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9장 – 북부의 왕 (9)
“여신이여!”
티나한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산 정상에 서 있었다. 파름 산은 그의 앞쪽에 있었고 그의 왼편으로는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는 파름 평원이 있었다. 하지만 티나한은 그중 어느 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구름이 광분하여 치닫고 있었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짙은 먹구름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 낮은 곳에서 바라봄에도 불구하고 구름의 속도는 엄청났다. 상공에서의 실제 속도가 어떨지 추측한 티나한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 구름들은 그 경악할 만한 속도 이외의 요소들에서도 도무지 자연적이지가 못했다. 연기처럼 짙었고 그 내부에서부터 보라색으로 빛났다. 게다가 생명의 의지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결코 자연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의지는 격노였다. 그렇게 사방의 지평선으로부터 살아 있는 생명처럼 쇄도해 온 구름들은 파름 산 위에서 격돌하며 소름 끼치는 비명을 내질렀다.
천둥이 천둥에 귀먹고 번개가 번개에 타 버리는 충돌이었다.
그곳에서 억수 같은 비가 파름 산을 허물어뜨릴 듯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이미 비가 아니라 폭포수였다. 그 초자연적인 비 아래에 파름 산은 개미탑만큼이나 불안해 보였다. 피어오른 물안개 때문에 산의 모습은 흐릿하고 혼돈스러웠다. 티나한은 자신이 죽어도 저곳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티나한은 철창을 두 손으로 붙잡은 채 무릎을 꿇었다. 그는 절대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혼이 빠져나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티나한은 비형을 발견했다.
비형은 파름 산 주위의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압도적인 비의 장막 때문에 비형의 모습은 마치 대폭포의 언저리를 날아다니는 작은 모기처럼 보였다. 애처로울 정도로 연약한 모습. 티나한은 비형이 단숨에 빗줄기에 휘말려 으스러질 거라 생각하며 깃털을 곤두세웠다. 티나한은 비형이 왜 그렇게 맴돌고 있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비형이 빗줄기 사이로 뚫고 들어갈 틈을 찾아보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 생각만으로도 티나한은 견딜 수 없었고, 그래서 고함을 내질렀다. 계명성이었다. 하지만 비형은 듣지 못했다. 나늬의 날개 소리뿐만 아니라 파름 산의 상공에서 숨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벼락과 천둥 때문에 비형은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소용없음을 깨달았지만, 티나한은 계속 계명성을 내질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오레놀은 기어코 쓰러지고 말았다. 땅을 짚으려 했지만 손이 미끄러졌고, 그래서 오레놀은 다시 진흙탕에 얼굴을 들이박고 말았다. 사문살이 동안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는 험악한 말들을 중얼거린 오레놀은 잠시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하늘이 구멍 난 듯이 쏟아지는 폭우에 놀라워했다.
“내 생전 이런 비는 처음이군!”
누군가가 잘 들리지도 않는 고함을 질렀다. 오레놀은 그쪽을 보았고 누군가가 미끄러운 진흙탕 길을 걸어 올라오려 악전고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진흙도 진흙이었지만 길을 따라 쏟아져 내 려오는 빗물은 그들로 하여금 범람하는 강을 가로지르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가공할 정도로 쏟아지는 빗물에 나뭇가지들이 사정없이 부러졌고 산은 미처 그 빗물을 흡수하지 못한 채 겉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오레놀은 토사와 함께 쓸려 내려오는 나뭇가지들과 돌멩이에 아연함을 느꼈다. 그때 그의 뒤편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던 누군가가 다가서며 외쳤다.
“맙소사! 여기 여름 날씨는 원래 이 모양이오?”
오레놀은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수염과 머리카락을 온통 진흙으로 물들인 괄하이드 변경백이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니요. 장마가 있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닌…… 우와!”
괄하이드 변경백이 갑자기 오레놀을 끌어안으며 옆으로 쓰러졌다. 변경백 자신도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으니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오레놀은 조금 전 그가 있던 자리를 강타하며 지나가는 바위를 보며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다. 바위는 물보라를 요란하게 일으켰고 그 흙탕물을 정통으로 뒤집어쓴 오레놀은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때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그의 등을 두드렸다. 오레놀은 자신이 변경백을 익사시키려 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황급히 옆으로 물러났다. 괄하이드는 겨우 흙탕물 속에서 머리를 내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었고 두 사람이 간신히 일어났을 때는 조금 전보다 훨씬 산 아래쪽으로 내려와 있었다. 괄하이드 변경백은 얼굴을 훔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물이 무릎까지 찬다는 사실에 황당함을 느꼈다. 평야도 아닌 산등성이에서 이런 물이라니? 괄하이드는 그 상황에서의 좋은 점을 한 가지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불은 꺼졌겠군!”
