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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5화


잘 닦여진 도보(徒步)를 사내 아이 와 여자 아이 둘이서 재잘거리며 걸어 가고 있었다. 사내 아이는 뭐가 그리 불만인지 계속 투덜 거리며 가고 있었고, 여자 아이는 옆에서의 잔소리에 누가 사내고 누가 계집인지 구별을 못할 정도 였다. 그때 또다시 옆에서 동천의 잔소리가 들려 왔다.

“야! 얼마나 더 가야돼?”

수련은 아까전에 어째서 자기가 동천을 데려다 주겠다고 했는지 이해가 안갔다.

“야! 너 내가 아까 뭐라고 했어! 조금만 더가면 된다고 그랬잖아! 그랬어 안그랬어!”

수련의 신경질 적인 핀잔에 동천은 뚱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랬다!”

의외로 동천이 순순히 대답하자 수련은 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했다.

“진짜루, 쪼금만 더가면 돼! 봐 저기 보이지? 약(藥)! 왕(王)!! 전(傳)!!! 보이지? 안 보인다 고만 해 봐라!”

동천이 수련의 눈길을 따라가자 한 십여장(30M) 정도에서 으리으리한 건물(建物)에 약왕전 이라고 금빛으로 칠해진 현판이 눈에 들어 왔다. 그 및에는 건장하게 생긴 두명의 장한들이 대문의 양 옆에서 형형한 눈빛을 내며 지키고 있었다.

“야-아! 이번에는 진짜네? 아이구 가슴이야! 드디어 나도 사부가 생긴다 이거지?”

동천은 누군지 모르는 사부를 드디어 본다는 생각에 무척 흥분하는 것 같았다.

“이젠 됐지? 저기 앞에서 지키는 아저씨들 중에 한사람을 붙잡고 이렇게 말해. 저-! 제가 이번에 귀영광의 역천님의 제자로 들어오게된 동천이라고 하는데 안내 좀 해주시겠어요? 이렇게 말이야! 할수 있지?”

수련은 동천의 다음 행동을 가르쳐 주면서도 내심 불안해 하는 것 같았다.

“알았어! 그만 좀 쫑알거려! 니가 내 마누라 라도 되냐?”

동천의 말도 안되는 말에 수련은 어이가 없었는지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 댔다.

“뭐? 너 맞을래? 누가 니 부인이야!!”

동천은 수련의 빨개지는 얼굴을 보면서 반응이 재미 있는지 속으로 놀려줄 생각을 했다.

‘이 기회에 기선을 잡아야 돼..’

동천 으로서는 절대로 놓질수 없는 기회였다.

“치! 쪽팔리다고 생각 말고, 잘 생각해서 결정 하라고! 사실 너한테 나 같은 신랑감도 그리 흔치 않아!”

동천과 수련의 말싸움에 지나가던 무사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 했다. 그들은 자기네들 끼리 동천 과 수련을 보면서 음충맞은 표정으로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킬킬! 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런 무사들의 시선을 받자 수련은 창피해서 죽고만 심정 이었다. 그러나 내 사전에 쪽팔림 이란 단어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동천은 남이 쳐다보건 말건 그리 개의치 않는 듯 했다.

“너-! 너어!”

어찌나 분하고 쪽팔렸던지 수련은 목이 메이면서 눈물이 다 날 지경 이었지만 주위에서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채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괜찮아! 니 마음 내가 다 이해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어서 부끄러운 거지? 그거라면 걱정 하지마.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해 줄께.”

뭘 다 알아서 쳐리해 준단 말인가? 가뜩이나 동천의 말도 안되는 헛소리에 쪽팔려서 죽을 지경이던 수련은 알아서 처리해 준다는 동천의 말에 아무래도 일이 더 커질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이럴 때는 할수없이 자신이 져줘야 한다는 것을 직감(直感)한 수련은 동천에게 봐달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야.. 동천. 그.. 그러지마 괜찮아.. 내가 다 잘못 했으니까 이제 그만해… 너 얼른 역천 아저씨한테 가봐야지..”

