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6화
“받아라, 가이라스 왕국의 적!!”
남자는 검을 힘껏 휘둘렀다. 수도원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지 않으려는 듯 눈을 감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파악-!!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원장은 기도를 하면서 천천히 눈을 떴다.
“… 성령의 이름으로… 엇!!”
“확실하군… 그 애들이 말한 게.”
키세레는 자신의 앞쪽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눈을 떴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사나이가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잠시 불어오는 바람에 그의 붉은 머리채가 흔들렸다.
“이, 이 자식!!”
남자는 땅바닥에 쓰러진 채 자신을 쓰러뜨린 사나이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감히 템플 커맨더인 이 저튼님에게 주먹을 휘두르다니…!! 어, 이런!!”
그는 돌아간 투구를 바로 쓰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리오에게 맞은 투구의 부분이 움푹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다른 템플 나이트들은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을 바라보았다.
“자, 너희들의 대장은 저 꼴이 되었다. 유감 있는 사람 빼고는 집으로 돌아가.”
리오는 엄지손가락을 펴고 뒤로 가라는 손짓을 했다. 템플 나이트들에겐 분명히 도발이었다.
“뭐 하냐! 구경하지 말고 빨리 처단해랏!!”
저튼은 아직도 투구를 못 벗고 소리만 질러대고 있었다. 템플 나이트들은 함성을 지르며 리오에게 덤벼들었다. 리오는 피식 웃은 후 키세레를 보았다.
“신성한 수도원에서 피를 보이면 안 되겠죠?”
키세레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디바이너를 꺼내어 템플 나이트들을 향해서 치켜들었다. 템플 나이트들은 잠시 주춤거렸다. 리오는 옆에 있는 나무를 향해 디바이너를 두어 번 휘둘렀다. 나무의 윗둥과 밑둥이 잘라져 커다란 통나무 하나가 완성되었다.
“기대하시라. 후후후…”
리오는 나무의 껍질에 손가락을 박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어, 어떻게…?!”
사람들과 템플 나이트들은 덩치에 맞지 않은 리오의 놀라운 힘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뭐, 뭐하냐! 구경하지 말고 빨리 쳐라!!”
템플 나이트들은 저튼의 고함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리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리오는 기합성과 함께 나무를 달려오는 템플 나이트들에게 내던졌다.
“하아앗!!”
리오가 내던진 통나무는 달려오는 템플 나이트들을 수도원 건물 벽에까지 밀어내었다. 열두 명의 기사들이 통나무 공격을 받고서 혼절했고 나머지는 리오에게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빨리 꺼져라. 더 이상 내 눈에 들어오면 피를 볼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그리고 너희 상관 녀석도 같이 데리고 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템플 나이트들은 리오가 가라는 말을 하자마자 동료들을 부축하고 수도원에서 순순히 물러섰다. 리오는 의외로 말을 잘 듣는 것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일이군… 허이구.”
고래고래 소리치는 저튼을 데리고 마지막으로 떠나는 템플 나이트 중 한 명이 리오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저희들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주십시오.”
“뭐라고?”
말을 마친 기사는 되묻는 리오를 뒤로하고 동료들을 뒤따라갔다. 리오는 팔짱을 끼고서 그 기사가 한 말을 되뇌어 보았다.
“진심이 아니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고 있는 리오에게 원장이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저어…”
리오는 움찔거리며 원장을 바라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소란을 피워서…”
“아닙니다. 소란이라니요… 그보다도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과 키세레 장 수녀님의 목숨을 구해주셔서 뭐라고 보답드려야 할지…”
리오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보답은 필요 없습니다. 귀한 나무 한 그루면 됩니다.”
원장은 나무를 달라는 리오의 말에 다시 한번 물었다.
“나무라니요?”
리오는 아까 전에 자신이 자른 나무를 가리켰다.
“저거 말입니다. 제가 잘랐잖아요.”
원장은 웃으면서 리오에게 더더욱 감사를 표시했다.
“하하하… 어쨌든 정말 감사드립니다. 기사이신 것 같은데 성함이…”
리오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리오, 리오 스나이퍼라고 합니다.”
말을 마친 리오는 키세레가 돌보고 있는 클루토에게 다가갔다. 탈진한 듯 클루토는 땀에 젖어 의식을 잃고 있었다.
