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7장 – 여신의 신랑 (10)
갈로텍은 심장탑의 32층에 있는 자신의 방 창턱에 걸터앉아 냉혹의 도시에 쏟아지는 밤을 바라보았다.
지상에서 100미터 이상 되는, 심장을 적출한 나가라 하더라도 비늘이 설 만한 높이였지만 갈로텍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가 남달리 굵은 신경을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대금 연주에 모든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금 위로 그의 손가락이 민첩하게 움직였다.
갈로텍은 인간들이 하텐그라쥬를 침묵의 도시라 부르는 것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요하기 짝이 없는 건물과 광장, 기념비들 사이로 대금의 장엄하고 풍부한 소리가 거침없이 퍼져나갔다. 소리에 신경을 쓰는 괴벽을 가진 나가가 있었다면 심장탑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기겁했겠지만 갈로텍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도깨비 감투를 쓴 것과 비슷한 기분이라 생각하며 갈로텍은 힘껏 역취했다.
갈로텍이 연주를 끝내자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좋은 연주였다. 갈로텍. 귀머거리의 연주에 이런 찬사가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귀머거리는 아닙니다. 주퀘도.”
“나는 생전에 귀가 밝은 걸로 유명했지. 그런 내 기준엔 커머거리야.”
갈로텍은 주퀘도가 군령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 혹 자신의 야기를 더 떠벌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은 아닌가 의심했다.
“당신 말대로 피가 차갑고 귀도 어두운 제가 이렇게 열심히 연주했으니, 이제 제 이야기 좀 들어주겠습니까?”
“한 곡 더 들려주고 나서 들으면 안 될까?”
갈로텍은 머리를 내저었고 주퀘도는 웃음을 터뜨렸다. 덕분에 그의 모습이 꽤 괴상해졌다. 다행히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웃음을 멈춘 주퀘도는 크게 배려한다는 듯이 말했다.
“말하고 싶은 것이 뭐야, 갈로텍?”
“살아 있었을 때 당신은 뛰어난 전략가였고 훌륭한 지휘관이었어요.”
“이제 아흔여덟 개 남았어.”
“……….당신 장점을 백 가지나 댈 능력은 없군요. 그 다음, 당신의 자아도취벽을 타파하기 위해 당신의 백 가지 단점을 말해 줄 시간도 없고, 당신이 마지막 전투를 벌인 이후로 250년 정도가 지났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의 전략가와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이 무뎌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 속에서 수많은 자들의 기억을 검토하면서 생각을 정리했으니 오히려 더 깊이 있게 바뀌었겠지요.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왜지? 너희들 세계에는 전투 같은 것은 없잖아.”
“800년 전만 해도 저희들은 모든 세상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세계에 전투가 없었다는 건 옳은 말이 아닙니다.”
“현재는 없을 텐데?”
“미래에는 있을 것 같습니다.”
주퀘도는 흥미를 느꼈다.
“이야기해 봐.”
“저는 조만간 어떤 나가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야 할 것 같습니다.”
“뭐? 나가들을 상대로?”
“예. 하지만 모든 조건이 좋지 않습니다. 저에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 자들은 도저히 병사라 할 만한 자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중엔 전투 전문가가 없습니다. 저도 전투라는 것이 그냥 싸움을 크게 확대해 놓은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압니다. 저는 전략이라는 말도 알고 전술이라는 말도 압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칼이라는 말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제게 칼을 쥐어주고 인간 한 명과 싸움을 붙여놓으면 1분 후엔 비참하게 난도질을 당하고 있을 겁니다.”
“모든 인간들이 다 칼을 잘 쓰는 건 아니야. 물론 위험 요소를 싹 없애버린 너희들의 세상보다는 저 북쪽이 더 난폭한 곳이긴 하지만, 너희들 중에도 괜찮은 검객이 있는 걸로 아는데.”
“예. 사모 페이 같은 분이 그렇지요. 어쨌든 제가 도저히 전투 전문가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전투는 일어날 겁니다. 그러니 그때 앞으로 나서서 전투를 지휘해 주십시오.”
“주퀘도 사르마크의 이름으로?”
“수호자 갈로텍의 이름으로.”
“이런, 젠장.”
“죽음의 거장의 이름으로 싸울 수 없다는 것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군령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런 문제가 아니야. 이 멍청한 친구야. 나는 니를 줄 몰라. 명령이 안 통하는 부하들을 어떻게 지휘하나?”
갈로텍은 자신이 확실히 전투 전문가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통감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명령 체계라는 기본적인 문제조차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갈로텍은 기가 죽어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제 뒤에서 지시를 내려주면…………….”
“그 전투 참 느긋하겠다. 전투에서 속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도 못하나?”
“어렵겠습니까?”
주퀘도는 한참 투덜거린 다음 말했다.
“상대방이 너와 같은 나가라면 역시 제대로 된 전략가나 지휘자 따위는 없겠군. 그렇다면 어떻게 해볼 수도 있겠다. 내가 지휘할 병력이 얼마나 되지?”
“서른 명 정도 됩니다.”
주퀘도는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야, 이 자식아! 그게 전투냐? 패싸움이지! 너는 사상 최고의 전투 지휘관을 패싸움하는 데 쓸 작정이냐? 쥐 잡으려고 키탈저 사냥꾼을 부르는 꼴이잖아.”
“그렇게 당당하게 사상 최고의 전투 지휘관이라 자칭할 수 있는 당신이 존경스럽군요. 서른 명이라는 숫자가 당신이 보기엔 가소로워 보일지 몰라도 우리 세계에서는, 특히 수호자에겐 정말 모으기 힘든 대규모 병력입니다. 주퀘도.”
“집어치워. 서른 명을 가지고 할 것이 뭐가 있어? 나에게 만명을 줘. 너를 키보렌의 왕으로 만들어주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조건을 말해 보세요.”
“조건?”
“거래하자는 겁니다. 우리들을 지휘해 주는 대가로 뭘 원하지요?”
“네가 죽을 때 레콘에게 전령할 것을 맹세해 주면 어때?”
“거래에 임하는 자세가 좋지 못하군요, 주퀘도. 상대방에게 최소한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조건을 대야 할 것 아닙니까.”
“하지만 내 소망은 그것뿐이야. 이 끔찍하게 많은 나무들과 그 나무들을 사랑하는 너희들의 작태는 이제 지겨워. 서른 명 데리고 싸우는 걸 전투라고 표현하며 사상 최고의 지휘관을 모셔야겠다고 결심해 버리는 너희들의 이 시시한 문명은 나를 말라죽게 만들어. 북쪽을 보고 싶다. 한 자루 무기를 들고 나무라곤 구경도 할 수 없는 황야를 걷고 싶단 말이다.”
“만일 제 요구를 들어준다면 당신은 그 소망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뜻이지?”
“말한 그대로입니다. 주퀘도. 당신이 바라는 것이 전쟁과 북쪽이라면, 저는 그걸 충족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제 요구를 들어주신다는 조건 하에………….”
“수락한다.”
갈로텍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