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5장 – 셋은 부족하다 (2)
시모그라쥬에서 일어난 소동은, 절대로 북부군의 지략가를 의심으로 몰아넣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소동은 결과적으로 라수 규리하를 의심에 빠지게 만들었다. 소동의 한가운데 있어야 했던 수호 장군들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작은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했다.
피나무 군단의 군단장이자 시모그라쥬 방어 작전의 입안자 및 그 주관자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수호 장군 인실롭은, 자신의 거창한 이름들이 무가치한 것으로 판명되는 상황 앞에서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상대방은 인실롭의 분노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모그라쥬 평의회 의장 칸비야 고소리는 딱딱하게 닐렀다.
<퇴거를 더 종용해야 하겠습니까? 내 니름은 농담이 아닙니다. 인실롭 군단장.>
<정말 이러실 겁니까? 시모그라쥬가 발을 빼면 그 다음은 하텐그라쥬입니다! 북부군이 성지에 발을 들여놓게 하고 싶은 겁니까?>
<당신은 나에게 시모그라쥬를 저들로부터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닐렀습니다. 그렇다면 똑같은 일을 하텐그라쥬에서는 할 수 없다는 겁니까?>
<상황이 다릅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급박한 상황이라면 기선은 저쪽에 있습니다. 적들의 가장 큰 무기는 다름 아닌 혼란과 기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정함입니다.〉
<나는 시모그라쥬가 희생할 수 있는 발판으로 여겨지는 사실이 달갑지 않군요.>
<그런 니름이 아니잖습니까!>
<아니, 그런 니름입니다. 물러날 곳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반드시 물러나게 됩니다. 상황이 곤란해지면 당신들은 적들에게 최대의 피해를 강요한 다음 하텐그라쥬로 물러가겠지요. 그리고 하텐그라쥬에서 쇠약해진 적을 분쇄하려 하겠지요. 하지만 그때는 이미 시모그라쥬의 모든 시민들이 죽은 후겠지요.>
인실롭은 비늘을 난폭하게 부딪쳤다. 쉰네 명이나 되는 수호 장군을 모아왔건만 칸비야 의장은 환호를 보내는 대신 어떤 종류의 전투 행위도 거절함으로써 그를 당황시켰다. 그러고는 마침내 시모그라쥬를 떠나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인실롭은 분노를 억누르며 그와 칸비야 의장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을 무시해 보기로 했다.
<저희들이 물러나면 북부군이 시모그라쥬를 얌전히 지나칠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러기를 바랍니다.>
인실롭은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고백하지는 않았다. 대신 준비한 니름을 풀어놓았다.
<아마도 의장님께서는 북부군이 하텐그라쥬 공격에 사용할 병력을 보존하기 위해 시모그라쥬를 무시할 거라 믿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괄하이드는 등 뒤에 적을 남겨둘 사람이 아닙니다. 배후에서 기습당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시모그라쥬를 파괴할 겁니다. 저희가 물러나면 시모그라쥬는 더욱 파괴하기 쉬운 상대가 될 터인데, 왜 그 자가 그런 이점을 무시하겠습니까?>
<그에겐 용인이 있습니다. 그 용인은 이곳에 숨은 병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심장을 적출한 나가는 모두 병력입니다!>
<그 옛날의 전쟁이라면 모르겠지만 이 전쟁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인실롭 군단장. 이 전쟁에서는 수호자가 병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 또한 그 많은 수호 장군들을 데려온 것 아닙니까?>
<시모그라쥬에도 수호자는 있잖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들도 데리고 떠나십시오. 당신에게 도움이 되겠지요.>
인실롭은 꽤 긴 시간 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칸비야 의장을 노려보았다. 칸비야 의장은 경멸 섞인 미소를 지은 채 닐렀다.
