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4장 – 왕 잡아먹는 괴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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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4장 – 왕 잡아먹는 괴물 (6)


파름 평원에서 바라볼 때, 파름 산 중턱에서부터 정상 바로 아래까지 드러누워 있는 하인샤 대사원은 하나의 사찰로는 보이지 않는다. 일단 파름 산의 5부 능선부터 8부 능선까지 펼쳐져 있는 그 거대한 면적 때문에 그러하고 건물들 사이에 통일성이 결여되었기에 그러하다. 게다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계곡과 숲, 봉우리 때문에 건물들 사이의 연관성이 희박하게 보인다. 그 때문에 하인샤 대사원의 전체적인 모습은 마치 산비탈을 따라 건설된 도시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하인샤 대사원이라는 하나의 가람이다.

그 불합리한 구조 때문에 파름 산 승려들은 경내의 다른 부속 건물까지 가야 할 때도 장거리 여행을 시작할 때의 긴장감을 느껴야 했다. 물론 하인샤 대사원의 승려가 대사원의 경내에서 사망하게 될 경우 그건 객사로 보아야 된다는 말은 과장 섞인 농담일 뿐이다. 하지만 어린 행자들이 단지 경내의 다른 지점으로 가는 도중에도 외진 산 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어깨에 사문살이의 더께가 두껍게 쌓일 때쯤 되면 그런 기분 따위는 느끼지 않지만.

하인샤 대사원의 이런 이상한 모습은, 어처구니없이 길고 온갖 놀라운 사건들로 점철된 그 사원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종단 역사상 최연소 대덕으로 이름 높은 오레놀은 하인샤 대사원의 첫 번째 주춧돌이 놓였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를 완전히 암기하고 있었고, 그래서 평소 승려들에게 대사원의 이런 기묘한 모습에 오히려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하지만 숨이 턱에 닿은 채 쥬타기 대선사의 암자로 올라가고 있는 지금 오레놀은 자부심 비슷한 감정도 느끼기 어려웠다. 그는 자신이 지쳐 쓰러지는 것이 먼저일지 암자에 도착하는 것이 먼저일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어디에도 없는 신의 가호 때문인지 사문살이 동안 단련된 튼튼한 다리 근육 덕택인지야 불명확하지만 어쨌든 오레놀은 쥬타기 대선사에게 보고할 때까지 졸도하지 않을 수 있었다.

“용이, 눈을 떴다고 합니다!”

암자 한켠의 텃밭을 갈고 있던 쥬타기 대선사는 쟁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용이라고?”

“예! 용이 눈을 떴습니다!”

쥬타기 대선사는 수염을 부르르 떨다가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대선사는 떨어뜨린 쟁기를 집어 들었다.

“일단 가서 물 한 잔 마시자꾸나.”

대선사는 쟁기를 든 채 암자의 툇마루 쪽으로 걸어갔다. 쟁기와 모자를 내려놓은 대선사는 조그마한 부엌에 들어가 손수 물 한 바가지를 들고 나왔다. 대선사는 그것을 오레놀에게 내밀었고 오레놀은 황송해하며 황급히 물을 마셨다. 수건으로 얼굴을 훔치며 기다리던 대선사는 오레놀에게서 바가지를 돌려받아 물 한 모금을 마신 다음 입을 열었다.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선원에서 참선 중이던 자들 중 군령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군령자가 어떻게?”

“그 군령자는 카시다 사원의 소개장을 가지고 와서 선원에서 참선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군령자가 어제 참선하는 도중 갑자기 자기들 중에 용인(龍人)이 하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깨달았다고?”

“그 군령자도 자기들 중에 용인이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용인은 너무 오래전에 군령의 일부가 되었고 지금까지 잠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용인이 갑자기 깨어나서는 아라짓 어(語)로 용근이 눈을 떴다고 외쳤습니다. 함께 참선 중이던 행자들이 기겁했다고 하더군요.”

놀라움 속에서도 대선사는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군령자는 자기들 속에 수천 년 전에 죽은 자의 영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기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보통 그보다 덜 오래된 영들이 알려주는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그토록 오래된 영들은 깨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군령의 일부가 된 자라 하더라도 결국 불사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깨어났다는 것일까?

“그 용인은 완전히 깨어난 거냐?”

“아니요. 그 말만 외친 다음 다시 잠들었다고 합니다. 군령자는 여러 번 시도해 보았지만 자기 속에서 다시 그 용인을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아마도 깊은 참선 때문에 그 용인이 잠깐 깨어날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쥬타기 대선사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추측해 보았다. 참선은 자신을 잊어가는 것이다. 군령자라면 아마도 잊어야 할 자신들이 많을 테고 그 많은 자신을 모두 잊게 되자 가장 오래된 자신이 표면으로 떠올랐을 수도 있다. 대덕의 추측은 그럴 법했다.

“그런데 아라짓 어라고 했느냐?”

