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3장 – 파국으로의 수령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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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3장 – 파국으로의 수령 (8)


태양이 키보렌에 쏟아붓는 충만한 열기는 대나무 군단병들의 몸에도 넘치도록 흘러들어갔다. 지난 한 달 가까이 계속된 지독한 질주 동안에도 그들은 비슷한 온도 속에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키보렌의 열기 속에 있었고 그것은 어떤 수호 장군도 줄 수 없는 고향의 열기였다. 군단병들은 한 달 동안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을 느꼈다. 특히 북부군의 포로로 붙잡혀 있던 대수호자 키베인과 다른 네 명의 수호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각별한 것이었다. 시구리아트 관문 요새의 낙성 당시에는 너무나 다급하고 충격적인 사건의 연속이었기에 자유를 되찾았다는 느낌은 그다지 분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직후 이어진 숨 가쁜 남진은 그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정신없는 행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아직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키보렌의 열기는 다른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자유의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침내 구출되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즐거워하는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즐거워하며 농담을 나누었고 한 가지 농담이 끝날 때마다 반드시 폭발적인 정신적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니름을 듣지 못하는 바르사 돌 교위와 데오늬 달비 부위는 나가들이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걷고 있던 키베인은 나가들이 즐거워하고 있으니 그렇게 주눅 들어 있을 필요는 없다고 세심하게 설명해 주었다. 바르사는 주눅 들었다는 말에 왈칵 화를 내었고 데오늬 달비는 나가들이 즐거워하는 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 애썼다. 키베인은 머쓱하게 웃었다.

시구리아트 관문 요새의 전투 당시 바르사 돌 교위는 도깨비와 어르신들을 모두 즈믄누리로 보냈다. 전쟁터에 도깨비를 두어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르사는 그 도깨비들 편에 포로들을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바르사는 그 결정을 번복했다. 포로들이 인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약 바르사가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키베인과 다른 네 명의 수호 장군들은 도깨비들의 농담을 들어가며 즈믄누리에서 빠져나오려 애쓰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곳이 그렇게까지 비늘 서는 곳은 아니다. 도무지 믿기 힘든 소문에 따르면 도깨비들은 즈믄누리 안에 포로들을 풀어놓은 다음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둔다고 한다. 절대로 빠져나가는 길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깨비들이 아무리 친절하다 한들 키베인은 즈믄누리와 키보렌을 바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런 번복 때문에, 또한 북부군이 그들에게 보여준 경의와 존중 때문에 키베인은 입장이 바뀌자 그 또한 경의와 존중으로 그들을 대하기로 결심했다. 쇠투구에 도깨비불을 담아서 가져온 데오늬의 행동을 잊을 수 없었던 다른 네 수호 장군들도 대수호자의 의지에 동의했다. 그래서 그들은 대나무 군단이 유료 도로당의 당원들을 학살하고 북부군마저 학살하려 왔을 때 목숨을 걸고 그들을 지켜주었다. 대나무 군단 또한 다른 나가의 군단과 마찬가지로 포로라는 개념을 그다지 알지 못했지만 그들 중에는―갈로텍까지 포함하여 대수호자의 의지를 거스르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키베인은 대수호자라고 불리게 된 이후 처음으로 그 지위에 고마워했다.

정신없는 한 달 동안의 질주 이후 대나무 군단은 더 이상 포로들에게 특별히 적개심을 품지 않았다. 언제나 대수호자와 다른 네 수호 장군들이 포로들 곁에 있었기 때문에 적개심을 표현할래야 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데오늬 달비에게 감탄했다. 키베인조차도 당황하며 질문했다.

“달비 부위. 도대체 당신은 언제 지칩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대수호자님.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대수호자님?”

“글쎄요. 물론 당신에겐 무기도 없고 짐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모두가 지쳐 있는 지금도 당신은 조금도 지쳐 보이지 않는군요. 당신은 마치 몸에서 소드락이 샘솟는 나가 같습니다.”

데오늬 곁에서 걷고 있던 바르사는 키베인의 말에 어깨를 폈다. 씩씩하게 걸으려 애쓰는 교위의 모습을 보며 키베인은 싱긋 웃었다. 데오늬는 눈이 동그래져서 말했다.

