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6장 – 춤추는 자 (14)
아기가 탐탁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과격한 짓은 시우쇠의 소행인가 보군.”
티나한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 있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지만 서 있는 사람들과 비 슷한 시야를 가질 수 있었던 티나한은 저 멀리 숲과 도시의 머리 부분들을 볼 수 있었다. 비형은 나늬의 등을 덮듯이 엎드린 채 몸을 떨고 있었고 케이건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시우쇠를 바라보았다.
”왜 이러신 겁니까?”
”냉동 장치를 부술 수는 없으니까! 너를 부술 걸 그랬나?”
”그러지 않아주셔서 고맙군요.”
”고마워할 것 없어! 그럴 수 없어서 안 그러는 것뿐이지, 나는 네녀석을 박살내고 싶으니까!”
시우쇠의 포효는 그대로 화염이 되어 그의 입가에서 출렁였다. 케이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티나한의 등 뒤에서 아기가 말 했다.
”마침내 셋이 모였다.”
케이건과 티나한, 그리고 비형은 아기를 돌아보았다. 아기가 다시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를 상대하기 위한 셋이 마침내 이 자리에 모였다. 이제 우리는 너를 일깨울 것이다.”
케이건은 어리둥절했다. 아기의 말대로 그들이 여신을 구출하 기 위해 온 것이 확실했지만, 셋은 아니었다. 이곳에 도달한 화 신은 둘 뿐이었다. 비형이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여신님. 말씀하신대로 발자국 없는 여신을 일깨워야겠지만, 셋은 아니잖습니까?”
”나는 발자국 없는 여신을 일깨우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수탐자들은 다시 당혹에 빠졌다. 그때 아기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하는 시우쇠가 고함을 내질렀다.
”셋이 다 모였어! 이제 하나를 상대하겠다!”
케이건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하나가 누군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물론 너지!”
비형과 티나한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앞으로 내뻗은 시우쇠의 손가락은 케이건을 겨냥하고 있었다.
사모가 륜의 품에서 빠져나갔다. 당황한 륜이 허공을 붙잡으려 애쓰는 동안 사모는 오레놀의 곁에 순식간에 다가섰다. 그녀는 오레놀의 어깨를 붙잡아서는 친절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를 돌려 세웠다.
”뭐가 시작되었다는 거야?”
오레놀은 멍하니 사모를 바라보았다. 대덕의 얼굴은 침착해 보 였지만 그것은 침착성이 아니었다. 사모는 대덕이 감정적 공황에 빠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다시 오레놀의 어깨를 흔들고나서 야 오레놀은 입을 열었다. 그의 말투는 마치 잠꼬대 같았다.
”셋이 하나를 일깨울 겁니다.”
”여신을 구출한다고?”
”오랫동안 갇혀 있던 신이 풀려날 겁니다.”
”그러니까 여신을 구출한다는 말이야?”
오레놀의 얼굴에 문득 조소 같은 것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 희미했던 조소는 오레놀에게 활력을 돌려주었다. 오레 놀은 훨씬 명확한 어투로 말했다.
”아니요. 어디에도 없는 신입니다.”
사모의 몸에서 비늘이 요란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 리는 낮았다.
”설명해 봐.”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경악을 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오레놀 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레놀은 차분하게 말했다.
”갇혀 있었던 것은 어디에도 없는 신입니다. 지금 저곳에 발자 국 없는 여신이 계십니다. 그리고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과 자신 을 죽이는 신도 계십니다. 세 분이 모인 거죠. 셋이 하나를 상대 합니다. 그 분들은 갇혀 있던 어디에도 없는 신을 해방할 겁니다. 그리고 변화를 재생산할 겁니다.”
사모는 변화를 재생산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라수가 말했다.
”스님. 어디에도 없는 신이 어디에 갇혀 있었다는 말씀입니까?”
오레놀은 천천히 라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입에 서 나온 말은 라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인간이 80년을 살면 장수한다고 말합니다. 100년을 살면 놀라 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120년을 살면 아낌없는 축복의 대상이 됩 니다. 하지만 천 년 이상을 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는 괴물 이 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라수는 불편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오레놀의 말을 가로막지 는 못했다. 오레놀의 태도는 확고부동했다. 오레놀이 말하고 싶 은 것을 전부 다 말할 것이며 방해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 임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괴물이 우리들 곁에 있습니다. 이토록 슬픈 괴물이 있을까요. 헤아리기도 어려운 그 옛날, 그는 품었던 모든 희망에 배신을 당하고 가졌던 모든 것을 뺏긴 끝에 복수만 아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적을 사냥하여 먹어치웁니다. 괴물에게 어울리는 일이겠지요.”
오레놀이 말하기 전부터 그 말을 들었던 륜은 경악에 호흡을 멈췄다. 사모 또한 입을 감싸쥔 채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오 레놀은, 동정심이 가득하지만 비난의 눈초리도 채 숨기지 못한 시선으로 사모와 륜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가가 그를 괴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들 속에 숨은 채 나가들을 사냥해 왔습니다. 이것이 하인샤 대사원이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며, 대사원이 숨겨온 사실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천 년을 살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겠 지요. 물론 사람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괴물의 몸 속에는 그 외에 다른 자도 있었습니다. 춤추는 자. 진정코 춤을 아는 자. 그 자가 괴물 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는 괴물과 함께 갇 혀버렸습니다. 춤이 멈췄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모든 것이 멈 춰버렸습니다.”
오레놀은 심장탑의 부러진 윗부분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사람 들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에 대해 전율하며 대덕의 행동을 따 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