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동천(冬天) – 40화


수건을 다 빤 소연은 헐떡거리면서도 혼나지 않기 위해, 힘들게 달렸다. 한참을 달리자 어느새 동천의 방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일단 도착하자 숨을 가다듬은 소연은 불안한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저.. 주인님.. 수건…?”

소연이 들어가자, 당연한 거겠지만 동천은 자고 있었다.

“휴… 자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소연은 입을 헤.. 벌리고 자고 있는 동천의 모습에 한 대 때려주고만 싶었다. 얄미웠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하인의 신분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냥, 시늉으로만 손을 들어 올렸다 내려치면서, 때리는척을 하던 소연은 몇 번 그러다가 탁자 위에 수건이 마르도록 반듯하게 펴놓고, 수건을 내려놓은 뒤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소연이 나가고 점심이 되자, 배가 고파진 동천은 누가 깨우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났다. 여기 와서 좋아진 거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신분의 상승(上昇)이었지만, 또 다른 하나는 신분 상승에 걸맞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을 때,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아.. 배고프다. 그새 또 잤나 보네? 그나저나…. 얘가 어디에 있는지 부르던가 할 게 아냐? 에이.. 아까 물어볼걸 그랬다. 응? 그새 수건을 빨아다 놨네? 흠.. 그래도 시키는 건 제대로 하니까 다행이다..”

탁자 위에 펼쳐진 수건을 접어서 다시 품에 넣은 동천은 누구 부를 사람이 없나.. 하고, 방을 나섰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바깥에서 마루를 닦고 있던 소연을 볼 수가 있었다.

“어? 너, 거기 있었냐?”

“예. 안녕히 주무셨어요?”

소연은 한참 바닥을 닦다가 동천이 보이자 얼른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은 동천은 기분이 좋아서 으쓱! 했다.

“그래. 그보다 나 배고프다. 너 가서, 점심밥 좀 가지고 와라.”

동천이 밥 달라고 하자, 소연은 벌써 점심인가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점심때가 됐네요? 빨리 갔다 올게요.”

소연은 걸레 닦던 손을 치마로 문지른 다음,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그런 소연의 모습을 보던 동천은 자신도 저럴 때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밥은 기다리면 알아서 올 테고… 아! 그 할배가 준 책 한번 읽어볼까?”

점심을 기다릴 때 뭘 할 게 없나, 생각하던 동천은 문득, 항광이 줬던 용독경(用毒經)이란 책이 생각났다. 그 책은 엊그저께 사부가 자신의 몸을 만졌을 때, 용케도 걸리지 않았었다. 책을 가슴 쪽에 넣어뒀었는데, 사부가 그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자신의 방에 들어온 동천은 그때 자신만의 하녀가 들어온다는 생각에 그냥, 책꽂이에 끼워 넣고 지금까지 잊고 있었는데 지금에야 생각이 난 것이었다. 용독경을 꺼내든 동천은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누운 다음 느긋하게 읽기 시작했다.

“나 항광이 남긴다? 지랄하네.”

동천이 앞의 서문을 주절거리며 읽고 있을 때 소연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주인님. 식사하세요.”

“오.. 오. 그래? 빨리 가져와.”

밥이 왔다고 하자, 동천은 읽고 있던 책을 내팽개치고 일어났다. 동천이 일어나서 식탁 위에 앉자, 두 명의 여자 하인들이 밖에 놓여있던 커다란 상에서 음식들을 하나, 둘씩 날라오기 시작했다. 구수한 냄새가 방안에 퍼지자, 동천은 입안에 가득 찬 침을 꿀꺽! 삼켰다.

“와~! 먹자. 와구와구. 꿀꺽! 맛있다.”

걸신이 들렸는지 닥치는 대로 처먹던 동천은 소연이 조용히 나가려 하자, 먹다 말고 소연을 불렀다. 그러나 입안에 음식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말소리가 제대로 안 들렸다.

“어? 어이가(어디가)?. 바아묵으(밥 안 먹어)?”

“예?”

“꿀꺽, 어디 가냐고. 밥 안 먹어?”

“안 먹기는요. 먹어야죠.”

“근데, 왜 나가서 먹냐고.”

소연은 동천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 당연히.. 나가서 먹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래서, 지금 나가서 먹으려고 한 건데….”

소연의 말에 피식 웃은 동천은 소연을 향해, 젓가락 하나를 흔들었다.

“으응.. 그런 것 때문이면, 걱정 마. 그냥 여기에서 나하고 같이 밥 먹자. 나 혼자서 먹으면, 심심하단 말이야.”

동천의 예상치 못했던 행동에 소연은 당황했다.

