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6장 – 춤추는 자 (9)
북부군 병사들은 바쁜 일이 있는 척하며 걸어가면서, 혹은 아예 뻔뻔하게 나무들 사이에 서서 공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단한 풍경을 보지는 못했다. 공터 주위에는 스물두 명의 금군이 서 있었고 병사들이 보고 싶었던 것은 그 두억시니들의 안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사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계속 시선의 각도를 바꿨다. 그들 중에는 베미온 굴도하도 포함되어 있었다. 베미온은 계속 공터로 나가고 싶어했지만 키타타 자보로가 그를 계속 달래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베미온이 다가가고 싶어하는 곳, 두억시니들의 안쪽에는 모두 아홉의 존재들이 앉아 있었다. 시우쇠, 아기, 페이 남매, 수탐자들, 그리고 규리하 사촌형제들이었다. 아기를 제외한 다른 모든 자들의 시선은 모두 케이건의 배낭에 집중되어 있었다. 비형에게 안겨 있는 아기는 어디에도 시선을 맞추지 않았지만 케이건은 그녀가 바라보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배낭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접시를 꺼냈다.
접시를 본 티나한은 화가 치미는 것을 느끼며 몸을 부풀렸다. 케이건은 풀밭에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여신께서 이곳으로 오자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아기의 몸이 다 보니 누군가가 저 분을 이곳까지 데려오기는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저희들은 이 접시에 대해 질문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이제 두 분의 화신을 찾아내었습니다만, 세 번째 화신을 찾기 위해서는 이 접시가 깨져야 합니다. 그런데 깨지지가 않습니다.”
케이건의 말을 듣던 시우쇠는 턱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안 깨진다고?”
“예. 온갖 방법으로 깨어보려 애썼습니다만 깨지지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몰라.”
케이건은 눈을 크게 뜬 채 시우쇠를 바라보았다. 다른 자들도 경악한 얼굴로 시우쇠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우쇠는 한가로운 태도로 반복했다.
“모른다고. 하지만 뭐 상관없겠지.”
“상관없다니오. 요스비는 셋만이 하나를 상대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너희들 도착하기를 기다리다 지쳐버린 라수가 지금 가진 것만으로 발자국 없는 여신을 구출하기로 결정한 지 오래니까.”
케이건은 라수를 돌아보았다. 라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예. 저는 더 견디기 어려웠고 그래서 수탐자들을 기다리는 대신 이곳까지 진격해 왔습니다. 행운이 겹쳤는지 그렇지 않으면 아직 불운이 찾아오지 않은 것에 불과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저희들은 이곳 하텐그라쥬 근방까지 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저곳에는 일흔한 명의 수호 장군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상대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세 번째 화신이 얼마나 가까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혹 북부군에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이왕이면 세 번째 화신을 찾아내면 좋겠군요.”
시우쇠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라수를 바라보았다.
“목표가 그 자들은 아니잖아.”
“예?”
“북부군의 목표는 수호 장군들을 다 때려잡는 것이 아니잖아. 발자국 없는 여신을 구출하는 것 아냐?”
“어, 물론 그렇습니다만 그러려면 하텐그라쥬를 점령해야 합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아기에게 물어봐.”
시우쇠도 아기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라수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비형의 무릎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라수가 질문을 꺼내기 전에 케이건이 약한 탄성을 질렀다.
“그렇군요. 여신께서는………… 그런 것입니까?”
케이건의 질문에 시우쇠는 어깨를 으쓱였다. 케이건은 비형의 무릎으로 얼굴을 돌렸다. 시우쇠의 말을 듣지 못하는 아기는 잠자코 케이건을 마주보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두 신의 서로에 대한 기이한 불가지성에 대해 또다시 놀라움을 느끼며 케이건은 말했다.
“여신님. 시우쇠 님은 왜 접시가 깨지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분은 저희들의 목표가 나가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발자국 없는 여신을 구출하는 것에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그 방법에 대해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최후의 대장간에서 이곳 하텐그라쥬까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이동해 온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같은 일이 이곳에서 심장탑까지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맞아. 그렇게 할 수 있어.”
이번에는 비형과 티나한이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들을 읽은 륜 또한 상황을 이해했다. 괄하이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뭔가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군. 상상도 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케이건은 대답했다.
