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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8장 – 열독 (5)


티나한은 넌더리를 내며 무학당으로 향하는 길을 달렸다. 한밤중이었기에 티나한은 발소리를 좀 줄이려 시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쾅쾅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결국 티나한은 뛰는 대신 빠르게 걷기로 했다. 워낙 신장이 크다 보니 그런다고 해서 특별히 늦어지거나 하지도 않았다. 달빛 또한 휘황하여 걷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무학당에 도달한 티나한은 여전히 원무를 추고 있는 두억시니와 그 가운데 오도카니 앉아 있는 륜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염화당에 앉아 있는 동안 티나한이 계속 생각했던 것은 오레놀이 강조했던 삶의 바른 목표와 베풀며 사는 삶의 아름다움 따위가 아니었다. 그의 뇌를 꽉 채우고 있는 것은 “식전 운동 끝, 식사 시작!” 어쩌고 하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두억시니의 모습이었다. 티나한은 안도하며 주위를 둘러보았고, 마당 한켠에 앉아 그를 향해 손짓하는 오레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레놀은 걸어오는 티나한을 향해 미소 지었다.

“꽤 늦으셨군요.”

티나한은 으르릉거리며 철창을 나무에 기대어 놓았다.

“그 잡아먹을 놈의 대족장인지 뭔지 하는 녀석은 도통 눈치가 없더군!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비는 것으로 모자라 꾸벅꾸벅 조는 시늉까지 해 보였는데 계속 이야기만 늘어놓더라고, 젠장. 역사상 최고의 도둑이 누군지 내가 알 게 뭐야?”

“사상 최고의 도둑이오?”

“녀석이 계속 중얼거린 이야기야. 정신이 여기 팔려 있다 보니 제대로 듣지도 못했지만.”

설명하던 티나한은 오레놀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음을 깨달았다. 티나한은 바닥에 앉으며 묻는 시선을 보내었다.

“죄송하지만 대족장도 당신과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군요. 티나한. 아무리 레콘이라지만 이렇게 눈치가 없냐고 말입니다. 아마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무슨 소리야?”

“대족장이 한 이야기는 발케네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발케네에는 영웅왕의 왕국 아라짓을 훔친 도둑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지요.”

“그게 무슨 말이야? 영웅왕의 왕국은 나가들이 점령한 거잖아.”

“음. 발케네 사람들은 어떤 도둑이 나가들의 의뢰를 받고 영웅왕의 왕국을 훔쳤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오레놀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왕국 아라짓의 몰락을 어떻게든 설명해 보려는 여러 가지 시도 중에서도 가장 황당한 축에 속하는 걸 겁니다. 어떤 자들은 바라기가 사라져서 왕국이 몰락했다고도 말하지요. 어떤 자들은 나늬 때문에 왕국이 망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모든 종족의 눈에 미인으로 보였던 그 여자 때문에 왕국 내의 종족들이 서로 다투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멋진 도둑이 되기를 바라는 발케네 사내들은 어떤 신화적 도둑이 아라짓을 훔쳤다고 말하는 거지요.”

“거참. 황당해서. 그런데 내가 눈치가 없다는 건 무슨 말이야?”

“음. 아마도 대족장께서는 그 도둑 이야기를 함으로써 당신에게 함께 세상을 훔쳐볼 마음이 없느냐고 넌지시 떠 본 걸 겁니다. 딴에는 세련된 방법을 구사하신 것일 테지만, 자기네들 이외에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이야기를 은유랍시고 사용했으니 그 세련됨도 빛을 잃는군요.”

티나한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자식이 정말 왕이 되려는 생각일까?”

“세평에 의하면 코네도 대족장은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첫째 아들은 군사 부분을 맡게 하고 둘째 아들은 내정을 맡게 할 계획이지요. 형제이니 그보다 확실한 동업자 관계도 없겠지요. 그리고…….”

오레놀이 뭔가 더 해석을 덧붙이려 했을 때 륜이 갑자기 일어났다.

티나한의 행동은 놀라울 정도였다. 대덕이 뭔가 바람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을 때 티나한은 이미 일어나 철창을 움켜쥐고 돌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대덕은 감탄하면서도 더불어 긴장하며 일어났다. 하지만 두억시니들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티나한과 오레놀은 고개를 갸웃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륜은 갑자기 들려온 니름에 경악했다.

<상황을 설명해 주길 바란다.〉

<당신은 누구죠?>

어떤 영상이 그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륜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 피라미드의!>

<그렇다.>

<어떻게? 어떻게 제게 니르시는 거죠?>

유해의 폭포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륜의 머릿속으로 유해의 폭포와 사모가 니름을 나눴던 상황에 대한 기억이 전해졌다. 그 기억의 시각적인 부분은 빙글빙글 돌고 있는 두억시니들의 눈에 비친 것이라 혼란스러웠지만 륜은 그 대화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륜은 놀라움 속에서 생각했다. ‘이건 마치 사어 같군.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모 페이는 어떻게 되었나?>

륜은 유해의 폭포와 똑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륜은 사모가 쓰러졌던 때의 기억을 슬픔 속에서 유해의 폭포에게 보내었다. 유해의 폭포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을 것이다.’ 륜은 그렇게 생각한 다음 제안했다.

