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2 : 죽었다고 지옥을 아는가? [퇴마록(세계편) ‘아르타로트의 약속’ 직후] : 10화 – 화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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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외전 2 : 죽었다고 지옥을 아는가? [퇴마록(세계편) ‘아르타로트의 약속’ 직후] : 10화 – 화력전


화력전

네 사람은 별 제지를 받지 않고 빌의 건물 앞까지는 갈 수 있었 다. 그런데 빌의 건물에 다가가자 더글러스는 또다시 주눅이 들었 다. 아무리 생각해도 빌은 너무 위험한 인물이었고, 실제로 더글 러스가 건물 아래까지 직접 다가온 적은 이제껏 없었다. 물론 부 임한 기간이 길지 않은 까닭도 있었지만 애당초 이쪽으로는 쓸데 없이 발을 옮기고 싶지도 않았다. 더구나 그에게는 영장도, 동료 경찰도 추궁할 증거도 없다. 게다가 막상 건물 아래쪽에 와 보니 빌의 건물은 생각보다도 훨씬 엄중하게 경계되고 있었다.

멀리서 볼 적에는 그럴듯한 빌딩이었지만 건물 주변은 마치 군 기지나 국경선처럼 높다란 철망으로 빈틈없이 에워싸져 있었다. 차가 드나드는 입구에는 전기로 여닫는 육중한 철제문과 경비 초 소까지 딸려 있었다. 철책 주변에는 군데군데 굵직한 쇠 파이프 기둥을 박은 조그마한 망루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망루 위에 는 아마도 총을 가진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지 간한 군사 기지보다도 삼엄한 경비라 더글러스는 그 안으로 뚫고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몇 미터만 더 가면 철책이고 거기서 다시 몇십 미터만 더 가면 빌의 건물이지만 그 길을 전진할 방도 가 생각나지 않았다.

빌의 건물과 바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의도적으로 대비라도 하듯 홀랑 무너지고 낡아서 금방 쓰러질 것 같은 담벼락 뒤에 숨 어 더글러스는 한숨을 쉬었다.

“이거 안 되겠군.”

“시간이 없다고 했어요.”

“그건 그렇지만 이건……..”

현암은 대답도 하지 않고 태연하게 걸어 지나가는 행인처럼 양 손을 주머니에 찌른 채 저쪽으로 갔다. 더글러스가 말리려 했으나 승희가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빌의 부하들은 현암군이 누구인지 모르니까 처음엔 괜찮을 거예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현암은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철책 주변을 따라 산책이라도 하 듯 걸어갔다. 그러다 으슥한 곳이나 그늘진 곳도 아니고 바로 망루 의 아래편에 서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머니에 찔렀던 오른손을 꺼냈다. 물론 그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지만 현암은 손의 공력을 태연하게, 그러나 전력을 다해 끌어올렸다. 그런 다음 ‘발’ 자결을 넓게 확산시키는 느낌으로 철책을 가볍게 밀어 쳤다.

현암이 철책에 손을 대려 하자 망루 위에 있던 자가 고함을 지르면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그보다 현암의 손이 더 빨랐다. 현 암이 손댄 철책의 철망은 상당히 두꺼웠지만 물에 파문이 일듯 순 식간에 출렁했다. 다음 순간 철책은 주변의 기둥과 함께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반대편으로 줄줄이 쓰러져 버렸다.

망루 위에 서 있던 자는 흔들리는 망루 위에서도 어떻게든 균형 을 잡으려 버둥거렸으나 현암은 내친김에 그 망루의 기둥까지도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어 한 대 후려쳤다. 거의 허벅지만큼이나 굵 은 쇠파이프로 만들어진 기둥 하나가 현암의 주먹만큼 위아래 부 분이 절단돼 튀어 나갔다. 기둥 하나와 충격을 입은 망루는 통째 로 기울어지며 반대편으로 쓰러져 갔다. 물론 망루는 그 위에 있 던 자의 비명과 함께 단숨에 넘어져 땅바닥에 처박혔다. 떨어지는 속도와 땅에 부딪히는 충격으로 망루 위에 있던 자는 한 번 땅에 튕겨 나갔다가 바닥에 그대로 죽 뻗어 버렸다. 벌써 사방에서는 아우성과 욕설, 총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현암은 무너지다 남은 기둥 하나를 오른손으로 잡고 휙 끌어당겼다. 무지막지한 힘 으로 당기자 현암의 몸이 순간 이동처럼 사라져 철책 너머 주차장 한쪽에 세워진 픽업트럭 뒤로 떨어져 내렸다.

