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2장 – 땅의 울음 (7)
빙원 어디에서도 닭 우는 소리는 없었지만 해는 떠올랐다. 모진 추위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것 같은 태양이다. 지평선에서는 몇 개의 폭풍이 자라나고 있었기에 한낮의 날씨는 그렇게 좋지 못할 듯했다.
최후의 대장간에 스며든 햇빛은 꽤 진귀한 손님의 눈꺼풀에 가까스로 이르렀다. 비형은 눈꺼풀이 제발 얼어붙지 않았기를 바라며 눈을 떴다. 채 씻겨지지 않은 밤의 잔재들이 방 안 곳곳에 묻어 있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비형은 방을 둘러보았다. 케이건이 방 가운데 있었다.
“케이건! 좋은 꿈 꾸셨습니까? 언제 돌아왔습니까?”
“새벽쯤에 왔소.”
비형은 활기차게 이부자리에서 뛰쳐나온 다음 케이건의 부러움을 불러일으킬 만한 세수를 했다. 도깨비는 손에 불을 일으켜 얼굴을 가볍게 쓸어 만졌다. 레콘들을 위한 건물인 이 건물에는 세면 시설 같은 것은 없었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이곳의 추위에서 세면은 꽤나 위험한 모험이 되어 버리지만, 도깨비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형은 말쑥해진 얼굴로 케이건 앞에 앉았다.
“그럼 아직 자지 않은 겁니까? 피곤하실 텐데요.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소. 그건 그렇고, 돌아오는 길에 먼 곳의 불빛을 보았소. 오늘도 방문자가 한 명 있을 것 같소. 티나한에겐 알려주지 마시오.”
별 소용은 없었다. 지평선을 노려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곤 하는 티나한은 사납게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접근하는 레콘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또다시 단도장 시루의 우려를 살 만한 마중을 나가 버렸다. 티나한의 마중을 당한 것은 티나한과 비슷한 연배의 여인이었고, 신체가 아님이 밝혀지고 모든 사태를 이해하게 되자 티나한의 따귀를 보기 좋게 올려붙였다. 그녀가 이해심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다음 방문자를 위해 티나한에게 교훈을 남겨 줄 작정이었으니 오히려 사려 깊다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실망과 분노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던 티나한은 그런 교훈을 수용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일으킨 무지스러운 소란은 비형을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게 만들고 시루의 근심을 더욱 깊어지게 했다. 결국 수십 명의 젊은 레콘들이 달려들어 두 사람을 떼어 놓았지만 두 사람은 몸을 억류당한 채 서로에게 육두문자를 계명성으로 뿜어대었다. ‘녹은 얼음을 뒤집어쓸 놈아!’ 라든가 ‘붕어 저택에 빠져 죽을 년아!’ 같은 특정 액체를 우회적으로 거론하는 욕설의 방식들은 숨어서 듣고 있던 비형의 흥미를 제법 자극했다. 결국 더 참을 수 없게 된 시루가 수탐자의 방으로 찾아왔다.
피투성이가 된 티나한 도깨비나 인간 기준으로는 험악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었지만 레콘 기준으로는 그저 몇 군데 긁힌 것에 불과한에게 비형이 접근하는 것을 거부했기에 치료는 케이건이 맡아야 했다. 케이건은 앉아 있는 티나한의 거대한 몸 주위를 선 채로 돌아다니며 피를 닦아내고 깃털이 빠진 부위에 붕대를 감았다. 그리고 시루는 티나한의 앞쪽에 앉아 사나운 시선으로 티나한을 주눅 들게 했다. 바깥의 폭풍 소리를 듣는 시늉을 하며 딴청을 피우던 티나한은 더 견디지 못하고 항복했다.
“잘못했습니다.”
시루는 팔짱을 꼈다.
“나는 지금 자네들의 퇴거를 요청할까 고민 중일세. 티나한.”
티나한은 기겁하며 몸을 움직여 케이건의 눈꼬리가 올라가게 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저희는 신체를 찾아야 합니다. 사금파리는 여기 있었습니다!”
“그건 알아. 그런데 내가 보기에 자네들이 하는 일에 특별히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던데.”
