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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5화


기분 좋게 복수를 하게 된 소연은 쪼르르 달려가서 수련에게 쫑알대며, 방금 전의 일을 낱낱이 얘기해주었다.

“호호호! 정말이에요? 동천이 얼굴이 빨개져서 가.. 라… 그랬단 말이에요? 호호호! 샘통이다.”

“그래, 얼굴이 새빨개지셔서 그으으.. 마.. 호호! 이렇게 말씀하셨다니까요? 그때,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소연과 수련이 동천의 말투를 따라하며, 즐겁게 말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방울 소리가 들렸다.

딸랑, 딸랑…

“어? 이게 무슨 소리니?”

“앗? 아가씨가 부르시네? 어떻게 된 일이지?”

수련은 사정화가 오라는 신호를 보내자, 깜짝 놀라며 일어섰다. 소연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랐기 때문에 얼떨결에 같이 일어섰다.

“무슨 일이야?”

수련은 소연이 물어보자, 소연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알고 싶으면 따라와요. 내가 가면서 말해 줄 테니까.”

할 수 없이 수련의 손에 이끌려 같이 달려갔다.

“수련아..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호호! 아까 그 방울 소리는요. 저기 저쪽에 혼자 폐관을 하시는 아가씨께서 나를 부르고 싶을 때, 줄을 잡아 흔들면 줄이 거기서 우리 집까지 연결이 되어 있어서 소리가 나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아-아! 그런 거였어?”

사람을 부르는데 이런 방식이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게 된 소연으로서는 마냥 신기했다.

“그래요. 언니도 한 번 달아봐요. 생각 외로 편하다구요.”

“그래? 으음… 그래 볼까?”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로 편할 것 같았다. 부르는 사람도 소리칠 필요 없고, 듣는 사람도 악악! 거리는 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그거 단다고 누가 어쩌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아요. 아마, 동천도 좋다고 그럴걸요?”

소연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래. 그래야겠다.”

“호호. 잘 생각했어요. 어서 가요!”

소연은 수련이 같이 가자는 말에 주춤했다. 자신이 거기에 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교주의 딸이나 되는 엄청난 신분의 여자에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자신이 무턱대고 따라간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응? 난.. 싫어.. 거긴 너 혼자가. 내가 왜 거길 가니? 아마, 아가씨도 내가 너하고 같이 가는 게 싫으실 거야.”

“언니, 무슨 소리야? 나는 지금 아무한테나 가자는 게 아니고, 의자매(義姉妹)를 맺은 언니를 아가씨께 소개시켜 주러 가는 거라고요. 알겠어요?”

“하.. 하지만… 나는….”

소연이 빼려고 했지만, 수련은 강하게 나갔다.

“안 돼요! 같이 가요! 언니가 동천 때문에 나오는 일이 많지도 않잖아요! 아가씨께 내가 전에 말해뒀었는데, 지금이 기회라고요. 알았죠? 빨리 가요!”

“어? 어? 알았어. 갈 테니까.. 좀 천천히 가자.”

“후-훗! 그래야죠. 자, 가요.”

소연은 가기 싫다는 표정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수련도 그 표정을 봤지만 입을 샐쭉 내밀고는 다시 웃으면서 앞장서 나갔다.


“호-오…”

인상을 찡그리지 않는 한, 언제나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나이. 그는 지금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멍한 얼굴로 눈앞의 거대한 성의 문 앞에서 그 위용(偉容)에 놀라, 나직한 탄성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런 사내의 행동에 문 앞에서 무림맹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들 생각으로만.) 문지기들 중 한 명이 멍한 표정의 사나이를 불렀다.

“이보시오. 여기는 당신 같은 사람이 함부로 오는 곳이 아니요. 어서 가시오.”

말을 들은 사나이는 예의 그 멍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예? 그렇습니까?”

사나이의 말에 옆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다른 문지기도 지루한 김에 끼어들었다.

“아! 보면 모르오? 어서 가시오. 괜히 여기에서 얼쩡거리다간 큰일 나니까 어서 가시오!”

