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0권 24화 – 화산으로 출발 (10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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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0권 24화 – 화산으로 출발

화산으로 출발

– 천무학관을 떠나다!

“드디어 출발이구나.”

윤준호에게 오늘은 매우 뜻 깊은 날이었다. 그는 가슴이 뿌듯했다.

어제 저녁은 너무 흥분해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오늘이 바로 화산으로 출발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윤준호도 저번 환마동 시험에 합격하여 비록 후보지만 화산규약지회 참가를 허락받았다. 환마동의 갑작스런 붕괴 사고로 150여명에 가까운 부상자가 속출한 덕에 간신히 윤준호도 후보로 뽑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사고로 실력 있는 고 수들이 많이 병상 신세를 졌던 것이다.

그 외에도 비류연은 물론이고 모용휘, 효룡, 장홍 모두 합격이었다. 주작단원도 모두들 후보로 뽑혔다. 그 중에서 남궁상과 현운은 주전으로 뽑혔다.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사문이 있는 화산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윤준호는 흥분하고 있었다.

“내가 화산규약지회 대표로 뽑힌 걸 알면 사형제들과 사숙들, 그리고 사부님이 어떤 얼굴을 할까?”

아마도 다들 누군가 자신들을 놀린다고 화를 낼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그는 누가 뭐라 해도 화산규약지회 선발 대표단의 일원이었다. 하루 빨리 화산에 도착해 태사부님의 얼굴을 뵙고 싶었다. 태사부님이 자신을 얼마나 대견해할지 생각할 때마다 준호는 마음이 흐뭇했다.

“이제 시작인 거야.”

윤준호는 굳은 결의를 다지며 자신의 검을 집어 들었다. 이제 그는 그 전까지의 미숙하고 따돌림만 받던 윤준호가 아니었다. 여전히 매화 과민증은 고치지 못했지 만 말이다.

“쿨쿨쿨… 음냐 음냐… 예린… 음냐 음냐….”

여전히 비류연은 기상종이 요란하게 울렸는데도 불구하고 침대 속에 파묻혀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오늘도 비류연을 깨우기 위해서는 여러 명이 고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천무학관주 철권 마진가는 단상 위에 서서 화산으로 떠나갈 정파의 청년 대표들을 향해 마지막 훈시를 하고 있었다. 이들의 어깨에 백도의 명예와 힘의 판도가 달 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번에 치러질 화산규약지회는 지난 백 년 동안 치러졌던 그 어떤 대회와는 다른 형태로 치러질 것이다. 예전에 들었던 화산규약지회의 상식 따위는 오늘로 머릿 속에서 깡그리 지워버려도 된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이번에 백주년을 맞이한 화산규약지회에 백도의 명예와 운명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향후 10년의 힘의 역학 관계가 어느 쪽으로 기울지를 결정하는 대회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너희들의 용기와 지혜와 무예를 지켜볼 것이다.

이제 그대들이 믿을 것은 그대들 자신의 힘과 용기와 지혜뿐이다. 이제 이곳을 벗어난 이상 그대들을 도와줄 도움의 손길은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 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해줄 말은 하나뿐이다. 그대들은 영광스런 천무학관의 자랑스러운 제자들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행동하라! 그대들의 무운을 빈 다!”

마진가는 이렇게 연설을 마쳤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관주님.”

인솔자의 총책임자인 빙검이 마진가를 보며 인사했다.

“잘 부탁하네.”

“예.”

“화산에서 보세나. 그곳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빌겠네. 보이지 않는 손을 조심하게나.”

“물론입니다.”

빙검은 자신이 조심해야 할 점을 잊지 않고 있었다.

“곱게 자란 화초는 비바람에 쉽게 꺾이기 마련이네. 너무 자네들에게 의지하지 않도록 해주게.”

마진가는 끝까지 한마디 충고를 잊지 않았다. 빙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온실의 화초는 강해질 수 없는 법! 비바람과 폭풍우 속에서 사나운 현실을 마주하고도 꺾이 지 않는 자만이 진정으로 강해질 수 있다. 마진가는 자신의 관도들을 온실 속의 화초들처럼 애지중지하며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은 강자가 필요한 때였다. 그 는 길을 가르쳐 주기만 할 뿐 그 길을 대신해서 걸어줄 수는 없다. 그것은 그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이제 이들은 백도의 명예를 짊어지고 자신들의 능력을 시험받기 위해 떠난다. 빙검이 열병(列兵)하고 있는 청년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출발!”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여명이 어둠을 몰아내는 시각, 그들은 그렇게 화산으로 떠났다.

“후후후, 드디어 오는가.”