그말에 동천은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맞아. 얼른 가봐야지? 사부가 되실 분에게 가는데 늦으면 안되지.. 그럼 나 얼른 가볼께. 안녕–! 이따가 보자!”

동천이 역천에게 가보란 말에 의외로 쉽게 단념하자 수련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왠지 허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주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무사들은 뭔가 일이 한 번 크게 터질 것 같았는데 꼬마 남자 아이가 생각 보다 쉽게 물러나자 모두들 아쉬워 하는 눈치들 이었다. 시큰둥한 무사들의 반응(反應)에 수련은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쌔빨개진 얼굴로 악악! 대며 소리쳤다.

“뭘봐요! 아저씨들 지금 그렇게 한가해요? 어서 가서 아저씨들 일이나 보러 가라구요! 집에서… 집에서 부인과 애들이 기다리고 있쟎아요..! 그리고… 그리고.. 으앙!!”

수련의 용기는 중간쯤 가자 서서히 사그러 지더니 종반(終盤)에 가서는 자신이 무슨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지경까지 갔다. 그러다가 자신이 헤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수련은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더니 자신의 집쪽으로 달려 나갔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 보면서 낄낄! 대더니 잠시후 자신들이 가야할 곳으로 사라 졌다.

“얼른 가자! 얼른 가자! 장차 이 위대한 동천의 사부가 되실 분께 얼른 가자! 얼른 가자! 랄랄라-! 인생은 즐거워라… 즐거… 에구 에구! 헉헉! 힘들어라..!”

동천은 숨이 가쁜 상황 에서도 사부가 될 분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 정도 달려가자 드디어 약왕전이 바로 눈앞에 보였다. 두 명의 장한들 중 오른쪽에 있던 장한은 동천이 숨가쁘게 달려오자 누가 또 다쳤구나! 하는 표정으로 동천에게 물어보았다.

“꼬마야! 누가 다쳐서 왔냐?”

순간 당황해진 동천.

“엥? 다쳐? 누가 다쳐요?”

반대로 당황해진 장한.

“그럼.. 아니냐?”

동천의 뚱한 표정.

“아닌데요….”

뚱한 장한의 표정.

“그럼.. 왜 왔냐?”

그러자 동천은 드디어 때가 왔다는 듯이 말을 했다.

“헤헤! 다름이 아니라요. 제가 이번에 귀영광의 역천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들어온 동천 이라구요!”

“뭐라구… 욧?”

“엑?”

두 장한은 역천의 제자라는 말에 깜짝 놀랬는데, 특히 오른쪽의 장한은 더욱더 그러 했다. 아마 자신이 앞으로 약왕전주(藥王傳主) 역천(逆天)의 제자가 될 분에게 함부로 대했다는 사실 때문에 동천의 이상한 행동에 오른쪽 장한은 자신이 아까 말을 막 했기 때문에 동천이 지금 자신에게 꼬투리를 잡고 있는줄 알았다. 그러나 동천은 그 장한이 자신에게 존대말을 했다는데 있어서 알 수 없는 감동(感動)을 느낀 것이었다. 그 장한은 동천의 의도를 모르기 때문에 안절부절 하며 말을 했다.

“제가 무슨 잘못 이라도…?”

동천은 반복되는 장한의 존대말에 드디어는 참지를 못하고 기어코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흑흑! 아니에요. 제가 지금 감동을 받아서 그래요..”

이번에는 왼쪽에 있던 장한까지 황당해 했다.

“도데체가…”

동천은 급기야 쏟아지는 눈물로도 모자라 새하얀 콧물까지 동원하며 눈물을 흘렸다.

