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3장 – 파국으로의 수령 (2)
하텐그라쥬의 기록 보관소장 콘수마 발텐의 몸 어디에서도 전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사가 어루만지며 전투의 추억을 되새겨 볼 만한 상처는, 재생 능력을 가진 나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니름이다. 그리고 콘수마의 정신에서도 바뀐 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서 비아스 마케로우는 몇 년 전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의 콘수마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저주받을 요새에서 물러날 때는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군단장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군단장께서도 추위에 고통받는 병사들 때문에 그런 힘든 결정을 내리신 것이 분명하니까요.>
달라진 점이 있기는 했다. 교위로 예편한 콘수마는 장군인 비아스에게 하대를 하라고 강권했다. 비아스는 그렇게 했다.
<그것은 절대로 야자수 군단의 불명예가 아니야. 발텐 교위. 오동나무 군단 또한 결국 물러나야 했지.>
<그렇습니다. 군단장님. 오동나무 군단은 대단한 군단이지요. 저희들은 자보로 공격에서 함께 싸운 적이 있습니다. 마호가니 군단은 그때 슈라도스에 있었지요? 그곳의 전투도 대단했다고 들었습니다만, 군단장님. 자보로의 성벽은 정말 악몽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투 사흘째…….>
콘수마 발텐이 전상 대신 전우와 함께 전선의 추억을 되새기고 싶어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비아스는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도록 애쓰며 콘수마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녀는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콘수마가 불쾌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충분한 확신이 있은 후에야 비아스는 조심스럽게 용건을 꺼내었다. 비아스가 꺼낸 니름은 콘수마를, 그러니까 기록 보관소장이 아닌 늙고 충직한 전사인 콘수마를 경악시켰다.
<발자국 없는 여신께서 한계선 남쪽에 계시다고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발텐 교위.>
<마케로우 장군님. 물론 전쟁터는 참혹합니다……………>
<그만. 교위. 나는 전쟁의 충격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으로 취급당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다. 생각해 봐. 수호 장군들은 왜 저런 기적과도 같은 능력을 얻게 되었지?>
<네? 그거야 불신자들이 여신을 감금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주인을 잃은 힘이 여신의 신랑들에게 복종하는 것 아닙니까?>
<만약 그렇다면, 불신자들은 왜 여신을 풀어 주지 않는 걸까?>
<네?>
<수호 장군들이 여신의 힘을 이용해서 그들의 땅을 짓밟고 있는데 왜 불신자들은 여신을 풀어 주지 않는 걸까? 여신을 풀어 준다면 수호 장군들이 힘을 잃게 될 것이 뻔하잖아.>
콘수마는 기절할 것 같았다. 비아스의 설명은 합리적이었다.
<그, 그, 그렇다면…….>
<맞아.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까닭은, 여신을 감금하고 있는 것이 그들이 아니기 때문이야. 나는 하텐그라쥬 방어를 위해 돌아왔다고 닐렀지.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에도 급급한 불신자들이 목숨을 걸고 하텐그라쥬로 오고 있단 니름이야. 그리고 나는 조금 전 불신자들에겐 여신을 풀어줘야 할 절실한 이유가 있다고 닐렀어. 자, 이 두 사실을 놓고 생각해 본다면 뭔가 불쾌한 결론이 떠오르지 않나?>
콘수마는 대답할 수 없었다. 비아스는 기다리지 않았다.
<그래. 여신은 하텐그라쥬에 감금되어 있어. 수호자들이 여신을 감금하고 신부의 힘을 강탈하여 사용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불신자들은, 여신의 힘을 여신에게 돌려주는 것만이 그들이 살아날 방법이기에 목숨을 걸고 하텐그라쥬로 오고 있는 거야!>
콘수마의 첫 번째 반응은,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었다. 비아스는 당황했다. 니름으로 표현된 것은 아니지만 거의 그에 준하는 정신적 경향으로써, 콘수마는 수호 장군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비아스가 분개하여 니르려 할 때 콘수마가 닐렀다.
<그렇게 된 것이군요.>
<자네 반응이 좀 묘하다고 생각되는군. 발텐 교위.>
<무슨 니름이신지 알겠습니다. 마케로우 장군님. 수호자들이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군요. 하지만 장군님. 그 때문에 우리들은 대확장 전쟁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잖습니까? 수호 장군들의 힘이 있었기에 우리는 감히 구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해본 적이 없던 저 북부의 땅을 밟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 전쟁의 결과로 하텐그라쥬가 누리는 풍족이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까?>
<나도 눈이 있어. 발텐 교위. 이곳에 와서 다 보았어. 그 때문에 남자가 가문을 계승하려 드는 황당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까지 알아.>
콘수마는 미소 지었다.
<쥬어 니름이시군요. 별일도 다 있지요. 하지만 저는 그것이 유쾌한 부작용이라고 생각됩니다.>
<유쾌한 부작용이라고?>
<장군님. 이 전쟁은 부를 낳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에게 선택할 길을 하나 더 열어주었습니다. 지금껏 가주를 계승할 수 없었던 여자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이모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야 했지요. 그것이 싫다면 정찰 대원이 되어 떠나는 방법이 고작이었습니다. 물론 대장간에 들어가는 방법 같은 것은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 이후 여자들의 선택이 하나 더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풍요로 가득한 길이지요. 여자들은 북부에서 무엇이든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레콘을 만난다거나 하는 고약한 일도 생기긴 합니다만, 대부분의 적은 별것 아닌 인간들입니다. 저는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문득 비아스는 콘수마의 의복을 살폈다. 그리고 비아스는 기록 보관소장의 옷이 동사(銅)가 삽입된 호사스러운 것임을 깨달았다. 물론 그것을 못 본 것은 아니지만 비아스는 현역 장군의 방문 예고를 받은 예비역 교위가 예의를 갖추기 위해 고급 옷을 입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 옷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것으로 다가왔다.
몇 년 전, 성전에 종군하기 위해 목숨이라도 내놓겠다고 강변하던 전사는 그곳에 없었다. 북부에서 충분한 피를 마시고 넘치는 부를 얻은 콘수마는 더 이상 비아스가 기대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둘 중 어느 것이 변화의 보다 직접적인 이유일까? 비아스는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의 제전이 콘수마를 변화시킨 것이라면 그녀는 여신을 빼앗긴 분노를 피로 씻어낸 것이다. 따라서 분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북부에서 획득한 부가 원인이라면 분노는 여전히 콘수마의 내부에 존재할 것이다. 감춰지고 기만되고 변형된 형태로 나마 비아스는 조심스럽게 닐렀다.
<자네 니름대로라면 여신은 계속 갇혀 있을수록 좋겠군.>
비아스는 정신이 어지러워질 만큼 집중하여 콘수마의 정신을 살폈다. 콘수마는 약간 지체한 다음 닐렀다.
<그렇게 니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로 들었는데. 여신이 풀려나면 나가들은 다시 옛날로 돌아가게 될 거야. 북부로 가는 길이 막히는 거지. 그렇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콘수마는 니름을 잇지 않은 채 정신을 닫았다. 비아스는 자신이 사람을 억압할 수 있는 정신 억압자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닐렀다.
<갇혀 있는 여신은 어쩌면 우리를 포기하게 될지도 몰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저 두억시니의 운명이 꼭 남의 일은 아니게 될 텐데.>
콘수마는 기겁하여 닐렀다.
<그런 일까지 생길까요?>
비아스는 속으로 쾌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