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 186화
후개는 가부좌를 풀고 일어섰다.
삼십육로 타구봉법은 서른여섯 방위를 취하게 되어 있다. 일로에 사초로, 타구봉법을 시작하여 끝내기까지는 백오십육 초식을 펼쳐야 한다.
봉법이 아니라 보법 수련이라고 해야 할 만큼 복잡난해하다.
삼십육로 타구봉법은 개방 최고의 무공이다. 후개에게도 연무로 전수하는 것을 금지할 만큼 엄격하게 보안을 유지했다.
혹여 있을지도 모를 도무자를 꺼려서이기도 했지만, 만에 한 명 태어날까 말까 한 귀재를 개방 방주로 앉히고 싶은 욕심도 있었으리라. 방주 취임식을 사흘 앞둔 시점에서 전수해야 한다는 규정도 구결 전수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보안 유지 때문이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경거망동마저 차단하려는 마음이 들어 있다.
사흘 동안에 구결로만 전수받은 개방 제일의 신공을 완벽하게 수련할 수는 없다.
전임 방주는 삼십육로 타구봉법의 깨달음만 볼 뿐이지 무공의 완성도는 보지 않는다. 후임 방주가 삼십육로 타구봉법을 익히든 익히지 않든 상관없다.
제약은 주어진다. 실전에서 사용할 경우 적을 격살시킬 자신이 없으면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그것이다. 즉, 타구봉법을 완벽하게 소화시킨 다음에야 사용하라는 거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후일 방주 직을 물러날 때 후개에게 전수해 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 역대 용두방주 스물한 명 중 삼십육로 타구봉법을 시전한 방주는 단 네 명에 지나지 않는다. 방주 네 명은 모두 상대를 격살했다.
다른 방주들의 경우에는 타구봉법을 완벽히 소화했는지 하지 못했는지 판가름할 수 없다. 개방의 용두방주가 직접 무공을 시전할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
후개는 구결을 상기하며 보법을 밟았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천천히 보법을 밟으며 숙달시키면 된다. 타구봉도 초식대로 휘둘렀지만 역시 주안점은 보법이다.
‘보법을 완성하지 않으면 초식이 힘을 받지 못한다. 삼십육로 타구봉법은 보법에 묘미가 있어. 일로에서 삼십육로까지 이어지는 보법. 이럴 수가 있을까?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물 흐르듯 이어진다. 삼십육로라는 말은 세분화시킨 것에 불과할 뿐 실제는 일로다.’
타구봉법을 수련하면 할수록 새로운 부분이 드러났다. 한 번 수련하면 단맛이 나오고, 두 번 수련하면 쓴맛이 느껴지고, 세 번 수련하면 신맛이라고 생각되었다.
‘전혀 다른 무공을 수련하는 것 같아. 세상에, 이런 무공이!”
일 다경이면 충분히 밟을 수 있는 보법이지만 후개는 근 한 시진에 걸쳐서 밟았다. 삼십육로까지 완성한 후에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두 번을 수련하면 좌정하고 앉아 새로이 터득한 부분을 참오했다.
그리고 또 수련….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망각했다. 한가하게 무공 수련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바깥 동정에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면 무림인이라고 할 수 없다.
종리추는 어떻게 되었을까? 일책이 성공했을까? 종리추는 성공할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했지만 잘만 하면….. 하오문, 개방, 살문 외장이 손발만 잘 맞추면 칠 할까지는 점칠 수 있는데.
일책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곧바로 이책으로 들어선다. 모도로 가겠다고? 제정신인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무는 법이다. 일개 문파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적은 인원으로 천외천 고수들의 핍박을 이겨낼 도리는 없으니 천외천의 본거지라도 공격해 보고 싶으리라.
문제는 그게 아니다.
종리추가 이책으로 들어서면 개방도 다급해진다. 천외천은 종리추의 손발을 잘라 버리리라. 하오문주가 죽을 것이고, 살문 외장이 초토화될 것이고 살문 살수들 중에서도 홀로 떨어져 있는 자는 늑대 무리 앞에 선 토끼 꼴이 된다.
개방도 연관이 없을 수 없다. 당장 살천문주에게 가 있는 수지 호법이 문제다. 수천과 수동 호법은 바로 불러들였지만 수지 호법만은 아직도 살천문주 곁에 머물고 있다. 이책이 시작되었다면 백천의는 살천문주를 칠 것이고, 수지 호법도 위험하다. 수지 호법만의 일이 아니다. 장로 흑봉광괴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는다.
종리추의 일책이 진행되는 동안 분산된 정보망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 개방도를 분리해 나가던가 자신을 죽이려고 할 게다.
확실히 무공 수련을 하고 있을 틈이 없다.
하지만 후개는 마음을 모질게 다잡고 오직 무공 수련에만 몰두했다.
최악의 경우 개방이 둘로 나뉠 수도 있다.
후개는 그것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용두방주를 맡아 개방을 이끌어 나가려면 험난한 일이 이 정도에서 그치랴. 이 정도의 일을 무마하지 못한 데서야 어떻게 용두방주라 할 수 있을까.