“우리 목표는 결국 심장탑 안의 어딘가에 감금되어 있는 발자국 없는 여신의 신체를 해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누군가가 심장탑으로 들어가야 하지요. 그런데 여신께서 함께 계시면 우리는 무지무지한 속도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 속도는 너무 빨라서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볼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그냥 심장탑으로 다가가서 여신을 구출하면 됩니다. 나가들은 우리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라수가 비명 같은 환호를 내질렀다. 괄하이드 또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기와 시우쇠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아기에게 질문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저기 있는 자들과는 안 싸워도 되는 겁니까?”
“그럴 필요 없어. 필요한 인원은 얼마 안 돼. 일단 나와 시우쇠가 가야 해. 그리고 나를 업을 자가 필요하겠군. 나와 시우쇠의 의사 소통을 도와줄 사람도 있어야겠고. 역시 수탐자 일행이 좋겠어. 그들이 동의해 준다면, 나와 시우쇠, 그리고 세 명의 수탐자들이 심장탑으로 돌진해서 여신을 구출하겠어. 그러면 끝이야.”
괄하이드는 이런 행운에 대해 예감한 적조차 없었다.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군요. 그렇다면…….”
괄하이드는 말을 끊었다. 그리고 불안감을 느끼며 라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괄하이드는 자신의 불안이 적중했음을 알게 되었다. 조금 전에 그가 들었던 것은 환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끔찍한 절규였다.
라수는 부들부들 떨며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기는 조금 전 키보렌 침입이 불필요한 행동이었다고 가르쳐준 것이다. 만약 그 사실을 보다 빨리 알았더라면 라수는 그저 두 번째 화신의 도착을 기다렸다가 수탐자들과 함께 키보렌으로 파견했을 것이다. 무수한 자들을 사지로 이끌고 들어올 필요도, 그리고 페로그라쥬와 악타그라쥬를 파괴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기다리기만 해도 되었을 것을.
륜은 라수가 느끼는 모든 좌절감과 자기 혐오를 완벽하게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른 자들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들 라수의 비참한 심정을 느꼈다. 라수는 입술을 떨며 말했다.
“저는 제왕병자들과 같은 짓을 저질렀군요.”
“라수.”
괄하이드의 조심스러운 말은 라수의 고개를 들어올리지 못했다. 라수는 여전히 고개를 떨군 채 말했다.
“왕의 귀환을 기다릴 수 없어서 스스로 왕이 되어버린 그 얼간이들의 짓을, 바로 제가 저지른 것이군요. 여신을 구출할 자들의 도착을 기다리면 되었을 것을. 스스로 여신의 구출자가 되어버리려 결심하다니. 이 엄청난 오만은 결국 끔찍한 피를 부른 헛소동을 일으켰군요.”
여신이 말했다.
“라수. 그만둬라.”
라수는 고개를 들어 아기를 바라보았다. 아기는 그에게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말했다.
“영웅왕은 결국 망해 버릴 나라를 세운 거냐? 극연왕은 결국 사토 속에 묻혀버릴 길을 건설한 거냐? 너는 세상을 비웃으며 입매가 매서운 학자로 살았다. 그것은 세상 속으로 나가기 두려웠던 네가 선택한 타협안이고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네 방식이니 누가 너를 탓하겠느냐. 결국 끝까지 그 타협안을 지킬 수 없어 세상에 나왔지만 얻는 건 실패와 좌절뿐이니 실망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몸에 기름칠하고 죽어버리려고까지 했지. 그만둬라. 실패도 네 실패고 좌절도 네 좌절이라는 것을 인정해라.”
“그 때문에 너무 많은 자들이 죽었습니다.”
“그건 그 자들의 것이다.”
“하지만 그 자들은 저를 믿었습니다!”
“그 희망은 그들의 것이지. 그 희망을 배신했다면 모르겠지만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수행했다. 그것이 결국 헛소동이라 하더라도 부족한 정보에서 비롯된 헛소동인데 누가 너를 탓하겠느냐?”
“페로그라쥬와 악타그라쥬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은 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시우쇠가 라수의 질문에 대답했다.