“소드락이 샘솟는 나가도 있습니까? 대수호자님?”

“예? 아, 그건 그냥 비유였습니다.”

“그렇습니까? 저는 대수호자라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수호자님은 분명히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몸에서 소드락이 샘솟는 나가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키베인은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 논법인지 질문하지 않았다. 질문했다가는 더 혼란스러워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베인은 그냥 웃으며 말했다.

“저도 이 전쟁 이전에는 대수호자라는 니름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대수호자라는 지위는 최근에 생긴 겁니다. 보통 주의 깊은 사람들은 최신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요. 저같이 주의력 없는 사람이나 그런 지위에 오르는 겁니다.”

“대수호자는 무엇입니까, 대수호자님?”

“굳이 말하자면 모든 수호자들의 대표입니다.”

가볍게 말하던 키베인은 바르사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 바르사는 혀를 차며 말했다.

“당신 정말 중요한 나가였군?”

“그때는 정말 놀랐습니다. 돌 교위.”

데오늬는 반색하며 바르사에게 뭔가를 잘 맞춘 경험이 없었냐고 질문했다. 바르사는 그런 질문들에 대충 대답해서 데오늬로 하여금 경애하는 교위가 사실은 마법사였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다음 다시 키베인에게 말했다.

“그럼, 왕이오? 나가의 왕?”

“글쎄요. 저는 아닙니다. 제 다음 대수호자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음 대수호자?”

“예. 아마 빨리 정해질 것 같습니다. 신명이 묶인 수호자가 더 이상 대수호자일 수는 없을 테니까요.”

키베인은 쾌활하게 말했다. 바르사는 조금 생각한 후에야 키베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래서 키베인의 쾌활함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바르사는 키베인의 입장에 대해 질문할 틈이 없었다. 키베인은 어느새 앞쪽으로 한참 달려 가버린 데오늬를 따라갔기 때문이다.

“달비 부위, 달비 부위! 제발 천천히 걸어요!”

대나무 군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갈로텍 대장군 또한 키보렌에 돌아온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의 경우에는 더 이상 기온을 조절할 필요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군단의 지휘를 보라크 군단장에게 맡긴 채 갈로텍은 말 위에서 대금을 불었다.

대나무 군단은 자신들의 군단명과 같은 나무로 만들어진 그 악기에 어떤 행운을 부르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나가들이라면 의아해하거나 심지어 불쾌해할 그 모습에도 괘념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연주를 듣기까지 하는 나가는 없었다. 그래서 갈로텍의 연주를 듣는 청중은 항상 그랬듯이 한 명뿐이었다.

군령의 지식을 통해 갈로텍은 지음(知音)이라는 말을 알고 있었지만 나가들에게 썩 어울리는 단어라 하긴 어려웠기에 그 상황에 그 단어를 적용하지는 않았다. 사실 갈로텍은 자신의 연주를 들어주는 자를 친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결국 갈로텍은 대금을 입에서 뗐다. 그의 입이 다른 자의 의도를 담아 움직였다.

“계속해, 갈로텍.”

“몇 시간 동안 했습니다. 이제 그만하렵니다.”

“이제 키보렌에 들어왔으니 기온 조절할 필요도 없잖아. 연주해.”

“당신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연주하면서 말해.”

갈로텍은 기가 막혔다.

“당신은 나가가 아니잖습니까! 상대가 나가라면 연주하면서 니를 수 있지만, 주퀘도 당신에게 말하려면 연주는 중단해야 합니다.”

그의 입이 한참 후에 움직였다.

“나가가 아니다. 맞아. 나는 나가가 아니야.”

갈로텍은 비늘을 거세게 부딪쳤다. 시구리아트 산맥을 떠나온 이후 주퀘도는 갑자기 바보가 된 것처럼 행동했다. 그는 무엇에도 무관심했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조차 포기해 버린 듯했다. 일체의 사고 활동을 거부하는 주퀘도가 원하는 것은 오직 대금 연주를 듣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갈로텍은 그나마도 귀기울여 듣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갈로텍은 애써 화를 참으며 말했다.

