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3 : 천기의 수호자 : 1화 – 의문의 소년
의문의 소년
“이봐. 장준후?”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준후는 그 소리에 문 득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 넓지 않은 매우 낯선 공간이었다. 막 어둠이 깔리기 시작 하는 밤하늘처럼 짙고 푸른 하늘이 위뿐만 아니라 사방을 가득 채 우고 있었다. 작고 고풍스러운 빈 정자 한 채 앞에는 조그마한 연 못이 하나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을이나 집은커 녕 나무 한 그루 없었고 멀리 보이는 산도 바다도 평원조차도 없 었다.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자신이 왜 이런 곳에 와 있는 것인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준후는 분명 자신의 힘과 주변에 있던 모든 능력자의 힘, 거기 에다 해밀턴의 조력까지 받아 시간을 역행하려고 했었다. 몸을 지 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영혼만 빠져나와 공간의 벽을 찢었다. 영혼조차도 그것을 견딜 수 없었겠지만 해밀턴이 지닌 불사의 힘이 자신을 지켜 주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공간 자 체의 균열은 굉장한 혼란으로 느껴져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 기 이런 고즈넉한 장소에 있다니. 더구나 그와 같이 행동했던 해 밀턴은 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몸이……………?
후는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육신을 두고 왔는데 두 손이 멀쩡했다. 영혼 상태에서의 느낌일 뿐이라기엔 너무도 생 생하고 자연스러웠다.
“대답해.”
다시 한번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준후는 그 목소리 가 자신이 구세의 권능을 얻었을 때 그것을 알려 주었던 신격의 목소리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준후는 놀라며 몸을 뒤로 돌렸 다. 누군가가 보였다.
그는 준후보다도 상당히 작고 앳돼 보이는 소년이었다. 다소 고 풍스러운 주변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하고 있었 다. 무늬 없는 헐렁한 흰색 티셔츠와 옅은 회색 반바지를 입고 역 시 무늬 없는 흰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머리는 약간 길지만 단정 하게 가르마를 넘겼고 뒷머리를 길게 묶어 넘겼다. 특이할 것이 없는 차림이었지만 오른쪽 귀에만 옥 귀걸이를 하고 있는 것이 그 나마 약간 특이했다. 체격으론 고작해야 열 살 조금 넘어 보였고 얼굴도 비슷하게 앳돼 보였다. 상당히 귀여운 인상으로 잘생겼지만 하관이 가늘고 긴 편이었으며, 눈매는 굉장히 위로 치켜 올라가 있어서 다소 사나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진갈색 눈동자에서 은은히 금색 광채가 가끔씩 번득였다.
소년은 약간 인상을 쓰며 다시 말했다.
“대답하라고 했잖아, 장준후.”
소년의 목소리는 나이에 걸맞게 뾰족했고 어딘가 건방진 느낌이 짙었다. 준후는 한 번 헛기침해 목을 가다듬은 뒤 말했다.
“넌 누구지? 어떻게 나를 아는 거야?”
그러자 소년은 웃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반말하지 마. 보기엔 이래도 너보다 삼백오십 살 가까이 더 먹었으니까.”
“……”
준후가 대답하지 않자 소년은 다시 말했다.
“영혼 상태로 미친 짓을 하려던 너를 여기로 데려온 게 나야. 조 금은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게 낫지 않을까?”
소년의 말을 듣자 준후는 생각했다. 이 소년은 절대 보통내기가 아니며, 자신은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의 존재라고. 분명 자신은 굉장한 분노와 의지, 슬픔을 품고 영혼 상태로 육체를 떠났었다. 독하게 마음먹었으며 죽을 각오도 한 상태였다. 그러나 상황이 예 상과 너무나도 달라진 만큼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생각해 야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정신 수양에 능한 준후는 다시 마 음을 진정시켜 일단 평정심을 찾는 데 성공했다.
마음을 가다듬은 준후는 고개를 조금 끄덕이면서 다시 물었다.
“당신은 누구…… 아니, 누구십니까?”
