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6장 – 춤추는 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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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6장 – 춤추는 자 (5)


륜이 예상한 것처럼 하텐그라쥬에 진을 치고 있던 일흔한 명의 수호 장군들은 꽤 힘든 밤을 보내야 했다. 기체인 수증기와 액체인 물 중에서 다루기 어려운 것은 당연히 후자다. 수십 평방킬로미터의 범위에서 물을 끌어온 수호 장군들은 격심한 피로를 느꼈다. 흥분과 분노, 그리고 공포의 감정들은 그런 수호 장군들을 더욱 괴롭혔다. 인실롭은 눈이 가물거리는 것을 느끼며 하텐그라쥬 평의회에서 보내온 사절의 니름을 들었다.

그러나 사절은 몇 마디의 말로 인실롭의 눈이 번쩍 뜨여지게 만들었다.

<여신이 하텐그라쥬에 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사절은, 그리고 사절을 보낸 의원들은 진실이 가장 완벽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사절은 가감없는 진실을 들려주었다. 인실롭은 비늘이 서는 기분을 맛보았다. 불행하게도 북부군의 공격에 맞서느라 오랜 시간 동안 긴장 상태에 빠져 있었던 인실롭은 그런 상황에 대처할 심적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그는 여신의 소재지가 탄로났다는 사실에 대한 충격을 감추는 것조차 힘들었다. 사절은 차분하게 닐렀다. 그 사실에 대한 귀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터무니없는 니름입니다. 여신은 불신자들에 의해……>

<그만. 서로에게 지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대화는 환영할 수 없습니다. 여신께서는 하텐그라쥬의 심장탑에 감금되어 계시는 겁니다. 그렇잖습니까?>

인실롭은 기능 저하를 호소하는 두뇌를 채근하며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제가 그것을 인정하는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당신들이 우리에게 전쟁의 이유로 제시했던 것을 그대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여신은 해방되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 니름입니까?>

<당장은 곤란하겠지요. 북부군이 저 앞에 와 있으니.〉

<그렇다면…… 저들을 물리친 다음에?>

<저들을 물리친 다음에도 그 힘이 필요합니까? 우리를 공격하는 데 쓸 겁니까?>

<그 힘이 없으면 한계선을 넘을 수 없습니다.>

<왜 넘어가야 합니까? 한계선 위쪽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나마 있는 것은 거의 다 가졌습니다. 우리가 한계선을 넘어가야 하는 이유를 닐러보시죠.>

인실롭은 힘겹게 이유를 떠올렸다.

<제2의 북부군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불신자들은 수백 년 동안 왕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어디선가 적당한 인물을 찾아내어 가면을 씌운 다음 대호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대호왕의 기치 아래에 우리와 싸울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그들은 위험한 족속들입니다.〉

<수백 년 동안 자신의 위험성을 드러내어 보이지 않다가 우리가 한계선을 넘어가자 그렇게 했지요. 그렇잖습니까? 그건 우리가 한계선을 넘어갔기에 생긴 일이잖습니까? 왜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죠?>

인실롭은 더 할 니름이 없었다. 그를 끝까지 밀어붙인 사절은 그쯤에서 인실롭에게 숨을 돌릴 여유를 부여하기로 했다.

<일단 북부군을 물리친 다음에 그 힘의 소유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하지만 나라면 행동을 조심하겠습니다. 비아스 마케로우가 우리에게 준 선물은 하나가 아닙니다.〉

<그러면 또 다른 것이 있다는 니름이십니까?>

사절은 빙그레 웃었다.

<우리는 심장 파괴를 남용하지 않은 당신들의 자제력을 높이 삽니다.>

결정타였다. 인실롭은 항복을 외치고 싶어졌다. 인실롭의 얼굴에 떠오른 좌절을 본 사절은, 그 자리에 세리스마가 있었다면 환호를 보냈을 제안을 꺼냈다.

<당신들의 비밀을 존중하는 뜻에서 우리는 그것을 하텐그라쥬 평의회 최고의 기밀로 남겨둘 의향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이 전투 후에 여신의 힘을 포기한다면 말입니다. 갈로텍 대장군에게 전하십시오.>

사절은 ‘그러지 않으면’ 이라는 니름을 꺼내지 않았다. 심장 파괴를 비밀로 지켜야 할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자들에게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인실롭은 이미 사절의 모든 조건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케이건. 뭘 하고 있는 거지?”