짙은 어둠 속에서 몸을 감싼 존재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산한 저음이 실내를 불안스럽게 울렸다. 이곳은 마천각 내부에 존재하는 한 밀실이었다.

마치 어둠과 동화되어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 그는 바로 대공자였다.

화르르륵!

그의 손아귀 안에서 한 장의 서찰이 불꽃과 함께 재가 되어 사라졌다. 바로 천무학관에서 이번 화산규약지회 참가자들이 출발했다는 보고를 담고 있는 바로 그 서 찰이었다.

“저번에 축하 선물로 관을 보냈다면 별로 소용이 없을 뻔했군요.”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치사한은 엄청난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죄… 죄송합니다.”

치사한의 계획은 환마동에서 그리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던 것이다. 부상자는 여럿 나왔지만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즉 그의 계략은 실패로 끝나 버리고 말 았던 것이다.

“뭐가 죄송하다는 건가요?”

대공자가 여전히 감정 없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것이 치사한을 더욱 두렵게 했다. 그의 생존 본능은 분명히 어떤 죽음의 숨결을 느끼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공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으니 백 번 죽어 마땅한 몸입니다.”

“그래요?”

대공자의 감정 없는 차가운 대꾸에 치사한은 기겁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주군이 무척이나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두려웠다. 그의 분노 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이번에는 반드시… 반드시 방해꾼들을 처리하겠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대공자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길안내를 부탁해야겠군요.”

“기… 길안내 말씀입니까?”

대공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는 길이 좀 험할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치사한의 간사한 머리는 대공자가 하는 말의 숨은 뜻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의 입가에 간사한 미소가 떠올랐다.

“흐흐흐.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도로 사정이 좋질 않아서요. 여행하기가 좀 험난하죠. 안내자가 없으면 길을 헤매게 될지도 모르지요.”

“무척이나 안된 일이야..”

대공자가 중얼거렸다.

“안된 일이죠. 게다가 무척이나 안쓰러운 일입니다. 헤헤헤.”

그러나 치사한의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전혀 안쓰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길잡이를 보내도록 하지요.”

치사한이 대답했다.

“좋은 길잡이를 붙여 주도록 하세요. 물론 흑천맹의 여우들이 모르도록 해야겠지요?”

“물론입니다. 일단 십이혈마대(十二血魔隊)를 내보내겠습니다.”

“그들이라면 믿을 만한 길잡이지요.”

대공자는 치사한의 대답에 만족한 것 같았다. 치사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다음 음흉한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물론입니다. 십이혈마대야말로 그들이 염라대왕 명부(冥府)로 가는 저승길을 가장 친절하게 안내해 줄 사람들이죠. 칼과 피와 불로써요!” 이번에는 절대 실패하지 않으리라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번 화산규약지회의 입회인으로 수많은 정사의 기인들과 인사들이 증인으로 참석할 겁니다. 천무학관주와 무림 맹주 그리고 그 저주받을 천무삼성들까지!

눈엣가시 같은 정사의 기둥들이 모두 모인 자리. 이 자리에서 대형 사고가 터지면 그것은 무척이나 커다란 슬픈 비극이 되겠지요.”

대공자의 눈에서 처절한 살기가 폭사되었다. 그 무시무시한 살기에 짓눌린 치사한과 심복들은 공포심과 외경심을 한꺼번에 느껴야만 했다.

핏빛 악몽 같은 지독한 살기, 그는 마치 응집된 어둠과도 같았다. 치사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정파의 대표단이 화산에 무사히 도착한다 해도 감히 이분의 적수는 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거의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었다. 그만큼 대공자의 기도와 무공은 뛰어났다. 대공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좌우에 시위(侍衛)하고 있는 자신의 심복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들에게 백 년 전에 사라졌던 피의 공포가 무엇인지 다시 떠올리게 해주자. 그동안 그들이 발버둥치며 잊고자 했던, 자신들의 뇌리에서 지우려 안간힘을 썼던 가장 끔찍했던 악몽을 지금부터 다시 재현해 주자꾸나. 이번 화산규약지회는 천하를 피로 물들이는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첫 사건이 될 것이다.”

그러자 좌우에 시위해 있던 심복들이 일제히 부복하며 입을 모아 외쳤다.

“겁난혈세(劫亂血洗)! 혈신재림(血神再臨)! 천겁천하(天劫天下)!”

음침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일제히 하나의 소리가 되어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비류연 일행의 여정은 순탄치 못한 여정이 될 것 같았다. 마침내 천무학관을 벗어난 그들 앞에 어떤 운명이 펼쳐질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뢰도』 11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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