“흑흑! 제가.. 여태까지 살아 오면서 남에게 존대말을 받아보기는 처음 이거든요.. 더군다나 저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아저씨들한테 존대말을 받았다는 데에 감동해서 우는거라구요.. 제가 세가에서 가끔가다 오는 귀공자(貴公子)들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워 했는데요.. 흑흑! 그리고 내가 얼마나 존대말을 듣고 싶었으면 창원제일루(蒼遠第一樓)에서 일하는 점원에게 라도 존대말을 듣고 싶어서 거금 두냥으로 밥먹으러 들어 갔었는데 아 글세 이 싸가지 없는 자식이 어리다고 반말을 찍찍! 해대는 거예요.. 생각해 봐요 아저씨들 같으면 열 안 받게 ᄃ어요? 예? 열 안받게 ᄃ냐구요..!”

두 장한들은 동천의 별 쓰잘데 없는 수다를 들으면서 앞으로 자신들의 고생길이 훤할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오른쪽의 장한은 우선 자신이 잘못을 한게 아니라는 것을 알자 저으기 안심이 되었는지 그래도 왼쪽의 장한 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동천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동천의 따지는 듯한말에 얼른 맞짱구를 쳐 주었다.

“예? 예, 그렇습니다. 그 점원 진짜 싸가지가 없군요! 저 같으면 참질 못하고 그대로 싸대기를 후려 갈겼을 텐데…”

동천은 처음에 말을 걸었던 그 장한이 맞짱구를 쳐주자 동지를 만난 듯 기뻐했다.

“와-! 정말 제 생각하고, 똑 같네요? 제가 누굽니까? 그래서 제가 그 점원의 뺨때기를 인정 사정 없이 후려 갈겼죠. 헤헤!”

동천은 그 말을 마치고 황당해 하는 두 장한들을 보면서 옛 생각에 잠겨 들었다.

“에이! 제 말을 못믿겠나 본데… 지금부터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두 귀를 활짝 열고, 두 콧구멍을 크게 벌리고.. 는 아니고, 어쨌든 잘들어 봐요!”

그때가 올해 초.. 그러니까….

그날을 이월 초 쯤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 추위가 다 가시지 않아 제법 매서운 바람이 아직 불고 있을 때였다. 그때 황룡세가에서는 매우 귀한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강호오대세가 중 하나인 금원세가(金院世家)에서 손님이 오는 것 이었다. 황금세가(黃金世家)라고 불려질 정도로 황금이 남아 돈다는 평을 받고 있는 금원세가는 당대(當代) 가주인 금강연(金姜淵)이라는 걸출한 인재가 있었기에 강소성(江蘇省)을 주 무대로 그 세력을 꾸준히 넓혀가고 있는 중 이었다.

금강연은 올 때 단 하나뿐인 외동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이름은 금장호(金張號). 금강연의 뒤를이어 다음대 가주가 될 사나이 었다. 문지기 강 아저씨가 자신에게 살며시 귀뜸해 줬는데 아마 자신의 주인인 황룡미미 와 혼약(婚約)을 맺으러 온다는 것 같았다. 금장호를 데려다 놓고 둘을 며칠간 붙여 놔서 마음이 맞으면 지금 사주단지만 서로 예의상 교환을 하고 나중에 둘이 성인이 되면 정식으로 식을 올리자.. 뭐 이런 식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정략결혼(政略結婚) 이었지만 동천은 그런것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고기를 먹는다는 데에 있어 군침만 흘리고 있었다.

