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2장 – 은루(銀淚)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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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2장 – 은루(銀淚) (6)


페이 가문에서는 륜 페이가 적출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흠잡을 데 없지만 정성이 없는 선물을 받은 그의 친구와 달리 륜은 보다 정성이 깃든 선물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륜은 즐겁지 않았다. <남자는 무기를 가져야 돼. 륜. 밀림을 홀로 돌아다니다 보면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거야.〉

륜은 사모 페이의 무기고를 보며 어이 없는 기분을 느꼈다. 춤 의 재능은 무술의 재능과 통하는 면이 많고 뛰어난 무용가인 사 모는 대단한 무술가이기도 했다. 그녀의 무기들이 훌륭한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질려버릴 정도로 많았고, 사모는 그 모든 무기 를 모두 쥐어볼 것을 권하고 있었다.

무성의한 태도로 이리저리 둘러보던 륜의 눈이 벽에 걸린 사이 커 하나에 멈춰섰다.

사이커는 나가의 전통검이며 그 예리함은 겹쳐 쌓은 양피지 열 장을 한 번에 벨 수 없으면 사이커라 부르지도 않는다는 니름이 있을 정도다. 륜이 본 것은 사이커 중에서도 대단한 고급품이었 다. 하지만 검에 대한 식견이 깊지 못한 륜이 그 검의 우수함 을 알아본 것은 아니다. 륜은 그저 그 도신의 파형문이 마음에 들었다.

륜은 그 사이커를 집어든 다음 몇 번 휘둘러보았다. 사모를 돌 아본 륜은, 그녀의 기묘한 표정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죄송합니다. 누님께서 아끼시는 것인가 보군요.>

륜은 그 사이커를 도로 걸어두려 했다. 하지만 사모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아니, 괜찮아. 내가 사용하는 것이 아냐. 난 네가 그걸 곧장 집어들어서 좀 놀란 것뿐이야.〉

<특별한 사이커인가요?>

<응. 그래.〉

사모는 니를까 말까 고민하던 표정을 짓다가 부드럽게 닐렀다.

〈그 사이커는, 그 사람이 쓰던 거야.〉

륜은 움찔했다. 그는 사모를 바라보다가 다시 눈길을 내려 손에 들린 사이커를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오?>

<그래. 그 사람.>

<모두…………..,>

없애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의 물건은……?>

〈그래야 하지.〉

사모는 빙그레 웃었다. 륜은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고 자칫 사 이커를 떨어뜨릴까봐 두 손으로 그것을 쥐었다. 륜은 사이커가 손 안에서 꿈틀거리는 줄 알고 놀랐다. 물론 그의 손이 떨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눈 가까이로 사이커를 들어올린 륜은 칼뿌리 근처에서 뭔가가 지워진 흔적을 발견했다. 정확하게 니르면 지워진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어떤 글자에 정교한 솜씨로 무늬를 더해 글자가 무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어 놓았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찾을 수 없 겠지만, 륜은 그 무늬 속의 글자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것은 어 떤 이름이었다.

<어떻게 숨겨두셨습니까?>

내 사이커 하나를 대신 내어줬지. 네가 가지렴. 그 사람도 반대할 것 같지는 않군.>

그리고 사모는 궤짝을 열어 적당한 검대를 꺼내어 륜에게 건네 었다. 륜은 약간 서툰 솜씨로 그것을 허리에 묶었다. 감사를 표 하려던 륜은 문득 발작적으로 닐렀다.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이미 오래 전에 그런 희망은 포기했죠. 하지만 저는 하나라도 가지고 싶었습니다. 제 아버지의 물건을.>

사모는 륜이 니른 ‘아버지’라는 단어에 약간 놀랐다.

<아버지라고?>

륜은 낭패한 얼굴이 되었다.

<저, 아버지라는 것은…….>

<아니, 그 니름이 무슨 뜻인지는 알아. 불신자들의 미신이지.>

<미신이라고요?>

사모는 난처한 듯이 웃었다. 논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륜은 물러날 기미가 없었다.

<그래, 미신이지. 아버지라는 것은 없어.>

<그렇다면 누님은 왜 이 사이커를 보관하신 겁니까? 누님도 아버지의 딸이기 때문에 이것을 보관한 것 아닙니까?>

사모의 얼굴에 다시 놀라워 하는 감정이 떠올랐다.

〈그것도 알고 있었니? 그래. 내 어머니의 짝이 그였다는 것은 맞아. 하지만 나는 아버지라는 그 기괴한 미신 때문에 그것을 보 관한 것이 아냐. 요스비는 내 무술 스승이었지. 나는 스승에 대 한 추억 때문에 그걸 보관했던 거야.>

사모의 냉정한 대답은 륜을 괴롭게 만들었다. 사모는 앞으로 한 발 다가와 륜을 똑바로 바라보며 닐렀다.

<륜.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지만, 우리는 그 남자가 준 것만으 로 이루어진 것이 아냐. ‘아버지’ 라는 그 우스운 단어를 꼭 사용 하고 싶다면, 너는 어머님이 드신 동물들과 마신 물까지도 모두 아버지라고 불러야 해. 니름도 안 되는 일이잖아?>

<알아요. 잘 알고 있습니다.>

<나도 네가 잘 알 거라고 믿어. 그러니, 떠나기 전 내 앞에서 그 니름을 취소해.>

<무엇을 취소하라는 니름이십니까?>

<아버지라는 니름. 취소해. 앞으로 다시는 그런 단어를 사용하 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런 미신에 사로잡히면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없어.>

륜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것을 어떻게 약속할 수 있단 니름인가. 11년 전의 내기억을 없애주기라도 한다면 모를 까.’ 

그러나 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페이라는 이름을 잃기 직전 에 그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페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른 가족들에게도 모두 인사를 한 다음 륜은 밖으로 나왔다. 정문 앞에는 페이 가문에 체류 중인 열 명의 남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륜은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간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많은 경우 이런 호위자들은 심장탑에서 적출식을 방금 끝내고 나온 처녀들을 따라 다른 가문으로 옮겨가곤 한다. 하지만 간편 한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 남자들이 륜을 호위해 준 다음 모두 페이 가문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열 명의, 한 결같이 간편한 복장의 남자들. 이런 자들의 호위를 받고 하텐그 라쥬를 걸어가는 것은 엄청난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 다. 륜은 가까이 있는 남자 한 명에게 질문했다.

<모두 돌아오실 겁니까?>

〈그래. 륜.>

이미 페이는 사라졌다. 륜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심장탑에서 새로 성인이 된 처녀들도 많이 볼 수 있을 텐데요.> 

남자는 싱긋 웃었다.

<나는 이 집이 좋아.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것 같고. 그 처녀들 은 오늘 성인이 될 너나 다른 청년들을 유혹할 수 있겠지.>

륜은 갑자기 격렬한 질투를 느꼈다. 이 남자들은 돌아올 수 있 지만,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륜은 이제 다시는 이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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