“아.. 저.. 저기, 저는 하인이라서… 감히 주인님과 한 식탁에서 밥을 먹을 수가 없는데요..”

“하인이라서 그런다고? 헤헤헤..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말고 너도 젓가락 들고 와서 같이 먹자. 난 밥 먹을 때 말상대가 없으면 밥맛이 별로 없는 체질이니까, 주인이 밥을 맛있게 먹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 너로서는 필히 같이 먹어야 하는 거라고.”

“그러시다면야…”

동천이 허락한 거고, 또 일리가 있는 말을 하자, 소연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아서 음식을 집어먹었다. 소연이 앉자, 동천은 기다렸다는 듯이 밥알을 튀겨가며, 질문을 하고 질문을 받았다. 둘이 서로 얘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있는데, 한번 먹었다 하면, 두 그릇 정도를 먹는 동천은 오늘따라 음식이 맛있다며, 한 그릇 더 먹었다.

“우적, 우직. 끄-윽, 잘 먹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호색한 네 두 번째 아버지가 엄마가 죽고 난 후, 삼 년이 흐르자 네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같이 목욕하자고 하면서 은근슬쩍 네 몸을 만졌다.. 이거야?”

소연은 동천의 질문에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얼굴이 벌게졌다. 얼굴의 변화만큼 소연의 대답도 기어들어갔다.

-….. 예에.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했어?”

소연은 깨작거리며 먹던 것을 그만두더니, 그 후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동천은 소연이 다시 말을 이어갈려고 하자, 잘 조리된 오리 볶음을 집어먹으면서 귀 기울여 들을 채비를 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런 아버지의…. 행동이 심해지자, 저는 두려움을 느꼈어요.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석 달 전에 도주를 감행했죠. 그때 보초 아저씨한테 걸렸었는데, 다행히 제가 불쌍하게 느껴졌는지, 그냥 보내주었어요.”

동천은 아까 전에 소연이 혼자 오해를 할 때 육체적인 학대가 있을 거라던 생각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은근히 열이 뻗치는 것을 느꼈다. 어린애한테 그런 짓을 하다니… 갑자기 오리 볶음 맛이 뚝 떨어졌다. 같은 어린애로서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당했냐?”

“예? 그게 무슨…”

“그러니까. 네 두 번째, 애비한테 그렇고 그런 짓을 당했냐고!”

동천의 말이 너무 노골적이었는지, 소연은 아까 붉혔던 얼굴보다 더욱더 얼굴이 붉어지더니 고개를 푹 수그리며,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요…”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됐어?”

동천의 질문에 소연이 다시 말하려는 순간, 밖에서 여자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전주님. 안에 계십니까?”

소연의 말에 신경이 예민해져있던 동천은 분위기가 깨지자, 기분이 상했다. 당연히 동천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이씨, 알면서 왜 물어!”

소연은 동천이 신경질을 내자, 그 모습이 무서웠는지 몸을 움츠렸고, 밖의 여인은 좀 당황한 듯했다. 그 하녀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당한 거니 당황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저.. 전주님께서 찾으시는데요…”

“엉? 사부님이? 에이.. 진작에 말하지. 안내해!”

역천이 찾는다는 말에 동천은 문을 벌컥, 열어 제끼고는 조용히 옆에서 시립하고 있던, 소녀를 밀치고 앞장섰다. 그러다가, 다시 돌아왔다.

“소연아, 그런데 네 방이 어디지?”

“예? 그건 왜요?”

나중에 갔다 와서 소연을 찾아 헤맬 생각을 하자, 소연의 방을 알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동천은 소연이 미적거리자,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지금, 급하니까 왜요. 왜요. 하지 말고 빨리, 내 말에만 대답해!”

“아, 예.. 바.. 바로 주인님 방에서 왼쪽으로 건너뛴 방이 제 방이에요.”

“왼쪽으로 건너뛴 방? 뭔 소리야?”

소연은 동천이 못 알아듣자, 좀 더 자세하게 가르쳐줬다.

“그러니까 주인님 방의 옆에 옆에 있는 방이란 말이에요.”

“이씨. 그러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어야지! 야, 안내해!”

자기 머리 나쁜 건 생각 않고, 소연을 탓하던 동천은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녀에게 빨리 안내하라고 재촉했다. 그 시녀는 동천이 닦달거리자, 겁에 질린 모습으로 황급히 앞서 나갔다.

“잘, 다녀오세요.”

시녀를 뒤따라가는 동천의 뒤에서 소연이 배웅을 하자, 동천은 빼먹지 않고, 인사를 받았다.