준후가 정중히 묻자 소년은 그제야 조금 인상을 펴면서 대답했다.
“난 옥결이다. 강옥결.”
그리고 준후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옥결은 오른쪽 귀에 걸린 옥 으로 된 귀걸이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이거 얼굴도 못 본 우리 아버지가 남긴 단 하나의 유품이야. 원래는 옥으로 만든 작은 팔찌였는데, 처음부터 끊어져 있었지. 그래서 귀에 걸고 있는 거고.”
“환이 아니라 결인 겁니까?”
“그래. 연을 끊겠다는 고리타분한 풍습이지. 뭐, 괜찮아. 사백 년 가까이 된 옛일이니까. 아무튼 아버지가 내 이름조차 안 지어 주 고 사라져서 이걸로 이름을 대신했다. 당연히 안 궁금했겠지만, 그냥 말하고 싶었어.”
준후는 무심코 멍하니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준후는 몇백 년 묵은 괴물이나 인간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다. 심지어 해밀턴의 경우는 이 소년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 그러나 눈앞의 소년이 그토록 나이를 먹었다고는 조금도 믿기지 않았다. 옥결은 준후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다시 말했다.
“이번엔 궁금해하는 것 같네? 내가 너무 어려 보여? 그거 우리 어머니 때문이거든? 어머니가 내가 귀여운 편이 좋다고 해서 이 렇게 하고 있는 것뿐이야. 너도 비슷한 적 있었잖아?”
사실 준후도 과거 스스로의 의지로 신체적 성장을 멈췄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에는 다시 풀어 버려서 지금은 청년의 모습이 됐 지만 때문에 준후는 옥걸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다소 쉽게 수긍 했다. 다만 자신의 과거까지 옥결이 안다는 것에는 다시 한번 놀 랐다. 그러자 옥결은 기분 좋다는 듯 말했다.
“너는 이해하는구나. 우리 어머니가 조금 집착이 강하셔. 전에 도 나를 낳지 않고 십 년 이상 그냥 품고 계셨었어. 내가 너무 귀 여워서 그러셨대. 그런 분이니 기분 좋게 잘해 드려야 하잖아. 심 지어 인간도 아니신데.”
이 말은 준후에게도 좀 충격이었다.
“네?”
“아, 우리 어머니, 인간이 아니시거든?”
“정말입니까?”
“내가 거짓말 따위 할 것 같아? 맞춰 봐. 무슨 동물이셨게?”
옥결이 다짜고짜 묻자 준후는 당황했다. 옥결은 그야말로 제멋 대로인 성격 같았는데, 그렇다고 밉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천하의 준후조차도 꼼짝 못 하고 그냥 끌려가게 만드는 묘한 분위기를 풍 기고 있었다.
준후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물론 몇 가지 전설 속에 나오 는 영통한 동물이 있기는 했다. 단군 신화만 해도 곰과 호랑이가 있고, 뱀이나 우렁이 각시 등 많은 동물이 생각났지만…………….
그때 옥결이 정말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준후는 그런 옥결의 얼굴을 조금 더 자세히 살폈다. 굉장히 뽀얗고 귀여워 보였지만 하관이 길고 뾰족하며, 눈매가 날카로운 것이 어딘가…………….
“혹시・・・・・・ 여우 아닙니까?”
그러자 옥결은 크게 웃으며 손까지 치면서 좋아했다.
“맞아! 너 볼 줄 아는구나! 그럼! 아들은 어머니를 닮아야지! 너 조금 더 맘에 드는데?!”
그러면서 옥결은 중얼거리며 덧붙였다.
“물론 도통하셔서 날 낳을 때는 완벽하게 인간으로 낳으 셨으니 난 순수한 인간 맞아. 그런데 우리 어머니, 화나면 정말 무 서운 분이니 이 이야긴 이만하자.”
옥결은 정말 어딘가 제멋대로였고, 그가 하는 말도 이해가 가지 는 않았지만 준후는 순순히 대답했다.
