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 160화
야이간은 숙고를 거듭했다. 바깥 세상은 태풍을 넘어 광풍이 불고 있다. 겉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지만 무림인치고 뱃속 편하게 지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장님이 아닌 이상, 귀머거리가 아닌 이상 사방에서 회오리치는 광풍을 느끼지 못할 사람은 없으리라.
‘이거야 광대가 외줄을 타는 것보다 위태롭지 않은가. 한 걸음만 삐끗 잘못 디뎌도 찬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마는 위험천만한 세상이 바로 지금이야.’
야이간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들겼다. 생각 하나에 운명이 좌우된다. 만화가 깔린 꽃길을 걸을 수도 있고, 도산검림을 헤쳐 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대황촉 촛불이 밑동에 달라붙어 위태롭게 간들거린다. 날이 밝는지 검디검었던 봉창에 하얀색이 피어난다. 탁자를 두들기던 손길이 꿈틀거렸다. 탐독하다시피 읽어서 내용을 모두 외워 버린 전서들. 그런데도 또 손이 뻗치고 있다. 더 읽어봤자 새로운 내용은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흔들리고 있어. 이 천하의 야이간이. 무엇 때문에…… 그렇군! 그놈 때문이야.’
야이간은 한 사내를 떠올렸다.
‘백천의! 그놈 때문이야. 후후! 이 천하의 야이간이 주눅 들 줄이야. 그래, 그놈에게 주눅이 들었어. 그 다음부터 이성을 잃고 있었어. 흔들리고 있었단 말이야. 후후! 됐어.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알고는 있었다. 놈을 처음 본 순간부터 지독한 원한을 가슴에 품은 놈이라는 것을. 야이간은 천객에 대한 생각을 뒤로 미뤘다. 백천의란 인간은 결국 자신에게 검을 들이댈 위인이지만, 지금은 협조를 해줄 때다. 그가 고민하는 이유는 바로 살문의 생명력이 끈질기다는 데 있다. 지금쯤 요절이 났어도 단단히 났어야 하는데.
‘뭐가 잘못되고 있어, 뭐가……’
야이간은 큰 힘을 얻었다. 천 노인이 쥐어준 정보력은 세상을 두 번 살아도 한 번 쥐어볼까 말까 한 큰 힘이다. 묵월광의 진정한 힘은 살수들의 살수 능력이 아니라 천 노인의 재력이요, 정보력이다.
소고처럼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여자는 천 노인의 힘을 간과했을지 모르지만, 야이간은 천 노인의 상권을 움켜쥐는 순간 하늘과 같은 거력이 품 안에 안겨드는 것을 느꼈다. 그 힘이 말해 주고 있다. 세상이 소용돌이 속에 파묻혔다고.
‘확실하게 알아보고 발을 내디뎌야 해.’
지난밤을 꼬박 지샜지만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전신에 팽팽히 스며드는 긴장감은 피로를 느낄 시간마저도 빼앗아 가 버렸다.
야이간은 날이 밝아 아침이 되자 몸을 일으켰다. 정말 오랜만이다, 취국 곁에서 잠을 자지 않은 것이.
백상. 백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하나부터 백까지 세는 숫자적인 관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백이라는 숫자에는 ‘완벽’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완벽한 숫자다.
천 노인의 백상은 중원에서 취급하는 모든 품목을 망라한 거상들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중원을 떠돌며 막대한 이윤을 남긴다. 황금 알을 낳는 황금 닭처럼 멍청하게 두 손 놓고 있어도 이윤이 저절로 남겨진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 평생 쓰지도 못할 만큼 많은 은자를 벌어들인다.
그들은 이윤만 남기는 게 아니다. 중원에서 거래되는 모든 품목을 망라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만나는 사람이 다양하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백상은 중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게 된다.
그들 개개인이 알고 있는 정보라는 것은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모두가 모여 커다란 그릇에 담겼을 때, 백상이 거둬들인 정보는 중원에서 가장 양질의 정보로 둔갑한다.
개방의 정보력 강한 것은 문도가 많아서이다. 단순히 사람 수가 많기 때문이다.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 활용하는 능력은 후일에 생긴 것이고, 초창기에는 단순하게 많은 인원이 취합한 방대한 정보만을 활용했다.