“그래. 내가 늦어도 네 방에 꼭 들를 테니까, 딴 데 가지 말고 기다려. 알았지! 꼭이다.”

동천이 소연의 얘기를 갔다 와서 마저 듣겠다는 뜻으로 한 얘기지만, 잘못 이해한 소연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더니 비틀거리다가 옆에 있는 벽에 몸을 기댔다. 무엇이 두려운지 입술을 파르르르.. 떨던 소연은 동천이 사라질 때까지 벽에 기대고 있다가, 이윽고 동천이 안 보이자, 나직이 중얼거렸다.

“늦어도 온다고? 서.. 설마….?”


소연이 또 쓸데없는 상상을 하고 있을 때 꽤 어여쁜 시녀를 쫓아가던 동천은 궁금한 게 있자, 앞서 걸어가고 있는 시녀를 불렀다.

“이봐.”

시녀는 소전주가 갑자기 자신을 부르자, 좀 놀랐었지만 곧이어 진정하고는 차분하게 말했다.

“예? 예.. 말씀하세요.”

“아직도 멀었어?”

시녀는 별 질문이 아니자, 가볍게 웃었다.

“아닙니다. 조금만 더 가면 전주님이 계신 곳이 나옵니다.”

“그래? 수련도 내가 물을 때면 꼭, 그런 말을 하던데.. 진짜 조금만 더 가면 되는 거야?”

시녀는 수련이 누굴까 했지만, 감히 그런 것을 물어볼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동천의 미심쩍어 하는 말에 “예.”라고 대답해준 후, 묵묵히 걸어갔다. 조금, 걸어갔을 때이다.

“이봐.”

“말씀하세요.”

이번에는 한 번 경험이 있어서인지, 아까처럼 놀라는 일은 없었다.

“아직도 멀었어?”

동천의 말에 시녀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물론, 동천의 면전(面前)에서 인상을 찡그린 건 아니었고, 동천의 앞에서 걸어가서 뒤에 있는 동천이 못 볼 것을 알기에 마음 놓고 찡그린 것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나옵니다.”

“야, 그건 아까 했던 말과 똑같잖아. 좀 바꿀 수 없어?”

동천의 말에 시녀는 주먹을 살짝, 거머쥐었다.

“금방 나옵니다.”

“음, 그게 좀 낫다.”

별 쓸데없는 말을 나불거리던 동천은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앞서가던 시녀를 다시 불러 세웠다.

“이봐.”

동천이 또 물어보자, 다음 말을 준비하고 있던 시녀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는 얼른 대답했다.

“곧, 나옵니다.”

“아니, 그걸 물어본 게 아니고, 아까 밥을 하도 많이 먹었더니 똥이 마려 죽겠어. 혹시, 이 근처에 뒷간이 어디 있는지 알아? 나 급하니까 빨리 가르쳐줘.”

순간, 희미한 미소를 띠었던 시녀는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예. 알긴 알지만 전주님께서 기다리시는데요.”

“윽, 나올 것 같애.. 사부님이 급하게 찾으신 거야?”

그러고 보니, 급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동천이 빨리 가자고 닦달거리자, 자신도 모르게 착각한 것이었다.

“아… 소전주님을 급하게 찾으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시녀가 급한 건 아니라는 말에 엉덩이를 위로 치켜세우고 있던 동천은 두 손으로 양쪽 엉덩이를 짓누르면서 다급히 말했다.

“야! 생각이 나니까.. 나.. 나올 것 같아. 빠.. 빨리 가자. 얼른!”

동천이 얼굴을 붉히며 재촉하자,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한 시녀는 재빨리 뒷간 쪽으로 안내했다. 마당을 가로질러가자, 얼마 안 있어 동천이 원하던 뒷간이 보였다. 반색을 한 동천은 얼른 문을 열어 제끼더니 ‘쾅!’ 소리가 날 정도로 문을 닫고, 얼른 바지를 까 내렸다.

“부지직!”

“어…. 시원하다…!”

동천의 주위를 함부로 떠날 수 없었던 시녀는 아침에 먹은 음식물이 넘어올 것만 같았다. 소리는 그렇다치고, 시간이 조금 흐르자, 냄새까지 났는데 그 냄새가 썩은 쓰레기에서 나는 냄새보다 더 지독했다. 그녀가 어떻게든 넘어오는 걸 참으려고 쪼그리고 앉아서 호흡을 가다듬었지만, 동천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았다.

“부지지-직!!”

“웁! 우읍… 우웩! 웩-! 으웩!”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하던 시녀는 결국, 아침에 먹었던 음식물을 토하기 시작했다. 이 소리를 동천이 못 들을 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났어?”

