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눈물을 마시는 새 : 8장 – 열독 (4)


카린돌 마케로우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침대를 바라보았다.

카린돌은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침대 위에 반짝이고 있는 ‘그것’을 집어든 카린돌은 눈앞으로 그것을 가져와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침 햇살 속에 반짝이고 있는 그것은 비늘이었다.

카린돌은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두 다리를 벌렸다. 다리 사이로 비늘을 가져간 카린돌은 그것을 몸에 붙이려 했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카린돌은 그 순간 절대로 이성적일 수 없었다. 그녀를 위한 변호가 가능하다면 그녀 또한 자신의 재생력을 신뢰하는 나가라는 점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떨어져 나간 비늘이 다시 붙지는 않았다.

그러나 카린돌은 자신의 몸이 출산 준비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무시하려 애썼다.

‘임신이라니!’

생식기 주위의 비늘은 이미 윤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보다 강인하면서도 유연한 비늘이 새로 돋아나올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그 비늘들은 이제 카린돌의 몸에서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카린돌이 발견한 것은 그중 가장 먼저 떨어져 나온 것이었다. 그것을 도로 붙이려는 속절없는 시도를 계속하던 카린돌은 마침내 이를 악물며 비늘을 내동댕이쳤다.

‘지금은 안 돼. 지금은 안 된다고!’

카린돌은 자신의 복부를 공포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남자들!’

단지 비아스를 조롱하기 위해서였다. 카린돌은 임신을 피하고 있었고 자신의 예방책에 자신감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된 흥분과 갈등, 공포 때문에 가임기가 지나치게 빨리 찾아오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카린돌의 냉정한 정신은 그 와중에도 그 사실에 대한 해석을 덧붙이고 있었다. 목숨의 위험을 감지한 그녀의 몸은 한시라도 빨리 후손을 만들어 놓기를 원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내 자식이라고?

그녀의 첫아기였다.

‘내가 어머니가 된다는 건가? 나처럼 니르고 나처럼 행동하게 될 어떤 존재의?”

실로 황당하기까지 한 일이다.

‘기쁨이어야 할 네가 저주스러운 공포가 되고 말았구나.’

비아스 때문이었다.

“비아스, 비아스 마케로우! 변태, 미치광이, 살인마 같으니라고!”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배 위에 누른 채 카린돌은 비아스의 방이 있는 쪽을 향해 고함질렀다. 문득 배 속의 아기를 보호하고 있는 듯한 자신의 모습을 깨달은 카린돌은 그 손을 치우려 했다. 하지만 손을 뗄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배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기 위해 카린돌은 허리를 숙였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살아날 수 있을까?

카린돌은 몸을 떨었다. 자신이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이 그녀를 그토록 놀라게 했다. 그녀는 그런 표현에 익숙지 못했고 익숙하려 애쓴 적도 없었다. 그리고 그 표현을 사용한 순간 카린돌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을 크게 제한해 버렸음을 깨달았다. 낙태라는 해결책을 떠올렸을 때 그녀는 강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쉽지도 않은 일이었다. 나가의 세계에서 낙태 수단은 상당히 미신적인—당연히 실효가 의심되는—것들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가의 여인들은 낙태를 고려해야 할 경우가 거의 없다. 변태, 미치광이, 살인마의 취향을 가진 손윗자매를 가진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것을 왜 고려하겠는가. 카린돌은 불행하게도 그런 희귀한 경우에 속해 있었다.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면서도 카린돌은 필사적으로 해결책을 고심했다. 그중에는 비아스에게 항복하고 그녀가 가주가 되는 것을 지지한다는 굴욕적인 것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식까지 비아스에게 바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해결책이 그녀의 자존심에 입히는 상처는 둘째치더라도 비아스가 받아들일지 의심스러웠다. 비록 지금은 어디서 나타난 건지 알 수 없는 다섯 명의 숭배자들 때문에 잠시 분노를 감추고 있지만, 비아스는 카린돌이 자신을 희롱했던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카린돌이 잠시라도 주의를 잃는 순간 그녀는 치명적인 방식으로 무참하게 카린돌을 공격할 것이다. 적출식 날 남동생을 죽였던 것처럼. 그럴 수는 없었다. 카린돌은 비아스를 제거하지 않는 이상 타협이나 해결책은 없음을 다시금 확신했다. 카린돌은 자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내 아가. 내가 너를 가진 것을 알게 된 날 네 이모를 제거할 결심을 되새기고 있었다는 것을 닐러준다면, 네가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하구나.’

