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26화
동천2(冬天) – 2부:하늘이여 편
이문(二文).
꿈(夢)..
꿈을 꾼다…
내가 서있던 그 자리에.
함께 드리워진 그림자를 헤집고, 올라오는 또 다른 나의 얼굴..
-너는 누구인가.
-나는 바로 너이다.
-나는 너에게 무엇인가..
-너는 바로 나이다..
-그럼, 우리들은 어떠한 존재(存在)인가…
-우리들은 둘이면서도 하나인 존재이다…
『바로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꿈중에서…』
이장(二章).
난..
이런 운명에 수긍할 수가 없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손길…
이 죽음의 너머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아직은 알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는 죽었고, 나는 살아있다.
그러나..
그의 분신은 언제고 내 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날이 오기 전에는 절대로 죽을 수가 없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기다린다. 지금 내가 행하는 이 일이 성공하기를..
그날을 기다리며…
하늘이여(空).
-저를 버리시나이까..-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말을 알고 있기에 오직 위대(偉大)하고,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늘님만을 꼬옥! 믿고 있는 하늘님께서 사랑스러워 하시고, 귀여워해 주고 계시는 동천(冬天)이 하늘님에게..』
한편, 사부의 놀람을 뒤로하고 동천은 산 속의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신나게 달려가고 있었다.
“아이구! 죽는줄 알았네..! 나오니까 이렇게 편한 것을..”
공부에서 해방된 것에 대해 지극한 행복감을 느낀 동천은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힘이 딸린 것을 느낀 동천은 달리다가 멈추고는 천천히 걸었다.
“히히히! 후우! 좋다..캬아! 경치(景致) 한번 좋고!”
그렇게 혼자 좋아하던 동천은 문득, 지금 자신이 있는곳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 내가 너무 많이 달려왔나?”
많이 달렸다. 그것도 한참 많이..
“에..내가 이쪽으로 계속 달려 왔었으니까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되겠지? 후후후..내가 생각해도 나는 너무 똑똑하다니까?”
희미한 미소를 띠며, 생각을 마친 동천은 이내 자신의 똑똑한 머리를 칭찬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는데…
“음..똑똑한게 너무 지나쳤나..?”
동천은 생각한 대로 걸어갔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리 걸어가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方向)으로 가고 있질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었다. 아니, 어렴풋이가 아니라 거의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동천은 자신이 아까 달려올 때 일자로 달려 온 걸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그재그로 달려 왔었던 것이다.
“여기가 아닌게벼..!”
동천은 세가(世家)에서도 알아주는 방향치(方向癡)였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동천은 서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이 불안할 때 혼자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그냥 참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무서움을 잊어버리게 주위에 대한 관심(關心)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방법을 들 수가 있었다.
동천은 이럴 때면 두 번째 방법을 선호(選好)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해소시키기 위해, 얼른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지르는 것이 상책(上策)이라고 생각했다.
“가는 말이 있으면, 오는 말도 있고, 오는 말이 있으면, 당연히 가는 말이 있는 법이다! 내가 먼저 소리를 지르면, 상대 새끼는 당연히 쫄아야하고, 상대가 나에게 소리를 지르면, 당연히 그 자식을 패 줘야 한다! 그게 바로 나의 인생(人生)이야..그게 바로 나의..그게…!”
자신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방법은 동천이 서서히 질리기 시작하면서 중책(中策)으로 변하더니 나중에는 하책(下策)으로 변해버려 결국에는 동천에게 버림받고야 말았다.
“음..어떻하지? 사부님이 걱정을 할 텐데..”
평소에 동천답지 않은 생각을 했던 동천은 이내 사부가 자신을 걱정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고는 원래의 동천으로 되돌아와서 자신이 지금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直視)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아무 생각 없이 가다가 산속에서 헤매다가 나의 찬란한 청춘(靑春)을 아깝게 마감하는 게 아닐까? 나는 아직 십 년도 못 살았는데.. 그러면 안돼지.. 휴! 하는 수 없다. 이럴 땐 하늘님에게 나의 운을 맡겨볼 수밖에..”