케이건은 아래를 바라보았다. 사모 페이가 마루나래와 함께 나무 아래에 서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케이건은 거대한 나무 위의 가지들 사이에 드러누워 있었다. 수령이 얼마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 거대한 나무 위쪽에는 웬만한 집 두어 채라도 얹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이 있었다. 케이건은 사모에게 말했다.

“올라오시겠습니까, 폐하? 제가 내려갈까요?”

“올라가지.”

사모가 나무 위로 오르는 방법은 독특했다. 사모는 마루나래의 등에 올랐고 그러자 마루나래가 훌쩍 뛰어 나무 위에 올랐다. 육중한 무게에 나무는 잠깐 신음을 토했지만 나무는 마루나래의 무게를 어렵지 않게 견뎌내었다. 마루나래는 꼬리를 나뭇가지에 감고는 몸을 길게 눕혔다. 사모는 나뭇가지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대호의 등에서 미끄러졌다. 가지를 디딘 사모는 마루나래의 목에 몸을 기대며 앉았다.

“마루나래가 올라오니 이 위도 비좁군. 뭘 하고 있었지?”

“별을 보고 있었습니다. 별 모양이 낯설군요. 제게는 드문 일입니다.”

“드물다니?”

케이건은 잠깐 침묵한 채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표현할지 생각했다.

“저는 북부의 땅 대부분을 돌아다녔고 북부의 모든 밤하늘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밤하늘이 낯설게 보이는 것은 꽤 오래간만에 경험하는 일입니다.”

사모는 옆으로 손을 뻗어 마루나래의 거대한 턱 아래에 팔을 파묻듯이 한 채 그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남쪽은 처음이겠군.”

“이렇게 남쪽으로 멀리 온 것은 처음입니다. 공작님을 데리러 왔을 때도 이렇게 멀리까지 오지는 않았습니다.”

사모는 침묵한 채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곧 륜을 다시 만날 거야.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 데.”

“말씀하십시오.”

“언젠가 륜에게 해줬던 일을 다시 해줄 수 있을까.”

“공작님을 한계선 북부로 데려가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요스비에게 해줬던 일을 해줘.”

케이건은 말 없이 사모를 바라보았다. 사모는 고개를 약간 들어올려 케이건의 이마 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친구가 되어주라고.”

“왜 제게 부탁하시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너보다 더 적격인 자가 없으니까.”

“저는 나가를 잡아먹습니다.”

“알아.”

“카라보라에는 제 오두막이 있습니다. 조리장이 꽤 큰 편입니다. 다루는 재료가 토끼 같은 것보다는 훨씬 큰 것이다 보니 그렇습니다. 커다란 세 개의 무쇠솥이 있고, 가끔은 그 셋을 한꺼번에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그 속에 폐하의 동족을 집어넣고 삶습니다. 나가를 삶을 때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아십니까? 나가는 육식 동물입니다. 냄새가 고약합니다.”

사모는 가까스로 자제력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비늘이 부딪치는 것까지 억누를 수는 없었다. 그녀는 힘들게 말했다.

“요스비도 그걸 알고 있었나?”

케이건은 침묵했다. 사모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알고 있었군.”

“예. 그래서 자신의 왼팔을 제게 잘라먹였습니다.”

“왜 그렇게 했지?”

“제가 죽어가고 있었으니까요.”

“죽어간다? 죽어가는데 왜 왼팔을 먹여야 하지?”