“주퀘도. 뱀단지에 따르면 현재 북부군은 악타그라쥬 앞에서 아군의 여섯 개 군단과 대치 중입니다. 선인장 군단의 세키리 군단장 아시지요? 그가 여섯 개 군단의 수호 장군 전원이 시우쇠를 봉쇄하고 군단들이 매일 번갈아가며 북부군을 공격한다는 계책을 세워 그들의 전진을 묶어놓고 있습니다.”

주퀘도는 한숨처럼 말했다.

“뇌룡공은?”

“뇌룡공은 레콘들을 위해 비를 막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온을 나가에게 곤란한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있고요.”

“그런가. 잘하고 있군. 이제 네가 도착해서 그들을 밀어버리면 되겠군.”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대호왕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가.”

“그런가가 아닙니다! 세키리 군단장은 대호왕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꽤 신경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기만 전술이 아닐까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군세가 어딘가에 있어서 대호왕이 그 병력을 지휘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만약 그것이 기만 전술이라면 대호왕은 북부군이 우리의 주의를 끌어주는 틈을 타서 그 미지의 병력과 함께 하텐그라쥬 근방에 도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아스에게 뭔가 지시를 보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군.”

갈로텍은 결국 주퀘도의 무기력한 태도를 참지 못했다.

“주퀘도!”

“응? 왜?”

“도대체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녹슬게 하고 있는 겁니까. 당신이 그렇게 원하던 것처럼 유료 도로당을 파괴했잖습니까! 장례식도 치뤄주지 못하고 나무들을 학살한 것 때문에 병사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대수호자를 구출한다는 명분이 있어서 겨우 불만을 무마시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소망을 이루었습니다! 당신은 누구도 정복할 수 없었던, 심지어 당신 자신도 정복할 수 없었던 것을 정복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얼간이 같은 꼴을 하고 있는 겁니까?”

“내가 그랬지?”

“당신은 시구리아트 관문 요새를 무너뜨렸습니다.”

“그게 나인가?”

“무슨 말입니까?”

“그게 난가? 아니면 너인가? 그라쉐인가? 화리트인가? 노기인가? 모르겠어. 그걸 내가 한 거야?”

“당신입니다. 그 긴 세월 동안 그것을 원한 것은 당신입니다.”

주퀘도는 침묵했다. 갈로텍은 참을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그때 주퀘도가 입을 열었다.

“돌아가자.”

“예?”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로 돌아가자.”

갈로텍은 기가 막혀 고함을 빽 질렀다.

“주퀘도! 돌아가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사과해야 해.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어.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

“이런 어이가 없는 소릴! 도대체 누구에게 사과한다는 겁니까. 당원들은 다 죽었습니다.”

“한 명이라도 남아 있을 거야.”

“그런 자가 있을지 모르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그 생존자는 이미 그곳을 떠났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 그 놈들은 떠나지 않아. 내 사과를 받아야 하니까. 떠나지 않을 거야. 분명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갈로텍. 돌아가자.”

갈로텍은 넌더리를 내며 입의 권리를 주퀘도에게서 박탈했다. 그 결과는 그다지 바람직한 것이 못 되었다. 주퀘도는 격분하여 그의 몸 여기저기를 움직였다. 그 때문에 갈로텍은 갑자기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오른손이라든가 알지 못하는 새 호흡을 중단해 버려 숨 막히게 만드는 호흡기 등에 의해 난처한 지경을 겪게 되었다. 보라크 군단장과 대나무 군단의 병사들은 넋이 나간 얼굴로 경애하는 대장군을 바라보았다. 갈로텍은 비늘이 뽑힐 만큼 긴장한 채 온몸을 통제했다. 꽤 긴 시간이 지난 다음에 갈로텍은 겨우 노력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주퀘도를 잠잠하게 만들고 나서, 갈로텍은 난폭해지는 기분을 가누기 위해 한동안 애써야 했다. 보라크 군단장과 병사들이 궁금함을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갈로텍은 험악한 표정으로 그 시선의 방향들을 바꿔 놓았다.