“네.”
“아무튼 그래서 전부터 널 좋게 봤었거든? 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좋았지만, 네가 좀 더 마음이 가더라고.”
그러다가 옥결은 다짜고짜 강하게 되물었다.
“그런데 너, 왜 떼를 쓰는 거냐?”
“아니・・・・・・ 필요?”
준후가 다소 놀라 말을 조금 더듬자 옥결은 뒷짐을 지고 걷기 시작했다.
“일단 이야기 좀 하자.”
그러면서 옥결은 척척 거침없이 정자 쪽으로 향했다. 준후는 잠시 망설이다가 옥결의 뒤를 따랐다. 그래 봐야 좁은 공간이었기에 몇 발자국 가지 않아 바로 정자에 도착했다. 옥결은 편하게 털썩 정자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으며 말했다.
“너도 앉아.”
준후는 어쩔 수 없이 옥결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러자 옥결은 고개를 쳐들고 소리를 쳤다.
“차좀 내와.”
그러자 준후의 곁에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났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스르르 나타난 덕에 준후는 조금 놀랐다. 사실 그것뿐만 아 니라 나타난 자의 형상이 너무도 괴이해서 더욱 놀란 것이었다. 나타난 것은 옥결보다도 더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소녀는 온몸 전체가 암울할 정도로 뿌연 회색이었다. 양갈래로 머리를 땋아 내린 것 외에는 얼굴조차 잘 구분할 수 없 을 정도로 형체도 불확실했고 표정도 없었다. 애초에 생명이라고 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준후가 흔하게 상대했던 악령 같 은 기운을 미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소녀는 양손에 옻칠한 팔각 쟁반을 받쳐 들고 있었는데 쟁반 위에는 소박한 다기가 보였다. 소녀의 회색빛과 대비라도 하듯, 쟁반이나 다기의 색은 선명했다. 쟁반에 놓인 찻잔은 두 개였다.
소녀는 무표정하게 옥결과 준후의 사이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조용했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뭔가 위태위태한 몸가짐이었다. 준 후는 자신의 앞에 찻잔을 놓는 소녀와 눈이 마주쳤는데, 소녀의 눈은 그냥 한없이 깊고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 같은 구멍 같아 보였다. 순간 준후는 굉장한 섬뜩함을 느꼈다.
그때 옥결이 말했다.
“손님이야. 먹을 것 아니다.”
그러자 소녀는 재빨리 준후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옥결의 앞에 나머지 찻잔을 내려놓더니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소녀는 옷인지 뭔지 구분도 안 되는 회색의 몸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보니 골격이 온전히 붙어 있는 작은 동물의 회색 해골이었다. 소 녀는 그 해골의 목을 비틀어 돌리기 시작했다. 목이 비틀어질 때 마다 해골은 신음하며 조금씩 발버둥 쳤다.
뭐라고 말하기도 힘든 기괴한 분위기에 준후가 넋을 놓고 있자, 옥결이 소녀에게 말했다.
“가”
그러나 소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옥결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수고해 줘서 고마워. 그러니 가.”
그제야 소녀는 다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준후는 어이 가 없어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옥결은 손수 찻주전자를 들 고준후에게 따라 주며 말했다.
“귀엽지?”
당연히 준후에게는 귀엽기는커녕 두려운 존재였기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옥결은 웃으며 말했다.
“너도 아직 멀었구나. 만물을 똑같이 볼 줄 안다면 저 애가 얼마 나 귀여운지 알았을 텐데.”
“저 아이……………는 누굽니까? 아니, 뭡니까?”
준후가 간신히 묻자 옥결은 심드렁하게 자신의 찻잔에 차를 따르며 대답했다.
“유계界)에 갔을 때 데리고 온 애야. 귀여워서 주워 왔다고나 할까. 이름 따윈 당연히 없고”
“유계요?”
“아, 그런 세계가 있어.”
‘저승 같은 곳 말인가요?”