“저.. 욱! 우웩… 헉헉,,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침을 잘못 먹었는지…”

잠시 말을 끊었던 시녀는 겨우 진정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속이 울렁거려 토하고 있었어요. 귀에 거슬리셨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냐, 체한 건 어쩔 수 없지. 나도 옛날에 체해 봤는데, 그거 고역(苦役)이더라고, 내가 예전에 세가에서 살 때 미미라는 계집애가 있었거든? 그런데 그 계집애가 어느 날 맛있는 다과(茶菓)를 안 처먹고, 그냥 내비 두고 어딜 잠깐 나가더라고.. 그래서 그 계집애가 왔을 때… 끄-으응! 아….!”

동천이 말하다 말고 또 ‘부지직!’ 소리를 내자, 시녀는 다시 한바탕 토했다. 자기 때문에 토하는 줄도 모르는 동천은 뒷간 안에서 안됐다는 듯이 나직이 혀를 찼다. 그 소리를 들은 시녀는 동천이 자신의 표정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원독(怨毒)에 가득 찬 시선을 보냈다. 그걸 알 리가 없는 동천은 얼굴이 조금 따끔거리자 가볍게 얼굴만 긁고, 다시 볼일에 열중하며 말했다.

“내가 어디까지 말했더라? 음… 그렇지! 그래서 그 계집애가 왔을 때 ‘내 다과가 어디 갔지?’라고 물으면 나는 ‘몰라요’라고 말하려고 내가 그 다과를 몰래 다 먹었었어. 조금 있다가 미미가 오더니 뭘 찾는 듯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시녀는 동천과 얘기도 하기 싫었지만, 자신의 신분상 어쩔 수 없이 동천의 질문에 대답했다.

“모르겠는데요..”

“히히. 당연히 네가 알 리가 없지. 내가 뭐라고 했냐면, ‘뭐, 찾으세요?’라고 물어봤었어. 그랬더니 그 년이 ‘너, 혹시 여기에 놓여있던 다과 못 봤어?’라고 묻더라고, 그래서 내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지. ‘글쎄요.. 저도 여기에 온 지 얼마 안 돼서요…’ 걔 표정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지더라고, 히히히. 그래서 속으로 쌤통이다. 했는데…. 에에엥!”

“부직, 부직, 부직…… 부-웅!”

마지막 한 방울까지, 배출하려는 듯 동천은 최후까지 안간힘을 다 썼다. 힘쓰기 싫어하는 동천이 힘쓰는 일에 이렇게 몰두하는 건 아마, 똥 싸는 일밖에 없을 것이다. 시녀는 다시 토하려고 했지만, 아까 다 토했는지 더 이상 나오는 것은 없고, 헛구역질뿐이었다.

“씨발, 그 년이 뭐라는 줄 알아? ‘동천, 그거 상한 거니까 빨리 찾아봐.’라고 하잖아! 으으으.. 상한 거면 얼른 치워야 하는데, 그 게으름뱅이 년이 그걸 그대로 놔두고 놀러 갔다 온 거였어, 그 년 덕분에 나는 장장 이틀 동안 체해서 밥도 못 먹었었다고. 에이.. 씨발년. 나중에 다시 만나는 일이 생기면 내가 그 계집애의 아가리에 상한 음식을 쏟아붓고 말 테다..”

시녀는 그거, 쌤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몰래 웃음 짓고 있을 때 동천이 시녀를 불렀다.

“이봐.”

“예.. 옛! 무슨 일로…”

그녀는 켕기는 게 있었기 때문에 잔뜩 긴장했다.

“근데. 네 이름이 뭐야? 널 부를 때 자꾸 이봐, 이봐, 하니까 좀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참 빨리도 물어본다.. 꼬맹아…’

순간, 맥이 탁 풀렸던 시녀는 대답을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얼른, 정신을 추슬렀다.

“제 이름은요.. 매향(梅香)이라고 합니다.”

“응? 매향(梅香)이라고? 이 이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내가 어디서 들었더라?”

매향은 동천이 자신의 이름을 들어본 것 같다고 하자, 자못 궁금했지만 물어볼 생각은 안 했다. 볼일은 다 봤어도 아직, 미진한 감이 있어서 미적거리던 동천은 마침내 매향의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생각났다.

“아.. 맞다. 그 여자, 이름이었지? 히히. 역시 내 머리는 잊어버리는 게 없단 말야? 히히히.”

혼자 좋아하던 동천은 웃다가 다시 볼일에 집중했다. 그러자 말해줄 줄 알고, 다음 얘기를 기다리던 매향은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몰라도 그만이지만, 이상하게도 소전주가 말하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 누군지 듣지 않으면, 밤에 잠을 못 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봐.”