암중으로 은근히 개방과 견주고 있는 하오문의 정보력도 사람 수에서 나온다. 그런 면에서 보면 상인들의 정보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대놓고 무림에 나서지 않아서 그렇지 상인들이 거둬들인 정보를 무림에 활용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당장 막강한 세력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살문이 살행을 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오이다.”
“그렇지, 확실하지. 많은 인원도 아냐. 두 명 내지 세 명이 고작이야.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묘한 것은 귀신도 모르게 움직인다는 거지. 종적을 잡아낼 수 없어. 신출귀몰해.”
“살문이 살행을 하고 있어도 죽이는 명분이 뚜렷하니……”
“그게 문제야. 그토록 처참한 죽음은 내 생전에 처음 보는 듯한데…… 허! 그런데도 민심은 살문 살수들 편이란 말이야. 그 죽은 작자들, 숨기고 숨겼지만 세상 사람들을 모두 속일 수는 없었지. 모두들 인면수심이란 걸 알고 있었어. 두려워서 말을 꺼내지 못했을 뿐이지.”
대청에 모인 거상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야이간은 그들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살문…… 살문이 아니면 이토록 대담하게 사람을 죽일 수 없어. 살수들이라고는 씨가 마른 판에.’
중원 곳곳에서 살겁이 일어나고 있다. 워낙 넓은 중원이다 보니 하루에도 몇천 명씩 병으로, 노환으로 죽어가고 있지만 백상이 거둬들인 죽음들은 너무 끔찍해서 어느 죽음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죽은 자들의 죄상을 널리 알린다는 면에서도 일반적인 죽음과는 너무 다르다.
살문이 살행을 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명확한 사실이다. 중언부언 떠들 필요도 없다. 백상이 거둬들인 정보를 읽지 않았어도, 중원에 떠도는 풍문만 듣고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야이간이 백상을 소집한 것은 차후 행로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뚱뚱한 사람, 마른 사람, 얼굴이 험상궂은 사람, 샌님처럼 연약해 보이는 사람…… 이들은 자신을 천야라고 부른다. 천 노인을 불렀을 때처럼 자신에게도 그렇게 부르며 충성한다.
하지만…… 이들의 충성에는 문제가 있다.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는 충성이다. 천 노인과 이들 사이에, 아니면 소고와 이들 사이에 어떤 밀약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좌우지간 이들이 겉으로 드러내는 충성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미련한 야이간은 아니다.
백상은 야이간을 믿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야이간은 알고 있다. 야이간이 백상들의 마음을 읽고 있는 것처럼, 백상도 야이간이 자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서로가 불신하면서도 얼굴을 맞대고 있다, 그렇지 않은 듯 태연자약하게.
야이간은 집념이 강한 반면 체념도 빠른 편이다. 먹을 만한 떡이면 주워 먹지만, 조금이라도 상했다 싶으면 서슴없이 던져 버린다. 그것이 설혹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진귀한 떡이라 해도 미련 없이 버린다.
소고가 차지한 천 노인의 상권. 그것만 가지면 천하를 요리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실제로 그럴 힘이 잠재해 있지만 불행히도 자신의 몫은 아닌 것 같다.
야이간은 귀찮은 듯 귀를 후비며 입을 열었다.
“거두절미. 그런 말들은 숱하게 들었으니 그만 하지. 지겨워.”
백상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충직한 수하들이다. 묵월광이라든가, 소고라든가, 천 노인, 살혼부 등등… 무림과는 전혀 인연 없는 사람들처럼 태연자약하다.
‘가증스러운 놈들.’
이들… 백상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상권이 안전하게 지켜지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과 같은 사람을 기다렸다. 백상은 살혼부 자금으로 출발했다. 무림과 인연을 끊을 수 없는 상권인 게다.
그런데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살혼부가 십망을 받고, 십 년이나 지나 출발한 묵월광도 흐지부지 무림 공적이 되어 사라졌다. 천 노인이 살혼부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으니 움츠리고 뛸 수도 없는 형편이 되어버렸다.