아무리 현암의 힘을 알았어도 직접 눈으로 보니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더글러스는 어이가 없었다. 작전이고 뭐고 없이 이렇게 무 지하게 돌진하다니!

“철책에 전기라도 흘렀으면 어쩌려고!”

승희가 아무 걱정 없다는 듯 찡긋하며 말했다.

“전기는 안 흘렀어요.”

“아니 그, 그걸 어떻게 알……………. 아니, 당신은 그냥 어떻게 아는 재주가 있겠지. 아무리 그래도…”

“빨리 가요.”

“뭐요? 지금 총알이…………….”

“전부 현암 군 쪽만 보고 있어요! 우리가 뛰어들 기회를 벌어준 거라고요. 머뭇거릴 거예요?”

승희는 말만 하지 않고 앞장서서 달렸고 이반 교수도 주저 없이 그 뒤를 따랐다. 할 수 없이 더글러스도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총 알은 현암이 뒤에 숨은 트럭 주변에 집중적으로 퍼부어졌다.

“이건 너무 무모하오.”

가면서도 더글러스는 불평했지만 빌의 부하들은 다른 세 사람 이 철책을 넘어오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했다. 망루와 철책을 단번 에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뛰어든 현암에게 너무 놀라 그쪽만 보는 것 같았다. 덕분에 편하게 또 다른 차 뒤에 몸을 옮긴 세 사람은 저만치에서 집중 사격을 받고 있는 현암을 바라보았다. 더글러스 가 말했다.

“저차 거의 부서져 가는데 미스터 현암은 괜찮을지…………. 아, 제 기랄, 난 총도 못 가져왔다고!”

“네? 미국 형사가 총을 안 챙겨요?”

“당신들이 다짜고짜 이리로 끌고 왔잖소. 나는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았다고! 제길. 우린 응수할 무기도 하나 없고 저들은 저렇게 쏴 대니, 아무리 당신들이 강력하고 마음을 읽는다 해도 이 총알 받을 건널 수 없지 않소!”

여태까지 말없이 가만히 있던 이반 교수가 말했다.

“아니, 방법이 있소.”

“예?”

“그런데 응사해도 되오?”

“총이 있소?”

“그러니 묻는 거요. 하지만 난 미국인도 아니고 경찰도 아니니……………. 응사해도 되는 거요?”

더글러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앉아서 죽을 생각이오?”

“미국의 법률 체계에 대해 아직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해서…..!”

“상관없어요. 경찰인 내가 책임지겠소. 어떻게든지 쏘시오. 일은 이미 벌어졌으니, 나도 더 이상 물러설 생각은 없소. 내가 또 한 번 옷을 벗는 한이 있어도……………. 다만 기자만 없으면…………….”

“기자?”

“미국 경찰이 제일 싫어하는 순위를 매긴다면 당신들이 생각하 는 범죄자는 한 세 번째쯤 될 거요. 첫 번째가 변호사, 두 번째가 기자, 세 번째가 범죄자지. 당신들도 기자는 반기지 않을 거잖소.”

승희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이 근방에 없어요.”

“그럼 마음껏 쏘시오.”

“알겠소.”

이반 교수가 딱딱하게 대답하며 배낭 손잡이에 손을 댔다. 그리 고 배낭을 내려 땅에 놓더니 끄르지도 않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 다. 이반 교수는 배낭을 그냥 둔 채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리모컨 같은 것을 꺼내 열심히 톡톡 눌러 댔다. 그리고는 고개를 한 번 끄 덕이고 배낭이 차 옆으로 노출되도록 발로 주욱 밀었다. 더글러스 는 뭔가 싶어 멍하니 보고 있다가 이내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이반 교수가 리모컨 단추 하나를 누르자 배낭이 저절로 움직이 면서 심해의 괴물이 수면 위로 고개를 올리듯 길쭉한 형체가 배낭 밖으로 솟아 나왔다. 동시에 배낭 아래쪽에서도 세 개의 길쭉한 발이 옆으로 빠져나와 땅을 딛고 섰다. 위로 솟구쳐 나온 것은 자 동으로 앞쪽을 바라보며 천천히 여섯 개의 눈을 전방으로 향했다. 그 금속성 기계의 형상은 더글러스가 이전부터 비슷한 것을 보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개틀링포(Gatling gun)?”

