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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1화


“글쎄, 그게 저주(詛呪)라니까요! 갑자기 제 이마에서 피가 흐르더니 강시의 몸에 떨어지더라고요.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느닷없이 저주니.. 강시니.. 이상한 헛소리를 해대자 역천은 자신의 제자가 칼에 베일 때, 어디를 세게 부딪혔나? 했다.

“제자야.. 이게 몇 개로 보이냐?”

역천이 손가락 세 개를 펴고 동천의 앞에서 흔들어 보이자 동천은 사부가 왜 그러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세 개요! 나 참.. 전, 안 미쳤다구요. 제가 여태까지 일어난 일들을 말해주면 제가 안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니까, 잘 들어보세요.”

“그래? 어디 한번 말해봐라.. 어어? 야, 움직이지 마! 터지잖어!!”

횡설수설(橫說竪說).. 두서없이 입을 조잘거리며 설명해준 동천은 역천이 이마를 다 꿰매고 상처를 싸매주자 몇 번 만져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다는 무언의 뜻이었다.

“그래서 제가 여기까지 온 거라구요.”

아직도 긴가민가.. 하던 역천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그런 일이? 유혼님께서 너에게 그런 선물을? 후후후! 재미있구나. 아수혈혼강시(阿修血魂 屍)도 아니고, 아수초혼강시(阿修超魂 屍)를 선물하다니… 아수전(阿修傳)에서도 고작, 열세 구 정도밖에 만들어내지 못한 걸로 알고 있는데..? 짝수로 갖고 있으려고 하나 준 건가?”

그 귀중한 아수초혼강시를 짝수로 갖고 있으려고 줬다니…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역천에게 새로운 강시명(屍名)에 궁금함을 느낀 동천이 질문을 했다.

“어? 아수혈혼강시(阿修血魂 屍)요? 그건 또 뭐예요?”

“응.. 그거? 대체로 강시의 급수는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가장 급수가 낮은 것에 혈혼(血魂)을 붙이고, 두 번째로 강한 것에는 초혼(超魂)을 붙이고, 강시의 역사상 단 두 번밖에 만들지 못했다는 환상의 강시는 불사(不死)라는 칭호를 붙인단다. 뭐, 또 물어볼 게 있냐?”

동천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환상의 강시란 뭔가요?”

“헤헤.. 짜식. 물어볼 줄 알았다. 험험! 잘 들어라. 불사 강시는 방금 말했다시피 단 두 번밖에 만들어지지 않았단다. 그만큼 제조 방법이 어렵다는 것을 뜻하지.. 그런 불사 강시들을 배출해낸 문파는 유령문(幽靈門)과 만독문(萬毒門).. 이 두 문파이다. 그들 문파에게는 불행이고, 다른 타 문파들에겐 다행히도 가뜩이나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不可能)한 불사 강시의 제조 비법이 단절(斷絶)됐다는 것이지.. 헤헤헤! 제자야. 그 불사강시가 얼마나 강했는지 궁금하지?”

“예, 아주 궁금해요.”

역천은 제자가 자신의 말에 호응(呼應)해주자 흥이 났다.

“후후후.. 놀라지 마라. 지금은 사라진 유령문의 불사 강시와 마도 사상 가장 강하셨다고 일컬어지는 천마(天魔) 자강(紫剛)님께서 맞붙은 적이 있었단다. 놀랍게도 그 불사강시는 천마님의 공격을 백여 초나 견디고도 팔 하나만 터졌을 뿐, 그 외에는 별다른 부상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어떠냐? 놀랍지 않으냐? 아무리 강한 자들이라도 천마께서 삼십 초를 넘기신 일이 없는데, 그 불사유령강시(不死幽靈 屍)는 무려 백 초나 견디고도 고작 팔 하나라니…”

아직, 무공의 위력을 별로 실감하지 못하는 동천으로서는 별로 감흥이 오질 않았지만 어쨌든 천마가 그 어떤 고수라도 삼십 초 안에 이겼는데, 불사 강시만은 백여 초를 넘기고도 이길 수 없었다고 하자 대충 그런가 보다.. 했다.