무림인이 손만 뻗으면 쓰러져 버릴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 놓인 것이다. 천 노인, 그 여우 같은 늙은이는 자신이 덥석 먹이를 물어오자 얼씨구나 하고 놓았을 게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천 노인과 백상이 얻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천 노인이 발을 뺐지만 그런 행동으로는 천 노인 한 사람의 목숨밖에 구명할 수 없다. 자신이 무림인이 아니라면 몰라도….. 백상은 여전히 무림인의 칼 끝에 놓여 있게 된다.
야이간은 머리를 휘둘렀다. 지금은 그런 문제로 골머리를 썩일 때가 아니다. 활로를 찾아야 한다. 백상을 버리기로 작심했으니 이들의 힘을 최대한 활용해서.
야이간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백 쌍의 눈길을 돌아보며 말했다.
“살문의 행적부터 말해 봐.”
백 쌍의 눈길이 긴장했다.
“살문은 천음 백석강에서 일차 접전을 벌였소이다. 상대는 하후가와 양가의 문도 이백 명. 살문은 종리추, 소고, 소여은, 모진아, 유구.”
야이간은 귀찮은 듯 귀를 후볐다. 이 작자들은 꼭 알고 있는 이야기도 다시 되짚어 말하는 버릇들이 있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접전의 결과이다. 아마도 소여은, 모진아, 유구 정도는 죽었을 게다. 종리추는 워낙 약삭빠른 놈이니 몸을 빼냈을 게고. 놈이 어디로 몸을 뺐느냐 하는 것이 궁금하다.
“결과는 천외천의 완패요.”
“와, 완패?”
야이간은 믿을 수 없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잘못 듣지 않았나?
“하후가주가 죽고 하후가 문도 열일곱 명이 죽었다는 소식입니다. 양가 문도도 열두 명이나 죽었으니 상당한 타격을 받았고요.”
“……”
야이간은 말하는 자의 입을 쳐다보았다. 계속 말해 보라고.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하후가와 양가 무인들은 살문 살수들을 내버려 두고 시신을 수습해 철수했습니다.”
“뭐, 뭣이!”
야이간의 마음이 심히 격동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문도가 죽었는데, 가주가 직접 문도를 끌고 나가 이 할에 가까운 사람이 죽었는데 죽인 사람을 내버려 두고 철수하다니. 기이한 일이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세상에서 가장 어수룩한 기이한 일이다.
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백상 같은 여우들을 상대하려면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백상 중 이런 소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그게 정말이오? 말씀대로라면 하후가와 양가에는 백오십 명이 넘게 남았는데, 가주까지 죽은 마당에 얌전히 물러섰단 말이오?”
백상 중 한 명이 물었다. 야이간이 묻고 싶은 물음이다.
“하후가주가 죽음 직전에 물러서라는 명을 내렸다더군. 그래서 하후가 문도가 먼저 물러섰고, 한참 후에 양가주가 물러섰다는 소식일세.”
이해되지 않는다. 야이간이 알고 있는 하후가주는 살문을 철천지원수로 알고 있다. 하후가의 뿌리가 없어진다 해도 살문을 그대로 내버려 둘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철수 명령을 내렸다?
하후가 문도는? 하후가주가 명을 내렸다고 해서 가주를 죽인 놈이 눈앞에 서 있는데 물러서?
하후가는 그렇다 치자. 양가는 또 어떻게 된 것인가? 그런 상황에서 물러선다는 것은 앞으로 무림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말과도 같은데…… 천하제일창이라는 양가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것과 진배없는데 그런 오욕을 감수했단 말인가? 왜?
‘왜? 왜 물러섰나?’
“왜 그랬답니까? 무림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데…… 우둔한 식견으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구려.”
역시 야이간이 묻고 싶은 물음을 먼저 묻는 우둔한 자가 있다. 이런 자들이 있기에 내심을 숨길 수 있다.
“그거야 모르지. 당시 싸움에 가담했던 하후가나 양가 무인들이 두 입을 굳게 다물고 있으니까.”
“……”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이거야말로 진정 풀기 힘든 난제다.
‘분명히 종리추 그놈이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다른 놈들? 다른 놈들은?’
“다른 쪽은 어떻게 됐나?”
“다른 쪽도 결과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두 사라졌습니다. 연기처럼 싹.”