이름이 뭔지 알려달라고 해놓고, 부를 땐 다시 ‘이봐.’라고 불렀지만 동천이 드디어 말해줄 듯하자, 그딴 건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매향의 머릿속엔 동천의 대답만을 원하고 있었다.

“예. 말씀하세요.”

드디어 궁금증을 풀 수 있다는 기대에서인지, 매향의 말소리는 조금, 들뜬듯한 느낌을 주었다.

“닦을 게 없어..”

“예?”

“못 들었어? 여기에 밑 닦을 게 없다고. 빨리, 어디 가서 지푸라기라도 구해와!”

“에에.. 알겠습니다….”

동천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와. 실망했지만, 윗분의 명령인지라 어쩔 수 없이 재빠른 동작으로 근처, 다른 의원이 기거하는 방에 찾아가 사정을 말한 뒤 종이 몇 장을 구해왔다.

“소전주님.. 가져왔습니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있던 동천은 슬슬 다리가 저려오자, 매향이 잠깐 다녀오는 사이가 꽤, 길다고 느껴졌다.

“그래? 빨리 줘. 다리가 슬슬 저려와서 말이야.”

동천이 재촉하자, 매향은 문틈 사이로 가져온 종이를 살짝, 밀어 넣어줬다. 종이가 들어오자, 반가움을 느낀 동천은 서둘러 종이를 여러 번 구긴 후에 즐거운 마음으로 밑을 닦았다.

“덜-컹!”

“아…. 잘 쌌다! 야, 어서 가자.”

동천이 나오자 몸에서 심한 구린내가 났지만, 그런 내색은 못하고 얼른 길을 안내했다. 매향은 동천을 안내하면서 동천이 알았다는 또 다른 매향이 누군지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전주가 기다리는 곳은 다가오고, 소전주는 기분이 좋은 듯 웃기만 할 뿐 얘기는 안 해주자, 하녀가 먼저 물어보는 것은 불경(不敬)인 줄 알면서도 용기를 내서 물어봤다.

“저기.. 소전주님. 제가 실례를 무릅쓰고 감히,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뭐? 물어볼 게 있다고?”

“예.. 이렇게 물어보는 게 불경인 줄 알면서도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보는 게 뭐가 불경인지 이해가 안 갔지만, 물어보는 걸 마다할 동천이 아니었기 때문에 쾌히 승낙했다.

“궁금한 게 있다고? 그럼, 물어봐!”

매향은 드디어 됐다고 내심 쾌재를 불렀다.

“예. 다름이 아니오라. 제 이름과 같은 또 다른 여자분이 계시다고 했는데 그분이 누군지 물어봐도 될는지요.”

“아..! 걔? 히히. 궁금했나 보구나? 좋아. 가르쳐줄게. 또 다른 매향이 누구냐면.. 히히히. 내가 어느 날 술 취한 강 아저씨를 따라, 밤거리를 걸어간 적이 있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어느 계집애가 강 아저씨를 붙잡는 게 아니겠어? 그 계집애가 하는 말이.’아잉~! 멋진 아저씨잉.. 좀 놀다가..!’라고 하더라고, 그러자 아저씨가 그 여자를 밀치더니 ‘안 놀아!’라고, 단호히 말했었어. 그 후로도 끈덕지게 그 여자가 강 아저씨에게 매달리자, 아저씨가 거칠게 밀어 넘어뜨렸어. 그러자 그 여자 옆에 같이 있던 또 다른 여자가 하는 말이. ‘에이 씨발! 얘, 매향(梅香)아! 그냥 가자. 에이.. 재수없게 쓰리.. 뭘 봐! 꼬마자식아!’라고 말하더니 땅에 침을 뱉고는 다른 남자들을 붙잡으러 골목 쪽으로 가더라고. 내가 그 말 듣고 가만히 있었겠어? 그래서 내가 얼른 달려가 멋진 날라차기로 그 년들을 뒤에서 후려친 뒤 아저씨와 같이 도망갔었지. 히히히.. 그러고 보니… 그때를 생각하니까 감회가 새로운데?”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자신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가 하필이면 몸을 파는 홍등가의 계집이라니..

“빨리 가겠습니다.”

“뭐? 아.. 그래. 그러든지.. 네 마음대로 해.”

매향이 동천과 함께 묵묵히 걸어가자, 얼마 안 가서 역천이 있는 곳에 당도할 수 있었다. 문앞까지 바래다준 매향은 문앞에서 멈추더니 공손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전주님.. 소전주님을 모셔왔습니다.”

“그래? 얼른, 들어오라고 해.”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