“일종의 미니건’이오.”


3 개틀링이란 총열 6개가 동그랗게 말린 다연장 기관총을 말한다. 연속 사격의 한 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미 백 년도 훨씬 전 개틀링이라는 미국인이 여섯 개의 총열을 회전시키며 발사하는 방식을 생각해 내서 만들었다. 흔히들 개틀링포, 혹은 벌컨포라 고 잘못 불리지만 그 본질은 여러 개의 총신을 가진 고속 발사가 가능한 기관총이다. 사용 탄약의 구경에 따라 수많은 변종이 있고 역사도 길지만 모든 총열회전 방식의 기관총은 개틀링 계열이라 부를 수 있다.

4 보통 개틀링 방식의 총은 상당히 거대한 크기여야 하는데, 흔히 사용되는 소총탄인 5.56밀리 탄으로도 작동될 수 있도록 축소한 무기 체계가 미국에서 고안됐고 그게 바로 미니건이다.


그런데 아무리 낯익은 미니건 형태라고 해도 그것이 이렇게 자동으로 괴물처럼 움직이며 스스로 작동 형태를 찾아갈 줄이야. 더군다나 그것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늙은 흡혈귀학 교수의 배낭에서 튀어나올 줄은 절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저, 저런 걸 메고 다닌 거요? 사격은?”

“자동이오.”

이반 교수가 말하자마자 미니건의 총열 위로 조그마한 레이더 가 솟아나 빙빙 돌더니 미니건이 혼자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불 을 뽑기 시작했다. 무조건 연속으로 쏘는 것이 아니라 민활하게 움직이며 포착한 지점마다 일 초도 안 되는 사이에 수십 발의 탄 환을 퍼부어 댔다. 무시무시한 발사 속도에서 나오는 소음이 귀를 찢었다. 더글러스는 귀를 막은 채 이반 교수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소리 높여 물었다.

“혼자 쏴대는 거요? 장탄은?”

이반 교수는 태연하게, 품에서 시가 한 대를 꺼내어 불을 붙이며 대답했다.

“배낭 바닥에 천 발의 탄약이 있고 자동으로 장전되오.”

“이…………… 이래도 되는 거요?”

간혹 응사로 인해 배낭에 탄환이 명중돼 조금씩 움찔거리기도 했지만 배낭 앞부분에는 세라믹 장갑(甲)이라도 있는지 총은 상하지 않았다. 이반 교수는 시가를 한 번 빨아 깊이 들이켰다 뿜으 며 농담하듯 덧붙였다.

“이래도 되냐니? 나는 분명히 당신에게 응사해도 되냐고 물었 고 당신은 그렇게 하라고 얘기하지 않았소? 그리고 이 탄은 펀치 력은 강하지만 치명적인 살상은 하지 않는 ‘덤덤탄’이오”

더글러스는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물론 덤덤탄도 제네바 협정에 위배되는 탄종이오만, 그건 심한 멍과 고통을 주기 때문에 민간용으로 사용하지 말란 의도니 지금 상황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 거요. 쏴 죽이는 것 보다는 나을 테 니까. 아, 탄피가 뜨거우니 닿지 않게 조심하시오.”

“하지만 저 총의 조준은…….”

‘자동 조준이니 염려 마시오. 조그마한 골키퍼 시스템’이오 비 행기를 노리는 미사일도 분사구에서 나오는 열기를 감지하고 쫓 아가지. 마찬가지로 어떤 총이든 화약을 이용해서 발사한다면 열 기가 나오니 그걸 조준하는 거요. 사격하는 적에게는 자동으로 응사해 그 일대 전체를 제압하게 설계돼 있소. 굳이 내가 나쁜 눈으로 조준할 필요가 없는 거지.”


5 탄자가 일종의 고무로 구성돼서 사람의 몸을 뚫지 않고 타격만 주어 제압하는 용 도로 만들어진 특수 탄환이다.

6 해군 함정에서 미사일을 요격하는 자동 발사 기관포 시스템을 말한다. 근래에는 골키퍼보다 신형인 팰렁스 시스템을 주로 사용하는데, 본문에서는 1990년대인 시대 상황을 고려해 구기술인 골키퍼라 설정했다.


