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5화
슈는 갑자기 이상한 피로감을 느껴왔다. 대전 중에도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긴 했지만 리오에게 공격이 통한 뒤 잠깐 동안 아무것도 하질 않고 서있으니 왼손이 후들거릴 정도로 엄청난 피로를 느꼈던 것이다. 자신의 체력이 이렇게 빨리 떨어졌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근데… 저 사람은 숨이 고르잖아? 어떻게 된 거지?’
리오는 왼쪽 손에 기를 돌리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녀가 본 그대로 리오의 호흡은 평상시 그대로였다. 공격을 받긴 했지만 그렇게 신경 쓰는 표정도 아니었다.
`쉬는 시간도 줘야 제풀에 지치지 않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리오는 씨익 웃었다. 그러고 나서 손가락을 한데 모아서 슈에게 이리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쉬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손짓이었다.
슈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리오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리오는 아까와는 달리 기동성 있게 몸을 움직여갔다. 슈는 왼손으로 나머지 한 자루의 나이프를 빼내었다. 의자에 앉아서 그들의 대전을 지켜보던 헤리온과 슈레이의 눈이 커졌다. 슈의 그 동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저것은…!”
리오는 슈의 몸에서 풍기는 살기에 약간 놀랐다. 아까 전까지 느껴지던 투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죽지 않길 바래요!”
슈는 이렇게 외치며 평소보다 다섯 배의 빠르기로 리오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보통 관중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히 리오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던 슈가 잠깐 사이 리오 가까이에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유혈 십문자진(流血 十文字進)!!”
엄청난 스피드의 연속 공격이 리오의 눈앞에 펼쳐졌다. 보통 사람 같으면 벌써 몸뚱이가 토막 났을 것이다. 그러나 리오는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너무 거친 것 같아 아가씨! 진공 회류참!!”
파아앙!
날카로운 금속성이 관중들의 귀를 진동시켰다. 오른쪽 검이 회류참에 부딪히며 멀리 날아가 버리자 슈는 더 이상 십문자진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슈는 왼쪽 나이프로 재차 공격을 시도해왔다. 리오는 검으로 공격을 받아낸 후 검을 교차시켰다.
“아앗!”
슈는 리오의 검과 교차된 자신의 나이프를 도저히 뽑을 수가 없었다. 마치 접착제에 달라붙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사이 리오는 왼손을 그녀의 복부에 가져가고 있었다.
“잠시 쉬라구 아가씨.”
리오는 슈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은 가까이 가져간 후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왼손에 모아두었던 기를 슈의 복부로 한 번에 방출시켰다.
콰앙!
“꺄아악!!”
폭발음과 함께 슈는 장외로 나가떨어졌다. 장외의 잔디밭에 쓰러진 슈는 복부를 움켜쥐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신관은 호른을 불며 리오의 승리를 알렸다. 리오는 한숨을 내쉬며 경기장에 떨어져 있는 슈의 나이프를 주워다가 쓰러져 있는 슈에게 가져다주었다.
“아팠나? 흠… 내가 기를 과다하게 모은 것 같군…”
슈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야야… 괜찮아요. 참을 수 있어요.”
리오는 슈에게 다가간 후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며 나이프를 돌려주었다.
“역시 호장다운 솜씨였어. 나도 하마터면 질 뻔했다구.”
“흥, 거짓말을 잘하시는군요. 어쨌든 고마워요.”
슈는 한쪽 눈을 감아보이고는 약간 비틀거리며 준비된 의자에 다가갔다. 리오도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자리로 들어갔다.
“어이, 괜찮아?”
슈레이는 슈가 아직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어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아아, 괜찮아. 하지만 마지막의 기술은 정말 아팠어.”
“그 이상한 기술? 맞은 거야?”
헤리온은 매우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기술은 처음 보는 것이어서였다.
“내가 사용하는 기합포와는 약간 다른 것 같아, 가만히 대기만 한 것 같은데 충격과 함께 날아간 걸 보면 말이야.”
“그래…?”
슐턴은 이상할 것이 없다는 표정으로 경기장 건너편에 있는 리오를 바라보았다.
“굉장한 녀석인 건 분명해… 슈의 기술을 간단하게 튕겨냈으니까. 이상한 기술을 쓴다고 해서 신기할 건 없겠지.”
“하긴… 그래.”
리오는 바이칼의 옆에 앉으며 클루토에게 말했다.
