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4화
동천이 마음에 든다고 하자, 종가진은 그제서야 마음을 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전주께서 마음에 드신다니, 제가 안심하고 갈 수 있겠군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역천도 따라 일어섰다.
“아? 벌써 가시게요? 제 미천한 제자 놈 때문에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셨으니, 제가 밖에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하하.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래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사부가 배웅을 하게 되자, 제자인 동천은 어쩔 수 없이 같이 따라가게 되었다. 마차를 타고 바깥까지 배웅해준 역천은 종가진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종가진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서야 발길을 돌려 걸어갔다. 덕분에 동천은 산책 겸 걸어서 약왕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천은 사부가 며칠 전의 이야기를 안 하자,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산삼을 보며, 역천에게 말했다.
“저.. 사부님. 이거, 제가 먹어도 되나요?”
“응? 그거? 당연하지. 그건 네가 선물로 받은 게 아니냐? 그 산삼이 한 육십 년 정도 먹은 거라서, 내공 증진에는 별로 효험이 없겠지만 몸보신하는 데에는 좋을 거다. 생으로 씹어 먹으면 더 탁월한 효능을 느낄 수 있을 거다.”
동천은 산삼을 자기 혼자 다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정말요? 그럼, 이거 제가 먹어요!”
역천은 그게 뭐 대수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래라. 그럼, 이틀 후에 내가 다시 부르마.”
“예! 예! 저 먼저 갈게요! 히히!”
사부가 흔쾌히 허락하자, 신이 난 동천은 집으로 들어와 소연을 불렀다. 자랑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야! 소연아! 이리 와봐!”
방에서 책을 읽고 있던 소연은 동천의 부름에 잽싸게 달려왔다.
“부르셨어요?”
“그래. 히히.. 이리 와봐. 너한테 보여줄 게 있으니까.”
“저한테요? 그게 뭔데요?”
동천은 소연이 다가오자, 짖궂게 웃으면서 자신이 들고 있던 수건말이를 풀어헤쳤다. 조그마한 산삼 세 뿌리가 소연에게 방긋! 웃고 있었지만, 소연은 그게 산삼인지 알 리가 없었다.
“어? 도라지네요?”
자신과 똑같은 말에 동천은 웃어젖혔다.
“응? 히히히! 넌, 어떻게 생각하는 게 나…. 하고는 틀리냐? 으히히히히! 네 눈에는 이게 도라지로 보이냐?”
생각하는 게 자신하고 똑같다고 말할 뻔했던 동천은 그런 사실을 얼른 숨기면서 소연의 무식함을 즐겼다. 그제서야, 자신이 엉뚱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소연은 무안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아아.. 그러면, 이게 인삼(人蔘)인가 보죠?”
이젠 아예 방바닥을 굴렀다.
“인삼? 으헤헤헤! 아이구.. 내 배야.. 히히.. 헥헥. 숨이 다 가쁘네.. 야! 잘 들어. 히히.. 이게 바로 산삼이라고!”
소연은 산삼이란 말에 깜짝 놀라 했다. 인삼은 몇 번 먹어본 적이 있지만 소문으로만 듣던 산삼은 오늘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와아! 정말로 이게 산삼이예요?”
“그래. 이걸 먹으면 불로장생(不老長生)한다는 설도 있다구!”
그냥 동천이 부풀려서 한 말이지만, 소연은 믿는 듯했다.
“정말이에요? 와아.. 그럼. 주인님은 이거 드시고, 불로장생 하시겠네요? 좋겠다…”
“흐응.. 너도 조금 줄까?”
그 말에 소연은 감격의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이에요? 이 귀한 거를…”
동천은 소연이 감격에 겨워 하는 것을 기분 좋게 바라본 뒤, 산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래. 내가 거짓말하는 거 본 적 있냐?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러고는 산삼의 끝에 있는 실뿌리를 살짝 거머쥐고는 거칠게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연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자! 아껴 먹어. 이거 아주 귀한 거라고.”
“이…걸요?”
동천은 소연이 자신이 주는 것을 받지는 않고 빤히 바라보자, 자신이 너무 조금 줬나? 했다.
“음.. 에이! 좋아! 내가 인심 쓴다.”