“아.. 예. 그렇군요. 큰일을 당하면 안 되겠죠. 하하. 안녕히 계십시오.”

사나이는 문지기들의 말을 믿는 듯했다. 그는 웃음 띤 얼굴로 문지기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떠나갔다.

“쟤 뭐냐?”

처음에 동료에게 물어봤던 사내의 말에 옆에서 지키고 있던 다른 사내가 손을 휘휘! 저었다.

“야, 내비 둬. 저런 자식들 한두 번 보냐?”

“그렇긴 하지만…”

그는 방금 전의 사내를 그냥 돌려보낸 것에 대해 좀 꺼림칙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아가씨.. 아가씨..!”

수련은 자신을 불러놓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정화 때문에 한참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물론, 옆에서 소연도 따라 찾았다. 그래봤자, 조용히 수련을 따라다니는 게 다지만…

“수련아! 혹시 말이야.. 아까 그거. 바람에 줄이 움직여서 소리 난 거 아니니?”

그 말에 수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왜냐하면요. 그 줄을 가운데 구멍이 뚫린 긴 나무 대롱들을 계속 껴 맞춰서, 그 속에 넣었기 때문에 바람의 영향은 절대로 받지 않는다고요.”

“그래?”

“그렇다구요. 줄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까, 어서 아가씨나 찾자구요.”

둘이서 한참을 말하고 있을 때, 사정화가 석문을 열어 젖히고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야.”

그 말에 수련은 깜짝 놀랐다.

“예? 무슨 일이냐니요? 아가씨께서 불러서 왔는데?”

연공을 하고 있을 때 불러서 나왔는데, 이상한 소리를 하는 수련의 모습에 인상을 찡그리려던 사정화에게 수련의 뒤에서 숨어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소연이 보였다.

“난, 부른 적이 없어. 뒤에 있는 애는 누구지?”

“예?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방울 소리가 울렸죠? 저는 아가씨께서 부르신 줄 알고 이렇게 달려왔단 말이에요. 흐응.. 그러면 어떻게 방울 소리가 울린 거죠? 아가씨가 거짓말을 하시는 것도 아닐 테고, 그러면.. 에이.. 귀신은 아닐 테고.. 왜 방울 소리가 울린 거지?”

사정화는 자신의 질문에 계속, 앞에 것만 답하는 수련의 모습에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련.”

“예?”

“뒤에 있는 애 누구야.”

수련은 뒤를 돌아봤다.

“뒤에 누가.. 아…? 깜빡했다. 헤헤.. 소연 언니요? 왜 제가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의자매 맺었었다고.. 바로 그 언니예요.”

자신의 소개가 끝나자, 소연은 고개를 구십도 이상으로 꺾으면서 다급히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약소전주님의 하녀인 소연(小蓮)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불쑥 찾아뵌 것을 너그러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어쨌든 나는 수련 너를 부른 적이 없으니까, 지금 나가서 왜 방울이 울렸는지 가서 알아봐.”

“예. 아가씨.”

자기 할 말을 다해버린 사정화는 볼일 다 봤다는 듯 다시 연공실로 돌아갔다. 소연은 사정화가 돌아가자, 나직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수련아. 나 아까 다리가 후들거려서 혼났었어..”

“왜요?”

“으응.. 아가씨의 얼굴 표정이 무서워서..”

오랫동안 사정화와 대면해온 입장인 수련으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말이었다.

“언니도 참.. 아가씨는 그렇게 무서운 분이 아니라고요. 표정은 저렇게 하고 있지만 마음은 따뜻하고 너그러우신 분이라구요. 아가씨의 하인인 동천을 생각해 보세요. 지금은 하인이라는 말보다 수하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만, 어쨌든 아가씨께서 별말씀이 없으셨으니까 동천은 아직도 아가씨께는 하인이 되는 게 맞을 거예요. 음.. 얘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흘러갔네? 하여튼 걔를 좀 생각해봐요. 그 성격이 더러운 동천이 아직까지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다니는 걸 보면, 아가씨께서 마음이 얼마나 너그러우신지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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