<괜찮다면 더 많은 니름을 보내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다오.〉

륜은 지난 몇 달 동안의 기억을 모조리 보내었다. 그것이 야기한 결과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두억시니들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티나한은 다시 깃털을 곤두세웠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이 충직한 동료를 향해 륜은 손을 조금 들어 보였다. ‘괜찮아요.’ 티나한의 깃털이 다시 수그러드는 것을 확인한 륜은 유해의 폭포의 대답을 기다렸다.

대답은 꽤 늦게 찾아왔다.

<대단히 복잡하군.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봐다오.>

<예>

<어떤 나가들이 레콘의 여신을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읽었던 ‘신을 죽이는’ 계획은 바로 그것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 계획을 알아챈 어떤 수호자는 그것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간들에게 사절을 파견하기로 결심했다. 그 사절은 화리트 마케로우. 하지만 화리트는 그를 싫어하는 누나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 시점에서 화리트를 발견한 너는 그 임무를 위탁받았고, 그 임무를 위해 북부까지 여행했다. 지금 너는 살신을 저지하기 위해 여신께 그 계획의 전모를 물어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한편 너의 잠적 때문에 너는 화리트 살해의 누명을 쓰게 되었고 네 누나가 그 처벌을 담당하게 되었다. 네 누나는 그 임무를 받아들였지만 그녀가 그것을 받아들인 이유는 그것이 너를 살릴 수 있는 방법도 되기 때문이다. 결국 네 누나는 그것에 성공했고 지금 네가 목을 잘라주길 기다리며 가사 상태에 빠져 있다.>

유해의 폭포가 건넨 니름의 마지막 부분에 륜은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륜은 가까스로 닐렀다.

<틀린 부분은 없습니다.>

<오해가 너무 많군. 사람들은 네가 화리트를 죽였다고 오해했고, 너희들은 사모가 너를 정말 죽일 작정이라고 오해했군. 그 두 가지는 각자 비아스 마케로우와 사모 페이라는 여인들이 일부러 조장해 낸 오해이지만, 내 경우에는 할 니름이 없군. 터무니없는 오해로 너희들을 추적한 것이군.>

<살신이라는 니름을 들으셨으니………, 터무니없지는 않습니다.>

<사과해야겠군. 살신자들을 저지한다는 대의 앞에서 너와 나는 같은 입장이다. 깊이 사과한다. 륜 페이. 그리고 네 불행에 대해 진심으로 애석하게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유해의 폭포는 잠시 침묵했다. 륜은 그 침묵이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유해의 폭포가 할 니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꺼내기 어려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륜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유해의 폭포는 다시 닐렀다.

<그런데 말이야, 륜 페이.>

<네.>

<그럼 너는 발자국 없는 여신을 만나겠군. 그렇지?>

<예>

<그리고, 그 살신자들이 어떻게 신을 죽일지 물어볼 테고?>

륜은 깨달았다. 륜은 빙글빙글 돌고 있는 두억시니들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두억시니들이 왜 신을 잃은 건지도 여쭤보겠습니다. 혹, 신을 되찾을 수 있는 건지도.〉

<고맙다! 정말 고마워!>

그러고도 유해의 폭포는 감사의 니름을 한참 쏟아내었다. 륜은 유해의 폭포가 이제는 그가 니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을 자각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닐렀다.

<별 말씀을. 그런데 왜 그렇게 어려워 하셨습니까?>

<나는 너희들을 오해했고 3,000이나 되는 나들을 보내어 너희들을 추적했다. 결코 너희들이 감사하기는 어려운 짓을 저질렀지.>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저희들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그래. 오히려 피해를 입은 것은 나였다. 하지만 내 의도가 고약한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나는 너희들을 살신자로 오해했고 기회가 된다면 너희들을 죽일 생각이었다. 그래서 네게 뭔가를 부탁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뭐라고? 무슨 부탁이지?>

<사모 페이가 살아서 하텐그라쥬로 돌아갈 방법에 대해 생각해 주십시오.>

조금 전 륜의 최근 기억을 거의 모두 전달받은 유해의 폭포는 륜이 케이건에게도 똑같은 요구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해의 폭포는 당혹 속에서 정신을 닫았다가 잠시 후에야 대답했다.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네가 만약 두억시니가 신을 되찾을 방법을 알아낸다면 너는 나의 가장 큰 은인이 될 것이다. 나는 너의 요청을 받아들이겠다. 그런데 너는 케이건에게도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던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모든 자에게 요구할 겁니다.>

<모든 자에게?>

륜은 주먹을 불끈 쥐며 니르며 외쳤다. 그랬기에 그것은 멀리 떨어져 있던 티나한과 오레놀에게도 들렸다.

“만약 필요하다면, 나는 산과 광야와 바다에게 요구하겠습니다. 신과 우주와 전 세계를 향해 요구하겠습니다. 사모 페이가 하텐그라쥬로 돌아가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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