“예, 예.”
“뭐라고?”
“꺼졌을 거라고요!”
오레놀은 빗소리에 지워지지 않기 위해서 목청껏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비라는 것은…………, 설마? 륜이?”
오레놀은 깜짝 놀라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산 위에서 쓸려 내려와 흙탕물 속에 숨어 있던 나뭇가지는 그런 오레놀의 발을 잡아챘고 오레놀은 사지를 집어던지며 나가떨어져야 했다. 풍덩! 괄하이드는 오레놀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때 밀어닥친 파도가ᅳ변경백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그것은 파도였다. 두 사람을 붙잡아 아래로 밀고 내려갔다. 거칠게 휩쓸려 내려가며 오레놀은 공포를 느꼈다. 하인샤 대사원이 모조리 쓸려 내려가는 것 아닐까?
케이건은 왈칵 물을 토하며 몸을 일으켰다. 조금만 늦었으면 익사했을 것이다.
케이건은 무릎과 두 손으로 땅을 짚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폭포 속에 던져진 것이 아닌가 했다. 그의 두 손과 무릎은 물속에 잠겨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위를 올려다본 케이건은 곧 눈을 감았다.
화재에 의해 구멍 난 지붕에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케이건조차도 겪어 보지 못한 끔찍한 폭우였다. 케이건은 놀라움 속에 다시 눈을 떴다. 그동안에도 물은 계속 차오르고 있었다. 케이건은 황급히 일어났고, 그리고 사모를 떠올렸다. 케이건은 다시 허리를 굽혀 닥치는 대로 물속을 뒤졌다. 잠시 후 그의 손에 비늘이 덮인 팔이 만져졌다. 케이건은 물속에서 사모를 붙잡아 힘껏 들어 올렸다.
사모는 축 늘어진 채 끌려 올라왔다. 그녀를 끌어안은 케이건은 사모의 목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곧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심장을 적출한 사모는 맥박이 없다. 케이건은 자꾸 미끄러지는 사모를 힘겹게 다시 끌어올리며 왜 이토록 방에 물이 차오르는 건지 이해하려 애썼다.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에 케이건은 눈으로 보기보다는 거의 추리에 의해 사태를 짐작했다. 불길에 의해 무너졌던 벽과 서까래가 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 안에 있던 얼마 안 되는 가구들도 그곳으로 쏠려 가 장애물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이 새어 나갈 틈은 있었지만, 새어 나가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비가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자신이 물이 쏟아지는 항아리에 갇혀 있는 쥐와 다름없다는 것을 깨달은 케이건은 물을 가르며 문 쪽으로 걸어 가려 애썼다. 하지만 문이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케이건은 잠시 호흡을 고르며 몸으로 물이 흘러나가는 방향을 느껴보려 애썼다. 얼마 후 케이건은 그다지 확신하지는 못하는 상태에서 한쪽 방향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곳으로 걸어갔다.
머리 위로 계속 들이붓듯이 비가 쏟아졌고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게다가 정신이 없는 나가를 안고 있는 처지였다. 불과 2미터를 걸어 가기 위해 케이건은 거의 숨이 끊어질 정도로 체력을 소모해야 했다. 가까스로 문에 도달한 케이건은 손으로 더듬어 보고는 자신의 추리가 맞았음을 깨달았다. 무너진 잔해가 문을 틀어막고 있었다. 케이건은 그것을 걷어차려 했다. 하지만 물의 저항 때문에 다리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게다가 케이건은 강대한 수압을 버티고 있는 그 잔해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떠올렸다.
어느새 물은 가슴 높이까지 차올랐다. 케이건은 물이 천장까지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지붕으로 나가는 방법을 고려해 보았지만 사모를 안은 채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케이건은 수위가 더 이상 높아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잠시 고민하며 방 안의 구조를 생각해 보던 케이건은 곧 탄성을 내질렀다. 그 방에는 창문이 있었다. 물이 그 창문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도무지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여건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케이건은 창문이 있으리라 생각되는 방향을 결정한 다음 그곳을 향해 헤엄치듯 걸어갔다. 눈앞이 하얗게 바뀌는 경험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확신에 찬 결론을 되풀이해서 내린 다음, 케이건은 겨우 창문에 도달했다. 수십 년이 지나간 것 같았다.
창문을 더듬어 위치를 확인한 케이건은 두 다리에 힘을 주며 사모의 허리를 붙잡아 올렸다. 밖으로 떨어지면서 목을 부러뜨릴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가의 재생력을 믿으며 케이건은 사모를 창밖으로 밀어내었다.
“어흐흥!”
