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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36화


“크오오오-!!”

이리프의 손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뇌전은 벽에 흔적을 남기면서 빠른 속도로 보르가스와 슈에게 다가갔다. 슈는 등을 지면에 붙인 후 양 발을 보르가스의 가슴에 대었다. 그리고 나서 있는 힘껏 보르가스를 멀찌감치 밀어내었다.

“카아아앗!!”

상처 입은 상태에서 슈에게 밀려 땅에 드러눕게 된 보르가스는 일어나려고 몸을 다시 뒤집으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보르가스의 가슴에 박힌 슈의 나이프가 피뢰침의 역할을 하여 이리프가 사용한 스파이가 주문의 뇌전은 나이프를 타고서 보르가스의 몸으로 빠르게 흘러들었다.

“우오오오오오-!!”

보르가스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슈와 이리프의 양동 작전이 효과가 있었는지 보르가스의 몸은 처음에 보았던 기체의 상태로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이윽고 보르가스의 몸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자 슈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리프와 티퍼도 한숨을 길게 쉬었다.

“휴우-. 진짜로 죽을 뻔했어…”

슈는 피곤한 표정으로 벽을 짚고서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으음…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해. 이제 얼마 안 남았다구.”

슈는 땅에 떨어진 자신의 나이프를 주우며 지쳐있는 이리프와 티퍼를 바라보았다.

“쳇, 이렇게 힘이 빠져서야 도착해도 하사바와 싸울 힘이 남아있질 않을 것 같아.”

티퍼는 입버릇대로 내뱉으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슈와 이리프도 지쳐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슈, 아무래도 잠시 쉬어가는 게 어떨까요? 티퍼의 말대로 갔다간 하사바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쓰러질 것 같아요.”

이리프는 슈를 지친 표정으로 쳐다보며 간청했다. 슈는 잠시 가만히 서있다가 땅바닥에 걸터앉으며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도 그럴 것 같아. 휴유…”

슈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 리오였다면 이렇게 지치지도 않을 텐데…”

이리프는 슈의 말을 듣고서 리오에 관한 궁금증을 풀 좋은 기회라 생각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아, 물어볼 것이 있는데요. 리오에 관해서요…”

“뭔데?”

이리프는 생각이 나는데로 리오에 관해서 묻기 시작했다. 어디서 왔는지, 나이는 몇인지, 가족은 있냐는 둥… 하지만 슈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몰라.”

슈의 성의 없는 대답에 이리프는 실망한 듯 이마를 약간 찡그렸고 슈는 옷을 털면서 일어났다.

“자, 계속 가보자.”


하사바는 황급히 자신의 방 안에 있는 비밀통로로 들어가 어두컴컴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부하들에게서 저택의 보초 20여 명의 전멸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었다. 하사바는 방안에 있는 촛불을 켜고서 방 중앙에 준비된 유리구슬 앞에 앉았다.

“타르자! 여보시오 타르자, 내 말 들리시오?”

하사바는 긴장된 표정으로 구슬을 매만지며 타르자의 이름을 불렀다. 곧이어 구슬이 적색으로 빛나며 한 여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바로 타르자였다.

“무슨 일인가, 하사바. 너의 그런 당황한 표정은 처음 보는데 말이야.”

타르자는 미소를 띄우면서 하사바에게 물었다. 하사바는 다급하게 말했다.

“타르자, 조… 좀 도와주시오. 이상한 녀석들이 내 본거지로 쳐들어왔다오.”

“훗, 그런 걸로 나에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다니, 그런 건 네 스스로도 할 수가 있잖아!”

타르자는 얼굴색을 바꾸면서 노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 좀 들어보시오! 오늘 쳐들어온 놈은 괴물이란 말이오!! 빨간 머리의 멍청이인데 보초 20여 명을 쓰러뜨린 뒤 이곳으로 오고 있소!!”

빨간 머리란 소리를 들은 타르자는 얼굴색을 또다시 바꾸며 되물었다.

“빨간 머리? 그 녀석 더벅머리에 장발이던가?”

“그렇소, 알면 빨리 좀 도와주시오!!”

타르자는 벌레를 씹은 표정으로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사바에게 말했다.