“그래서요? 천마님께서 지셨나요?”

역천은 제자의 질문에 어림도 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흐흐흐.. 그럴 리가 있겠느냐? 그렇게 됐다면, 그분께서 마도 사상 최고로 불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최후의 초식으로 불사 강시를 물리치셨다고 한다. 어떠냐? 이제, 불사 강시의 무서움을 알겠느냐?”

“예.. 뭐, 대충…”

“그래, 그래.. 흐흐흐.. 대충 알아들…? 뭐? 내가 그렇게 자세하게 불사 강시의 무서움을 말해줬는데 대충 알아들었다고? 이런, 이런? 그러면 안 되지!! 제자야.. 다시 잘 들어봐라.”

동천의 말에 어이없어진 역천은 자신이 알고 있는 불사 강시에 대한 이야기를 무려 이각 동안 설명해주었다. 이에 지겨워진 동천은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해서 사부를 칭찬하고 불사 강시는 대단하다는 둥.. 그런 말로 겨우 역천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쏴아아아…..

행여나 사부가 또다시 자신을 부를까 봐 얼른 마차에 올라탄 동천은 집에 가서 항광의 책이나 잘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부가 말해준 것보다 더 많은 지식이 담겨있는 용독경에 대해 새로운 인식(認識)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어휴.. 촉새도 도망가겠네.. 사부님은 다 좋은데 신이 나면 말이 밑도 끝도 없는 게 단점이란 말이야? 다리가 저려서 아주, 죽는 줄 알았네. 음.. 상처는 잘 꿰맸으니… 잠깐? 그런데 진짜로 내 머리의 상처는 어디서 난 거지? 천재인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단 말이야? 도대체가 어떻게 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던 동천은 가뜩이나 상처가 났는데 거기에다 머리까지 굴리면 안 될 것 같기에 포기해버렸다.

“그래. 그거 몰라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니까, 그딴 생각은 털어버리자.”

잠시 동안 동천이 중얼거리고 있을 때, 마차가 섰다. 마부는 마차를 세우고는 우산을 들고 문을 열어주었다.

“소전주님.. 다 왔습니다. 내려오시지요.”

“어? 다 왔어? 햐.. 역시, 마차를 타면 빠르긴 빠르구나…”

아까, 피 흘리고 갈 때는 웬 놈의 마차가 이렇게 느리나 했는데, 느긋하게 오는 지금은 생각 외로 빠르자 동천은 마냥 신기해 했다.

“어서, 내려오시지요.”

한참 생각에 빠져있던 동천은 마부가 자신의 생각을 깨뜨리자 눈살을 찌푸렸다.

“알았어. 보채지 마 임마.”

동천의 심기를 어느 정도 눈치챈 마부는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수그렸다.

“죄송합니다.”

“됐어! 그거나 이리 내!!”

이에 놀란 마부가 자신이 우산을 받쳐주고 가겠다는 것을 억지로 빼앗은 동천은 자꾸 따라오는 마부의 다리를 한대 걷어찬 뒤, 안으로 들어갔다.

“에이.. 개새끼. 내가 들고 가겠다는데 왜 지랄이야? 달라고 하면, 냉큼 주고 제 일이나 할 것이지..”

씨부렁대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동천은 구석탱이에서 하얀 물체가 널브러져 있는 게 보였다. 동천은 자세히 보기 위해 물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어? 소연 아니야? 얘가 왜 여기에 있지?”

잠시 생각해본 동천은 그제서야 소연이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하.. 아까 내가 발로 차서 여기에 굴러왔던 거구나?”

피식! 웃고 난 동천은 쓰러져있는 소연을 안아서 소연의 방으로 데려다주려다가 멈칫했다.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히히히! 좋았어.. 좋아았구!”

연신 웃어댄 동천은 음흉한 웃음을 짓더니 우선 강시가 들어있는 상자 뚜껑을 연 다음에 소연을 안아서 조심스레 상자 안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상자 뚜껑을 반쯤 닫아버렸다.

“헤헤.. 소연아.. 이게 다 네가 쌓은 공덕(功德)이니라.. 히히! 네가 감히 어저께 산삼 가지고 나를 놀려대? 어디 두고 봐라… 킬킬킬…!!”

