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2장 – 은루(銀淚)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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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2장 – 은루(銀淚) (11)


심장탑의 홀에 들어선 화리트는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고 있는 나가들을 보며 공황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22년 동안 자신의 집과 심장탑, 그리고 친구의 집 정도만을 오갔던 나가에게 그렇게 많은 나가들의 모습은 당연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도로에서도 많은 나가들을 볼 수 있지만 그때엔 언제나 호위자들이 함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혼자였다.

가까스로 화리트는 다른 자들 또한 같은 기분일 거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자 화리트는 약간의 우월감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수련자인 화리트에게 심장탑은 익숙한 건물이었다. 다른 자들은 아마도 화리트보다 훨씬 주눅 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홀을 둘러본 화리트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가 처녀들은 청년들에게 적출식이 끝난 다음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느라 여념이 없어서 심장탑의 내부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청년들 또한 수줍게 처녀들을 피한 채 자신들끼리 모여 어떤 저택의 누가 가임기라느니 어떤 저택이 느긋하게 머물기 좋으니 하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련자인 그에겐 아무 관련이 없는 내용들이었기에 화리트는 어떤 대화에도 참여하지 않은 채 조용히 홀을 가로질렀다. 홀을 가로지르던 도중 화리트는 페이 가문의 이름이 여러 번 거론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화리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들 중 정말 페이 저택을 방문할 만큼 용감한 청년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언제나 많은 방문자들이 머무르는 페이 가문에 방금 심장을 적출한 청년이 찾아갔다간 풋내기 취급을 당할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청년들 중 대부분은 적출식 직후에 찾아온다는 허탈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하텐그라쥬를 떠나 방랑을 시작할 것이다. 청년들에 대한 처녀들의 안달은, 따라서 언제나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화리트는 더 이상 그들에게 신경 쓰는 대신 륜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때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화리트 마케로우.>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화리트는 깜짝 놀랐다. 그에게 이름을 보내온 것은 홀 옆, 복도의 그림자 속에 서 있던 수호자였다. 하지만 수호자라면 화리트를 그런 식으로 부를 리가 없다. 화리트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예를 차렸다.

<따라와라.>

두건을 깊숙이 내려쓴 수호자의 이름은 지나치게 단순했다. 개성이 거의 생략된 채 의미만을 전달하는 이름이었다. 나가의 이름은 불신자들의 말과 달리 이렇듯 완전히 무개성하게 발산될 수 있다. 자칫하면 누가 이른 건지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거의 그러지 않지만, 화리트는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예의 있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적출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일러라. 다른 자들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네가 오기 직전 륜 페이가 도망쳤다.>

화리트는 깜짝 놀라면서도 자신 또한 이름을 단순화시켰다.

<도망이요?>

<그래. 특수 도서실로 도망쳐서 그곳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적출 공포증인 것 같다. 네가 와서 달래줘야겠다.>

이름을 단순화시킨 덕분에 그와 수호자의 대화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화리트는 수호자가 왜 저런 이상한 이름을 이르는 건지 깨달으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뗐다. 조금 전 무턱대고 달려갔던 륜과 달리 화리트는 천천히 움직이며 다른 자들의 주의를 끌지 않은 채 홀에서 빠져나갔다. 화리트가 복도로 들어서자 수호자는 빠르게 동쪽 계단으로 걸어갔다. 화리트는 그 뒤를 쫓으며 질문했다.

<혹시 누구를 다치게 하지는 않았습니까?>

<아직 그러지는 않았다. 늦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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