그러고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더니, 두 손을 있는 힘껏 위를 향해 뻗쳐 올리며 말을 했다.
“오오..! 하늘이시여! 제가 만약에 당신에게 버림을 받을 운명(運命)이라면 제가 이 산속을 계속 헤매게 해주시고, 아니라면 제가 이 산속에서 벗어나 사부님이 계시는 곳으로 갈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하고 난 뒤에도 아직 께름직한 게 있었던 동천은 조금 생각을 한 뒤에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를 했다.
“그러나 저는 하늘님이 저를 아주아주..! 많이많이! 사랑을 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거라고 믿고 있사옵니다! 저는 하늘님이 좋으신 분이라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자알 부탁합니다!”
자기가 하늘님에게 버림을 받는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는 동천이었다. 아니, 그런 마음은 쪼오끔(?) 가지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설마.. 나처럼 착한 아이를 하늘님이 져버리시겠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동천은 자기 딴에는 하늘님에게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고 생각한 뒤에 신중하게 오른손을 쫘악! 펼쳤다. 그리고 그 손을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고는 입을 조그맣게 오므린 후 아까부터 오랫동안 돌아다닌 탓에 끈적끈적해진 침을 그 손바닥에 뱉어 버렸다.
“퇘! 좋아. 이제는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하기만 하면 되겠지? 하늘님.. 다시 한번 부탁해요!”
그러고는 검지와 중지만을 편 다음 침이 고여있는 바로 옆에다 두 손가락을 그대로 내리쳤다.
“타-악!”
“휘유웅-!”
순간적으로 반동을 받은 침은 동천의 오른쪽으로 호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음.. 이쪽이란 말이지? 좋았어!”
그러고는 동천은 침이 튄 반대쪽으로 달려 나갔다. 침이 튄 쪽으로 갔었다면 제대로 갈 수 있었을 텐데…
한편..
“아.. 얘는 잠시 머리를 식히러 나가더니 깜깜무소식이네? 내가 나가서 직접 찾아봐야 하나..?”
제자가 돌아오기를 한참 동안 기다리고 있던 역천은 동천이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질 않자, 자신이 직접 찾으러 가야 하나.. 하고 있었다. 그때 산 아래쪽에서 누가 경공술을 발휘해 올라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누구지? 나의 사랑스러운 제자는 무공을 모르니 걔는 아닐 테고..”
그때 문 밖에서 한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주님! 안에 계십니까?”
역천은 여기로 올라온 것이 한심이라는 것을 알자, 인상을 찌푸리며 문을 열어젖혔다.
“얌마! 내가 있는 걸 알면서 왜 물어봐? 으이그.. 그래. 이번에는 무슨 일로 왔냐? 설마, 어저께처럼 그냥요..라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또 그 따위 소리를 했다가는 아주 죽을 줄 알어!”
한심은 어제 맞아서 그런지 한쪽 눈이 퉁퉁! 부은 얼굴로 웃으면서 말을 했다.
“헤헤! 아닙니다요. 제가 여기에 온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아주 다급한 환자(患者)들이 생겨서요..!”
역천은 문 안쪽에서 한심의 말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듣다가 환자라는 말에 얼른 문 밖으로 달려 나와 한심을 다그쳤다.
“뭐? 환자? 누구냐? 뭣 때문에 다쳤대냐? 지금 어디 있어?”
역천이 한꺼번에 여러 가지 질문을 하자, 머리가 아파진 한심은 천천히.. 한가지씩 기억해가며 역천의 질문에 대답해 나갔다.