‘삼십육로 타구봉법에 개방의 장래가 달려 있어. 지금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은 오직 타구봉법뿐이야. 종리추에게는 이책, 삼책, 사책이 있을 수 있지만 내게는 이 길 하나밖에 없어.’
희한한 현상이 일어났다.
단전에서 진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전신으로 급속하게 팽창한다. 뜨거운 열기가 전신을 휘젓는 것 같다.
‘주화입마?’
후개는 조심스럽게 보법을 멈췄다.
끓어 넘치는 진기를 조율하는 방법으로는 진기 운행을 멈추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다. 진기 운행을 멈춘다고 무조건 멈춰서는 안 된다. 경맥을 따라 흐르는 진기를 천천히 거두면서 멈춰야 한다.
보법을 멈추자 진기도 사그라졌다. 주화입마의 전조 현상은 아니다. 그렇다면 삼십육로 타구봉법의 효험이다. 구결 전수는 이런 경우가 난감하다. 극단적인 판단을 해야 할 경우 물어볼 사람이 없다. 진기를 옳게 운행하는 것인지, 수증기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
‘선택의 여지가 없어.’
후개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주화입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수천 수만 가지의 증상 중 한 가지 증상이 아니라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지만 설혹 주화입마의 현상이라고 해도 멈출 수 없다. 일로부터 다시 보법을 밟아 나갔다.
처음 무공에 입문하여 내공법을 배울 때, 단전에 응어리가 지면 수련을 멈추라고 했다. 그러면서 추궁과 혈로 뭉친 진기를 풀어주었다.
단전이 뜨거워지거나 설사를 하거나 하는 증상은 일시적인 증상으로 사람 신체에 따라 나타날 수도 있고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처음 그런 증상을 접했을 때는 얼마나 당혹했던가.
지금도 같은 현상이리라.
처음 접해보는 증상이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분명히 타구봉법의 효험이리라.
일로부터 삼십육로까지 밟아가는 동안 진기의 흐름은 더욱 강맹해졌다.
‘이상해. 무엇인가 빠진 것 같아. 진기는 강맹해지는데, 그것뿐이야. 빠져나갈 생각도 하지 않아…. 아! 이런 멍청이!’
지금까지는 보법만 수련했다.
몸에 굴곡이 생기고 뒤틀리고 뒤틀리지 않은 부분에 전해지는 힘의 균형이 다르니 진기의 흐름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진기가 더욱 잘 흐르도록 유도해 주는 것이 무공이다. 왜 봉법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발격을 더욱 강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봉법인데. 적과 직접 부딪치는 것이 봉인데.
‘너무 보법만 생각했어. 삼십육로 타구봉법의 묘미가 보법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야. 타구봉법은 조화다. 손과 발, 그리고 신체의 조화,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제 위력이 나오지 않아.’
보법을 천천히 밟았듯 봉법도 천천히 전개했다. 능숙함을 따지기에 앞서 묘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숙련은 차후에, 우선은 묘리부터.’
봉이 꺾이는 각도, 타격 부위, 봉을 잡는 위치, 보법과의 조화….
하나부터 열까지 무공을 창안하는 심정으로 수련했다.
구결에서 대체적인 윤곽은 잡았지만 번신마보윤벽봉이라고 해서 무조건 몸을 돌려 마보를 취하고 봉을 휘두르라는 말은 아니다.
뜻은 같지만 그런 초식을 전개함으로 해서 먼저 초식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이후에 전개될 초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상대가 어떻게 방어를 할 것이며 등등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다른 무공에서 배운 대로 막연히 자세를 잡고 봉을 휘두른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같은 초식이라도 어느 무공, 어느 부분에 들어가 있느냐에 따라서 위력이 확연하게 차이난다. 후개는 침식을 잊었다.
무공 수련이 개방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부단히 노력한 것은 아니다.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것보다는 무공 자체에 매료되었다.
‘진기를 풀고 바람처럼 부드럽게…. 살갗에 닿는 공기의 감촉을 음미하며… 진기를 모아모아 극점을 모으고….’
맞는 수련법일까?
후개 자신도 먼저 수련했던 과정을 참오할 때면 불현듯이 치미는 의문이다.
무공 수련에서 가장 큰 적이다.
흔히들 심마라고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만큼 무서운 적은 없다.
옳은 수련법이든 그렇지 않든 절대적인 확신으로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수밖에는 없다.
“휴우!”
수련을 마친 후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수련은 정말 힘들었다.
경력에 따라 진기를 발출하면 그리 힘들지 않았을 텐데. 극점으로 진기를 모은 채 발출하지 않고 초식을 전개하려니 등에 땀이 배인다.
그러나 정신만은 더욱 또렷하다. 전신에서도 활력이 넘쳐흐른다. 발출되지 않은 진기가 다시 단전으로 돌아갔으니 당연한 현상일까?
