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3장 – 파국으로의 수령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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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3장 – 파국으로의 수령 (10)


시구리아트 관문 요새의 통로를 메우던 통곡이 사라졌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보좌관은 케이건과 티나한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걸어갔다. 케이건이 그를 불렀다.

“어쩔 거요, 보좌관?”

보좌관은 걸음을 멈췄다. 천천히 몸을 돌린 보좌관은 뒤엉킨 머리를 쓸어넘겨 붉게 충혈된 눈을 드러냈다. 보좌관은 그 눈으로 케이건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쩔 거냐니, 무슨 말이오?”

“당은 사라졌소. 이곳에 혼자 남아 있기는 어려울 거요. 원한다면 산맥 아래까지 동행해도 좋소. 산을 내려간다 한들 나가의 공격으로 피폐해진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이곳보다는 견디기 쉬울 거요.”

“나는 남을 거요.”

“……그렇소?”

“그래요. 나는 남을 거요. 당은 사라지지 않았소. 아직 내가 살아 있소. 당은 길을 준비하오. 길은 여행자를 따라가지 않소. 나는 남을 거요.”

“뭔가 도움이 될 것이 없겠소?”

보좌관은 입을 다문 채 케이건을 쏘아보았다. 티나한은 그것이 경멸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어리둥절해졌다. 보좌관은 말하기 힘들다는 투로 말했다.

“당주님의 마지막 말을 기억하오?”

“기억하오.”

“그 말에 대해 아무런 느낌도 없는 거요?”

케이건은 입을 다물었다. 보좌관은 깡마른 주먹을 힘껏 움켜쥐며 말했다.

“정말 아무런 느낌도 없습니까? 당신에겐 몇 번이나 경험해서 별다른 특별함도 없는 권태로운 경험에 불과했을지 모르지만, 어머님은 그것을 평생 동안 기억했습니다. 저는 차라리 그 분이 저를 당신의 모조품으로 대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흔히들 과부가 유복자에게 그러듯이 말입니다! 그러면 저는 어머님께 그 분이 당신에게 받지 못한 것을 드리려 했습니다. 사랑 말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당신의 모조품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 분은 다시 태어나 당신을 찾아가겠노라 말씀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결국 저는 당신의 대신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 말씀에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겁니까, 아버지!”

티나한은 질겁했다.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놀라움에 티나한의 깃털이 사정없이 부풀어 올랐다. 그 때문에 아기는 깃털에 파묻혀 버렸다. 티나한은 그 큰 머리를 휙휙 움직이며 보좌관과 케이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문득 티나한은 케이건이 늙으면 보좌관과 비슷한 얼굴이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느낌에 소스라쳤다.

무표정한 얼굴로 보좌관을 바라보던 케이건이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케이. 그렇게 기억하는데, 그 이름이 맞지?”

보좌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케이건은 무너진 벽을 돌아보았다가 다시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네가 그것을 원하는 것 같지만, 나는 사과하지 않겠다.”

보좌관의 어깨가 진동했다. 그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작별 인사조차 없이 걸어갔다.

홀로 남게 된 티나한은 어쩔 줄 모르며 케이건과 보좌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보좌관은 갑자기 주저앉았다. 그는 무너진 틈을 바라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티나한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게 되었다. 티나한은 몇 걸음을 달려서 케이건의 뒤에 따라붙었다. 고개를 돌리자 이미 관문 요새의 모습은 조그마하게 변해 있었다. 티나한은 가까스로 보좌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같은 자리에 주저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케이건의 뒤를 따라가며 티나한은 질문이 끊임없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어떤 질문부터 해야 하는지부터 묻고 싶을 정도로 많은 질문에 티나한은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티나한은 겨우 질문을 꺼내는 데 성공했다.

“어엿븐 소드락이가 무슨 뜻이야?”

자신의 질문을 들은 티나한은 도대체 왜 그런 질문을 한 건지 황당해졌다. 케이건은 묵묵히 발만 옮길 뿐 티나한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티나한의 등뒤에 있던 아기가 부리를 열어 말했다.

“티나한. 그건 아라짓 어란다.”

“아라짓 어요?”

“그래. ‘어엿브다’는 것은 불쌍하다. 가엾다는 뜻이야. 그리고 ‘소드락이’는 ‘소드락질’ 하는 사람을 말하지. 그리고 ‘소드락질’이라는 것은 도둑질을 말하지.”

“그러면, 어, 가엾은 도둑놈이라는 말입니까?”

“맞아.”

케이건은 고개를 돌리지도, 걸음을 멈추지도 않은 채 말했다.

“여신님. 그만해 주십시오.”

아기는 부리를 닫았다. 등 뒤에 있는 아기를 돌아볼 수 없었던 티나한은 불만을 느끼며 케이건의 등을 바라보았다.

“이봐, 정말 궁금한데, 도대체 저 늙은 인간이 왜 너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야? 의붓아버지라도 이렇게 나이 차가 나는 경우는 없겠다.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정말 저 늙은이의 아버지야?”

케이건은 말없이 발만 놀렸다. 티나한은 하루 반나절을 기다릴 것인지 그냥 대답 듣는 것을 포기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했다. 케이건이 다시 입을 연 것은 티나한이 둘 다 선택하기 싫다는 생각을 떠올렸을 때였다.

“나가에게는 아버지가 없소.”

티나한은 긴장했다. 그러나 조금 후 티나한은 그것이 완전히 무의미한 대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불만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케이건의 뒤통수를 내려다보았다. 한참 후에 케이건은 다시 말했다.

“정말 이상한 일 아니오?”

티나한은 그만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도무지 문장들이 어떤 통일된 의미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정말 약오르게도 케이건이 세 번째로 꺼낸 말 또한 앞의 두 문장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것은 티나한에게 약간 관련된 말이었다.

“저기 비형이 있소.”

티나한은 고개를 들었고, 그들이 어느새 산을 넘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형은 나늬와 함께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형을 향해 걸어가며 케이건은 나직이 속삭였다.

“티나한. 다 잊어주시오.”

“잊으라고?”

“그래주시오. 이 모든 일이 끝나면, 그리고 더 이상 길잡이와 대적자, 요술쟁이가 함께 있을 필요가 없게 되면, 나는 당신들을 영원히 떠나겠소. 아마도 당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거요. 그러니 그때 말해 주겠소. 지금은 그냥 잊어주시오.”

티나한은 그것이 만족스러운 거래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비형과의 거리가 계속 가까워지고 있었고 더 이상 도깨비의 귀를 피해 속삭이기도 어려웠다. 티나한은 짧게 말했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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