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2 : 죽었다고 지옥을 아는가? [퇴마록(세계편) ‘아르타로트의 약속’ 직후] : 3화 – 악령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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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외전 2 : 죽었다고 지옥을 아는가? [퇴마록(세계편) ‘아르타로트의 약속’ 직후] : 3화 – 악령 살인


악령 살인

더글러스는 저절로 아래턱이 덜덜 떨려왔다. 미국인으로 태어 나서 그런지 그는 악령 따위는 정말 믿지 않는 사람 중 하나였다. 간혹가다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악령 같은 것은 단지 판타지적인 상상이라고 여겼다. 오히려 미스터리 하고 두려운 존재가 있다면 외계인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밀실에 불쑥 튀어나온 저 여자의 정체는 악령일 수밖에 없었다. 문명 훨 씬 이전부터 유전자에 각인돼 있었을 본연적인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와 삽시간에 온몸을 휘감았다.

‘제기랄, 이런 게 정말 있었단 말이야?’

더글러스는 참으려 이를 악물었다.

‘겁먹을 것 없어. 이건 내 앞에 나타난 게 아냐. 어차피 내 능력으로 들여다보는 것뿐이야!’

그럼에도 덜덜 떨리는 손을 변기에서 떼어 버리고 싶었다. 더글 러스는 이를 악물면서 왼손으로 자기 오른손을 덮어 눌렀다. 자기 손이 스스로 통제를 벗어날까 봐, 그리고 스스로 마음을 확고히 굳히고자.

‘봐야 해. 겁낼 것 없어. 나한테 벌어진 일이 아니야!’

억지로 되뇌면서 이를 악물었다. 조금 더 능력을 확산시켜 피해 자인 프랑코를 보아야 했다. 덜덜 떨며 억지로 시야 – 꼭 눈으로 보 는 것은 아니었지만ᅳ를 넓히자 프랑코가 잡혔다. 역시 예상대로 그때 프랑코는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보는 중이었는데, 그 악령이 나타나는 순간 완전히 기겁한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끔찍한 모습 의 여자 악령이 프랑코 쪽으로 둥둥 떠 슬며시 다가오는 것도 보였 다. 악령은 다리가 없어서 더 끔찍했다. 악령이 일종의 트럭이라거 나 사람이 분장으로 놀라게 한 것이라면 더글러스의 마음이 편했 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트릭이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도 없 었다. 무릎 아래가 연기처럼 흐릿하게 없는 것을 보고 말았으니까. 평소에는 돌아보지도 않던 종교나 신에게 자비를 빌고 싶어졌다. 

‘이런 제기랄, 하느님!’

그러면서 더글러스는 자신도 모르게 변기에서 손을 떼고 눈을 뜨며 화장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악몽 같은 투시는 중단 됐다.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유령이 나타 난 순간 프랑코의 표정을 본 것이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 했다.

당사자가 아닌 더글러스도 이렇게 놀랐는데 직접 악령과 마주 쳤을 프랑코의 행동은 훤하게 짐작이 갔다. 저런 것이 문을 가로 막고 갑자기 나타났으니 당연히 저 삐걱거리고 여는 데 힘이 드는 철문은 열 수 없다. 그쪽으로는 손도 내밀지 못했을 것이다. 허탈 할 정도로 당연한 결과다. 더글러스도 소리까지 느낄 수는 없었는 데, 프랑코의 입 모양을 기억해 보니 비명을 질렀을지 모른다. 허 나 그 소리는 철문과 파티장의 시끄러운 음악에 묻혔을 것이다. 게다가 도움을 청하거나 비명을 지르고 주저앉아 있을 상황이 아 니었다. ‘그것’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차라리 여자나 아이라면 주저앉았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조직의 보스다. 아무리 놀랐어도 몸이 먼저 움직였을 것이다. 안 그랬으면 지금껏 살아남 지도 못했을 테고, 머리는 두려움으로 백지처럼 하얗게 비워진 채 몸만 본능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그렇게 프랑코는 악령이 다가오 는 반대편의 창문을 깨부수고 도망 나온 것이 틀림없었다. 

‘분명 그럴테지. 그런데 더 봐야 하나?’

더글러스는 자신의 추리를 확인하는 의미에서 조심스럽게 화 장실 변기에서 손을 떼어 아직 능력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창틀에 손을 가져갔다. 솔직히 만지기 싫었지만 이를 악물었다.

‘이미 한 번 봤잖아. 겁먹을 것 없어. 시체 한두 번 봐? 뭐 별로 다를 것도 없더구먼’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 억지로 생각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물 론 시체는 수도 없이 봐 왔다. 이보다 백배 더 끔찍하게 망가진 시 체도 봤다. 그러나 둥둥 떠다니며 하반신 다리 부분이 연기처럼 희미한 데다 스스로 움직이는 시체는 본 적 없다. 그래도 더글러 스는 견뎌 냈다.