“흥! 죽을 필요가 있어서 죽는 사람도 있느냐? 삶을 인정한다는 것은 삶의 기쁨이니 행복이니 하는 것들만 취사 선택하여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다. 급작스러운 사고와 황당한 죽음도 모두 인정한다는 것이다. 윷가락 네 개는 한꺼번에 던져져야 한다. 그 중에서 배를 보이는 것, 혹은 등을 보이는 것만을 인정하겠다는 것은 윷놀이를 할 줄 모르는 자의 말이다. 페로그라쥬 사람들과 악타그라쥬 사람들이 분노한다면, 그 놈들은 놀 줄 모르는 자들이다. 그런 얼간이들에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라수는 시우쇠를 돌아보았다. 그의 두 눈이 갑작스러운 적개심으로 불탔다.
“당신은 알고 있었지요?”
“뭘 말이냐?”
“제가 여신의 도착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공연히 북부군을 이끌고 죽음의 길로 들어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당신은 잔인하게도 나를…………”
시우쇠는 노호했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그러면 내가 모든 선택의 기로에 선 사람들 앞에 나타나서 이 길로 가라, 혹은 저 길로 가라고 가르쳐줘야 된다는 거냐? 나는 그러지 않아! 너 정말 끝까지 살 줄 모르는 놈처럼 굴 테냐!”
라수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의혹과 분노로 가득했다. 비형과 티나한도 라수의 심정에 어느 정도 동의했기에 침중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비형의 무릎에 있던 아기가 나직하게 말했다.
“라수. 시우쇠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성격이 있으니 좋은 말을 하지 않았을 수 있겠지. 그러니 네가 이미 들었던 말일 수도 있는 말을 해주겠다. 시우쇠는 내가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었다. 너희들도 이제 알게 되었듯이 우리는 서로를 느낄 수 없으니까. 시우쇠는 너에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좋은 방법이 있으니 영원히 기다리라고 말할 수는 없었겠지. 그건 죽으면 평안을 얻을 테니 빨리 죽으라고 하는 말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렇게 말하는 대신 시우쇠는 네가 네 방식으로 살도록 내버려뒀다. 신에게 살도록 내버려뒀다고 화내지 마라.”
아기의 말은 라수를 진정시켰다. 분노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상태에서 라수는 거칠게 말했다.
“그러면 빨리 이 희극을 끝내기를 부탁하는 것은 상관없겠습니까? 최소한, 이제 이 짓이 희극이 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으니까요.”
“그래. 알겠다. 수탐자들의 대답을 듣고 싶구나. 케이건. 나와 함께 가겠느냐?”
케이건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형 또한 찬성을 보냈고 티나한은 자신의 철창을 들어보였다. 시우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자!”
“안 하십니까?”
“했다. 가자.”
수탐자들은 아기를 쳐다보았다. 아기는 미묘한 미소를 지은 채 케이건을 바라보며 말했다.
“끝났으니까 일어나라. 다음에 주위를 살펴볼 수 있게 되면 그곳은 심장탑일 거다.”
수탐자들은 약간 어이 없는 기분을 느끼며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들의 모습이 언덕 위에서 사라졌다.
사모 페이와 하이드 규리하, 그리고 라수 규리하는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이 륜에게 돌아갔을 때 륜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놀랍군요. 수탐자들의 물은…… 도무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입니다. 그들은 벌써 나가 진지 근처에 도달했습니다. 지금 잠시 멈췄는데………… 아마도 뭔가 상의 중인 듯합니다.”
사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리도 서둘러야겠군. 대장군! 상장군! 회군 준비를 서두르시오.”
괄하이드와 라수는 황급히 떠났다. 잠시 두억시니들 가운데 서서 사모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땅을 바라보다가 륜에게 닐렀다.
<나는 케이건 드라카에게 너를 북부까지 안전하게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어. 내가 너와 함께 가게 될 줄은 몰랐어. 그런데 이렇게 되었구나. 정말 기쁘군. 그런데 니름이야>
<이곳에 남는 것 니름이십니까?>
사모는 미소지었다.