티나한은 어리둥절했다. 한쪽 발로 티나한의 등을 밟은 채 붕대를 잡아당기던 케이건이 대신 질문했다.
“말씀하시는 대로 신체를 확인하는 것은 접시요. 우리야 접시 조각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것뿐이지. 그런데 그 질문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오?”
피를 보지 않기 위해 뒤돌아 앉아 있던 비형도 꽤 관심이 동한다는 몸짓을 해 보였다. 잠시 고민하던 시루는 조금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그 확인을 내가 대신할 수도 있겠군?”
“대신?”
“내가 그 접시 조각들을 보관하고 있다가 방문하는 젊은이들 앞에 내보이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신체를 찾아내어 자네들에게 연락해 주면…….”
“연락이라면, 그동안 떠나 있으라는 말씀이시오?”
시루는 말을 돌리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그래.”
수탐자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방으로 며칠 거리 내에 인가라고는 최후의 대장간뿐이니, 결국 시루는 그들에게 라호친으로 떠나 있으라고 말하는 셈이었다.
“물론 티나한이 손님다운 거동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나도 인정하겠소. 주인은 그런 손님에게 떠나라고 명령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빙판과 설원을 넘어 열흘 가까이 달려가야 하는 곳으로 우리를 쫓아내는 대신 우리의 사과와 경거망동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는 쪽을 택하실 생각은 없으시오?”
“나도 그렇게 냉담한 사람은 아닐세. 자네가 손님의 예의를 말하는데, 나도 주인의 예는 알고 있네. 그렇게 쫓아내는 것은 좀 너무하지. 하지만 우리에게 문제가 좀 있다네.”
“어떤 문제요?”
“자네들 요즘 최후의 대장장이님을 뵌 적 있나?”
티나한과 비형은 어리둥절하여 서로를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최후의 대장간에 도착했을 때 모든 레콘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탐자들은 최후의 대장장이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최후의 대장장이 또한 신체가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었기에 그들은 그 이후로는 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뵌 적이 없는 것 같소. 용무도 없는 저희들이 바쁘신 그 분을 방해할 필요는 없으니까.”
시루는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
“그 분께서 요즘 좀 편찮으시다네.”
“몸이 많이 안 좋으시오?”
“아니, 곧 나으실 거야. 하지만 지금은 좀 거동이 불편하시지. 그래서 대장간에도 나오지 못하고 계셔. 뭐 꼭 탓하고 싶진 않지만, 티나한이 일으키는 소란이 그 분께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아.”
집 안에 환자가 있으니 떠들지 말고 나가 달라는 요청이었다. 티나한은 그 붕어 저택에 빠져 죽을 년 때문에 쫓겨나게 생겼노라고 투덜거렸고 아무도 그 투덜거림에 신경 쓰지 않았다. 씁쓸해하는 수탐자들을 달래듯 시루는 말을 덧붙였다.
“화신을 찾는 즉시 그 분을 라호친으로 보내겠네. 그러면 자네들은 거기서 그 분을 만나 뵌 다음 곧장 어디에도 없는 신의 화신을 찾아 떠나면 되지 않겠나? 그리고 내 생각에 케이건 자네나 비형에겐 이곳보다는 라호친이 여러 모로 더 편리할 것 같아. 거기엔 인간들이 사니까.”
케이건은 그런 요청에 대해 거절할 명분을 떠올릴 수 없었다.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였기에 케이건은 폭풍이 그치는 대로 떠나겠노라고, 그리고 최후의 대장장이의 조속한 쾌유를 바라노라고 대답했다. 시루는 고마워하며 떠났다. 시루가 떠나고 나자 티나한은 더욱 열성적으로 예의 여인을 헐뜯었다. 듣다 지친 비형이 끼어들었다.
“티나한. 아무리 레콘이라지만, 여자와 그렇게 싸워야 되는 겁니까?”
“성질머리 지랄 같잖아. 그런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으니 그 나이 되도록 결혼도 못 하는 거지.”
비형은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이상한 것을 느꼈다.
“결혼도 못 하다니, 그 여자분을 아세요?”