역시 그다음 프랑코의 행동은 예상과 거의 흡사했다. 단 하나 다른 것이라고는, 창문을 깨고 빠져나간 것이 아니라 머리부터 들 이밀며 창틀을 뚫듯 부수고 나간 것뿐.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으나 프랑코의 입장이 하도 절박했고 더글러스의 사이코 메트리 능력은 그런 프랑코의 마음까지도 동시에 전달해 주었기 때문에 비웃을 수조차 없었다. 더글러스는 그런 프랑코의 뒤를 그 여자의 악령이 몰아붙이며 따라간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저 유령이 몰고 갔다는 소린데.’

더글러스는 문득 아차 싶었다. 사이코메트리 능력은 몇 분 가지 않는다. 프랑코가 여기서 악령에 쫓겨 죽임을 당한 장소까지 몰려 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를 죽인 것은 누구인가. 프랑 코는 확실히 총에 맞아 살해됐다. 그러나 악령이 총을 쏠 리는 없 지 않은가? 설령 악령이 총을 쐈다 해도 여기서 쏘면 그뿐일 것이 다. 그렇다면 누가 그랬을까?

‘그걸 봐야 돼. 그걸 알아내야 하는데……………’

프랑코가 죽은 장소는 여기서 이 마일 떨어진 거리다. 사이코메 트리 능력은 이제 사라지고 나면 언제 또 발동될지 모른다. 더글러스는 자신도 모르게 프랑코가 한 것과 똑같이 창틀을 통해 밖으 로 빠져나왔다.

화장실 안에서 덜걱거리는 소리가 나자 더글러스를 지키듯 밖 에 남아 있던 두 덩치 중 한 명이 화장실 문을 열어 보았다. 문을 잠그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더글러스가 창문을 통해 버둥거리 며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저거 뭐야. 미쳤나?”

“글쎄, 죽은 보스의 행동을 따라 하려는 건가?”

“그런다고 뭐가 나오겠어? 병신 새끼.”

그들이 나름대로는 작게 소리를 죽여, 그래도 더글러스의 귀에 들릴 만큼의 성량은 유지한 채, 빈정대는 것을 더글러스는 창문 너머로 들었다. 기분 나빠할 틈도 없었다. 원래 더글러스는 사이 코메트리 능력으로 프랑코가 화장실에서 그 장소로 이동하기 위 해 받았을 일종의 메시지를 찾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끔찍한 여자 악령의 모습 같은 것을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현장은 아까 들러 보았지만 그때는 능력이 발동되지 않았다. 그러니 어떻게든 능력이 사라지기 전에 사건 현장으로 가야 진범을 볼 수 있는 것 이다. 금방 숨이 가빠 왔다.

‘이런 제기랄…….!

알코올과 불규칙한 생활 습관 때문에 몇 발짝 뛰지 않았는데도 헐떡거리는 자신의 폐가 저주스러웠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더글러스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더글러스는 어떻게든 이 마일의 거리를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단거리 선수만큼 빠르지는 않았어도 아직 체력이 제대로 회복되 지 않아 비실거리는 상태의 더글러스로서는 최대의 속력을 낸 셈 이다. 그렇게 해서 두 번째로 도착한 사건 현장에는 아직도 경찰 한 명이 남아 있었다. 더글러스는 경찰 한 명이 하품하며 앉아 있 는 자리에 땀투성이가 된 채 헐떡거리며 뛰어들었다. 있는 힘을 다해 달렸기에 땀에 절고 머리와 옷매무새까지 엉망이었다. 더글 러스가 이상한 꼴로 달려 들어오자 남아서 현장을 지키고 있던 경 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더글러스는 그에게 아무 소리도 하지 않 고 오른손을 뻗어 아까 그랬던 것처럼 사체가 놓여 있던 자리. 사 람의 형상이 흰 스프레이로 그려져 있는 바닥에 손을 얹었다.

아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아까는 그래도 자세를 잡고 앉아 손 을 댄 것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야구에서 도루를 성공시키려 슬라 이딩을 하듯 쓸고 미끄러지면서 손을 댄 것뿐이다.

“허어. 야구는 잔디밭에서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경찰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으나 더글러스는 반응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가 막 바닥에 손을 대는 순간 퍼즐이 맞춰졌다. 유유히 나타 나 총을 발사하고 사라지는 빌은 이미 용의자 선상에 올라 있었으 므로 서류에서도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혀 인적도 없는 장 소에서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프랑코 앞에 나타나 간단하게 총 한 방을 쏘고 사라지는 빌의 짧은 모습을 보는 순간, 더글러스 는 속으로 끔찍한 악령의 존재조차도 잠시 잊고 쾌재를 불렀다. 

‘됐어. 역시 빌이었군! 틀림없어.’

이로써 더글러스는 이 사건의 미스터리가 다 풀렸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단순한 낙관이었다. 정말 큰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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