동천은 아까운 듯이 입맛을 다시며, 뜯겨진 실뿌리 옆에 있는 좀 더 굵은 뿌리를 뽑아서 소연에게 내밀었다. 자기 딴에는 좀 더 큰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소연이 보기에는 두 번째 뽑은 것도 오십보백보였다.
‘이걸 받아야 하나..? 휴… 기대했던 내가 잘못이지….’
“네, 말씀대로 아껴 먹을게요.”
새삼스레 동천의 인격(人格)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래. 그래. 아껴 먹어. 히히히! 너한테 나눠줘서 내가 먹을 것은 별로 없지만, 나도 먹어야겠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지만 소연은 그러려니.. 하고, 한 뿌리 한 뿌리를 아껴 먹으려고 쪽쪽! 빨아 먹었다. 한편, 잔뜩 기대에 부풀어서 한 입 베어 먹었던 동천은 산삼의 쓴맛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인삼조차, 먹어본 일이 없는 동천에게 산삼의 강한 향기는 절로 인상을 찡그리게 하고도 남았던 것이었다. 동천의 인상에 소연은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마음속으로…
“맛있죠? 제가 알기로는 산삼은 향기가 그윽하고, 한 입 베어 물면, 산삼의 즙이 철철! 흘러나온다고 들었거든요? 정말 그래요?”
동천은 산삼을 뱉어내려다가, 소연의 말에 꿀꺽! 삼켰다. 혓바닥이 다 얼얼했지만, 쓸데없는 일에 자존심이 강했던 동천은 전혀 내색 않고, 나머지 반 조각을 씹어 삼켰다.
“으음.. 맛있다… 그런데.. 너, 안.. 안 가냐?”
차츰, 붉어지는 동천의 얼굴색에 소연이 쉽사리 물러날 리가 없었다. 그동안 구박 아닌 구박을 받았던 소연이 아무 뒷탈 없는 복수(?)에 그래요? 하고, 물러날 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정말요? 좋겠다.. 그런데요. 제가 또, 알기로는 산삼은 적어도 한 번에 세 뿌리 이상은 먹어야 제대로 효능을 볼 수 있다고 들었는데.. 제 말이 맞죠? 그렇죠?”
‘으응? 그런 거였나..? 계집애가 아는 것도 많네… 그러고 보니, 그래서 신성이 나한테 세 뿌리를 준 거구나.. 으으.. 혓바닥이 얼얼하지만, 한꺼번에 먹어야 효과가 좋다니까 쓰더라도 먹어야겠다….’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면서 나머지 산삼 두 뿌리를 겨우겨우 입에 쑤셔 넣은 동천의 얼굴은 잘 익은 홍시처럼 붉어졌다. 그러나 산삼을 입에 넣기는 했는데, 어떻게 된 건지 목구멍으로 넘어갈 생각을 안 했다. 애써 넘겨 보려고 했지만, 인상만 찡그려질 뿐 입 안에 든 산삼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맛있죠? 그렇죠?”
소연의 어감에 그제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눈치챈 동천은 지금 지랄하면, 꼴이 말이 아니기 때문에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 뿐이었다. 분노심이 도움이 됐는지, 겨우 삼킨 동천은 잠시 헥헥대다가 입을 열었다.
“그으으.. 마..”
입이 얼얼해서 말이 안 나오자, 쪽팔려진 동천은 얼른 손짓으로 그만 나가보라는 시늉을 했다.
“예? 이제 나가보라고요?”
“그.. 으….. 애..”
동천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게 된 소연은 좋게 말할 때, 그만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 이만 가볼게요. 또 부르실 일이 계시면, 다시 부르세요.”
“가.. 라..”
“예..”
소연이 나가자, 동천은 기다렸다는 듯이 물을 들이켰다.
“벌컥! 벌컥!”
무려 세 컵이나 들이킨 동천은 진땀이 난 목 언저리를 훔치면서 소연이 나간 쪽으로 눈을 부라렸다.
“헥헥… 씨발년. 생각보다… 대가리를 굴리네? 으음.. 아직, 내가 확신이 없기 때문에 참지만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죽을 줄 알아라… 아아! 어어! 에이.. 벙어리가 되는 줄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