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2장 – 은루(銀淚)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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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2장 – 은루(銀淚) (3)


다행히도 티나한은 그가 혐오하는 도깨비의 인격적 결점이나 종족의 악습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다. 티나한이 도깨비에게 가진 불만은 단 하나, 도깨비들이 절대로 하늘치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비형은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물었고 티나한의 설명을 듣자 반색하며 외쳤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군요! 하늘치 유적 발굴자! 맞습니까?”

티나한은 주막 주인이 가져온 술통의 뚜껑을 열며 우울하게 말했다.

“그래. 너희 도깨비들이 도와줬으면 이미 하늘치의 등을 밟았을 거다.”

“하지만 딱정벌레가 절대로 하늘치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는데 저희들로서도 무슨 도리가 있겠습니까. 저희들 중에도 하늘치 유적에 뭐가 있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딱정벌레가 도통 말을 듣지 않아요. 가장 잘 훈련된 딱정벌레도 하늘치만 보면 고양이 본 쥐처럼 달아나버려요. 그런 설명을 못 들었습니까?”

“들었어.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실험도 한 번 해봤고. 정말 달아나더군. 얼어 죽을. 딱정벌레에게 수화까지 가르치는 너희들인데 왜 하늘치가 온순하다는 것은 가르쳐줄 수 없는 거냐? 엉?”

“하늘치가 정말 공격적이지 않다면 ‘성난 하늘치 같다’는 속담은 생기지 않았을 거라 생각되지 않아요?”

“그 웃기는 속담은 나도 지겹도록 들어봤어. 하지만 나는 진짜 성난 하늘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그거 틀림없이 사실 무근일 거야. 하늘치가 워낙 크다 보니까 그 모습에 지레 겁을 집어먹은 얼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만들어낸……………”

그때 조용히 있던 케이건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꼭 그렇진 않소.”

티나한과 비형은 케이건을 돌아보았다. 케이건은 담담하게 말했다.

“성난 하늘치는 있었소. 그 하늘치가 왜 분노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소. 그 하늘치를 분노하게 한 왕국이 지상에서 사라졌거든.”

티나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왕국? 아, 그 왕이라는 것이 있던 시대의 이야기야? 옛날 이야기군.”

“옛 시대의 전승이오. 하지만 분명히 그런 일이 있긴 했소.”

“하지만 그런 옛날 이야기를 어떻게 믿을 수 있냐? 그것도 어느 잡것이 만들어낸 이야기일지 모르잖아.”

“하인샤 대사원에 가보면 확인할 수 있을 거요. 그곳 서고에는 승려들이 목숨을 걸어 지켜온 기록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대사원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제 우리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하오만.”

케이건은 속으로 안도했다. 비형과 티나한이 동의의 고개짓을 보내어온 것이다. 케이건은 곧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말, 그러니까 죽은 말을 꺼냈다.

“내가 알기로 딱정벌레에는 레콘이 포함되지 않을 경우 두 명까지 탈 수 있소. 그리고 티나한 당신은 딱정벌레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속력으로 사막을 달릴 수 있소. 따라서 내일 낮에는 자두고, 일몰에 이곳을 떠났으면 하오. 나와 비형이 딱정벌레에 타고 티나한 당신은 달리는 거요. 그러면 모레 아침까진 충분히 푼텐 사막 남쪽에 도달할 수 있을 거요. 그 시점에서 딱정벌레를 돌려보내고 휴식을 취한 다음 키보렌으로 들어갑시다.”

비형과 티나한은 당황했다. 그들은 논의가 될 거라 생각했지만 케이건의 말은 지시에 가까웠다. 물론 그 말은 명령이 아닌 청유였지만 제반 지식이 전혀 없는 두 사람으로서는 동의 외엔 할 것이 없었다. 그런 사태가 계속될 것을 짐작한 비형은 손을 들어 케이건의 말을 중단시켰다.

“말을 끊어서 미안합니다만, 케이건. 아무래도 우리 둘은 당신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 이외엔 할 것이 없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저는 나가에 대해서는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심장을 뽑고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는 별로 아는 것이 없고 키보렌에 대해서는 거기에 나무가 끔찍하게 많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몰라요. 당신은 어때요, 티나한?”

티나한은 부리를 약간 뒤틀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형은 다시 케이건을 돌아보았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에게 일일이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당신이 필요한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냥 당신이 지시하고 우리가 따르는 식으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길잡이라면서요?”

