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0장 – 출발하는 수탐자들 (7)
륜 페이는 자신이 어떤 악의적인 의지가 주의 깊게 준비한 혼돈 한가운데 앉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22년 동안 집안에서만 살았고, 그리고 가까스로 나가들의 세계를 좀 더 경험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키보렌에서 도망쳐 나왔으며, 그렇다고 해서 북부를 사랑하게 된 것도 아닌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사모 페이와 케이건 드라카였다. 자신에게 항상 솔직한 것은 아니었지만, 륜 페이는 케이건 드라카를 의지하고 싶어 하는 자신을 부정할 배짱도 없었다. 케이건은 그의 길잡이였다.
사모 페이가 그의 곁에 왔을 때 륜은 처음으로 길잡이를 거역할 수 있었다. 길잡이가 없어도 행동과 사고의 바탕이 되어 줄 수 있는 존재가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케이건이 요구하는 것이 사모의 죽음이라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기에 그 거역은 더욱 쉬웠다. 하지만 사모는 케이건의 요구를 수용했고, 그래서 륜은 행동과 사고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요스비의 사어는 결정적인 혼란을 부여했다. 요스비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륜의 생애 절반을 구성해 온 감정들을 송두리째 무가치한 것으로 바꿔 버리는 일이었다. 륜은 자신이 왜 심장 적출을 겁내고 수호자들을 증오했어야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잖아요?”
비형의 친절한 말에 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티나한마저도 그 끄덕임이 비형의 말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 비형에 대한 예의의 표시임을 알 수 있었다. 비형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좋은 일일 거라고 믿어요. 티나한. 춘부장께서는 살아 계신가요?”
마루 저편에 앉아 있던 티나한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응? 몰라.”
비형은 자신을 향해 혀를 찼다. 레콘에게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하다니, 멍청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티나한 또한 다른 레콘과 마찬가지로 최후의 대장간에서 자신의 무기를 쥔 다음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형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죽었지만 그런 건 도깨비에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으며, 실제로 비형은 지금껏 아버지가 살아 있기를 원했던 적이 없었다. 비형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를 떠올렸다.
“아들아! 나쁜 소식이 있다. 나 죽었다!”
“어? 진짜네요? 그럼 씨름 출전자 명단에서 아버지 이름은 삭제할게요. 막 돌아가신 거예요?”
“그래, 젠장! 스라블에 쓸 만한 씨름꾼이 하나 줄었다.”
“아뇨, 제 이름이 아니라 아버지 이름을 지우겠다고 했는데요?”
“야, 이 자식아!”
비형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절대로 그런 이야기를 꺼내선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비형은 달래는 어조로 말했다.
“살아 계시니 다시 만날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 있겠군요. 즐거운 일입니다.”
“……저, 륜. 하나도 즐거워 보이지 않는데요?”
륜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겠습니다. 저도 역시 보통의 나가인가 봅니다. 아무래도 제게 아버지의 존재가 각별했던 것은 당신께서 제 눈앞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 때문이었던가 봅니다. 게다가 당신께서 누님에게 왕이 되라고 권했던 것을 생각하니 그 분이 밉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륜은 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외쳤다.
“저는 아직까지 그 분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요. 하지만 살아 계셨다면 왜 지금까지 한 번도 저를 만나러 오지 않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 분은 당신이 죽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아야 했던 아들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겁니다. 잔인한 처사예요! 그것 때문에 제가 얼마나 무서워해야 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어요? 11년 동안 공포 속에 살아야 했어요!”
“그 분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으셨겠지요. 그러니까 숨어 있어야 하는 사정 같은 것 말입니다. 그 분은 어떤 처벌을 받아서 돌아가셨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살아 있다는 것을 밝힐 수 없었을 수도 있지요. 어제도 그 분은 시간이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셨잖아요?”
비형은 요스비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모르겠어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 말은 케이건에게 하신 말이잖아요. 그러고 보니 어제도 저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으셨군요. 케이건과 누님하고만 추억을 나누었고, 케이건과 사모에게만 지시를 내렸어요.”
“춘부장께서는 분명 처음에 ‘내 아들이냐’고 물으셨잖아요?”
“대화 상대가 제가 아니라는 것을 아신 이후에는 저를 찾지 않으셨지요.”
“시간이 없으셔서 그랬을 테지요. 그렇잖았다면 왜 그렇게 이상하게 끝내셨겠어요? 정말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비형은 어떻게든 륜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 애썼다. 하지만 륜은 퉁명스러운 반응만 보였다.
“아버님 말씀대로라면 그건 케이건이 할 일이지요.”
륜의 시큰둥한 반응에도 비형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하긴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 전에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용의 수호를 맹세하라고 하셨지요. 케이건이 고함을 질렀는데, 왜 그랬을까요?”
비형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륜이 아니었다.
“그것이 엄청난 요구이기 때문이오.”
비형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보았고 륜은 비늘을 곤두세웠다. 케이건은 어느새 방에서 나와 그들 곁에 서 있었다. 자신을 외면하는 륜의 뒤통수를 바라보던 케이건은 마루에 앉으며 말했다.
“그 맹세를 하면 나는 사모 페이를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하오.”
륜은 놀라며 케이건을 돌아보았다.
“보호해야 한다고요?”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륜의 몸에서 비늘이 누그러짐과 동시에 그 입이 벌어졌다. 륜은 멍한 얼굴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티나한과 비형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그건 키탈저 사냥꾼의 맹세다. 아라짓 전사로서 나는 왕을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사모 페이에게 용의 수호를 맹세한다면 나는 왕이 아닌 사모 페이 개인을 보호해야 한다. 그것은 서로 다른 말이다.”
“다르다고요?”
“간단하게 말한다면 이렇다. 아라짓 전사로서 나는 왕이 자신을 죽여 달라고 명령한다면 왕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용의 수호를 맹세한 키탈저 사냥꾼으로서 나는 사모 페이가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구하면 내 목숨을 끊어야 한다.”
비형이 경악하여 말했다.
“정말 절대적인 보호인 것이군요?”
“절대적인 보호요.”
륜의 얼굴에 여러 가지 표정이 번갈아 지나갔다. 그를 돕기 위해 케이건은 짧게 말했다.
“그래. 용의 수호를 맹세하면, 나는 네 누나가 눈물을 마시고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누님을 왕으로 추대한 것을 취소할 건가요?”
케이건은 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아직 용의 수호를 맹세하진 않았다. 그건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할 문제야. 지금 더 급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더 급한 것이 뭔데요?”
륜은 더 급한 것이 있을 턱이 없다는 투로 말했다. 케이건은 대답했다.
“요스비의 마지막 말.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는 것. 나는 조금 전까지 그것에 대해 생각했고, 좀 묘한 결론을 얻는 데 성공했다.”
“어떤 결론이죠?”
케이건의 얼굴에 기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케이건은 티나한과 비형을 차례로 돌아보고는 다시 말했다.
“아주 묘한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