벽곡단을 한 알 먹었다. 수북이 쌓였던 벽곡단도 모두 사라지고 서너 알밖에 남지 않았다. 들어올 때 이백 알을 가져왔고 매 끼니마다 한 알씩 먹을 생각이었으니 두 달쯤 지나간 것 같다. 아니다. 나중에는 거의 먹지도 않고 정 배가 고플 때만 먹었으니 석 달쯤은 지난 것 같다.
‘나가봐야겠군. 수련을 끝내지 못한다면 이것도 내 운이지. 무림 상황이 여의치 않을 거야.’
석실에 들어와 있는 동안 무림은 참 많이 변했을 게다.
살문이 초토화되었을 수도 있고, 석실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흑봉광괴가 파견한 개방도에게 사로잡힐 수도 있다. 흑봉광괴가 선수를 쳐서 개방을 움켜잡았다면.
일 다경가량 휴식을 취했다. 벽곡단 한 알 정도 먹은 것으로는 바로 수련에 들어가도 지장이 없지만 진기 운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 진정한 무공의 실체를 알아봐야 한다.
“후우!”
큰 숨을 들이마셨다.
과연 삼십육로 타구봉법은 어떤 무공인가.
봉도 수련용 대신 용두방좌의 신물인 취옥장을 들었다.
말은 장이지만 실제로는 봉이다. 길이가 삼 척 정도에 불과한데 무슨 장이란 말인가. 봉보다는 약간 더 길고 장보다는 훨씬 짧으니 취옥봉이라고 말해야 옳을 게다.
“타앗!”
수련을 할 때는 한 번도 내지르지 않던 고함이 터져 나왔다.
후개의 신형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육안으로 식별되지 않을 만큼 빠른 신법이요, 보법이다. 또 봉법이다. 너무 빨라 취옥장이 지나간 자리에 청록색 환상이 어린다.
“타아앗!”
마지막 고함과 함께 후개의 봉은 거대한 석판을 내려쳤다.
쩌어엉….!
석판은 부서지지 않았다.
큰 울림을 토해내기는 했지만 금 한 줄 가지 않았다.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헉헉헉…..!”
후개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취옥장을 잡고 있을 힘조차 소진해서 지극히 소중히 다뤄야 할 방주의 신물 취옥장마저도 떨궈 버렸다.
후개의 신형은 강풍에 휘날리는 가랑잎처럼 휘청거렸다. 두 다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손도 술 중독에 빠진 사람처럼 떨리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볼도 씰룩거리고 있는데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것 같다.
쩌억! 쩌어억…!
석판이 뒤늦게 또 한 번 소리를 냈다. 그리고 또 잠시 후, 놀랍게도 석판은 쫙 갈라졌다. 후개는 석판이 갈라지는 것을 본 후에야 무너지듯 털썩 주저앉았다.
아예 얼굴을 석실 바닥에 묻어버리고 축 늘어졌다. 그것도 잠깐, 술 취해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길게 드러누웠다.
‘이 무공은 당할 사람이 없다. 왜 그토록 비전으로 전해졌는지 알 만해. 이토록 가공할 무공이라니…. 이건 금단의 무공이야. 시전하면 반드시 둘 중 한 명은 죽게 돼. 죽지 않을 수 없어.’
후개는 정신을 수습한 후에도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삼십육로란 적이 공격해 오는 방위, 물러서는 방위를 모두 계산한 투로다.
적은 공격이든 방어든 어떻게든 상대해야 한다. 순식간에 몰아치는 삼십육로의 방위를 모두 피해낼 수는 없다.
적이 부딪쳐 오는 순간 극점에 모았던 진기가 일시에 빠져나간다.
타격 시점에 진기를 발출하는 것은 기본이고 얼마나 정확하게 그리고 강하게 발출하느냐에 따라 무공의 성취가 달라지는 것이지만, 타구봉법처럼 무지막지하게 쏟아져 나가는 무공은 없다.
후개는 자신이 내공 고수 반열에 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삼십육로 타구봉법을 감당해 내기에는 어렵다. 지금과 같은 내력으로는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 먼 훗날 내력이 훨씬 더 깊어지면 두 번 세 번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하지만 한 번만으로도 충분하리라.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서 있을 힘조차 남기지 않고 모두 발출되는 전신 진기의 가공함을. 구진법에 이어 또 하나의 절정무공이 실체를 드러냈다.
‘완벽하게 수련하기 전에는 사용하지 말라는 방규…. 이거였군. 일격이 실패하면 죽음이야. 죽으면 봉법의 구결은 끊기고 말지. 구결을 후개에게 넘겨주기 전에는 죽지 말라. 그런 말이야, 방규는.’
올바르게 수련했다.
모른다. 정말 올바르게 수련했는지. 이렇게 탈진 상태에 이르지 않고 타구봉법을 시전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는지.
하지만 후개가 연성한 타구봉법은 이런 것이다. 단 한 번 시전에 모두를 거는.
후개는 일어나지 못하고 근 반나절 동안이나 누워 있었다.
후개가 익힌 삼십육로 타구봉법은 한 번 시전하면 적어도 하루는 꼬박 요양해야 하는 죽음의 봉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