<당신이 짐작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니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계속 자명한 사실을 무시하는 해괴한 니름을 계속하니어쩔 수 없군요. 시모그라쥬의 모든 수호자와 함께 이곳을 떠나십시오.>
<당신들은 수호자 없이………… 살겠다는 겁니까? 그게 나가의 삶입니까?>
<이긴 다음에 돌려보내 주시면 됩니다. 당신은 이길 테지요?>
인실롭은 차가운 격노 속에서 닐렀다.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끼워맞추시는군요. 여신의 적 앞에서 전투를 포기하고 물러난 당신들을 다른 나가들이 용서할 것 같습니까? 눈 앞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동족을 적으로 돌릴 생각입니까?>
이번에는 칸비야 의장이 화를 낼 차례였다. 그녀는 인실롭을 똑바로 노려보며 닐렀다.
<인실롭 군단장! 아무래도 당신은 불신자들과 너무 많이 싸웠나 봅니다. 마치 불신자 같은 논리를 사용하는군요. 도와주지 않으면 적이라는 니름입니까? 우리는 전쟁터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우리의 수호자를 당신들에게 내어주면서 우리는 무방비를 선택했습니다. 그 때문에 불신자에게 짓밟히게 될 가능성을 감수하면서! 만약, 물론 나도 그렇게 되길 바라지만, 당신이 하텐그라쥬에서 불신자들을 물리친다면 그 후에 전쟁터를 제공하지 않았던 나에게 원망을 니를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곳을 당신들의 살육장으로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를 살육할 겁니까?>
인실롭은 잠시 주춤했다.
<이 전쟁에 중립은 없습니다. 고소리 의장님.>
<아직은 없었지요. 하지만 앞으로도 없을지는 두고봐야겠습니다. 나는 궁금하군요.>
인실롭은 자신도 그것이 궁금하다고 생각했다. 전향적으로 고려하게 되었다고 표현할 사람도 있을 테고 꼬리를 말았다고 표현할 사람도 있을 테지만, 어쨌든 인실롭은 갈로텍 대장군도 그것에 대해 궁금해할지 알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칸비야 의장으로서는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인실롭 군단장이 칸비야 의장의 뜻을 전달했을 때 갈로텍은 악타그라쥬의 폐허를 벗어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시구리아트 산맥에서부터 계속된 무리한 강행군의 여파로 대나무 군단의 남진 속도는 꽤 떨어져 있었다.
페로그라쥬와 악타그라쥬의 끔찍한 잔존물들에 대한 기억이 아직 선명한 상황에서, 갈로텍은 두 도시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고 칸비야 의장의 뜻에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전투를 거절하는 것에 대한 분노는 별개였다.
갈로텍은 자신의 선택 폭이 그토록 제한적이라는 사실에 실망하며 주퀘도를 불렀다.
주퀘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갈로텍은 누군가 다른 영을 앞에 내세워놓고 찾으러 내려갈까 고민했다. 하지만 저 아래에서 도사리고 있을 카린돌을 떠올린 갈로텍은 쉽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는 주퀘도를 거듭 불렀다.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된 집요한 소환에 결국 주퀘도가 대답했다.
“뭐지?”
“갈로텍입니다. 나가 남자지요. 그리고 대장군입니다.”
“용건이 뭐지?”
“의논 좀 하고 싶습니다만, 주퀘도. 계속 그렇게 딱딱하게 말할 거라면 먼저 그 말투부터 어떻게 해야겠군요.”
“귀찮으면 무례하게 쫓아내고 필요하면 예의를 지키라고 말하는군. 개자식.”
“주퀘도!”
“고함지르지 마라, 꼬마야. 아파지는 것은 네 귀니까.”
“예의를 말하고 싶다면, 좋습니다! 누가 목숨을 바쳐 무가치한 관문 요새를 공격했습니까?”
“무가치하다고? 대수호자를 구출하기 위한 것 아니었냐?”
“이유가 어쨌건 당신의 구원을 풀어준 것은 우리잖습니까? 당신은 그 사실에 대해 감사의 말 한 마디 말한 적이 없습니다.”
주퀘도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감사할 수가 없다. 그건 잘못된 일이었으니까. 유료 도로당을 공격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당신이 기뻐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줬다면 이렇게 화나지는 않을 겁니다. 도대체 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겁니까? 나가들의 도움을 받아 동족을 죽였기 때문입니까?”