“알게 뭐냐? 오늘 처음 봤는데.”
“그런데 어떻게 결혼을 못 한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 거지요?”
“무기 받으러 왔잖아? 보나마나 웃기는 것임이 분명한 무슨 숙원이 있으신 것이겠지. 결혼한 여자에게 무기가 뭐가 필요하냐? 신랑 탐색이라는 것도 있냐? 아, 아니지. 그 여자 아마도 남편을 암살하려고 무기 받으러 온 건지도 몰라. 그래! 분명해! 눈빛이 이상하지 않았어?”
비형은 좀 점잖은 단어를 떠올려 보려다가 실패하고는 그냥 티나한이 ‘삐쳤다’고 판단했다. 치료가 끝난 케이건은 비형에게 돌아앉아도 된다고 알려주고서 말했다.
“폭풍이 더 심해지는 것 같소. 아무래도 이런 폭풍을 뚫고 누가 올 것 같지는 않고, 티나한 당신 또한 몸조리를 좀 하는 편이 좋을 테니 그냥 잠이나 자 둡시다. 이곳을 떠나면 꽤 오랫동안 제대로 자긴 어려울 테니.”
비형은 동의했다. 티나한 역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그러나 잠드는 대신 티나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야.”
이부자리를 정돈하던 케이건이 한숨을 내쉬었다.
“티나한. 나는 그 여인의 눈빛이 남편 암살할 눈빛이라고는 생각지 않소.”
“응? 그거 말고, 시루가 말한 것.”
“뭐가 말씀이오?”
“왜 아프다는 걸 인정하는 거지? 아프다는 것이 자랑인가?”
케이건은 티나한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단도장의 성격이 솔직해서 그런 것 아니겠소? 그렇잖으면 우리를 존중한다는 뜻일 수도 있을 테고.”
“존중하다니?”
“그도 레콘이니 약한 소리 하는 것 싫겠지만 우리를 존중해서 사실대로 말한 것일 수도 있다는 거요.”
티나한은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폭풍은 다음 날 그쳤고, 수탐자들은 단도장 시루의 배웅을 받으며 최후의 대장간을 떠났다. 티나한은 걸었고 비형은 나늬에 올라탔다. 그리고 케이건은 라호친가히들이 끄는 썰매에 탔다.
도깨비불로 주위를 감싼 비형이 가장 빠르게 날아갔다. 그는 라호친에 먼저 도착한 다음 중간에 두 번 식량과 연료 등을 수송했다. 티나한은 걷는 것이 지겨워지면 간혹 썰매에 걸터앉았지만 라호친가히들의 원성 때문에 자주 그러지는 않았다.
아흐레가 지났을 때 티나한과 케이건은 별다른 문제 없이 라호친에 도달했다. 먼저 도착했던 비형은 묵을 곳을 잡아 둔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비형이 준비해 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케이건은, 티나한이라면 차라리 팔을 베어 줄지언정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행위, 즉 목욕을 할 수 있었다. 몇 번인가 눈(雪)을 집어 얼굴에 문지른 경험을 제외한다면 1년 만의 목욕이었다.
바깥의 차가운 공기 때문에 목욕통에 들어가 있는 것은 빗속을 거니는 것과 비슷했다. 무럭무럭 피어난 김은 차가운 천장에 닿자마자 응결되어 후두둑 떨어졌다. 레콘에게 그 목욕탕은 고문실일 것이다. 그다지 쓸 일이 없어 부드러워진 근육을 쓸어 만지던 케이건은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인간의 몸은 바라기 같은 무거운 검을 다룰 수 있도록 되어 있지 않다. 케이건은 아직까지 자신을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건지 의문스러웠지만 그의 오른팔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쓰면 쓸수록 단련되는 몸의 신화는, 그야말로 신화일 뿐이다. 어쨌든 말과 같은 허파를 얻는 광부는 없다. 케이건에게 일어나는 일도 그와 같다. 자연이 그의 오른팔에 허용해 둔 것 이상의 충격이 수백만 번이나 되풀이해서 가해진 끝에 그의 오른팔은 파괴되기 직전의 상태였다.
그리고 케이건은 그 사실에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