<북부군은 고향으로 돌아가야겠지. 하지만 우리들의 고향은 여기잖아. 나는 전쟁이 모두 끝난 후에 네가 이곳으로 돌아오길 바랐어.>
<저는 누님이 돌아오길 원했습니다.>
<그럼, 두 사람의 소망이 모두 이루어진 셈이군?>
<예…… 하지만 지금 당장은 북부군과 함께 돌아가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나가들에게는 자신이 일으킨 일을 돌이켜보고 자신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다 해도 저는 떠나야 합니다. 저는 페로그라쥬와 악타그라쥬의 파괴자입니다. 누님은 그 가면을 벗으시면 더 이상 대호왕이 아니지만, 제 경우에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저는 누님 곁에 있을 수 없습니다. 니른 대로 그들이 좀더 침착해질 수 있게 되면, 그때 돌아오겠습니다.>
사모는 거절했다.
<아니. 그렇다면 나도 가겠어.>
<누님은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 가면만 벗으면…….>
<싫어. 너를 북부로 보내고 이곳에 남아 있고 싶지는 않아. 함께 가자. 그리고 돌아올 때도 함께. 네 적출식, 쇼자인테쉬크톨, 그리고 전쟁. 그 모든 것들에서 우리는 항상 이별을 준비해야 했어. 이제 정말이지 이별을 준비하는 일은 싫어.>
<누님. 누님은 제가………….>
<응? 아, 그래. 나를 읽었군. 그래. 홀로 북부에 남아 있는 너는 나가들과 혈투를 벌였던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게 될 테지. 그러면 안 돼. 네 곁에는 나가가 한 명 있어야 해.〉
륜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문득 륜은 두억시니들 저편에서 다가오고 싶어하는 베미온 굴도하를 느꼈다. 지금까지 그를 보살피던 키타타 자보로도 회군 준비를 하느라 떠난 후였고 그래서 그는 홀로 있었다. 륜은 미소지으며 베미온에게 손짓했다. 달려오는 베미온을 보며 륜은 침착하게 닐렀다.
<혼자는 외롭지요.>
<그래.〉
<감사합니다. 누님.〉
<고맙다는 말은 필요없어.>
륜은 사모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베미온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베미온은 달려오지 않았다. 베미온은 공터 중간쯤에 선 채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륜은 의아해하며 하늘을 탐색했다. 그리고 곧 고개를 홱 돌려 두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륜의 행동에 놀란 사모 또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거대한 하늘치가 그들의 머리 위로 다가오고 있었다.
남매는 놀란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모든 하늘치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장 냉철한 관찰자조차 경악시킬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머리 위로 다가오는 하늘치의 모습은 경악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게 날아오고 있었다. 아니, 높은 하늘에서 서서히 경사를 그리며 낮게 내려오고 있었다. 하늘치가 지금의 움직임을 계속 유지할 경우 그것은 확히 그들의 머리 위에 내려서게 될 것이다. 사모는 언젠가 파름 평원에서 보았던 참상을 떠올리며 비늘을 세웠다. 그리고 륜은 사모의 기억을 느끼며 그 광경을 공유했다. 파름 평원의 생존자들인 스물두 명의 두억시니들은 혼란에 빠져 괴성을 내질렀다. 숲 저편에서는 북부군이 내지르는 것이 분명한 비명들도 들려왔다. 륜은 니름과 말로 동시에 외쳤다.
<아스화리탈!”
아스화리탈이 공터 저편의 숲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륜은 지체 없이 그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그때 사모가 그를 제지했다.
<잠깐. 륜. 내려올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륜은 다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치가 그리던 강하의 궤도가 완만해지고 있었다. 그 비늘 서는 크기 때문에 여전히 두려울 정도로 위압적이었지만 륜은 용인의 모든 감각을 통해 하늘치가 곧 그들의 상공 200미터 지점에서 지상과 수평을 그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륜은 그 움직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륜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베미온 굴도하가 그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륜은 그가 떨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베미온을 위한 미소였지만 륜은 자신의 공포도 가시는 것을 느꼈다. 륜은 한 번 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른 손을 뻗었다. 사모는 륜이 자신의 손을 쥐는 것을 느끼고는 그를 돌아보았다. 륜의 미소를 본 사모는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륜은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치는 이제 수평 궤도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것의 움직임이 완만해졌다. 그것은 정확하게 그들의 머리 위에서 멈췄다. 서로 손을 맞잡은 세 사람은 아직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두려움 속에서 하늘치를 응시했다.