“에.. 그러니까.. 뭐?는 놀라서 그러신 거니까 넘어가고, 환자?는 예 그렇습니다요. 이고, 누구냐?는.. 잠마대(潛魔隊) 중 외삼단(外三團)에 있는 녀석들이고요. 뭣 때문에 다쳤대냐?는.. 그러니까.. 오련(五蓮)에 있는 녀석들하고 세력(勢力) 다툼을 하다가 숫자적인 열세(劣勢)를 이겨내지 못하고 거의 전멸하다시피 쫓겨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뭐라고 하셨더라? 아.. 지금 어디 있어?는 헤헤! 당연히 우리 약왕전(藥王傳)에 옮겨다 놨지요..”
말을 끝까지 마치고 난 한심은 칭찬을 들을 줄 알고 있었는데 하나의 주먹이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랴..?’
하고 의문을 느끼고 있던 한심은 아직도 부어있는 눈에 또다시 통증(痛症)이 느껴지자,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었다.
“퍽!”
그 순간 한심은 통증에 못 이겨 그대로 바닥에 떼굴떼굴! 굴러 버렸다.
“으-엑! 나 죽는다아!! 왜.. 왜 때려요!”
그러나 역천은 들을 말은 다 들었기 때문에 산 밑으로 달려가면서 전음(傳音)으로 말해줬다.
『임마! 환자가 생겼으면 어디에 있는지부터 가르쳐 줘야 할 거 아냐? 그게 기본(基本)이라고 그렇게 말했구만.. 어이구! 그러니까 네가 당주(黨主)라는 신분(身分)에도 불구하고, 맨날 나한테 얻어맞고 사는 거야! 알겠냐? 그리고 거기에서 엎어져 있지만 말고 이따가 내 제자가 오거든 내가 며칠 안으로 아침 일찍 올라와서 나머지를 가르쳐 준다고 얘기한 후에 얼른 뒤따라와! 그럼 나 먼저 가마. 꼭, 말해야 한다!』
역천이 순식간에 산에서 내려간 것을 알자 한심은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말을 했다.
“에이.. 씨발! 가든지 말든지..!”
다른 한편..
역천이 산밑으로 내려가고 있던 시각(時刻)에 동천은 더욱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으아아악! 여기가 대체 어디야! 이 씨발! 야!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이 나쁜 놈아! 내가 그렇게 잘 부탁한다고 빌었는데 네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는 거야? 이씨.. 아주 죽여버려! 으으.. 내 눈앞에 하늘 놈의 주둥이가 있으면, 그냥! 때려버렸을 텐데…”
자기가 하늘님이 가르쳐 준 대로 가질 않았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를 않는 동천은 아무리 하늘에다 악악! 거려대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조금 있다가 스스로 마음을 추스렸다.
“에이.. 열받어. 이래서 사이비 종교(似而非宗敎)는 믿는 게 아니라고 장(張) 아저씨가 가르쳐 줄 때, 그 아저씨 말을 따를 것을..”
그렇게 혼자 나불거리며 근 한 시진(2시간.)을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가니던 동천은 문득 배가 고파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으-음! 벌써 점심인가? 에구에구.. 배고파라..! 어디 이 근처에 뭐 먹을 게 없나?”
기가 막힐 정도로 점심시간을 알아맞히는 동천은 배가 고파지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먹을 것을 찾기 시작했다.
“요건.. 못 먹을 거고.. 요건.. 또 못 먹을 거고.. 요것도.. 못 먹을 거고.. 요것도.. 또 못.. 먹을 거.. 고.. 으아악! 제기랄! 이렇게 넓은 곳에 하고많은 산딸기조차도 주위에 없다니!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에 있어? 개새끼라도 풀은 안 처먹는데, 사람인 나한테 풀을 드시라는 거야 뭐야?”
한참 먹을 것을 찾아 다니던 동천은 보이는 것은 풀밖에 없자, 조금 후에 제풀에 못 이겨 포기하고야 말았다.
“일이 안되려니까 이렇게 안되나? 에휴.. 할 수 없다. 먹는 건 그만두고, 빨리 나갈 길이나 찾아봐야겠다.”