어느새 고인 은루가 그녀의 무릎 위에 떨어졌다. 그러나 카린돌은 눈을 훔치지 않았다. 대신 온몸의 비늘을 부딪치며 외쳤다.

“너를 위해서!”

카린돌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내팽개쳤던 비늘을 찾아낸 카린돌은 그것을 집어들었다. 그것을 어떻게 처치할까 고민하며 카린돌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극히 감상적인 이유에서 초산 전에 떨어져 나오게 되는 그 비늘들을 보관해 두는 여자들도 있다. 하지만 카린돌은 그런 감상적인 이유에는 관심이 없었고 더군다나 위험을 부르게 될 것이 뻔한 물건을 보관해 둔다는 행위는 몰상식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카린돌은 입을 연 다음 그것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카린돌은 벽장을 열었다. 무릎을 꿇은 카린돌은 벽장 바닥에 손바닥을 댄 채 살살 잡아당겼다. 그러자 벽장 바닥 부분이 앞쪽으로 미끄러지며 그 아래쪽의 공간이 드러났다.

그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들어 있었다. 카린돌의 보물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카린돌은 비아스의 사이커도 이곳에 넣어두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공간이 충분치 않았다. 잡동사니를 뒤지던 카린돌은 잠시 후 도기 병 하나와 기묘한 물건을 꺼냈다.

카린돌이 꺼내든 물건은 한계선 북쪽에선 어디에 놓여 있더라도 눈길을 끌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한계선 남쪽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어쨌든 ‘난방’이나 ‘요리’, 혹은 ‘조명’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는, 혹은 그다지 절실하지 않은 나가들의 사회에서는 점화통은 그렇게 흔한 물건은 아니다. 하지만 희귀하기까지 한 물건도 아니다. 화로에 불을 붙일 때 같은 제한적인 이유로 사용되기는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안에 약술사가 있다면 점화통은 더욱 구하기 쉬운 물건이 된다.

카린돌은 약간 겁을 내며 점화통의 부속 장치인 철편을 부싯돌에 튕겨 보았다. 충분히 주의를 기울였다고 생각했지만 카린돌은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섬광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린돌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두 번째로 철편을 튕겼다. 다시 섬광이 일어났고 이번에는 부시에 불이 붙었다. 카린돌은 황급히 입김을 불어 불을 껐다.

점화통의 성능에 만족한 카린돌은 도자기 병을 들어 올렸다. 병 주둥이를 단단히 막고 있는 마개를 뽑아낸 카린돌은 그 냄새를 맡았다. 역겨운 기름 냄새에 카린돌은 속이 뒤집히는 기분을 느꼈다. 다시 마개를 막은 카린돌은 그 두 물건을 놔둔 채 다시 벽장 바닥을 끼워 넣었다.

점화통과 기름병을 침대 위에 내려놓은 카린돌은 침대 아래에서 사이커를 꺼내었다. 먼저 놓았던 두 물건 옆에 사이커를 내려놓은 카린돌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너는 이미 한 번 마케로우의 피를 마셨지. 그 피가 마음에 들었기를 바라. 어쩌면 너는 한 번 더 그 피를 마셔야 할지도 모르니까.”

카린돌은 그 옆의 두 물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고통스러운 깨달음이 그녀를 엄습했다. 카린돌은 비아스가 지나치게 빨리 불을 끌 것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저택이 전소될 것을 걱정했다. 어쨌든 나가에겐 화재에 맞서 싸운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다.

문득 카린돌은 깨달았다. ‘저택이 전소되면 어때?’ 그러자 카린돌은 침착을 되찾을 수 있었다. 건물은 건물일 뿐이다. 전소되면 다시 지으면 그만이다. 카린돌은 드디어 미소를 지었다.

카린돌은 더없이 차분한 마음으로 기름병과 점화통을 집어들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