“하지만 당신들도 필요한 사항들을 알고 있어야 하오. 만약 내가 키보렌에서 죽으면 어떻게 할 작정이오?”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되겠지만, 혹여나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저는 주위에 온통 불을 지른 다음 최대한 빨리 북쪽으로 도망칠 겁니다. 당신이 만약 죽게 되면 남은 건 둘뿐이죠. 둘로는 하나를 상대할 수 없어요. 셋만이 하나를 상대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케이건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좀 알아야겠군. 당신 장기를 발휘하겠다는 건 절대로 좋은 의견이 아니오. 열을 보는 나가들은 그 불을 누구보다도 빨리 파악할 거요. 잠시 주위의 나가 정찰대를 쫓아버릴 수는 있겠지만, 곧 사흘 거리 내에 있는 나가 정찰대를 모조리 불러모으게 될 거요. 그 수목 애호가들은 나무를 불지른 당신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요. 소드락을 잔뜩 복용하고 달려들 그 수많은 나가들 앞에선 티나한의 철창도 아무 소용이 없을 거요.”

자신에 대한 폄하보다 자신의 무기에 대한 폄하를 더 큰 모욕으로 느끼는 것이 레콘이지만, 불행하게도 티나한은 자신의 철창을 가소롭게 여기는 이 발언에 대해 화를 낼 수 없었다. 케이건의 말 중에 의미를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티나한은 ‘열을 본다’거나 ‘나가 정찰대’, ‘수목 애호가’, ‘소드락’ 등이 무슨 말인지 질문했다. 비형 역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케이건은 충격을 받았다.

그제야 케이건은 한계선 이북과 이남이 얼마나 오랫동안 단절되어 있었는지를 절감했다. 수백 년 전 나가들의 폭풍 같은 북진이 기온이라는 절대적 한계에 부딪혀 중단되고 마침내 대확장 전쟁이 끝났을 때 세계는 두 동강이 나버린 셈이다. 나가들의 땅 키보렌과 그 북쪽의 땅. 뒤쪽의 세계는 산이나 황야, 사막, 초원, 숲, 빙하 등이 있는 정상적인 세계다. 그러나 앞쪽의 세계에는 밀림뿐이다. 키보렌이라는 단 하나의, 세계의 반을 뒤덮은 숲. 케이건은 거기서 희극의 요소를 발견했다. 오직 단 한 사람, 한계선에 가장 근접한 도시 카라보라의 최남단에 나가를 도축, 가공, 요리할 수 있는 시설과 장비를 완비해 두고 매일같이 나가를 잡아먹으며 사는 인간 한 명을 제외한다면, 이제 모든 이들에게 나가들과 그들의 땅 키보렌은 전설 속의 존재나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만약 나가들이 그들 이외에 그들을 증거해 줄 자를 찾아내야 한다면 그들은 그들을 가장 증오하는 자를 찾아와야 할 것이다. 대사원의 영리한 승려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증오란 원래 그렇다.

“왜 우는 겁니까?”

비형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케이건은 현실로 돌아왔다. 눈가를 만져본 케이건은 손끝이 젖는 것을 깨달았다. 우는 것을 싫어하는 티나한은 화난 표정으로 케이건을 쏘아보고 있었다. 케이건은 눈가를 훔쳤다.

“왜 울었는지 모르겠소.”

“뭔가 언짢은 일이라도 생각나신 건가요?”

케이건은 그 질문을 무시했다. 그러곤 건조한 어투로 티나한의 질문에 대답했다.

“나가들의 귀는 신통찮지만 대신 그 눈은 대단히 밝은 편이오. 그들의 눈은 열을 볼 수 있는데, 그 때문에 어두운 밤에도 우리 같은 뜨거운 생물들을 볼 수 있소. ‘나가 잡는 것은 도깨비’라는 옛말은 거기서 나온 말이오. 그 옛날 수완 좋은 도깨비들은 사람이나 동물 모양의 도깨비불을 만들어서 나가의 눈을 속이곤 했소. 체온과 비슷한 정도의 차가운 도깨비불로 말이오.”

비형은 그만 케이건의 눈물에 대해 까맣게 잊고 말았다. 도깨비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우와! 정말입니까? 제 도깨비불에 나가가 속습니까?”

“그래요. 키보렌에 들어가면 당신도 그 재주를 써야 할 거요. 당신이 요술쟁이일 거라고 했잖소? 그리고 수목 애호가라는 건 당신들도 짐작할 수 있을 거요. 그들은 자신을 나무의 친구로 여기오. 틀린 말은 아니지. 그들의 땅 전체에 나무를 심으니까. 따라서 그들은 나무를 태우는 것을 아주 싫어하오. 그들 자신들도 필요에 따라 나무를 베기도 하고 태우기도 하지만, 그 경우엔 나무 장례식을 치러주지. 아, 그리고 이것은 나가들이 도깨비를 싫어하는 두 번째 이유요. 도깨비불은 나가를 속일 수도 있고 나무를 불태울 수도 있으니까.”