금원세가 정도의 귀한 손님이 오면 그만큼 성대하게 잔치를 벌릴 것이다. 더군다나 장차 사윗감이 온다는데.. 그렇다면 잔치 중이나 나중에 잔치가 끝난 후 음식들을 치울 때 남아있는 음식들은 전부다 하인들의 몫이 되는 것이기에 동천은 그런 상상 만으로 기분이 좋아서 어쩔줄 몰라 했다. 추연은 그런 동천을 보고 침 좀 닦으라고 했지만 동천은 듣는둥 마는둥 하면서 자기혼자 들떠있다가 지나가던 하인에게 걸리적 거린다고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았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점심때가 다 되어가자 황룡각(黃龍閣)의 안쪽에서 황룡굉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황룡굉은 사십대 중반 정도에 다부지고 온유로운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그를 기점으로 오른쪽에는 황룡세가의 인물들이 앉아 있었고, 왼쪽에는 금원세가의 인물들이 앉아 있었다. 금원세가의 인물들 중에는 단 두명만이 눈에 띄었는데 왼쪽 상석(上席)에 앉아있는 오십대 정도의 뚱뚱한 인물이 금강연 이었고 그옆에는 정 반대로 홀쭉한 인물(말이 홀쭉 이지만 금강연에 비교해서 홀쭉해 보인다는 것이지 따로 놔두면 보통 체격에 근육도 제법 탄탄하고, 얼굴도 보통 이상으로 잘 생겼다.)이 금장호 였다. 동천은 마침 옆에 춘천이 있길래 말동무가 생겨서 잘됐구나 했다. 그러나 황룡각 주위에는 손님들이 많기 때문에 안가 겠다는 춘천을 황룡각 후문에 데려다 놓고 사람들이 있는지 주위를 둘러 보더니 말을 했다.

“야, 내가 생각 하기에는 저기 가주님 왼쪽 바로 옆에 앉아있는 금가주의 아들내미 있잖아.. 아무래도 친아들이 아닌 것 같애.”

동천의 말에 춘천은 이녀석이 또 쓸데 없는 말을 하는구나 했지만 요즘 그 사건(동천과 하천이 싸운 사건.)이후로 동천이 조금 우울해 진 것 같아서 겉으로는 굉장히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친아들이 아닐거라니…?”

역시 단순한 동천은 춘천이 관심있는 표정을 하자 기뻐하며 입술에 살며시 침을 바르더니 혀를 놀릴 준비를 하였다. 잠시후 동천의 쏟아지는 수다를 생각하자 춘천은 자기 머리를 콩콩! 치면서 내가 병신이지.. 하면서 동천의 곁에 있었던 자신을 후회했지만 이미 화살은 떠나가 버렸다. 춘천이 자기 혼자 머리를 쳐대자 동천이 왜그러냐고 물어 봤지만 기겁을 한 춘천은 아무일도 아니니까 어서 그 이유나 말해 보라고 얼른 둘러쳤다. 동천은 기대해도 좋다는 표정으로 자랑스럽게 말을 했다.

“왜냐하면..? 돼지는 돼지를 낳기 때문이야.”

춘천은 동천의 말이 잘 이해가 안가서 다시 물어 보았다.

“돼지가 돼지를 뭐? 도대체 무슨 얘긴지 모르겠어.”

동천은 자신의 말을 한마디에 이해를 못하는 춘천을 보고 역시 짧게 말하면 애들은 못알아 듣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흐음-! 좋아 내가 자세하게 설명해 줄게. 돼지는 뚱뚱한 돼지를 낳아.”

조금 이나마 기대에 찬 춘천의 한마디.

“그래서?”

“그리고 그새끼 돼지는 커서 또 뚱뚱한 돼지를 낳지.”

그래도 아직까지 기대에 찬 춘천의 한마디..

“그런데?”

“그런데 앞에 저 돼지는 홀쭉한 돼지를 낳았단 말이야.”

그럴줄 알았다는 춘천의 한마디…

“나 갈래..”

춘천이 자신을 보며 한심 하다는 듯이 말하며 간다고 하자 동천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춘천을 바라보며 물어 보았다.

“왜? 내 말에 뭐 잘못된 거라도 있어?”

그말에 춘천은 잠시 주위를 둘러 보고난 후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 하자 버럭! 화를 내더니 동천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당연 하지 이 바보야! 뚱뚱한 돼지도 안먹여 놓으면 마르는 법인데 하물며 인간인 저분께서 체중관리를 잘하셔서 살이 안찌게 살아 왔는데 그걸 가지고 친자식이 아니니 뭐니 하는말을 듣고 내가 지금 가만히 있게 생겼냐?”

듣고보니 그런 것 같았지만 쓸데없는 것에만 지기 싫어 하는 동천은 여기서 물러 설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계속 자기 주장을 펴나갔다.