그러나 여태까지 길을 잃어버려 헤매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가는 길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동천은 자신의 의지(意志)와는 상관이 없이,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가질 못하고 점점 더 먼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뛰고 돌아가는 건데.. 응?”
아침에 공부에서 해방(解放)된 것을 기뻐한 나머지 너무 나돌아다녔던 것을 후회하며 나무 사이를 헤쳐가며 걸어가고 있을 때 동천의 눈앞에 뭔가 희무끄리한 것이 보였다. 일단 어떠한 물체가 보이자 동천은 얼른 그곳으로 달려갔다.
“뭐지?”
그 하얀 물체는 땅 속에 묻혀 있었는데 마음이 급한 동천은 그것이 뭔지도 제대로 확인해 보지 않고, 주위에 있는 굵은 나뭇가지를 집은 다음 서둘러 땅을 파기 시작했다.
“퍽! 퍽!”
“응? 동글동글 한 게 꼭! 바가지를 엎어 놓은 것 같네?”
그렇게 한참을 파내려가자 드디어 윤곽(輪郭)이 드러나며 그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바가지 밑부분처럼 둥근 부분이 다 파져가고.. 드러나는 두 개의 시커먼 구멍.. 그 아래로는 부서져서 떨어져 나간 듯, 아무것도 없었다.
“으으으.. 해.. 해골(骸骨)이다! 으악!”
동천은 그것이 뭔지를 알자, 그 해골 바가지를 바닥에다 냅다 던져 버리고는 차마 안 떨어지는 발걸음을 힘겹게 한 발, 한 발을 떼면서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도망쳤다. 웃기는 것은 도망가는 동천의 행동이 달리는 것도 아니고 뛰는 것도 아닌.. 그렇고 그런 몸동작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으아아.. 오늘 재수 옴 붙었다… 아..”
홀로 걸어가는 산속에서 해골을 보았기 때문에 엄청난 무서움을 느끼며 달려가고 있던 동천은 문득, 눈앞의 전경(前景)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입이 얼어붙고야 말았다. 입이 얼어붙자, 몸도 자연스레 따라 얼어붙었다.
“오메…! 오..메! 이게 다.. 해(骸).. 골(骨)..? 하늘이시여! 이 가여운 동천을 악(惡)의 구렁텅이에서 지켜 주시옵소서..!”
급하니까 다시 하늘을 찾는 동천이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한 번 해골이 보이자 자세히 눈여겨보면 여기저기에서 부러진 팔뼈와 구석구석에 보이는 뼈의 잔해들이 수도 없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동천이 까무러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 믿습니다. 저는 하늘님을 믿고.. 또.. 오 믿사옵나이다. 제발 저를 지켜 주시옵소서..! 제.. 제가 착한 아이라는 걸 하.. 하늘님도 알고 계시잖아요…”
떨리는 두 손을 서로 깍지를 낀 채, 울먹이는 얼굴로 한참을 걸어가던 동천은 갑자기 왜 내가 이 무서운 곳으로 계속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퍼뜩! 생각나는 게 있었다.
‘호.. 혹시! 내가 귀신(鬼神)에게 홀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일단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자 알 수 없는 공포가 동천의 마음속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무조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으으.. 귀신은 싫어…”
한참을 달려가자, 힘이 딸리는지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난 아직 죽고 싶지 않아.. 하늘님도 그렇게 생각하고.. 헥헥! 생각하고 계시죠? 그렇죠? 예-엑!”
한참을 공포(恐怖)에 못 이겨 앞으로 달려가던 동천은 입으로 주절거리며 무작정 달려갔었기 때문에, 땅바닥에 단단히 박혀있던 뼈의 잔해(殘骸)를 미처 보질 못했다. 때문에 뼛조각이 발에 걸려서 그대로 자빠지고야 말았다.
“꽈당!”
“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