소드락을 복용하는 나가의 체내에는 소드락이 축적된다. 그리고 그런 나가를 먹는 케이건의 몸에는 더 많은 소드락이 축적된다. 그 축적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유사 이래 단 한 명에게만 일어난 신비한 일이 발생했다. 육체의 영원한 재활성화. 그의 몸은 노화를 거부했다. 식물과 나가에게만 작용하는 소드락이 어떻게 해서 인간에게 작용하는가 하는 질문은, 이 경우 적절한 질문이 아니다. 시간을 뛰어넘어 함께 하고팠던 사람들에게 나가고기를 먹여보는 실험 끝에 케이건은 그것이 오직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 질문은 ‘왜 케이건에게 작용하는가?” 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케이건은 답을 알 수 없었다. 케이건은 그것이 작용한다는 것, 그리고 나가를 먹는 짓을 그만두면 작용이 멈춘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요스비를 알게 된 이후 케이건은 짧은 기간에 걸쳐 그 습관을 포기했던 적이 있다. 그때 케이건은 자신의 몸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확인했다. 사태를 파악한 요스비는 소드락을 잔뜩 먹은 다음 왼팔을 잘라 거절하는 케이건에게 강제로 먹였다. 요스비의 이유는 단순명쾌했다. ‘너는 말이야, 살아 있는 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고.’ 케이건은 그것을 먹었다. 그럼으로써 천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처음 맞이했던 죽음의 위기를 벗어났다.

케이건은 말할 수 없었다. 사모는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렇군. 인간들은 빨리 굶어죽지. 굶어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군.”

“비슷합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우리를 미워하는 거지? 설명해 주겠어?”

“제 소망을 짓밟고 제게 가장 소중했던 것들을 모조리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바라기의 칼자루는 하나야.”

케이건은 사모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신의 목 뒤를 잠시 더듬었다. 바라기의 칼자루가 만져졌다. 사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를 겨냥하는 두 개의 칼날도,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서로의 피를 탐내는 칼날도 하나로 합쳐질 수 있지 않을까.”

“재미있는 해석이군요. 하지만 영웅왕이 이 검을 하나로 합친 것은 증오의 종말과 새로운 화합의 시작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가에게 팔 하나가 잘렸기 때문입니다. 저라면 이 검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증오의 표상으로 해석하겠습니다. 영웅왕은 팔이 없어져도 증오의 절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남은 하나의 팔로도 그의 모든 증오를 감당했습니다.”

“너와 요스비는 우정이라는 하나의 칼자루 위에 모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그는 나가가 아니었습니다.”

케이건의 단정적인 말에 사모는 입을 다물었다. 그 말투는 기묘했다. 언성을 높인 것도 아니고 비꼬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사실을 알려주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 내용은 은유나 비유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사모의 혼란스러움을 느낀 것처럼 마루나래가 귀를 쫑긋거리며 옆을 돌아보았지만 사모는 그 볼을 밀쳐내며 케이건을 주시했다. 케이건은 여전히 가르치는 듯한 그 묘한 어투로 말했다.

“그는 아젤키버였습니다. 가장 능숙한 사냥꾼은 사냥감의 모습을 훔칩니다. 아젤키버는 사냥감의 모습을 훔친 겁니다.”

“아젤키버가 누구지?”

“예? 그토록 유명한 키탈저 사냥꾼을 모르신다는 말입니까? 모든 자들이 그의 이름을………….”

자신이 과거와 현재를 뒤섞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케이건은 느닷없이 입을 다물었다. 혼란에 빠진 채 케이건은 사모를 바라보았고 가까스로 자신의 앞에 있는 자가 속한 시대를 떠올렸다. 그것은 ‘현재’였고, 그래서 케이건은 현재로 수렴했다. 사모가 말했다.

‘그 사람, 키탈저 사냥꾼이었나? 하지만 요스비는 요스비야. 아젤키버가 아니야.”

같은 시대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알고 있는 하나의 사람. 통시적인 시점은 자신의 시대에 매인 시점과 공유되기 어렵다. 케이건은 자신의 해묵은 문젯거리를 재발견했고, 그것을 뭉개버렸다.

“제게는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그 아젤키버라는 이름이 네 애정을 받을 수 있는 증거라면, 륜에게서 그를 발견해 줄 수는 없어?”

케이건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명령하십시오. 폐하. 그것이 훨씬 간단합니다.”