“예. 그 군령자는 자기들 속의 자기가 한 말이 뭔지도 모르는 눈치랍니다.”

“그런데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참선을 지도하시던 데호라 대사(大師)께서 은밀히 알려주셨습니다.”

대선사는 허벅지를 탁 쳤다. 데호라 대사는 고문과 고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이름이 높다.

“데호라 대사께서 말하시길 그 군령자는 이미 관심을 잃었고 함께 참선 중이던 다른 행자들 또한 잊어버릴 거라더군요. 참선 중에 온갖 이상한 말을 외치는 자들이 다 있으니까요.”

쥬타기 대선사는 안도했다.

“그렇다면 현재로선 데호라 대사와 너와 나만 알고 있는 것이군?”

“그리고, 혹 아직까지 남아 있다면 용인들이 알고 있겠지요.”

“용인이 어디 남아 있겠느냐. 용근을 먹어야 용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가들이 용화를 모두 파괴한 것이 언제적의 일이냐.”

“하지만 속세에서는 아직도 가끔 용근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바로 어제 용근이 눈을 떴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용화가 최소한 한 송이는 있었다는 말입니다. 한 송이가 있었다면 다른 용화들도 있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누군가가 그것을 먹었을 수도 있지요.”

쥬타기 대선사는 오레놀 대덕의 설명이 옳다고 생각했다. 무의식 중에 염주를 꺼내든 대선사는 그것을 헤아리며 생각에 잠겼다. 오레놀은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용근이 발견되었다면, 그리고 벌써 발아와 개화까지 끝내고 눈을 떴다면 조만간 용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전에 빨리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지한 자들에게 사로잡혀 그 성정이 훼손되어, 마침내 괴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속세에는 용을 괴물로 만들어서라도 왕이 되려는 작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어떻게 찾겠느냐? 용인이 아니고선 용을 감지해 낼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용인은 깊이 잠들어 깨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설사 다른 용인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용인은 용근을 먹으려 들 테니 역시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대덕은 분한 듯이 말했다.

“이럴 때 케이건 드라카 님이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분은 지금 오지도 않을 나가를 기다리며 사지에 계시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노릇입니다.”

“케이건이 놀라운 인물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라도 삶은 달걀에서 병아리를 꺼내 보일 재주는 없다. 용인이 아닌 그가 세상 천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용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겠느냐. 어쨌든 네 말이 틀리지는 않다. 용근이 눈을 떴다면 그것을 꼭 찾아내어야 하겠구나. 오레놀. 조타 중대사(重大師)에게 가서 각 사원으로 보낼 서찰을 준비하라고 일러라.”

“어떤 내용으로 하면 되겠습니까?”

쥬타기 대선사의 염주가 멈췄다. 대선사는 하늘을 이고 있는 파름 산의 정상을 대선사의 암자에서는 매우 가깝게 본다.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꿈을 꾸었다.”

“네? 꿈이요?”

“그래. 내 꿈에 어디에도 없는 신이 현몽하셨다. 신께서는 내게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하기 위해 조만간 용의 모습으로 세상에 화신(化身)하실 거라고 알리셨다.”

그만 넋이 나간 오레놀은 입을 쩍 벌린 채 대선사를 바라보았다. 대선사는 굵은 눈주름을 일그러뜨려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승려들로 하여금 그런 내용의 헛소문을 퍼뜨리게 하라는 말이다.”

“네? 헛소문이요?”

“그래. 우연히 용을 발견한 미욱한 자들이 그것을 제멋대로 취하려는 시도는 일단 막고 봐야 할 것 아니냐. 운이 좋다면 용을 발견한 자들이 가까운 사원에 그 소재를 알려줄지도 모르지.”

오레놀은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대덕은 곧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대선사님. 그건 망언이잖습니까.”

“불망언(不)의 계를 어기는 일이라는 말이냐?”

“어떻게 봐도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일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승려들이 기겁을 할 겁니다. 어떻게 사제들이 앞장서서 망언을 알리고 다니겠습니까?”

“아, 그거라면 괜찮다. 승려들에겐 그게 사실이라고 알려라. 그럼 파계는 나 혼자 하는 것이 되겠지?”

“대선사님, 어찌 그런…… 말도 안 됩니다.”

오레놀은 강하게 도리질을 했다. 몇 번 더 대덕을 다독이던 대선사는 결국 역정을 내며 외쳤다.

“야, 이 놈아! 세상에 죄란 죄는 다 지고 가는 마당에 내 죄 하나 더 지고 가겠다는데 따박따박 말대꾸냐? 거기 앉아서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달음박질이나 쳐라. 용근이 눈을 떴다지 않느냐? 당장 그 엉덩이 안 뗄 테냐!”

대선사는 그렇게 외치며 툇마루에 기대어 둔 쟁기를 움켜쥐었다. 혼비백산한 대덕은 걸음아 날 살려라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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