“갈로텍. 군령자의 동족은 없다. 다른 군령자조차도 군령자의 동족은 아니야. 그리고 동족이 어쩌니 하는 감상적인 말과 나를 결부시키는 것도 곤란해.”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 겁니까? 200년 전에는 모든 것을 바쳐 그러고 싶어했으면서, 마침내 그것에 성공한 지금에 와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니, 어린아이 투정입니까?”
주퀘도는 또다시 침묵했다. 갈로텍은 들끓는 분노를 억누르려 애쓰며 기다렸다. 그의 입이 갑자기 움직여지며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는 스스로를 망쳐버렸다. 갈로텍.”
“아니요. 당신은 누구도 넘보기 힘든 집념으로 자신을 완성했습니다. 주퀘도. 당신은 이제 시구리아트의 정복자입니다.”
“그건 완성이 아냐. 빌어먹을 가필이지.”
“가필이라고요?”
“염병할 붓질은 한 번에 끝내야 한다. 일필휘지야, 갈로텍. 나는 괜찮은 삶을 살았다. 주퀘도 사르마크의 삶은 찬란했다. 그래. 나는 죽음의 거장이었다. 내 최고의 순간이 언제인지 아나? 그것은 내 존재의 모든 시간이었다. 나는 항상 최고였다. 내 마지막 실패는, 그것이 내 실패이기에 이미 소중한 것, 최고의 것이었다. 그것은 완전무결함에 난 흠집 같은 것이 아니었어. 그것까지도 포함해서 완전무결한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소중한 실패를 망쳐버렸다. 스스로 구축한 작품을 망쳐버렸지.”
“주퀘도.”
“갈로텍, 갈로텍.”
주퀘도는 회한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갈로텍은 자신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동요했다.
“고집이라면 너도 나만큼 부릴 줄 아는 녀석이지. 마음껏 고집을 부려라. 집념을 발휘해라. 도덕을 요구하는 나약한 것들의 천박한 투정 따위는 무시해. 그것들은 도구인 도덕을 삶의 목적으로 만들어버려. 그리고 목적인 삶을 도덕의 도구로 바꾸지. 그런 것들은 무시해. 생사를 무시하고 누이를 괴물로 만들었다고 힐난하는 것들은 아가리닥치라고 말해 줘. 신을 감히 감금했다고 파랗게 질린 것들의 얼굴에 오줌을 갈겨줘. 죽음의 거장은 그런 너를 축복하겠다. 하지만 제발 죽을 때까지만 그렇게 해라. 이제 나는 언젠가 네가 천명했던 소망을 간절함 속에서 기다리겠다. 전령하지 말고 죽어라. 부탁이다. 이후로 내가 스스로의 말을 번복하더라도, 너는 그 말을 따르지 마라. 지금의 내 말을 기억해.”
그리고 주퀘도는 침묵했다. 갈로텍은 긴 시간 동안 주퀘도의 말을 생각했다. 그런 고요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주퀘도는 완전히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이제, 용건을 말해라.”
갈로텍은 시모그라쥬에서 일어난 일을 띄엄띄엄 말했다. 그 말투에는 해석이 거의 동반되지 않았다. 갈로텍은 주퀘도의 해석을 듣고 싶었다. 주퀘도는 대답했다.
“중립 선언이군. 마음대로 하라고 해.”
“그래도 되겠습니까?”
“이 전쟁은 침묵의 도시에서 시작되었고, 당연히 그곳에서 끝나야 한다. 그리고 대수호자를 키보렌의 왕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비아스 마케로우 및 그 여자의 선동에 부화뇌동하고 있는 가족들을 저지하기 위해서도 너는 하텐그라쥬로 가야 한다. 그리고 군대도 두 가지는 동시에 하텐그라쥬에 도착해야 하지. 인실롭 군단장에게 전해라. 당장 하텐그라쥬로 이동하라고.”
“시모그라쥬가 괜찮을까요?”
“그건 시모그라쥬가 선택한 길이다. 네가 그것까지 신경쓸 필요는 없어. 하지만 아마도 북부군은 시모그라쥬를 우회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