“명령하지는 않겠어. 명령은 너무도 간단하게 사람을 분리시켜. 내가 명령한다면, 너는 자신을 나가를 증오하는 너와 내 명령을 따르는 너로 나누겠지. 그리고 너는 낮에는 나가를 보호하고 밤에는 나가를 잡아먹겠지. 그러면서 내 명령을 떠올릴 거야. 그렇게 할 수는 없어. 륜은 용인이 되었어. 그 애는 물처럼 예리해졌어. 나가를 증오하는 북부군과 보낸 세월이 그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나는 곁에서 목격했어. 아마도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더 나가를 증오하는 사람일 것이 뻔한 너에게 그 애를 부탁하면서, 나는 네 증오를 남겨두고 싶지 않아. 케이건. 나는 네 증오를 사겠어.”

“사시겠다고요?”

“그래. 뭘 주면 될까? 내가 뭘 지불하면 되지?”

“구매는 불가능합니다.”

“나가가 불신자들의 왕이 되는 세상이야. 쉽게 단정하지 마.”

케이건은 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제 증오를 사시려면 폐하께서는 먼저 제 증오를 아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제 증오를 알 수 없습니다.”

“네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니?”

“질문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폐하께서는 제 대답을 받아들이지 않으실 겁니다. 그러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사과로도, 어떤 보상으로도 그 증오는 살 수 없는 거야?”

“단 한 사람은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사모는 무릎을 세워 그 위에 팔을 얹었다. 케이건이 말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거의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케이건 또한 사모가 짐작한다는 것을 알면서 말했다.

“요스비는 제 증오를 거의 다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제 곁을 떠난 후 저는 다시 증오가 저를 붙잡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스비가 나가들에 의해 심장 파괴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저 자신도 제 증오의 크기를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가를 증오합니다. 제가 지금 말한 문장의 주어는 ‘증오’입니다. 제가 없어져도 제 증오는 남을 겁니다.”

사모는 팔을 쓸어만졌다. 곤두선 비늘들이 그녀의 손바닥에 쓸리며 희미한 소리를 냈다.

“그렇게까지 너 자신에게 가혹할 필요가 있는 거야? 증오하기 위해 사는 것은 슬퍼.”

말을 마친 사모는 깜짝 놀랐다. 케이건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은 경악과 분노, 그리고 희미한 공포에 물들어 있었다. 사모가 주춤거리는 것을 본 케이건은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처럼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평상시처럼 평온했다.

“그건 언젠가 제가 제 누이에게 했던 말과 똑같군요.”

“누이가 있어?”

“있었습니다.”

“아, 미안해.”

“괜찮습니다. 제 누이의 죽음은 슬픈 것이 아닙니다.”

사모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케이건의 누이가 죽었다면 그녀는 젊은 나이에 죽었을 것이다. 사모는 요절이 슬프지 않을 까닭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녀에겐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네 누이가 누군가를 증오했던 모양이군. 그래서 너는 증오하기 위해 사는 것은 슬프다고 말해 줬고. 그런데 너는 왜 지금 그렇게 사는 거지?”

“그때 저는 나가에 대해 몰랐습니다.”

사모는 거의 모멸감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그녀의 분노는 마루나래에게도 전해졌고 마루나래는 큼직한 머리를 들어올려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렇게 케이건을 쏘아보던 사모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 두 번째 부탁은 포기하겠어. 하지만 첫 번째 부탁은 들어줄 수 있겠지?”

“륜을 한계선 너머로 데려가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이만 내려가겠어.”

사모는 마루나래의 등에 엎드려 그 털을 움켜잡았다. 마루나래는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둔하고 낮은 소리가 울려퍼지며 마루나래는 부드럽게 착지했다. 마루나래와 사모가 저편으로 걸어가는 것을 내려다보던 케이건은 다시 나무 위에 드러누웠다. 이국적인 성좌가 떨어뜨리는 빛을 받으며 케이건은 자신을 과거의 시간 속에 방황하게끔 했다.

거대하고 무거운 생명체가 걸어오는 발소리를 들은 것은 조금 후였다. 케이건은 머리를 돌려 나무 아래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마루나래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 위에는 사모 페이가 앉아 있었다. 마루나래를 멈추게 한 사모는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케이건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사모가 말했다.

“케이건! 나는 네가 꼭 두 번째 요스비를 만나기를 기원하겠어!”

사모는 케이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마루나래를 돌아서게 한 다음 다시 걸어갔다. 케이건은 그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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