갈로텍은 주퀘도를 포기해야 되는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 이제 나가들은 주퀘도가 없이도 군대를 만들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대부분의 기술을 익혔다. 실상 주퀘도가 가장 큰 도움을 준 부분은 바로 그런 부분들이었다. 전략가로서의 주퀘도를 폄하할 수는 없지만 그 즈음 갈로텍은 자신이 언제나 주퀘도를 따라다녀야 한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주퀘도를 어딘가로 파견하려면 갈로텍 또한 그곳으로 가야 했다. 물론 거꾸로 말한다면 주퀘도는 언제라도 그를 보조해 줄 수 있는 참모라 할 수 있지만, 갈로텍은 주퀘도보다 좀 능력이 부족한 자라도 그와 별개로 움직일 수 있는 수하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선인장 군단의 세키리 같은 경우가 그렇다. 세키리에게 갈로텍도 주퀘도도 없었지만 그 자신의 창의력으로 륜 페이와 시우쇠가 함께 있는 북부군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런 부하가 있다면 갈로텍은 그들에게 전쟁의 많은 부분들을 맡겨 놓고 자신의 일을 처리할 시간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갈로텍은 짙은 아쉬움 속에서 자신이 아직 착수조차 하지 못한 일에 대해 생각했다. 전쟁이 4년째에 접어들고 있었지만, 갈로텍은 아직도 세페린의 목을 자른 나가 살육자의 희미한 단서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비아스는 비웃음 섞인 말투로 말했다.

“갈로텍의 누이라면, 나가 살육자에게 목이 잘렸다는? 그런데 그 여자가 왜?”

“세페린은 신체였습니다.”

“뭐? 요스비가 아니고?”

“세피린은 요스비의 선대 신체였습니다. 제가 파악하고 있는 신체는 모두 세 명이었습니다. 처음이 갈로텍의 누이 세페린, 그리고 요스비, 그리고 카린돌 마케로우입니다. 마케로우. 당신은 우리의 계획이 15년 전에 시작되었을 거라고 말했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거냐?”

보트린은 설명했다.

보트린이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은 심장탑으로 갈로텍을 만나러 온 세페린을 보았을 때였다. 당시 정찰대에 들어가게 된 세페린은 하텐그라쥬를 떠나기 전 인사를 나누기 위해 심장탑으로 갈로텍을 찾아왔다. 심장은 적출했지만 아직 수호자가 되지 못했던 수련자 보트린은 그녀를 갈로텍에게 안내해 주게 되었다. 그때 보트린은 기묘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는 그것이 사악한 정념 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겁을 집어먹었지만 그것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감정이었다. 세페린이 하텐그라쥬를 떠난 뒤, 며칠 동안 고민하던 보트린은 결국 그의 스승이었던 세리스마를 찾았다. 세리스마는 보트린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고, 그의 경험과 인상을 세심하게 표현하도록 했다. 그 결과로 보트린은 자신이 신체를 찾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비아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계획이 시작되었나?”

“그렇습니다.”

“갈로텍은 반대하지 않았나? 자기 누이를 냉동시켜야 되는 거잖아.”

갈로텍은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열성적으로 나섰다. 수호자들은 갈로텍이 누이에 대해 비뚤어진 소유욕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갈로텍은 세페린의 영을 자신에게 합류시키기를 원했다.

“그래서 요스비가 북쪽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스바치와 카루를 기억하십니까?”

보트린의 뒤쪽에 있던 쥬어는 수호자의 말에 흠칫했다. 보트린의 말에 집중하고 있던 비아스는 그런 쥬어의 반응을 깨닫지 못했다.

“요스비는, 말하자면 스바치와 카루의 선배쯤 되는 자입니다. 그는 쾌활한 모험가였고 놀라운 정신 억압자였습니다. 세리스마는 그를 속여 뱀단지를 하인샤 대사원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게 했습니다. 요스비는 그것이 한계선으로 나뉘어진 두 집단 사이에 대화의 장을 만드는 일이라고 믿었지요.”

“심장탑의 늙은 뱀이 속인 자가 도대체 몇 명인지 짐작도 안 되는군.”

“수도 없습니다. 인간들의 하인샤 대사원 또한 세리스마에게 속았지요. 이야기가 앞서 가는군요. 그 이야기는 좀 천천히 하겠습니다. 요스비는 뱀단지를 가지고 용감하게 한계선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요스비는 세페린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가 살육자에게 공격당해 죽어가던 세페린을 발견한 것이지요.”