“어? 이자식이 아니면 그만이지 왜 눈깔은 크게뜨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그건 그렇고, 이자식아! 돈많은 애비는 잘 쳐먹어서 배때기가 임신 구개월 인데 돈많은 애비의 자식은 왜 비루먹은 망아지냔 말야! 그러니 내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거야 이자식아!”

춘천은 동천의 막무 가내에 더 이상 상대 하기가 싫은 듯했다.

“어휴! 답답해! 야 임마. 너 같으면 뚱뚱해 지고 싶것냐? 나 같아도 조금 배고픈게 낫지, 잘먹어도 저렇게 뚱뚱해 질거라면 차라리 가난 하지만 평범하게 사는게 더 좋겠다.”

이번에도 춘천의 말이 옳은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기 싫어하는 동천이 내새울 거라고는 억지 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뚱뚱한데 왜 아들내미는 삐쩍! 말랐냔 말야?”

“그런 어거지가 어딨냐? 그리고, 저분이 어디가 삐쩍! 말랐냐? 같이 붙여 놓으니까 그런거지. 따로 띄어 놓으면 제법 건장한 청년 이시라고!! 에이.. 너하고 말을한 내가 병신이지!”

춘천은 동천을 한껏 째려보더니 많이 흥분한 얼굴로 황룡각 후문쪽에 다가 가더니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래 이 병신아! 그래도 지가 병신 인줄은 아니까 다행이네! 으이그..! 열받어!!”

동천은 그래도 화가 덜 풀리는지 애꿋은 담벼락에 다가 가서는 발로 차고, 이단 옆차기도 해보고, 삼단 옆차기를 하려다 자빠지고.. 등등.. 똥갑은 혼자 다떨다가 어느정도 분이 풀리는지 동천도 후문으로 들어 갔다. 후문으로 들어서자 그때가 마침 금장연이 연설(演說)을 마치고 다시 자리에 앉을 시기였다.

사람들은 모든 연설이 끝나자 왁자지껄! 하면서 음식들을 먹었다. 그들은 그간 잘있었 었냐. 니그 사부님은 잘 게시고? 애들은 잘 커? 뭐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동천은 후문 한켠에서 다른 사람들이 먹고 있는 음식들을 보며 군침만 흘리고 있었다. 그때 동천의 옆에서 동천의 꼬락서니를 지켜보고 있던 현 개방 방주의 단 하나뿐인 제자인 소화자(小華子) 육능풍(育能風)은 꼬마 하인이 안됐다 싶어서 동천을 자기 자리로 불러 들였다. 하지만 그 일 때문에 앞으로 그의 생애(生涯)에 앞에서도 없었고, 그 뒤에서도 없을것이 분명한 엄청난 사건이 터지게 될줄이야…

“이봐! 너 이곳에서 일하는 하인이지?”

그러나 육능풍의 점잖은 목소리가 음식에만 정신이 팔려 군침을 흘리고 있는 동천의 귀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육능풍은 꼬마를 불러도 아무 반응이 없자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내가 이런 일에도 흥분하면 안되지.. 하며 이번에는 삼성 정도의 내력(內力)을 음성에다 집중 시켜서 다시 한 번 물어 보았다.

“이봐! 너 이곳에서 일하는 하인 맞지?”

내력이 깃든 목소리가 효과가 있었는지 동천은 깜짝 놀라며 육능풍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 불렀어요?”

그제서야 동천이 쳐다보자 육능풍은 만족한 듯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음식들을 쳐다 보면서 동천을 향해 말을 했다.

“그래. 다름이 아니라 너 이 음식들을 먹고 싶지?”

동천은 왠 거지 자식이 자신을 부르나 했는데 그 거지가 음식을 먹고 싶지 안냐고 물어 보자 거지 중에도 ᄀ찬은 거지가 있긴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비루어 먹고 사는게 거지들이라서 그 거지의 맘이 변하기 전에 얼른 대답했다.

