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2장 – 땅의 울음 (15)
티나한은 격분하여 외쳤다.
“이리 줘! 내가 해보겠다!”
“그러시오.”
케이건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접시를 내밀었다. 티나한은 그것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최후의 대장간에서 철창을 처음 쥐었을 때 그랬을까 싶은 신중한 동작이었다. 티나한은 허리를 숙여 접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신중하게 접시를 오른쪽으로 약간 돌렸다가, 다시 왼쪽으로 조금 돌렸다. 마침내 만족할 만한 상태가 되었는지 티나한은 똑바로 일어섰다. 그는 제자리에 서 잠시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티나한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다. 티나한은 위로 뛰어올랐다. 삽시간에 티나한은 수십 미터 높이로 솟구쳤다. 비형이 감탄하며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케이건이 그의 손을 낚아챘다.
“비형. 이리로.”
티나한은 정점에서 우레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온몸이 세 배로 부풀어 올랐고 그 눈은 전의로 불타 올랐다. 그리고 티나한은 바닥에 놓인 접시를 향해 똑바로 내려떨어졌다.
충돌의 순간 굉음과 함께 바닥의 석판들이 박살이 났다. 미리 대피했던 케이건과 비형은 최후의 대장장이의 등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티나한은 박살 난 바닥 옆에서 오른쪽 다리를 움켜쥔 채 한쪽 발로 팔짝팔짝 뛰고 있었다. 꽤나 아픈 듯했지만, 두 명의 수탐자들은 무정하게도 티나한 대신 접시가 있던 쪽을 바라보았다. 티나한도 바닥에 주저앉아 발목을 주무르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바닥에서 피어난 먼지가 사라진 곳에서는 접시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잠시 후 접시는 회전을 멈추었다.
티나한은 비명을 질렀다. 접시는 잔금 하나 없이 깨끗했다. 손에서 놓아도, 집어던져도, 발로 짓밟아도 깨지지 않았던 접시는 분노한 레콘의 혼이 담긴 일격마저 견뎌내었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저걸 무기로 써도 되겠군. 대단한 강도인데, 도대체 앞의 두 번은 어떻게 깬 거냐?”
“가슴 높이에 들고 있다가 놓는 방법으로.”
“그럼, 이번에는 왜?”
“그렇게 물을 줄 알았소.”
최후의 대장장이는 피식거리며 웃었다.
“모르겠다는 말이군.”
케이건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편에서는 티나한이 비형에게 접시를 강제로 쥐어 주고 있었다. 비형은 영문을 모른 채 티나한이 시키는 대로 접시를 머리 위에 들어 올렸다. 그러나 곧 도깨비는 사색이 되었다. 티나한은 수십 걸음 정도 물러난 후 철창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간다!”
비형은 접시를 내팽개치고 도망쳤다.
그 이후로 온갖 방법이 동원되었다. 한가하다는 이유로 구경을 하던 단도장 시루가 약이 올라 앞으로 나섰다가 자신의 모루를 두 개 깨 버리고는, 뒤늦게야 대장장이에게 가장 불길한 일을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저질렀다는 사실에 질겁하여 ‘대장장이의 모루가 깨졌을 경우 취해야 하는 비방’을 물어보기 위해 동료 대장장이들에게 달려간 다음, 케이건은 그 소동을 중단시켰다.
“소용이 없소. 그만둡시다.”
티나한은 헐떡거리며 접시를 노려보았다. 아무도 만지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그것은 여전히 깨진 모루 위에 놓여 있었다.
“도대체 왜 안 깨지는 거지? 전에는 퍼석퍼석 잘만 깨지더니.”
“어디에도 없는 신은 어디에도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푸념을 내뱉은 비형은 동료 수탐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을 느끼곤 당황했다. 도깨비는 농담이라고 말했고 잠시 생각하던 케이건 역시 고개를 가로질렀다.
“어디에도 없는 신께서는 어디에도 없을지 몰라도, 그 신체는 어딘가에 있긴 있어야 할 거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소. 사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뭐가 합리적인지 말하긴 어렵지만.”
“저게 깨지지 않는 이상 어디에도 없는 신의 신체를 찾아 나설 수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케이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별 도리 없다는 듯이 말했다.
“가이너 카쉬냅은 신이 전일 근무 가능한 무보수 만능 하인은 아니라고 했지만, 기왕 근처에 계신 신을 모른 체할 필요도 없을 것 같소. 아기에게 갑시다.”