“그건 사계(界)고, 거긴 너희 인간들에게도 유익한 곳이야. 뭐 랄까… 공무원들이 영혼을 건져 보려고 애쓰는 세계라고나 할 까. 유계는 그곳과는 달라. 그냥 아예 가망 없는 영혼을 보내는 곳 이지.”
“그런가요?”
“그렇지만 그런 곳에도 희망은 있는 거야. 방금 저 애. 귀엽잖아.”
“또 다른 세계도 있나요?”
“아, 우주 팔계(八) 몰라? 신성광생사유환마(神聖光生死幻말이야.”
준후가 고개를 젓자 옥결은 혀를 찼다.
“아는 게 없구나? 됐고, 차나 들어.”
옥결이 다짜고짜 권하자 준후는 조심스레 찻잔을 손으로 들었다. 차는 따뜻했고 향기도 좋았다. 준후는 분명 영혼 상태일 것인 자신이 이렇게 차를 마신다는 게 좀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옥결이 귀신같이 눈치를 챈 듯 말했다.
“너 지금 몸이 있어. 차 대접을 하려는데 몸이 없으면 느끼지도 못하잖아. 여기, 내 집에 오는 자는 어떤 존재건 그에 맞게 형체가 생겨. 요즘 말로 하면・・・・・・ 자동이야. 하하.”
준후가 믿어지지 않아 멍하니 있자 옥결은 다시 말했다.
“차들자고”
그러면서 옥걸이 먼저 차를 마시자 준후도 찻잔에 입을 댔다. 차는 굉장히 향긋했고 목 넘김도 좋았다. 준후가 평생 마셔 본 차 중에서도 손꼽을 만했다. 그러자 옥결이 다시 웃었다.
“괜찮아? 마실 만해?”
“네. 아주 좋습니다.”
“괜히 하는 말 아니지?”
“네. 다기도 훌륭하군요.”
“다기는 별거 아냐. 아, 삼백 년 정도 된 물건이니 요즘으로 치면 골동품은 되겠지만. 뭐, 장터에서 그냥 사 온 거야.”
“사왔다고요?”
옥결은 하하 맑게 웃었다.
“그러면 내가 그릇을 굽겠냐? 이 차도 사 온 거라고 마트에서.”
“마트……………라뇨?”
도저히 분위기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준후가 다시 말을 더듬자 옥결이 또 웃었다.
“그러면 내가 차나무도 키워야 해? 아니면 훔쳐? 지금 입은 것 도 다 산 건데? 물론 약간 손은 봤지만.”
“속세에 드나들기도 하시나요?”
“아, 자주 가. 안 그러면 심심해서 어떻게 살아? 물론 내 본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말이야. 지금 네가 보는 모습이 내 진짜 모습이고.”
“그렇군요.”
“그리고 속세라는 표현, 난 안 좋아해. 너 무슨 고고한 척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그냥 다 같이 내가 있는 세계일 뿐이잖아. 여기 거기건 다 소중한 세상이야. 그저 생계(生界)지.”
“그렇군요.”
“물건 살 때는 내가 그 세상에서 번 돈만 쓰니까 아껴 써야지. 그 나저나 다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차 끓인 솜씨가 중요한 거야. 내가 직접 끓인 거라 공치사하는 게 아니라, 공 많이 들였다고.”
“아까 그 아이가 한 게 아니고요?”
“내가 끓인 거라고. 널 부르려고 준비해 뒀던 거야.”
“준비해 두셨다고요? 어떻게 아시고……”
그러자 옥결은 발끝으로 정자 주변에 있는 연못을 가리켜 보였다.
“저거 연못 같지만, 아냐. 우주 팔계 어디든 보고 싶은 곳은 다 보여 주는・・・・・・ 그러니까 뭐랄까, CCTV 화면 같은 거야. 당연히 너도 봤지.”
그러다가 옥결은 찻잔을 가볍게 내려놓고 다시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너, 왜 떼를 쓰는 거냐?”
“떼를 쓰다뇨”
준후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되묻자 옥결은 약간 인상을 썼다.