“당연 하죠! 누가 먹을걸 마다해요!”

동천이 기쁜 듯이 말을하며 다가오자 육능풍은 자신이 차지하고 앉아 있던 자리를 엉덩이를 살짝들어 약간 옆으로 비켜 주었다. 앉을 자리를 준다는데 마다할 동천이 아니기에 육능풍이 자리를 비켜주자 마자 동천은 잽싸게 뛰어와 한 자리 차지 하더니 육능풍의 마음이 행여라도 변할까봐 앞에 그득히 쌓여있는 음식들을 한쪽 손에 차고도 넘칠듯이 긁어 모은 뒤에 나머지 한 손으로는 게눈 감추듯이 허겁지겁 먹어대고 있었다.

육능풍은 누가 거지고 누가 하인인지 모를 정도로 먹어대는 동천을 보고 혹시 황룡세가에서 아동(兒童)을 학대(虐待)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로 한 삼일정도 굶은 것 마냥 허겁지겁 먹어대고 있었다.

“야 야.. 좀 천천히 먹어라. 거지인 나도 점잖게 먹고 있는데 거지도 아닌 어린애가 그렇게 먹어 대면 쓰나!”

육능풍은 간접적으로 동천을 책망하고 있었으나 아직 어린 동천은 그런말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육능풍은 자신이 아무리 뭐라 해도 앞에있는 먹을 것을 먹다가 목이 막혀 캑캑! 대며 술을 들이키고 있는.. 응? 술을 들이켜?

“우윽! 캑캑! 으-써! 아니 이게 뭐지? ᄐ! 에이 입맛만 버렸네.”

동천은 목이 막혀 무심코 옆에있는 주전자를 들어 컵에 따라놓고 아무런 생각없이 들이켰는데 목구멍이 화끈하고 쓴게 구역질이 넘어올 것 같았다. 남은 써서 죽을 것 같은데 옆에 있던 거지자식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자기를 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아직 어린 니가 술을 마시려고 하다니 아직 어려! 그거 말고 그 옆에있는 차(茶)를 마셔라.”

그러고 보니 술 주전자 옆에 찻물이 그득히 담긴 찻잔이 놓여 있었다. 동천은 아직도 목이 아려서 찻잔을 들어 먹고 싶었지만 옆에있는 거지자식 때문에 쓸데 없는 자존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그래서 동천은 짐짓 태연한 척을 하며 욕지기가 나올 것 같은 술을 다시한번 컵에 따라서 꿀꺽 꿀꺽! 마셔댔다. 육능풍은 동천이 또다시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으나 이내 그런 표정을 지우고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동천을 쳐다보며 말을 했다.

“아니 아니! 그러고 보니 술을 마실 줄 알고 있었네? 이거 미안한데?”

역시 단순한 동천은 거지 자식이 자신을 치켜세워 주자 머리가 어질 어질한 상태 에서도 혀를 배배 꼬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다했다.

“흥! 다연하죠.. 내.. 내아.. 이.. 저도… 꺽! 술도 못마실 것 같아요오?”

육능풍은 왠지 이 꼬마를 골려 주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골려줄까 하고 고개를 숙이며 생각 하다가 문득 자신의 허리에 걸려있는 술병을 쳐다보게 되었다.

‘옳치! 이 육십년 묵은 후아주를 이녀석에게 먹이면… 하하하!’

육능풍이 우연히 산속을 헤매이다가 찾아낸 이 후아주는 향기도 향기지만 그 맛이 너무 강해서 한 술 한다는 육능풍의 사부인 취불개 영산호(英産護)도 단 두잔만 마시고도 뻗어버릴 정도 였다.

“꼬마야. 너…”

그 순간 동천이 큰 소리를 치면서 육능풍의 말을 가로 막았다.

“꼬마가 아녀요! 내.. 이르믄 동천 이라구요…!”

육능풍은 앞에 있는 술취한 어린애가 꼬마라는 말을 싫어하자 얼른 동천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그래, 미안하다. 동천 이라고 했지? 음-! 다름이 아니라 너 이 호로병 안에 든 것을 마실수 있겠니?”

