삼절기인의 눈가에 훈훈한 미소가 배었다.

악인에게는 철저히 냉혹하지만 정도를 걷는 사람에게는 다시없는 인의대협이 그다. 특히 후기지수를 보는 눈은 따뜻하기 이를 데 없어서 하나라도 더 주려고 노력한다.

하후가의 벽도삼걸은 삼절기인 같은 고인도 무명을 들었을 정도로 협행이 높다.

“이번 수천(守天)에는 저희 삼형제도 끼었으면 합니다.”

“수천은 이미 정해졌네. 의기는 알겠네만……”

“부탁드립니다. 꼭 수천을 하고 싶습니다. 저희 벽도삼걸, 오직 혈영신마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이양(崋陽)에서 여기까지 천삼백여 리를 달려왔습니다. 감히 청하건대 이번 십망에 일조를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종리추의 모습에서는 의기가 물씬 풍겨났다.

“허허허! 벽도삼걸이 기지개를 켰다는 소리는 들었네만 틀린 말이 아니었군. 영존(令尊)께서는 안녕하신가?”

“일 년 기한으로 폐관 수련에 들어가신 지 반 년이 지났습니다.”

“허허! 그런가? 그 사람 예나 지금이나 무공 욕심 하나는 알아주겠구먼. 그래, 수천을 꼭 하고 싶은가?”

“옛!”

“그럼 다른 분들께 양해를 구해야 될 텐데……”

삼절기인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무인을 쳐다보자 무인들 중 세 명이 흔쾌히 자리를 양보했다.

“그런데 다른 한 명은 어디 있는가?”

“감히 어른들과 한자리에 앉을 수 없다며 일금 밖에 있습니다. 연락을 취하면 곧 달려오기로 되어 있습니다.”

“허허허!”

삼절기인은 흐뭇했다.

이런 젊은이들이 자라고 있으니 무림은 평화로울 수밖에 더 있는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존중하며 무공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데.

군웅들도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벽도삼걸을 다시 봤다.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단연 앞서 나가는 젊은이들이라고.

수천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절정에 이른 고수들에게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일금 안에 있는 고수들 중 십여 명이 혈영신마를 감시하는 일이 수천이다.

단지 감시뿐이다. 공격은 금지되어 있다.

십망 총책임자인 현학 도인의 지시이니 반드시 따라야 한다.

현학 도인의 지시를 어기고 공격을 가한 자도 있지만 혈기에 머리를 얹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혈영신마를 쫓는다. 혈영신마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인다. 혈영신마를 죽이라는 명이 떨어지기까지 혈영신마의 종적을 잡아놓는 일이 수천이 할 일이다.

종리추와 모진아는 수천을 행하고 있는 무인들과 교대했다.

“하후광(夏候光)은 왜 이리 더딘가?”

“곧 올 겁니다. 일금 밖에 있으니 잠시 시간이 지체되는 것뿐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섣불리 공격할 생각은 말게. 저놈 무공이 굉장해. 혈영신공은… 무림에서 사장되어야 할 무공이야. 벌써 일곱 명이나 당했네. 싸워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탈명신도도 죽었지. 분하더라도 조금만 참고 기다리게. 현학 도인이 직접 나서면 놈은 죽은 목숨일세.”

종리추는 무인들의 말에서 그들이 혈영신마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여실히 알았다.

그들은 각기 누구에게도 자신 있다고 장담하지만 정작 혈영신공과 부딪치기는 꺼려 한다.

혈영신마를 상대하겠다고 일금 안으로 들어선 무인들의 수만 해도 백여 명이 훌쩍 넘어간다. 초절정고수로 이름난 사람도 현학 도인과 삼절기인이 있다. 그런데도 아직 혈영신마를 내버려 두고 있다는 것은……

그들은 쓸데없는 피는 흘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정면으로 부딪치기를 꺼려하고 있다.

그들도 자신들이 일시에 달려들면 아무리 무공이 높은 혈영신마라 해도 어쩔 수 없으리란 것을 안다. 하지만 많은 수의 무인이 죽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혈영신마를 죽이더라도 위명에 막대한 손상을 입게 된다.

가장 적은 희생을 내면서 혈영신마를 죽여야 한다.

그들은 현학 도인이나 삼절기인 같은 초절정고수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내락(內諾)도 있었으리라. 아마 지금쯤 구파일방에서, 혹은 무림 세가에서 초절정고수들이 달려오고 있을 게다.

많이도 필요 없다. 초절정고수 두세 명만 더 모이면 혈영신마를 잡을 수 있다. 그들이 힘이 백여 명에 이르는 군웅들보다도 더 큰 위력을 지닌다. 군웅들이 양이라면 그들은 호랑이니까.

‘무림은 안일해. 정체되어 있어. 썩고 곪은 거야. 고인 물처럼. 이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십망이란 것을 만들었어.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서. 정작 강한 자는 십망 같은 게 필요 없지.’

모진아는 혈영신마를 봤다.

그는 걸개들처럼 머리를 산발한 채 불기를 쬐고 있다.

옷은 흰색이었던 듯하나 피로 범벅이 되어 홍의(紅衣)로 보였다.

그는 태연했다. 십여 명의 고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긴장하거나 경계하는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참 대범한 놈입니다. 살성(殺星)만 아니라면 마음에 드는 놈……”

문득 모진아는 옆이 허전하다고 느꼈다.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옆에 있던 종리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종리추는 그의 이목까지 감쪽같이 숨기고 사라져 버렸다.

‘허! 기가 막힐 노릇이군.’

그는 문득 종리추가 죽이고자 해서 죽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없을 것 같았다.

종리추는 일대일의 비무도 강하지만 살수로서의 능력은 한결 강하다.

벽도삼걸이 하루아침에 죽음을 맞이한 것도 당연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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