이반 교수는 ‘오늘 날씨 참 좋군’ 같은 말투로 태연하게 시가를 빨며 말했다. 그리고 총은 아직도 계속 불을 뿜고 있다. 상대방쪽 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니 미친 듯 응사하는 모양인데, 점점 상대방 의 총소리는 줄어들었다. 엄청나게 정확한 것 같았다.

“그런 기술을 총에 적용했다고요? 이게 도대체 어디서 만든 겁니까?”

이반 교수는 전에 학교 얘기를 할 때와 똑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내 공장에서.”

“당신, 군수 사업도 합니까?”

“백오십 년의 역사를 가진 저명한 사냥용 레저 총기 업체요.”

“하지만 이런 총을 만들 수 있다면………..”

“아, 물론 이건 판매용이 아니지.”

“이런 기술이라면 충분히 군에서 적용해도…………….”

그러자 이반 교수는 조금 날카로운 눈매로 더글러스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해치는 군용 무기 같은 걸 내가 생산할 것 같소? 난 절대 그런 걸 만들지 않아. 사람을 위해서 일하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것은……”

더글러스는 잠시 헛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여태껏 내가 본 중에 가장 엄청난 파괴 무기 같소만 적어도 개인이 쓰는 것 치고는 말이오.”

아닌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잡담 비슷한 것을 늘어놓는 동안, 저 쪽에서 쏟아지는 탄환은 이제 거의 나오지도 않았다. 승용차 정도 는 이 총의 타격을 불과 몇 초만 받아도 차체가 연속되는 총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우그러들고 엎어졌다. 그 뒤에 숨었던 차들은 밀리기도 하고, 안의 연료 체계가 상했는지 폭발하기도 했다. 철 판을 펑펑 뚫는 관통력 같은 것은 없었지만, 그 한 발 한 발이 굉 장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런 총알이 너무도 빨리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지간한 시멘트 난간도 조금만 화력이 집중되면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빌의 부하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도망 치면서도 엄호를 한답시고 이쪽을 향해 총을 쏴 댔다. 총을 쏘지 않았다면 무사했을 텐데 기존의 상식대로 엄호하려던 것이 실수 였다. 이반 교수의 자동 조종되는 미니건은 그런 자들도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게 뒤쫓아 고무 총알을 퍼부어 댔다. 물론 관통이 되지 않아 죽거나 몸의 일부가 절단되는 끔찍한 일은 벌어지지 않 았지만 아마 커다란 해머로 온 전신을 두들겨 맞는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제네바 협정으로 금한 비인도적인 탄환답게, 덤덤탄은 목 숨을 빼앗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갱들은 꽤 긴 치료를 받아야 할 중태에 빠졌다.

이반 교수는 안에서 쏟아져 나온 수십 명의 갱들이 거의 제압되고 몇 명 남은 자들도 무지막지한 화력에 질려 건물 안으로 도망가는 것을 힐끗 보며 더글러스에게 말했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갖고 있어도 저들은 그냥 악당일 뿐이오. 정규군 같을 수는 없지. 바보 같은 미국 갱들, 수류탄이라도 던지 면 될 건데 총만 믿으니…. 하긴, 자기편 본거지에 수류탄을 던 질 이유도 없으니 준비 안 했나? 뭐, 총질을 미친 듯 좋아하는 놈 들이니 총알 세례를 받아도 싸지.”

“하지만 저들은 정규군 못지않은 훈련도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더 당한 거요. 섣불리 엄호한답시고 사격을 멈추지 않 아서.”

“그런 심리적 요소까지 계산한거요?”

이반 교수는 더글러스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시가를 끄고 남 은 것을 주머니에 대강 넣으며 말했다.

“정규군은 훈련을 받아서 강한 게 아니오 나라를 지킨다는 사 명감 때문에 강할 수 있는 거지. 악행을 위해 훈련한 것 따위가 무 슨……아. 아직 기다리시오.”

더글러스는 한숨을 쉬었다. 이반 교수의 총의 압도적인 화력에 질렸는지 총을 쏘아 대던 외부의 적은 모두 안으로 몰려 들어간 것 같았다. 안의 창문 등에서 몇 발씩 응사가 있었지만, 이반 교수 의 총은 그런 자들에게도 모조리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결국 저 쪽은 응사를 포기하고 완전히 침묵했다.