그리고 세 사람은 갑자기 서로를 쳐다보았다. 사모가 먼저 닐렀다.
<너도 본 것이군?>
<누님도 보셨습니까?>
질문을 통해 서로의 관찰을 확인한 그들은, 그러나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심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 광경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늘치의 등에서부터 누군가가 걸어내려온다는 것은, 그것도 마치 그곳에 눈에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는 것처럼 터벅터벅 걸어 내려온다는 것은 도무지 상식적이지가 못했다. 아니, 터벅터벅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계단을 내려오는 가장 빠른 동작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높이가 거의 200미터였기에 그 동작은 꽤 오랫동안 계속되어야 했다. 갑자기 륜은 그들을 향해 걸어 내려오는 자가 눈에 익은 자임을 깨달았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사모 또한 그 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래서 남매는 동시에 같은 이름을 닐렀다.
<오레놀 대덕?>
오레놀 대덕의 움직임을 관찰한 두 사람은 그가 달리다시피 걸어 내려오는 그 가상의 계단이 그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숲에서 땅에 닿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고는 베미온과 함께 곧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나가 병사들을 바라보던 케이건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아기를 쳐다보았다. 그는 눈을 부릅뜬 채 말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비형과 티나한은 황급히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케이건이 병사들의 모습에서 어떤 의문의 소지를 발견했는지 알 수 없었기에 그것을 찾아보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두 화신과 수탐자들, 그리고 나늬는 언덕 위에 엎드린 채 나가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이 있는 언덕은 노출된 땅이었고 비형은 케이건의 지시를 따라 주위를 뜨거운 도깨비불로 감싸 그들의 모습 전부를 언덕 위에 있는 뜨거운 바위 정도로 보이게 했다. 근방의 지리에 익숙한 자가 알아볼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그들 모두가 엎드려 있었기 때문에 비형이 만들어낸 가짜 바위의 모습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리고 시우쇠가 일으킨 불과 수호 장군들이 끌어들인 홍수에 의해 지형이 꽤 바뀌어 있었기 때문에 언덕 위에 갑자기 드러난 바위는 주의 깊은 사람이 아니면 깨닫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티나한은 도깨비불의 뜨거움을 감수할 만한 것으로 여기며 눈을 부릅뜬 채 도깨비불 너머로 하텐그라쥬를 내려다보았다.
나가 군단의 모습은 분주했다. 그들은 시우쇠가 일으킨 불에 의해 타버린 나무들을 이용하여 목책과 방벽을 건설하고 있었다. 기병의 돌격을 저지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했다. 수비전을 계획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일견 합리적이다. 북부군은 장기전을 수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력이 ‘자연스럽게’ 일어나 정면으로 격돌하는 이런 전쟁에서 그런 노력은 쓸모없는 짓으로 보이기도 했다. 티나한과 비형은 케이건이 나가들의 그런 태도를 이상하게 여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케이건의 질문은 나가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어떻게 이곳에 온 겁니까?”
비형이 당황하여 말했다.
“케이건. 무슨 말이에요? 우리는 여신님의 능력으로 바람같이 이곳에 온 것 아닙니까?”
“나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을 말하는 거요. 아무래도 내가 길잡이 맞나 보군. 나는 어떻게 우리가 시우쇠 님에게 온 것이냐고 질문했소.”
비형은 어리둥절하여 티나한을 바라보았고 티나한은 그 시선을 어깨 너머로 돌려보냈다. 티나한의 등 뒤에 있었기 때문에 아기 또한 엎드린 모습을 하고 있어야 했다. 아기는 부리를 닫은 채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이 말했다.
“조금 전에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왔잖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케이건은 목소리를 조금도 낮추지 않았다. 그는 나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긴장한 티나한의 깃털이 부풀어오르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케이건은 그에게 주의 어린 눈빛을 준 다음 다시 아기에게 말했다.
“카시다 암각문 앞에서 저는 당신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시우쇠님을 찾아내려면 즈믄누리로 가야 한다고. 그때 당신은 시우쇠님이 땅을 딛고 있을 테니 즈믄누리로 가지 않아도 그 분을 찾아내실 수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했어.”