“나가 살육자? 그 전설 말이야?”

보트린은 갑자기 비늘을 세웠다.

“그것은 전설이 아닙니다. 나가 살육자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당시 그 나가 살육자는 추위로 느려진 정찰대를 모조리 살해하고 마지막으로 세페린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요스비가 도착하여 본 것은 그런 광경이었지요. 요스비를 본 나가 살육자는 세페린의 목을 가지고 도망쳤습니다. 요스비는 잠시 고민하다가 뱀단지를 꺼내었지요. 그리고 하텐그라쥬로 연락했습니다. 요스비는 세페린이 갈로텍의 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갈로텍은 목이 잘린 누이의 시체를 하텐그라쥬로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군.”

“그렇습니다. 갈로텍에게 연락한 다음 요스비는 다시 나가 살육자를 추적했습니다. 한편 우리들은 큰 낭패에 빠졌습니다. 신체가 죽었으니 여신이 누구에게 전령했는지 알 수 없게 되었지요. 우리는 요스비를 돌아오게 할까 했습니다. 하지만 뱀단지를 하인샤 대사원에 놓아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 때문에 요스비를 계속 가게 놔두었습니다. 요스비는 그 일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텐그라쥬로 돌아왔을 때, 저는 요스비가 신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페린이 죽었을 때 여신은 그 곁을 지나던 요스비에게 전령하신 것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러면 왜 그대로 요스비를 냉동시키지 않았지?”

“갈로텍이 의심을 제기했습니다. 이미 말했듯이 나가 살육자는 정찰대를 모두 죽였습니다. 그런데 왜 요스비는 죽이지 않았을까요? 물론 요스비는 상당한 수준의 정신 억압자이고 칼솜씨도 만만찮았습니다. 하지만 정찰대를 전멸시킨 나가 살육자가 왜 요스비 한 명에게 놀라 도망쳐야겠습니까?”

비아스는 그 의심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군. 어떻게 된 거지?”

“요스비와 나가 살육자는 서로 아는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친구였죠.”

“뭐라고?”

비아스는 놀란 나머지 입을 벌렸다. 보트린은 침울하게 설명했다.

“요스비는 뱀단지를 가지고 하텐그라쥬를 떠나기 몇 년 전에 나가 살육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세페린이 죽기 3년 전쯤의 일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삼 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였고, 그 자리에서 나가 살육자는 친구의 동족을 살해하고 있었습니다. 나가 살육자는 요스비에게 그런 모습을 보인 것에 당황하여 도망쳐버린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만났고, 나가 살육자는 요스비가 하인샤 대사원에 도달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런 도움이 있었기에 요스비는 임무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거지요.”

“나가 살육자는 도대체 뭐야, 두억시니야?”

“아니요. 인간인 것 같습니다.”

“인간?”

“그렇습니다.”

“나가와 인간이 친구라. 그 요스비라는 녀석은 확실히 미친놈인가 보군.”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계속 말할까요?”

“계속해.”

“갈로텍은 그런 요스비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여신을 감금하기 위해선 군령자가 꼭 필요했고, 우리에게 군령자는 갈로텍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갈로텍은 절대로 요스비를 자기 속에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갈로텍은 세페린을 죽인 나가 살육자와 그것을 방조한 요스비를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스비를 죽여 륜 페이에게 여신을 전령시킨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륜 페이는 수련자였기에 우리가 다루기 훨씬 쉽다고 생각했지요. 세페린에게서 요스비에게로 전령된 전례를 보아 가까이에 있는 나가에게 전령될 거라는 확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스비를 죽였습니다. 갈로텍이 직접 요스비의 심장병을 파괴했습니다.”

보트린은 피로한 표정으로 긴 설명을 끝마쳤다.

“그 다음은, 당신이 말한 대로입니다. 이제 갈로텍에겐 죽여야 할 원수가 한 명 남았지요. 그는 반드시 나가 살육자를 없앨 겁니다. 전쟁 때문에 아직 그 일에 착수하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원한을 갚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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