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9화
“랄랄라… 무엇이 나올까나… 히히.”
방 안에 들어온 동천은 가장 눈에 띄는 유혼의 선물인 큼지막한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과연, 무엇이 나올까… 기대에 부풀어서 기분 좋게 상자를 연 동천은 순간, 안색을 굳히더니 그 자리에서 상자 뚜껑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굳은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콰앙!!
문짝이 부서져 나갈 정도로 문을 닫아버린 동천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벽면에 몸체를 기댔다.
“헉.. 허억.. 허억.. 휴우….! 숨 좀 돌리고… 다시 한번 휴우우….! 후우..”
동천이 떨리는 마음을 어느 정도 진정시키고 있을 때, 갑자기 들려온 굉음에 놀란 소연이 허겁지겁 방에서 뛰쳐나왔다.
“주인님! 무슨 일이에요? 예?”
“야! 마침 잘 왔다. 가서 초향이 년 더러 제일 큰 상자를 가져왔던 그 새끼 좀 잡아오라고 해! 얼른!”
“예? 예.. 얼른 갖다 올게요…”
동천의 심상치 않은 모습에 무언가를 느낀 소연은 주인의 명령에 얼른 초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려다.. 말았다.
“아야!! 다리가…”
그제서야 소연의 다리가 다쳤다는 것이 생각난 동천은 무슨 일이 이렇게 꼬이나 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한 동천은 소연을 초향에게 보내는 대신 다른 하인을 시키라고 명령했다. 이에 소연은 자신이 직접 못 가서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물러갔다.
“에이.. 개새끼.. 뭐? 마음에 드셨으면 합니다? 이 새끼 오기만 해봐라.. 감히 나를 살인자로 만들려고 해? 잠깐..?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으니까 다시 한번 들어가 봐? 으으.. 영.. 찝찝한데?”
그 상자에 다시 한번 간다는 게 영 께름칙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천은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문을 살며시 열어 젖혔다. 안 그래도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방안을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걸어가던 동천은 드디어 그 문제의 상자로 다가갈 수 있었다. 동천은 순간적이나마 상자 안을 들여다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소름이 끼쳤던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다시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自尊心)이 허락하지 않는 관계로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꿀꺼.. 억! 뭐, 어때? 죽은 년인데… 그래! 죽었잖아? 괜찮다구! 좋았어! 제가 깨어나겠어.. 뭐하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안을 들여다본 동천은 창백한 얼굴의 미녀가 눈을 감고 다소곳이 누워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으윽..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 창백한 얼굴.. 차가운 동체…. 가만? 차가워?”
순간 동천은 자신이 한 가지를 간과(看過)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앞에 누워있는 창백한 여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해보지도 않고 그냥 눈으로만 보고 죽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내가 시체는 안 만지지만 예쁜 계집애라서 만져본다….”
시체를 만진다는 것에 대해 혐오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면서도 오직 여자가 예쁘다는 그것 하나만으로 떨리는 손길을 가져가던 동천은 눈 딱! 감고 누워있는 여자를 더듬었다. 옷 위에 손을 내려놓은 동천이 갖다 댄 것만으로는 체온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을 뜨고 피부가 드러난 손목을 잡았다.
“윽? 차가워! 히이익..? 역시, 죽은 년?”
차갑고 섬뜩한 느낌에 얼른 손을 뗀 동천은 놀란 마음에 도망가려다가 여인의 허리띠 사이에 끼워진 종이를 보고 주춤했다. 도망갈 때 도망가더라도 그게 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뭐지? 뭔가 쓰여진 것 같은데? 어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서찰을 낚아챈 동천은 궁금한 마음에 얼른 펴보았다.
“어? 나한테 보내는 거네? 어디 보자.. 소전주 연회는 내일 이지만 보시다시피 아주 특이한 선물을 보내기에 눈에 띄지 않게 부득이하게 오늘 보냈소이다. 본좌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아수초혼강시(阿修超魂 屍)가 마음에 들었으면 하오. 응? 아수초혼강시? 뭐야? 강시?? 엥? 죽은 년이 아니라.. 강시( 屍)? 호오~라. 근데.. 강시가 뭐지? 어디서 얼핏 본 것 같은데…?? 그렇지!”
어디서 봤는지 생각이 난 동천은 항광이 준(?) 용독경을 찾아서 얼른 살펴보았다.
“에.. 옳지? 여기 있다. 강시란.. 사람의 혼(魂)을 제압해 만드는 술법(術法)으로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죽은 자로 만드는 방법과 산자로 만드는 방법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죽은 자로 만드는 법은 저능한 술법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산자를 만드는 술법만을 설명하겠다… 음.. 만드는 방법은 넘어가고… 어디 보자.. 응? 여기 있었구만? 이미 완성단계의 강시는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 주인이 확정되지 않은 강시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까지 읽은 동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창백한 소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동천은 그 다음이 궁금해서 다시 책을 들여다보았다.
“에.. 이런 강시를 깨우는 방법은 오직 시전자의 피를 뿌려주는 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피? 시전자의 피니까… 엉? 내 피?”
동천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자신의 피를 강시에게 뿌려주려면 당연한 얘기지만 몸에 칼을 대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픈 건 질색(窒塞)이었던 동천에게는 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말이었다.
“꼭, 그따위 방법으로 해야 하나? 다른 방법은 없나?”
동천은 다른 방법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다시 읽어 내려갔다.
피의 양은 시전자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두 손을 모아서 물을 최대한으로 받을 수 있는 양이라면 무난하다. 강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확실한 요소는 세 가지로 들 수 있다. 첫째, 지금까지 언급했다시피 시전자의 피가 필요하다. 둘째, 강시에게 시전자의 얼굴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셋째, 시전자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려줘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실행해야만 강시는 시전자에게 명(命)이 다할 때까지 충성을 다할 것이다.
그 뒤로 계속 읽어보던 동천은 아무리 읽어봐도 그 얘기가 그 얘기이자 실망한 나머지 책을 덮으려고 했다. 그러나 동천은 뒷부분에서 자신이 원하던 얘기는 아니지만 자못 흥미로운 글을 접할 수 있었다.
대개 무인들이 강시는 아무것도 안 먹는 줄 알고 있지만 그것은 죽은 강시의 경우이고, 산자로 만든 강시는 적어도 이틀에 한 번 정도는 음식을 섭취(攝取)시켜줘야 한다. ‥중략(中略)‥ 거의 반평생을 강시 연구에 몰두한 본좌는 어느 날 한 가지 의문(疑問)을 갖게 되었다. 과연…
여기까지 흥미롭게 읽던 동천은 밖에서 들려오는 소연의 목소리에 읽는 걸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님.. 부르신 분이 오셨습니다.”
이제 와봤자, 별 소용이 없는 인간이었지만 지금 와서 돌아가라고 한다면 이상한 놈 취급을 받기에 동천은 억지로라도 보러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 접견실에 있지?”
“예…”
“알았어. 잠깐 기다려..”
좀 더 생각하고 불렀으면 좋았을 걸.. 후회하는 맘도 없지 않았던 동천은 우선 열려있는 상자 뚜껑부터 닫아놓고,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면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책까지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는지 항광의 용독경은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아직, 다 읽지 못했던 마지막 문구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었다.
과연, 강시는 진화(進化)할 수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