“그런데, 조금 전 당신은 시우쇠 님과 당신이 서로를 느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느낄 수 없는 상대를 어떻게 찾아낸다는 겁니까? 모순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카시다에서 하신 말씀이 거짓말이거나, 혹은 두 분이 서로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거짓말입니다. 전자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아기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 카시다에서 한 말은 거짓말이었어. 나는 시우쇠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티나한은 볏을 뻣뻣하게 세웠다. 비형은 당황하여 시우쇠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우쇠는 엎드린 모습 그대로 아래쪽만 바라볼 뿐 그들의 이야기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케이건은 다시 아기에게 질문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시우쇠님을 찾아올 수 있었던 겁니까?”
“나는 북부군을 찾아왔어. 북부군이 있는 곳에 시우쇠가 있을 테니.”
아기의 설명에 비형과 티나한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케이건은 의심 어린 표정으로 아기를 바라보았다. 신을 향하는 사람의 눈빛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눈빛이었다.
“여신님.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신 건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상관없는 문제 아니야? 시우쇠가 있는 곳이 곧 북부군이 있는 곳이니까.”
“불필요한 설명을 생략하신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케이건은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이해한 다른 수탐자들은 걱정스러운 낯빛을 떠올렸다. 케이건은 고개를 돌리며 낮게 말했다.
“여신이여.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 말씀드립니다. 지금부터 어쩌면 저는 당신을 경계하는 언동을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당신을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군요.”
“케이건!”
티나한이 분노한 어조로 속삭였다. 물론 말로 끝내는 것은 티나한에게 드문 경우였고 그는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러나 아기는 달래는 목소리로 말했다.
“티나한. 됐다. 진정하여라. 너희들의 길잡이를 믿어라.”
“여신님. 저는 제 길잡이를 믿습니다. 하지만 케이건의 말은 너무…….”
“괜찮다. 어쨌든 길잡이야. 뭔가 떠오르느냐? 북부군이 안전하게 퇴각할 시간을 벌려면 저들을 분주하게 만들어줘야 할 텐데.”
“저곳에 지진을 일으키실 수 있으십니까?”
아기는 케이건의 과격함에 미소를 지었다.
“글쎄. 이 주위의 땅은 매우 안정되어 있다. 저 고대의 도시는 그 역사 동안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지진의 여파는 북부군도 덮칠 텐데.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심장탑 또한 위험하다는 점이지. 심장탑에는 사모 페이의 심장도 보관되어 있어. 네 왕이 위험하지 않은가?”
“여신님의 능력으로 이동하면서 제가 저 자들의 목을 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해. 그런 이동 도중에는 저 자들이 너를 건드릴 수 없는 것처럼 너 또한 저 자들을 건드릴 수 없어. 그리고 네가 자꾸 무시하는 것 같은데, 비형을 좀 생각해 보지?”
비형의 얼굴을 슬쩍 본 케이건은 피비린내 풍기는 계획을 전부 포기했다. 보다 온건한 계획을 떠올린 케이건은 그것을 아기에게 말했다. 케이건의 상상력은 비형을 감탄하게 했고 티나한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아기는 케이건의 제안이 실현 가능함을 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아기는 단서를 달았다.
“그런데 그건 시우쇠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군. 시우쇠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무슨 뜻인지 알 거야. 그렇게 말해 줘.’
케이건은 자신이 세계 제일의 단거리 전령이 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손 닿는 거리에 있는 시우쇠에게 아기의 말을 전달해 주는 좀 우스꽝스러운 역할을 수행했다. 시우쇠는 이해했다.
“재미있는 생각이군. 시작 신호는 네가 해라. 나와 아기는 서로 이야기할 수 없으니까.”
케이건은 어색한 기분을 느끼며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시우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안 하십니까?”
“했다. 가자.”
수탐자들은 아기를 쳐다보았다. 아기는 미묘한 미소를 지은 채 케이건을 바라보며 말했다.
“끝났으니까 일어나라. 다음에 주위를 살펴볼 수 있게 되면 그곳은 심장탑일 거다.”
수탐자들은 약간 어이 없는 기분을 느끼며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들의 모습이 언덕 위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