“멍청이 녀석… 언제나 목숨을 담보로 하는 녀석이라니까…”
리오의 말을 들은 키세레는 그를 쏘아보면서 말했다.
“멍청이라뇨. 얼마나 훌륭한 소년인데 그러세요!”
“네.”
리오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키세레는 다시 클루토에게 정신을 집중하고 회복 마법인 레이브를 클루토에게 사용했다. 녹색의 빛이 부드럽게 클루토를 감쌌고 클루토는 곧 의식을 회복하게 되었다.
클루토가 눈을 떴을 때 맨 처음 보인 것은 처음 보는 수녀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굉장히 아름다워서 천사가 아닐까란 생각도 해본 클루토였다.
“아…! 기사들은!!”
클루토는 급히 일어서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템플 나이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깨어났구나. 후후훗…”
리오는 클루토의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클루토는 자신의 앞에 리오가 다시 나타난 걸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클루토는 리오를 껴안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징그러워…”
리오는 클루토를 떼어내며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 미안하다 클루토. 내가 멀쩡했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클루토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리오. 그 덕분에 이 수도원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잖아요.”
“……”
리오는 클루토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대며 웃었다.
“그래… 고맙다 클루토.”
키세레는 아직 무엇이 남았다는 듯 리오를 밀치며 클루토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기분, 몸 상태, 타박상이나 다른 데 다친 곳은 없는지 등등이었다. 리오는 가만히 생각하다 배가 고픈 듯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어… 클루토는 아무래도 배가 고픈 것 같은데요… 그렇지 클루토?”
리오는 살짝 클루토에게 윙크하며 말했고 클루토도 맞장구를 쳐주었다.
“예. 배가 약간 고픈데요, 수녀님?”
키세레는 다시 리오를 쏘아본 후 수녀들에게 먹을 것과 그들이 머무를 방을 주도록 원장에게 말했다. 원장은 쾌히 승낙하며 그들을 환영하였다.
방에 들어가기 전. 리오는 리카가 누워있는 병실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키세레가 위생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그가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리오는 씁쓸한 표정으로 키세레를 바라보았다.
“잘났수…”
키세레가 그 말을 들었는지는 아무도 알 길이 없었다. 키세레는 리오와 클루토를 방 앞까지 안내한 후 가면서 마지막으로 말했다.
“안에 욕탕이 준비되어 있어요. 거기서 좀 씻으세요 두 분 다.”
마지막까지 청결함을 중요시 여기는 키세레에게 리오도 결국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방으로 들어선 클루토는 욕탕에 들어가려고 옷을 벗고 있는 리오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리오. 하루 동안 어디에서 뭘 했어요?”
리오는 상의를 벗으며 말했다.
“으응… 마을 근처에서 생각 좀 했단다. 여러 가지로 말이지.”
클루토는 리오의 노출된 상반신을 보고 괜히 움츠러듦을 느꼈다. 굉장히 발달한 근육질이었다. 약간 붉은색을 띤 피부가 한층 더 근육을 강조하고 있었다. 오랫동안의 실전으로 발달된 근육이 틀림없었다. 클루토는 머리를 한 번 흔들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리오도… 슬픔을 느끼나요?”
욕실로 들어가려던 리오는 클루토의 질문에 잠시 멈추었다.
“… 글쎄다.”
잠시 후 목욕을 마치고 나온 리오에게 클루토의 질문 공세는 계속되었다.
“애인 있었어요?”
리오는 아무 표정 없이 질문을 받아 넘겼다.
“아주 오래전에… 애인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좋아하던 여자는 있었단다.”
클루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레나님… 이세요?”
리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지만 이름은 같아. 자자, 이제 더 이상 이런 질문은 하지 말아라.”
리오는 웃으면서 클루토의 질문을 막으려고 했다. 클루토는 알았다고 하면서 리오를 바라보았다. 애써서 짓는 웃음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더 이상 묻지 말자.’
이렇게 생각하며 클루토는 오래간만에 욕실로 향했다. 깔끔한 성격의 클루토였지만 오랫동안의 사건으로 인해 목욕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던 그였다.
리오가 나가면서 다시 받아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며 클루토는 오래간만의 목욕을 즐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