동천은 흐릿하게 풀린 눈으로 육능풍이 오른손에 들고있는 호로병을 보더니 완전히 맛이간 목소리로 말을 했다.

“호로 자식이 병.. 병신인데 그 자식을 먹을수.. 꺽! 없겠냐구요??”

육능풍은 요 꼬마애가 술이 취해서 헛소리를 해대자 그만 둘까? 하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미 술에 취한 아이에게 이 독하디 독한 후아주를 먹인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결국은 먹이기로 결정을 했다.

“호로 자식이 아니라 이 술병에 든 술을 마실수가 있겠냐구!”

육능풍이 호로병을 술병 이라고 바꿔서 말하자 동천은 그제서야 얄아 듣고는 헤벌레-! 입을 벌리 면서 말을 했다.

“아~! 술이요? 히히히! 까짓거 한.. 한잔 더 마시죠 뭐! 끄윽-! 한잔 따라 줘봐요. 내가.. 한 번에 마셔 보일 테니까!”

꼴에 트름 까지하는 동천을 보고 육능풍은 이제 됐구나 싶어 동천이 들고 있는 컵에다가 사부가 단 두잔에 뻗어버릴 정도로 독한 후아주를 적당히 부어 주었다.

“하하하! 니가 이 술을 마시고 괜찮다면 내가 이 상위에 있는 음식들을 모두 너에게 줄테니까 얼른 쭈욱-! 들이켜 봐라!”

동천은 술이 취해있는 상태 에서도 앞에 있는 음식을 거저 준다고 하자 앞 뒤 가릴 것 없이 물어 보았다.

“정말인 가요?”

“그럼! 정말이구 말구! 나는 태어나서 여태까지 거짓말을 단 한번도 해본일이 없단다!! 그러니 얼른 마셔보렴.”

동천의 미심적은 부분을 육능풍이 재차 확인시켜 주자 동천은 기쁜 듯이 후아주가 들어 있던 컵을 단 한 번에 들이켜 마셨다.

“벌컥! 벌컥! 컥!!?…”

순식간에 술을 마시던 동천은 갑자기 숨이 막힌 사람처럼 숨을 멈추더니 새파래진 얼굴로 육능풍을 쳐다 보았다. 육능풍은 그런 동천의 모습을 보자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킬킬! 대며 소리를 작게 해서 웃어 댔다. 그러나 그의 웃음은 그 뒤에 터진 동천의 괴성 때문에 한순간에 사그러 들고 말았다.

“끄아아아악-!!! 나죽네!! 흐-으으윽!! 도.. 독(毒)이다!!!”

동천의 괴성에 주위에 사람들은 무슨 일이냐는 듯 웅성 거리다가 그 뒤의 독(毒)이라는 말을 듣자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 사람들은 두 눈에 안광(眼光)을 번뜩 이면서 소리치기 시작 했다. 제일 먼저 소리친 사람은 당연히 황룡굉 이었다.

“살수(殺手)가 있다! 주위의 경비를 강화 해라!!”

그 다음은 역시 계산에 능한 금강연 이었다.

“우리가 먹은 음식에도 독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니 모두들 운기 행공을 해 보시오!”

그제서야 다급해진 중인들은 서둘러 가부좌를 틀고는 운기 행공을 했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자 얼른 일어 서고는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 했다. 그러던 중 동천의 주위에 있던 화산파의 화산삼협 중 막내인 삼협(三俠) 영호풍(英虎風)이 육능풍을 가리키며 소릴 쳤다.

“아까 육능풍이 허리에 차고 있던 호로병에서 나온 독을 꼬마에게 먹이는 것을 내가 봤소!”

그러자 모든 중인들의 시선이 육능풍에게로 몰렸다. 영호풍의 고함에 저으기 당황한 육능풍은 아직 서늘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다급히 변명을 하기 시작 했다.