비형은 감탄하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건은 티나한을 돌아보며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나가 정찰대라는 건 키보렌을 돌아다니는 정찰대를 말하는 거요. 물론 여자로 구성되고, 보통 모험심이 많은 나가나 가문에서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난 나가들이 주축을 이루지. 나가의 각 도시는 두서너 개의 정찰대를 가지고 있소. 이 자들이 주로 정찰을 하는 곳은 한계선 이남 지역이오. 불신자들, 그러니까 우리 같은 자들의 침입을 경계하는 거지. 그리고 나무를 보살피는 일을 하오. 나무들의 전염병을 다스리거나 산불 때문에 피폐해진 숲을 복원하는 등의 일을 하오. 사실 뒤쪽의 일이 주된 일이요. 키보렌에 내려가는 자는 없으니. 그리고 소드락이라는 건 나가들의 비약이오. 한계선 지대까지 올라올 경우 나가들은 추위 때문에 움직임이 대단히 느려지지. 하지만 그 소드락이라는 것을 먹으면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키보렌에서 가장 더운 땅에서와 같은 정도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소. 따라서 한계선 근처의 땅을 돌아다니는 나가 정찰대는 항상 소드락을 가지고 다니지. 색깔은 붉은색이오. 만약 그들과의 싸움 중 그들이 붉은색 약을 삼키려 들면 반드시 제지해야 하오. 까다로워지니까. 그것만 제지할 수 있다면 한계선 근처의 땅에서 나가를 상대하는 것에 결정적인 불리함은 없다고 하겠소.”

케이건이 폭포처럼 쏟아놓은 지식들은 비형과 티나한을 헐떡이게 만들었다. 티나한과 비형은 똑같은 시선으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는데 그것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지식들을 얻었느냐고 묻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케이건은 그 시선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케이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마저 울러 가야겠소. 왜 울었는지 생각날지 모르니. 따라오지 말길 바라오.”

그리고 케이건은 탁자 옆에 세워둔 쌍신검을 집어든 다음 밖으로 나갔다. 남겨진 두 사람은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때 비형은 주막의 주인이 그들을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감님?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도깨비의 친절한 말투는 주인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주인은 결심을 하고는 부엌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솥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탁자에 솥을 내려놓은 주인은 주막 밖을 훔쳐보며 말했다.

“미안하오만 말씀 나누시는 것을 조금 들었소이다. 두 분은 저 자를 오늘 처음 만나시는 것 같은데, 맞소?”

“영감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요?”

“저 자를 멀리하시오. 미친 자요! 제정신이 아니오!”

티나한은 잠시 케이건을 자신의 동료로 여겨야 되는지 고민했다. 만일 그렇다면 티나한은 동료를 대신하여 이 무례한 주막 주인을 걷지도 기지도 못할 정도로 손을 봐줘야 했다. 하지만 아직 만난 지 하룻밤도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은 티나한은 잠시 유보를 두기로 했다. 자신이 가공할 위험에 빠질 뻔했다는 것을 모르는 주막 주인은 필사적인 얼굴로 도깨비를 바라보았다. 비형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침을 흘리거나 눈도 까뒤집지 않고 자신이 만물의 질서를 결정한다고 주장하지도 않던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영감님?”

주인은 비장한 얼굴로 솥뚜껑을 움켜쥐었다가 확 열어보였다. 비형과 티나한은 그 동작에 감명을 받았고, 그래서 그 내용물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흐음, 위험해 보이는군. 식은 고깃국이라.”

비형과 티나한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주인을 바라보았고 주인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이건 나가 고기요!”

주인은 만족감을 느꼈다. 티나한과 비형은 그가 기대하던 반응을 보여줬다. 비형은 허옇게 질려 뒤로 물러났고 티나한은 고개를 숙여 솥 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저 자는 자기가 키보렌을 통해서 사막으로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제가 믿지 않자 저자는 이걸 내보이고는 삶아달라고 말했소! 먹겠다고 말이오! 세상에 말이나 되는 소리요? 하지만 오금이 저려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소. 눈을 이렇게 뜨고 쳐다보는데, 나는 그런 눈은 난생 처음이었소! 남아 있는 고기들을 보여드리고 싶지만 이게 마지막 남은 것이오. 저 자가 다 먹었소! 이걸 먹었단 말입니다!”

“어, 흠. 진짜 나가였나? 다른 동물이 아니라? 아무리 이 푼텐 사막이 키보렌에 가까이 있다지만 너도 나가를 본 적은 없을 거 아냐.”

티나한은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주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요, 나도 처음 봤소! 하지만 보면 알아요. 나가가 아니라면 세상에 어떤 동물이 비늘이 덮인 팔을 가지고 있겠소? 그 팔을 꺼내다가 난 기절할 뻔했소!”

티나한이 갑자기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비형과 주인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가운데 티나한은 솥 안을 뒤져 고깃덩이를 하나씩 집어들었다. 그러고는 그 뼈의 모양을 꼼꼼히 살폈다. 잠시 후, 티나한은 하나의 고깃덩이를 탁자 위에 놓고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비형도 그 고기를 보았고 거기에 붙어 있는 것을 본 순간 허리를 숙여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희미한 비늘 자국 끝에 붙어 있는 것은 손톱이었다. 동물에겐 거의 없는 넓적한 손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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