마루나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케이건은 창문을 붙잡으며 몸을 솟구쳤다. 지금껏 그의 몸을 끌어당기며 고난으로 작용했던 물이 그때만큼은 케이건을 도와주었다. 부력과 밖으로 쏟아져 나가는 격류의 힘에 의해 케이건은 단숨에 창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케이건은 자신이 잠깐 동안 날았다고 생각했다.
창문을 통해 튕겨져 나오듯 밖으로 나온 케이건은 물보라를 잔뜩 일으키며 땅에 부딪혔다. 바깥이라고 해서 특별히 뽀송뽀송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축축하고 습기 차며 잔뜩 젖어 있었지만, 최소한 가슴까지 물에 차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케이건은 안도했다. 케이건은 일어났다.
비는 아프리만큼 사납게 몸을 때리고 있었다.
산사의 모습은 암흑과 물의 장막 저편으로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케이건은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뜯어내며 사모의 모습을 찾았다. 그대로 놔두면 익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케이건은 폭우와 암흑 때문에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벼락이 세상을 하얗게 변화시켰을 때 케이건은 두억시니들이 사모를 보호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벼락은 곧 사라졌지만 케이건의 망막에는 잔상이 남았다.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가 두 팔로 조심스럽게 사모를 안아 들고 있었고 다른 두억시니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마루나래는 그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마루나래는 케이건도, 사모도 아닌 엉뚱한 방향을 노려보고 있었다. 케이건은 잔상 속의 마루나래가 바라보던 방향을 대충 가늠한 다음 그쪽을 바라보며 다시 벼락이 치기를 기다렸다.
다시 벼락이 쳤다. 케이건은 땅을 박차며 달렸다.
케이건의 눈 속에 남아 있는 정지된 장면은 조금도 유쾌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한 남자가 축 늘어진 륜을 가슴에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또 다른 남자가 손에 바라기를 든 채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몇몇 남자들이 더 있었다. 그들 또한 폭우와 암흑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철벅거리며 달려가던 케이건은 조금 전 사내들이 있었던 지점 근처에 도달했다고 판단했을 때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부분을 시야에 넣으려 애쓰며 또다시 벼락이 치기를 기다렸다. 어김없이 벼락이 쳤다. 정지된 그림.
조금 전의 모습에서 어느 정도 이동한 사내들의 모습이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장면 한 부분에서 애처롭게 날고 있는 아스화리탈의 모습도 보였다. 그 장면을 면밀히 검토한 케이건은 아스화리탈이 불을 뿜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스화리탈이 내뿜는 발화성 기체가 폭포수 같은 빗물에 모두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조금 남아 있는 기체조차도 비 때문에 점화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스화리탈은 완전히 무력한 모습이었다. 케이건은 눈앞의 장면 속에 남아 있던 사내들의 모습을 검토하며 적절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다시, 번개.
예상대로 케이건은 한 명의 왼쪽에 도달해 있었다. 케이건은 주의 깊게 주먹을 휘둘렀다. 눈에 보이는 장면이 아닌, 그 장면에서의 남자의 움직임을 예측하여 뻗은 주먹이었다. 망막 속에 남아 있는 잔상 때문에 케이건은 남자의 턱에서 한참 떨어진 허공을 때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주먹에는 확실한 느낌이 왔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뭐냐? 누구야?”
“누가 나를 때렸어!”
젖은 암흑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들으며 케이건은 침울하게 생각했다. ‘주먹질하기 좋은 날씨는 아니야.’ 케이건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적당한 자리를 찾았다.
번개가 쳤을 때 케이건은 어떤 남자와 정면으로 얼굴이 마주쳤다. 케이건은 그 남자가 바라기를 들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이를 갈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자들과의 거리가 좀 멀었다. 남자들이 제멋대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케이건은 그중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는 모습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 모습이 자신의 옆을 지나칠 때쯤을 노려 주먹을 뻗어 보았다. 주먹은 맞지 않았다. 조금 빨랐던 모양이다. 케이건은 누군가가 내뻗은 자신의 팔에 목이 걸려 넘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요란한 물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케이건의 몸을 뒤덮었다.
“뭐, 뭐가 내 목을, 콜록! 걸었어! 목을 걸었어!”
“그 남자다. 케이건! 근처에 있다!”
‘저 녀석은 나와 얼굴이 마주쳤던 녀석인가 보군.’ 케이건은 팔에 걸렸던 남자가 쓰러졌을 법한 장소를 향해 다리를 내뻗으며 생각했다. 제대로 맞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케이건은 자신이 누군가의 턱을 부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케이건은 암흑과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잔상들로 이루어진, 지루하고 혼란스럽고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싸움을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