“아.. 아니오! 나는.. 아니오!”

육능풍의 당황하는 모습에 확실하다고 생각한 영호풍은 육능풍을 향해 대뜸 소릴 쳤다.

“거짓말 하지 마시오! 아까 당신이 먹인 것을 마시고 저 꼬마 아이가 개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것을 내가 보았단 말이오!”

영호풍의 자신감에 찬듯한 말에 사람들은 조심 스럽게 육능풍을 향해 원형으로 둥글게 모이면서 혹시나 도망갈 수가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며 다가 오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이 기정 사실로 받아 들이는 것 같은 행동을 하자 육능풍은 어쩔줄 몰라 하며 말을 했다.

“그.. 그게 아니라… 이건 장난 이었소!”

“웃기지 마시오! 장난으로 사람을 죽이다니 이게 말이나 되오?”

영호풍이 다시 반박하고 나서는 순간 사태가 사태인 만큼 황룡굉이 중재(仲裁)를 하고 나섰다.

“영호풍 소협 께서는 잠시 진정 하시고 육 소협께서 하고 싶어 하는 말을 차분히 들어 봅시다.”

육능풍은 황룡굉이 중재를 하고 나서자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며 여태 까지의 이야기를 차근 차근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용을 대충 정리해 보면 애 새끼가 불쌍해 보여서 먹을 것을 주다가 자기도 모르게 장난기가 발동한 나머지 술기운이 너무 독해서 자신도 그냥 멋으로 허리에 차고 다니던 후아주를 어린 아이에게 먹이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하고 생각을 했단다. 그래서 한잔을 먹였더니 이 꼬마 자식이(쓰러진 동천을 가르키며.) 자빠지려면 그냥 자빠질 것이지 쓸데없이 독(毒)이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까지 번진 것 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못믿 겠으면 지금 아이의 상태를 확인해 보라는 말에 의술에 조예가 깊은 한 무림인이 동천의 맥을 짚어 보고, 요리조리 눌러보고, 눈깔을 한 번 까뒤집어 보고, 아가리를 잡아 땡겨보고 등등..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이 판명이 되자 그제서야 사람들은 화기 애애한 분위기로 바뀌더니 서로를 쳐다 보면서 모두들 한바탕 크게 웃어 제꼈다.

일단 육능풍이 아무런 죄도 없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나자 제일 무안한 사람은 당연히 영호풍 이었다.

“저기.. 육소협! 제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뭐라 할말이 없습니다.”

육능풍은 속으로는 괘씸 했지만 상대가 이만큼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는데 사과를 안받아 준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다고 생각을 해서 영호풍의 사과를 정중히 받아 들였다.

“하하하! 괜찬습니다. 어찌 됐든지 시작은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이니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육능풍은 속으로 영호풍을 무지하게 욕을했었다.

이 일이 있은 이후로 말하기를 좋아 하는 호사가 들이 말을 꾸미고 꾸며서 결국은 그 소문(所聞)이 널리 퍼져 나가게 됐다. 그러니까 최종적(最終的)으로 어떠한 소문이 됐는가 하면 육능풍이 황룡세가에 독을 뿌려 황룡세가를 말아 먹으려고 했다는 뜻으로 이 사건을 -소화자 용독 사건- 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당연히 육능풍은 이 소리 소문없는 헛 소문을 무마(撫摩)시키려고 만나는 사람마다 해명해 다니느라고, 그나마 한짝 밖에 없던 신발까지 다 떨어져서 맨발로 뛰어 다니는 불상사까지 겪어야만 했다. 그 이후로 육능풍은 한참동안 동천 또래의 아이들만 보면 경기(驚起)를 일으켰다는 후문(後聞)이 있었대나.. 어쨌다나.

어쨌든.. 동천은 그 소란중에 황룡 세가의 한 경비 무사에게 업혀서 동천과 아이들이 기거하는 방으로 옮겨 졌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시 진정(鎭靜)을 하고 음식을 즐기는 사이에 어느새 초 저녁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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