그러자 승희가 말했다.

“모두 건물 안으로 도망쳤어요. 이제 괜찮아요.”

그 말을 듣자 이반 교수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승희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난 다음에야 더글러스도 일어섰다. 불과 몇 분 전과는 완전히 변한 건물 일대가 눈에 들어왔다. 건물의 입구 주변은 아예 허리케인이 휩쓸고 가거나 대지진이 일어난 다음처 럼 만신창이가 돼 버렸고,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많은 차도 총의 사격이 이루어진 부채꼴 방향 내에서는 거의 쓸리듯 밀려 나 모세 가 바다를 갈라놓은 것처럼 길이 꽉 트여 있었다.

“빌을 못 잡아도 문제없겠군. 여길 정리하는 걸로만 파산할지도모르니.”

더글러스는 조금 안심이 돼 한숨을 내쉬었는데 이반 교수는 상황을 보더니 표정 없이 리모컨 단추를 누르며 말했다.

“난 미국식 유머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소.”

이반 교수가 리모컨을 누르자 이반 교수의 배낭에서 나왔던 총 들은 철컥거리며 안으로 접혀 들어갔다. 이반 교수가 그 배낭을 놓아둔 채로 걸음을 옮기자 더글러스는 깜짝 놀라 말했다.

“아니, 이건 왜 내려놓는 거요? 강력한 무기인데.”

“총알이 거의 없소. 그리고 좁은 실내에서 이런 걸 쓸 수는 없지.”

“그래도 갖고 가야 되지 않소?”

“무겁소”

“아니. 그렇지만 이걸 다른 자들이 쓴다면…………….”

“자물쇠가 걸려 있으니까 괜찮소. 갈 때 찾아가면 그만이오. 그러니 서두릅시다.”

그러면서 이반 교수는 배낭 아래쪽에서 뭔가를 쭉 잡아당겨 꺼 내 오른손에 쥐었다. 여러 가지 화려한 금무늬 같은 것이 장식된 고풍스러운 총이었는데, 개머리판과 총열을 짧게 잘라 단층 형태 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한 자루의 총에 각기 구경이 다른 두 개의 총열이 위아래로 배치돼 있어서 독특했다.

“그건 무슨 총이오?”

“벨지움 컨바인, 위는 윈체스터 탄이 나가고 아래는 샷건용 버벅탄이 나가지.”

“허 만든 거요?”

이반 교수는 대답하지 않고 더글러스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 총 하나 주워 들고 입구를 확보해 주시오.”

“제가요? 당신은?”

“여기 총이 스무 자루는 널려 있으니 위험하오. 공이를 분해해 던져 버리겠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지.”

승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저만치 있던 현암에게 말했다.

“현암군! 들어가자!”

마치 어디 놀러 가자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걱정된 더글러스가 급히 리볼버 한 자루를 주워 들고 둘을 멈춰 세우며 말했다. 

“건물 안에서도 방심하면 안 되오. 다 같이 들어갑시다.”

현암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승희는 어딘가 한심하 다는 눈으로 더글러스를 바라보았다. 한 일도 없는 더글러스는 조금 민망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안전을 기하기 위해 입구 주변에 리 볼버를 겨눈 채 대기했다. 그사이 이반 교수는 철컥철컥하고 갱들 이 떨어뜨린 총을 분해해서 던져 버리고 있었는데, 가지각색의 다 른 총인데도 손에 쥐는 순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분해했 다. 특히 노리쇠 뭉치나 공이 부분은 따로 멀리 집어 던졌음에도 한 총당 소모하는 시간이 삼 초도 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이십여 정의 총을 분해하는 것을 보자 더글러스는 더 어이가 없었다. 

“허어…… 흡혈귀학에서는 총기 분해도…………….”

혼자 중얼거리다 보니 아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아니, 백오십 년 역사의 총기 회사를 가졌다고 했었나… 저분이야말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아니오?”

승희는 피식 웃었다.

“뭐, 그렇죠.”

그때 갑자기 요란한 기계 작동음과 함께 커다란 철제 방호벽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건물 입구를 차단했다. 어떻게 손을 써 볼 겨를도 없이 육중한 금속성 굉음과 함께 출입구는 차단돼 버렸다. 그것을 보고 더글러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빌 녀석, 돈도 많군. 이런 것까지 장치해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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