“좋아… 그 녀석을 상대해 줄 만한 전사를 소개시켜주지. 하지만 깍듯이 예를 갖춰야만 해. 가스트란 황제님의 직속 부하인 육마왕 중 한 명이니까. 후후후후…”

하사바는 땀을 닦으며 고맙다는 듯 허리를 굽혀 타르자에게 인사를 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계속 길을 가던 슈와 이리프, 티퍼는 거대한 방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몇 분간이나 문으로 걸어가도 문에는 도저히 도착할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는 생각만이 그들의 머릿속에 맴돌 뿐이었다.

“으윽…! 도저히 못 참겠어!!”

티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배를 부여잡고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이리프와 슈도 구토감을 참고 있었지만 뒤쪽에 따라오던 티퍼가 구토를 시작하자 그들도 곧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이, 이러면...!!

슈는 구토를 하면서도 아차 하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사부에게서만 들어오던 중력 함정이었던 것이었다. 그 함정은 다른 함정과는 달리 마법이나 특이한 지형을 이용하는 고급의 함정이다. 사람의 균형 감각기관을 돌아버리게 만들어 제자리에 있으면서도 계속 가는 것과 같이 느껴지게 만든다. 그로 인하여 함정에 걸린 자들의 내용물들을 모조리 밖으로 내놓게 한 후 천천히 죽어가게 만드는 잔인한 함정이었다.

마법을...! 하지만 말을 할 수가.....!!

이리프는 주문을 외우려고 애를 썼으나 입안에 밀려오는 내용물 때문에 도저히 그러할 수가 없었다. 구토 증세가 끝나도 위액들마저 넘어와 한층 더 그들을 괴롭혔다. 점점 몸이 공중에 뜨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

슈는 방안의 배경이 일그러지는 착각을 느끼고 있었다. 점점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

“눈을 감고서 아무 생각도 하지 마! 온몸의 힘을 빼라!”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슈는 혼미한 정신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시각마저 혼미한 상태가 되어서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었다. 단 하나… 붉은색.

“뒤척이지 마, 나까지 혼미해 지니까.”

이리프는 자신의 허리를 무언가가 강하게 조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굉장히 포근한 감촉이 전해져 왔다. 딱딱하긴 하지만 분명히 사람의 살결이었다. 이리프는 안심을 했다. 티퍼는 누군가가 자신의 옷을 끌어올렸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게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자세히 상황을 파악할 생각은 머리에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동시에 자신들이 차가운 무언가에 닿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다.

땅이다.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차가운 땅의 감촉을 고맙게 느꼈다. 이리프는 감각이 되살아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약간 거친 헝겊이 지나다니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녀는 눈을 번쩍 뜨면서 이리저리 눈을 굴려보았다.

“어이, 깨어났냐?”

이리프의 앞에선 미소를 지으면서 망토 자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는 붉은 머리의 사나이가 있었다.

“흠… 검은 화장이 지워졌네, 어쩐다…?”

엘프의 젖빛 살결을 다크 엘프의 검은 것으로 바꾸어주던 이리프의 화장은 입 주위를 시작으로 약간 지저분하게 지워져 있었다. 리오는 이리프의 그 모습이 재미있기라도 한 듯 미소를 계속 띄우며 망토를 수통의 물에 적시어 이리프의 얼굴을 계속 닦아주고 있었다.

“리… 리오…”

이리프는 왈칵 올라오는 눈물을 겨우 참아내었다. 2년 동안 자신에게 이렇게 다정하게 대해준 사람이 없어서였다. 티퍼와 자신은 꽃 한 송이와 부모님들을 위해서 2년이란 세월을 정에 굶주린 채 살아왔었던 것이다. 그때 동안 얼어붙었던 이리프의 마음은 앞에 나타난 한 사나이에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어? 구토 증세가 아직도 있나, 눈물을 글썽이네?”

이리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리오. 그리고…”

리오는 이리프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일어서서 슈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아, 그러면 티퍼 좀 돌봐주겠니? 나 혼자선 약간 벅차구나. 부탁해.”

이리프는 말하려고 했던 것을 집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아직은 모르겠어…’

이리프는 이리저리 생각하며 자신의 옆에 누워있는 티퍼에게 다가갔다.

“어이, 여장군. 괜찮은 거야?”

리오는 슈의 얼굴에 묻은 것들을 닦아내주며 그녀를 깨웠다. 슈는 천천히 눈을 뜨며 아직도 머리가 아픈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아아… 아직도 머리가 아프네요…!”

리오는 안심하면서 그녀의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슈는 머리를 감싸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약간 넓은 복도의 한쪽에 자신들이 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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