“어이, 힘내라 클루토. 호장이라도 그렇게 걱정하지 마.”
클루토는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리오의 말을 듣고는 그를 한 번 쳐다보았다. 리오는 클루토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5급 냉동 계열 주문을 한 번 쓴 후 바로 화염 주문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이길지도 몰라.”
“아… 고맙습니다. 리오.”
클루토는 솔직히 자신이 실수하지 않고 주문이나 제대로 외울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5급 주문을 익히고 있다 하더라도 실전에서 한 번이라도 제대로 써본 일이 없어서였다. 쓸 일도 없었지만.
클루토는 천천히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상대편도 경기장에 들어오고 있었다. 바로 창의 대가라 불리우는 헤리온 제리하만 이었다.
끝쪽이 독특하게 디자인된 창을 가지고 있는 헤리온은 클루토를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평범하게 생긴 소년이었지만 리오와 알고 지내는 꼬마이니 방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6급 이상의 마법은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흠… 이름이 뭐지 마법사?”
클루토는 헤리온이 자신을 마법사라 불러준 것에 대해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은 꼬마'니,
얼간이’니 하면서 자신을 인정해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호장이구나 란 생각을 하며 클루토는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클루토, 클루토 맥브라이드입니다.”
헤리온은 자신의 창을 뒤로 돌리면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난 왕국 장군인 헤리온 제리하만. 잘 부탁한다.”
헤리온은 깨끗하게 빗겨진 자신의 장발을 뒤로 넘기며 서서히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단아한 얼굴 위로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관중석 안에서 여성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수도 안에선 옛날부터 소문이 나있는 그의 미모는 그를 밤에만 돌아다니게 하는 원인을 제공해주었다. 열흘에 한 번 있는 퇴근일도 그만은 불규칙했다. 여성 팬(?)들이 그를 잡고 놔주질 않아서였다. 그래서 결국엔 밤에만 퇴근하는 생활을 가지게 된 것이다.
대신관의 호른 소리와 함께 제2경기가 시작되었다.
무기와 마법의 싸움 – 쌍방의 대결은 태고적부터 결판이 나지 않은 싸움이었다. 위력 면에선 단연 마법이 우세하지만 위력이 증대될 때마다 주문 시의 빈틈도 커지기 때문에 발휘 속도가 빠른 무기류에는 저급 마법만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웬만큼 이름난 전사들이나 기사들은 저급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저급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언제나 근처에 동료들이 있을 경우가 많고 대회가 아니면 일대일의 대결은 거의하질 않기 때문에 그 승패는 최강의 마법사와 최강의 전사가 붙어보지 않는 한 가려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대결은 압도적으로 클루토가 불리한 상황이었다. 상대는 왕국 군대 최강이라 불리우는 7호장의 한 사람 이었고, 상대의 무기는 공격 범위가 넓은 창이었다. 6급의 주문은 한마디로 외울 시간조차 없다고 봐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클루토가 새로 익힌 건 5급 주문만이 아니었다. 적어도 가르쳐준 상대가 리오였으니까.
“하아앗!”
헤리온의 창술은 슐턴의 검술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왕국 안에선 소문난 것이었다. 화려한 움직임과 넓은 범위를 가진 강력한 기술, 한 문장으로 압축한 그의 창술이었다. 헤리온은 기합성과 함께 풋내기 마법사의 눈앞에서 자신의 기술 중 한 가지를 발휘하려 하고 있었다.
“으아앗!”
클루토는 엉겁결에 몸을 웅크렸다. 그는 마법사 모자의 윗둥이 잘려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 사람에게는 적당히라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클루토는 계속되는 헤리온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하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리카는 발을 동동 구르며 클루토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보다 못한 리카가 소리쳤다.
“이봐, 멍청아!! 멀리 떨어져서 주문을 외워야지, 피하고 있으면 뭐해!!”
리카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리오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리오는 편안한 표정으로 팔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었다. 리카의 표정은 더더욱 찡그려졌다.
“하아앗!”
헤리온은 창의 끝을 잡고 있는 오른팔을 길게 뻗어서 클루토의 하단을 노렸다. 클루토는 피하려다가 왼쪽 발목이 걸려서 그만 넘어지게 되었다. 헤리온은 기회를 포착하고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랐다.
“자! 이 시합은 끝이다!!”
그때, 헤리온은 밑쪽에서 강력한 냉기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단순한 냉풍은 아니었다. 아래쪽을 응시한 헤리온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