“너, 떼썼잖아. 세상. 정확히는 지구에 불과하지만, 모조리 멸망시켜 버리겠다느니 하면서 말이야.”
준후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왜 그랬는지 이미 아시잖습니까?”
“너, 이제 막 초원의 경지에 들어선 것 알고 있지? 법칙에 대한 권능을 얻었으니까.”
“네.”
“그런데 그걸로 다짜고짜 뭐? 물 분자에 대한 결합력에 권능을 쓴다고? 그래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없앤다고?”
그 말에 준후는 무겁게 대답했다.
“그렇게 말한 건 사실입니다. 전 굉장히 분노했고, 슬펐으니까요.”
“동료들의 죽음 때문에?”
“네. 정확히는 죽음보다도, 희생이 당연시되는 게 너무 싫었어 요. 무엇보다……”
준후는 애써 평정심을 되찾았지만, 다시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금세 준후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샘 솟아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옥결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 듣긴 했어. 무슨 보상을 바란 건 아니라는 걸. 그렇게 애 쓰고 모든 것을 희생한 네 동료들이 아무런 평안도 행복한 시간도 얻지 못한게 화가 난다는 네 말. 그런 세상이라면 구할 가치도 없 고, 네가 구했으니 도로 없애겠다는 말도.”
준후는 눈물을 훔치기만 할 뿐,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옥결 은 다시 말했다.
“그 말에는 조금 동의해, 그래도 넌 너무 나갔어. 그렇다고 해도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하다니. 너, 정말 그럴 건 아니었지? 주변의 바보들에게 힘을 보태 달라고 협박한 거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만, 그땐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그 말에 옥결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봐야 넌 아직 초짜야. 그나마 세상을 구한 것 덕분에 간신 히 초월의 경지에 이르러서 말단 권능 하나 생긴 거고, 아직은 극 히 미약한 거였다고 막 초월 경지에 들어갔기에 가장 작은 분자 단위에나 통할 수 있었고, 그나마 지구를 구한 셈이기에 지구 전 체가 영향권에 들었을 뿐, 초월 경지에서는 아주 미약한 수준이었 다고! 그걸 그딴 식으로 바로 써먹다니. 너 같은 녀석은 인류 역사 상에서도 없었을 거야.”
준후는 또다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옥결은 넌지시 말했다.
“네가 그런다 해도 너보다 강한 자들………… 가령 내가 막으려 했 다면 어땠을 것 같아?”
그 말에 준후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지는 못할 거라 생각했어요.”
“왜?”
“아무리 작은 권능이라도 그건 합당한 ‘권능’이니까요. 그건 기 존 물리 법칙이나 다른 강자들의 의사도 배제하고 제게 주어진 권 한입니다. 저보다 훨씬 강한 존재도 많겠지만, 적어도 그것만은 건드릴 수 없었을 겁니다. 실제 제가 지구를 망하게 만들어도 말 이죠”
준후가 확고하게 이야기하자 옥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제법 이해하고 있구나. 그건 맞는 말이다.”
“네.”
“그런데 말이지, 지구를 네가 망하게 해 봐야 사실 별건 아냐 내가 다시 만들면 그만이거든.”
“네?”
준후가 깜짝 놀라자 옥결은 웃으며 말했다.
“너, 내가 뭐 하는 존재인지 알아?”
“신・・・・・・입니까?”
준후가 묻자 옥결은 피식 웃었다.
“에이, 날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 신은 나도 아직 실제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모르거든? 난 그런 엄청난 존재는 아냐”
“그러면요? 확실히 당신은 거의 전능한 것 같은데요.”
그러자 옥결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난 ‘천기의 수호자’야. 이름은 거창하지만 그래 봤자 지구 한 정이야. 네가 보기엔 전능이라고 하지만, 모든 법칙에 권능을 가 진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리고 중요한 건, 주로 하는 내 업무가 네가 하려던 그 미친 짓 같은 걸 막거나 만회하는 일이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