아기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최후의 대장장이가 그 이름을 지어야겠지만 그녀는 여신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다. 혹은 사람들이 괴로움 속에 추측하는 것처럼 아기를 자신의 딸로 여기지 않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추측을 질문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출산할 때 느꼈던 고통의 앙금이 아직껏 몸 곳곳에 엉겨 있을 테지만 최후의 대장장이는 의연하게 행동했다. 아기가 누워 있는 요람을 가리키며 “저 요람을 만들면서 제단을 만들고 있는 거라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라고 말한 것이 그녀의 유일한 감정 표현이었다. 비형의 동정 어린 눈빛을 외면하며 최후의 대장장이는 요람으로 허리를 숙였다.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이여, 일어나소서.”
아기는 눈을 떴다. 그녀는 눈을 크게 꿈뻑거리다가 부리를 좍 벌려 하품했다. 그 모습은 보통의 어린 레콘이었다. 하지만 솜털에 뒤덮인 몸을 꿈틀거리던 아기는 케이건들을 발견하고는 말을 했다.
“수탐자들이 왔구나. 앉혀 주겠니?”
비형과 케이건은 머리가 울린다고 생각했다. 아기의 목소리는 보통으로 말할 때조차 지나치게 크고 울리는 목소리였다. 대장장이는 아기를 앉혔다. 땅이 울리는 목소리로 말을 한다는 실로 놀라운 능력을 제외한다면 아기는 보살핌이 필요한 보통의 아기였다. 불덩이의 모습으로 변해 버린 시우쇠를 기억하는 비형과 티나한은 아기에게 가시적인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 퍽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기는 노란 색 솜털 뭉치 같은 머리를 여기저기로 돌리다가 누구 한 사람에게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벽이 흔들거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접시를 깼느냐?”
“깨지지 않았습니다.”
아기는 의아해하며 설명을 요구했다. 케이건은 별의별 짓을 다 해 보았지만 접시가 깨지지 않았음을 설명했다. 설명을 다 들은 아기는 여전히 누구에게도 시선을 맞추지 않는 그 묘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럴 수도 있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는 빠른 것을 좋아하니까. 나와는 반대로, 나는 느린 쪽을 선호하지.”
잠시 고민해 본 케이건은 어렵지 않게 ‘그’가 자신을 죽이는 신을 가리키는 말임을 깨달았다. 접시는 즈믄누리의 마지막 방에서 나왔다. 케이건은 아기가 땅처럼 태평하다면 그것도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아기가 한 말은 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케이건이나 다른 수탐자들의 조바심과 상관없이 아기는 단조로운 태도로 흥얼거리듯이 말했다. 지나치게 큰 목소리로.
“몇십만 년쯤 써서 철을 만들어 내면 그는 당장 그걸 칼로 바꿔서 녹을 잔뜩 슬게 한 다음 내게 돌려주지. 심할 경우 몇 년 만에 그 지경으로 만들어서 돌려주더군. 왜 그렇게 성격이 급한지. 그러니 어떻게 내 아이들에게 줄 철에 그가 손 댈 수 있도록 하겠어.”
수탐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때 최후의 대장장이가 갑자기 탄성을 질렀다. 그 순간 케이건도 깨달았다.
별빛 로에는 불이 없다. 최후의 대장간에서 철은 불이 아닌 별빛으로 제련된다. 별철이 무기로 태어날 때는 불이 사용되지만 최초의 광석이 선철로 바뀌는 과정에는 불이 관련되지 않는다. 문득 케이건은 한 가지 사실을 더 떠올렸다.
“당신은 무기를 주시는 겁니까?”
아기는 잔잔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래.”
“그렇다면 발자국 없는 여신은……?”
“짐작하는 것 같은데, 말해 보지?”
“이름입니까?”
“잘 맞췄구나.”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무엇입니까?”
아기는 잠시 침묵한 다음 다시 방을 흔들었다.
“네가 이미 아는 것을 말해 줄 수는 있지만 내가 먼저 가르쳐 주긴 어렵구나. 그것은 그의 일이기 때문에.”
케이건은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접시가 깨지지 않는 것은 어떻게 해결해야겠습니까? 그건 저희들이 알지 못합니다.”
“시우쇠에게 가자.”
“네?”
“그 접시를 만든 시우쇠에게 가자. 최후의 대장장이야.”
최후의 대장장이는 주춤거리며 허리를 숙였다. 아기는 그녀에게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말했다.
“저 티나한이라는 아이가 등에 맬 수 있는 물건을 하나 만들 거라. 저 아이가 나를 업어야겠다. 하지만 저 아이가 팔을 쓸 수 있어야 될 테니 적절한 장치가 필요하겠구나. 만들 수 있겠지?”
티나한은 기겁했다. 그는 그 모습이 자신의 전사적 풍모를 심히 훼손시킬 것임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뭐라 항의하기도 전에 아기는 다시 잠들고 말았다. 아기가 잠든 것을 확인한 최후의 대장장이는 똑바로 서더니 꽤 의미 깊어 보이는 웃음으로 티나한을 바라보았다. 티나한은 그만 울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비형이 눈을 빛내며 바라보는 것은 그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