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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2화


“아.. 아.. 더러워.. 더러워…”

소연은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닦고, 또 닦으면서 자신에게 귀를 파라고 했던 동천을 내심 원망(怨望)했다. 아니, 도대체가 평소에 몸을 어떻게 닦고 다니길래 귓밥이 그렇게 크게 나오나 했다. 속이 뒤집어지는 걸 참고, 참았던 소연은 동천이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말이 떨어지자, 얼른 달려 나와 손을 닦았다. 한 번으로는 부족했다. 소연은 벌써 열 번 이상을 닦고 있었다.

“흑흑.. 엄마.. 왜 먼저 가셨어요..”

서러운 마음이 들자, 소연은 울고야 말았다. 이제 소연은 틈만 나면, 울었다.


아침을 먹고 난 동천은 사부의 부름을 받고, 초향을 따라 암약전으로 향했다. 초향을 따라가던 동천은 사부의 방 앞까지 왔는데 매향이 보이질 않자, 궁금한 마음에 물어보았다.

“야, 매향은 어디 있냐?”

매향에게 그런 일이 있은 후로 오늘 동천을 데려올 때, 한참 동안 신경을 곤두세웠던 초향은 소전주의 물음에 화들짝 놀랐다.

“예? 아.. 그게요. 걔가 좀 아파서, 적어도 한두 달은 요양(療養)해야 하기 때문에 일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 걔가 평소에 몸이 안 좋나 보지?”

초향은 제가 그렇게 만들어놓고, 전혀 모른다는 행동을 하는 소전주를 보며 속으로 이를 박박! 갈았지만,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기에 공손히 대답했다.

“그런가 봅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뭐? 아, 그렇지? 사부님, 저 왔어요!”

동천이 들어가자, 차를 마시고 있던 역천은 동천의 목소리에 사랑하는 제자를 반겼다.

“그래, 어서 들어오너라.”

사부의 말에 마주 앉은 동천은 초향이 건네주는 차를 무식하게 한 입에 털어 넣더니, 오늘 자신을 부른 게 무엇 때문인가 싶어, 사부에게 물어보았다.

“사부님, 왜 부르셨어요?”

역천은 제자의 물음에 마시던 차를 내려놓았다.

“안에서 처박혀 있으니, 심심하지? 오늘은 나와 함께 잠시 밖에 좀 나가보자. 가볼 데가 있다.”

“정말요? 나가서 좋긴 좋은데… 어디로 가나요?”

“친구한테 간다.”

역천이 친구라고 하면, 한 명밖에 없었다.

“어.. 저기.. 그게.. 그러니까… 혹시…. 그 친구분의 이름 첫 자가 혈(血) 자로 시작하지 않나요?”

“응? 너 알고 있냐?”

동천은 당황함을 애써 참는 표정이었다.

“아니요! 저는 전혀 몰라요!”

제자를 잠시 쳐다보던 역천은 동천의 행동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것 가지고 뭐라 할 수 없었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래? 그럼, 어서 가자. 가서 밥이나 먹자구나.”

‘어떡하지? 내가 가면 그 늙은이가 다 고발하는 거 아냐? 그렇게 되면, 사부님의 낯을 뵐 면목이 없어지는데…? 어떡한다?’

잠시 생각을 하던 동천은 꾀병을 부려보면, 어떨까 싶었다.

“윽! 아이구.. 배.. 배가…!”

역천이 나가려고 할 때, 동천이 배를 잡고 무릎을 꿇자, 역천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니, 무슨 일이냐? 배가 아프냐? 어디 보자!”

그 말에 동천은 자신이 아주 중대한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흑도 최고의 의원 앞에서 꾀병이 통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역천이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진맥(診脈)을 하려 하자, 기겁을 한 동천은 얼른 말을 돌렸다.

“배가.. 안 아프다….”

“엥?”

역천이 놀란 눈을 하자, 멋쩍어진 동천은 웃으며 얼른 나갔다.

“히히.. 별일 아니에요. 어서 가요.”

동천은 웃으면서 말을 했지만 속으로는 엄청 인상을 구겼다. 동천이 먼저 나가자, 잠시 사태를 돌이켜본 역천은 실소를 하며, 따라 나섰다.

“원.. 녀석도.. 허허!”


“허억.. 허억.. 헉헉…!”

철소는 소교주를 안고, 대려산과 소려산을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넘어왔기 때문에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몸의 피로는 단지 두 개의 산을 쉬지 않고 연거푸 넘어온 것 외에도 엄청난 심력(心力)을 낭비한 것도 커다란 작용을 했다. 혼자 달려온 산관은 철소보다는 덜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둘이 거친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때, 편안히 들려온 냉현은 아까의 일에 대하여 철소에게 물어보았다.

“아까, 그 일.. 어떻게 된 거야?”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철소는 어느 정도 숨을 고르고 나자, 안정을 찾고는 소교주의 물음에 대답했다.

“예. 제 생각에는 죽림(竹林)에 숨어 있었던 건 항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나에게 적개심(敵愾心)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왜 공격을 안 한 거지?”

냉현의 의문에 산관이 끼어들었다.

“제 생각에는…”

“입 닥쳐! 누가 네 생각을 물어봤어?”

냉현은 갑자기 자신과 철소의 대화에 끼어든 산관을 한 대 갈긴 뒤 철소를 쳐다보았다. 아마도 냉현은 철소를 더 신임(信任)하는 것 같았다. 소교주에게 한 대 맞고 의기소침(意氣銷沈)해 있는 산관을 잠시 쳐다본 철소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소교주님에게 환골탈태를 거부하는 의사(意思)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적의 의사를 표명했다고 봅니다만…”

철소의 일리가 있는 말에, 냉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버린 냉현은 그렇다면 자신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 5년 동안 익히기도 싫은 독공을 익혔나.. 했다. 5년의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아까웠다.

5년의 세월이….

“제기랄..”

냉현의 악다문 입에선 낮은 욕지거리가 들렸다. 그 광경에 철소와 산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무슨 말로도 소교주의 마음을 달래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제기랄! 만독(萬毒).. 두고 봐라. 너는 내가 꼭, 없애고야 만다.. 그동안 죽지 말고, 목이나 잘 닦고 다녀라.. 부득…”

항광의 원한(怨恨)과 냉현의 원한이 맞물리자, 그제서야 왜곡된 톱니바퀴는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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