“……”
예상했던 답변이다. 역시 종리추 그놈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다. 백상의 정보망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지극히 은밀한 수작을.
“개방과 하오문 쪽 움직임은?”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야이간은 취국이 생각났다. 찰싹 달라붙는 살결, 정신없이 욕정을 끌어내는 그녀의 냄새.
골치 아픈 일이 너무 많다. 천 노인과 백상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가 하는 문제도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 풀어야 하는 난제다. 종리추가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도 혼자 생각해 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정보가 절름발이라는 것이다. 하오문의 정보망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는 자들이 있는 게 틀림없다. 가장 밑바닥에서 거둬들인 정보가 하오문주의 손까지 닿지 않는 것이다.
개방도 마찬가지다. 개방도들이 거둬들인 정보는 무려 절반이나 중간에서 사라져 버린다. 개방은 오히려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후개…… 그자가 농간을 부리고 있을 게다.
후개는 개방의 차기 방주다. ‘후개’로 내정된 순간부터 방주가 부재시 개방을 이끌 권한을 위임받는다. 후개는 방주로 취임하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현재 개방은 흑봉광개가 임시로 이끌고 있다.
보지 않아도 불 보듯 뻔하다. 후개, 흑봉광개 둘 다 문도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고, 양쪽으로 갈려 내분을 겪고 있는 게다. 대체로 어느 문파나 내분이 없는 경우는 없다. 장문인이 서거한다는 특수한 경우에는 상당한 피바람이 몰아치기도 한다. 장문인이라는 직위는 목숨을 걸어볼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후개와 흑봉광개. 둘 중 어느 쪽이 이겨도 개방은 상당한 타격을 받으리라. 모든 정보가 불완전하다. 천객이 하오문과 개방을 휘두를 수 있는데, 자신에게까지 정보를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천객은 자신보다는 조금 낫다. 불완전한 정보일망정 하오문, 개방, 백상에서 거둬들인 정보를 종합해 보면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은……
‘어디 끝까지 숨겨봐라.’
자신에게 정보를 주고 있는 이들, 백상은 더더욱 믿을 수 없다. 천 노인이 물러섰다고 하지만 암중으로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십중팔구 그럴 게다. 허수아비로 자신을 세워놓고. 살문 살수들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말이 바로 그 증거이지 뭔가.
“종리추는 지금 어디에 있나?”
“연운으로 이동 중입니다.”
“연운이라면 절곡인데?”
“맞습니다.”
살문 살수들에 대한 정보는 주지 않으면서 종리추의 행방만은 소상히 전해주는 놈들.
‘이목을 종리추에게 맞추고 있어, 후후후! 종리추를 믿고 싶겠지. 그러나 기적은 한 번이면 족해.’
야이간은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야이간은 전서를 띄웠다. 지금쯤 하오문, 개방도 전서를 띄우고 있으리라. 불완전한 정보일망정…… 아니다. 불완전한 정보가 아니다. 종리추가 연운으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는 모두 일치할 게다.
종리추는 천외천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있다. 놈은 무섭도록 치밀하다. 그게 야이간을 두렵게 만든다. 하오문과 개방의 이목이 아무리 넓게 퍼져 있다 해도 지금까지의 종리추라면 얼마든지 숨을 수 있다. 그놈은 인피면구를 제작할 줄 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은신술이다.
그런데도 그의 행적이 알려지고 있다는 것은 두 가지밖에 생각나지 않게 만든다. 하나는 일부러 행적을 흘리고 다니는 것, 또 하나는 하오문과 개방, 그리고 백상에 그의 입김이 스며 있는 것.
‘하오문과 개방까지 손을 쓴 것이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하오문과 개방이 입이라도 맞춘 듯이 종리추의 행방에 촉각을 곤두세울 리 없지.’
야이간은 지켜볼 심산이다. 이번 싸움이 어떻게 결말이 나느냐에 따라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싸움이 결말나기까지는 기다려야 되고, 결말이 나는 즉시 행동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때는 빠를수록 좋겠지. 결말이 어떠냐에 따라 다람쥐처럼 움직이는 거야.’
야이간의 발길은 취국에게 향했다. 취국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미약이다. 술보다도…… 세상을 잊게 만드는 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