아주 고소하다는 듯이 웃어젖힌 동천은 큰 소리로 소연을 불렀다.

“야! 소연아! 일어나!! 일어나라고!!!”

신이 난 동천이 아주 큰 소리로 불러댔지만 이미 기절해있는 소연은 깨어날 줄을 몰랐다. 그런 소연의 반응에 잠시 어? 하고 놀랐던 동천은 한껏 숨을 들이킨 후에 다시 고함을 질렀다.

“야-! 일어나! 소연아! 야!! 눈 좀 떠봐!”


쏴아아아아……

“후훗.. 결국에는 비가 오고야 마는군.”

정인은 흐릿하던 하늘이 결국에는 비를 뿌리자 창가에서 서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잠시 감상하고 있었다. 그가 한참을 창가에 서 있을 때, 뒤쪽에서 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조그맣고 앙증맞게 생긴 귀여운 여자애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나이는 한 다섯 살에서 여섯 살 사이로 보였다. 그 아이는 밖을 내다보는 정인에게 살금.. 살금.. 다가간 뒤, 달려들어 허리에 안겼다.

“아저씨이….”

“어이쿠… 우리 화아가 이곳에는 웬일이지?”

정인의 말에 소화(宵華)는 획! 돌아서더니 입을 샐쭉 내밀었다.

“흥.. 아저씨는 화아가 싫은 거지? 그렇지?”

그런 소화의 모습이 귀여웠던지 정인은 뒤돌아있는 소화의 겨드랑이에 양손을 껴 넣어서 자신의 한쪽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하하하! 이 아저씨가 어찌, 화아를 싫어하겠니? 다만 이런 누추한 곳에 아름다운 아가씨께서 왕림(枉臨)하셔서 잠깐 당황해했던 것뿐이었단다.”

“호호.. 정말? 그 말 거짓말 아니지?”

아름답다는 말이 얼마나 좋았던지 소화는 기뻐하며 정인의 얼굴을 껴안고 천진난만(天眞爛漫)하게 웃었다. 아무리 어려도 예쁘다는 뜻을 아나보다…

“그러~엄.. 이 아저씨가 언제 화아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니?”

“아~니! 없었어.”

정인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던 소화는 문득, 정인의 시선이 비가 내리는 바깥으로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저씨.. 비가 좋으세요?”

정인은 감미로운 웃음을 띠었다.

“아니…..”


“헉.. 헉.. 찡~한 년…”

동천은 초인적(超人的)인 힘을 발휘하는 소연의 모습에 지친 기색으로 바닥에 드러누운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무리 소연이 기절했다 쳐도, 귀머거리도 아닌데 이렇게 안 깨어나나.. 했다.

“에이.. 이년아. 자라자.. 내가 졌다.”

똥고집인 동천도 결국은 포기하고야 말았다. 바닥에서 잠시 누워있던 동천은 조금 후에 일어나서 침대로 기어 올라갔다.

“휴.. 힘든 나날이었다. 쟤는 저러다가 언젠가는 깨어날 테고.. 사부님께서 강시는 곧바로 깨우는 것보다 적어도 삼사일 후에나 깨우는 게 더 좋다고 하셨으니 그만두고… 에이! 저녁때까지 잠이나 실컷 자둬야겠다..”

소연은 꿈결인지.. 생시인지.. 전혀 분간을 못하고 있었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느낌.. 그러나 신기하게도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이대로 이 시간이 영원히 지속됐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거기에서 그녀는 죽은 아빠를 보았고, 엄마도 보았다. 그들은 소연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 하하하! 소연아.. 어서 오너라….
  • 소연아.. 잘 왔다. 이 엄마가 진작에 기다리고 있었단다…

한참을 재미있게 놀던 그들은 아쉬운 작별을 하면서 헤어졌다.

  • 잘 가거라. 소연아..
  • 소연아.. 힘내라. 굳세게 살아야 해…

“엄마….”

소연은 아쉽게 헤어지는 엄마를 보면서 깨어났다. 눈에는 어느새 뜨거운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려 있었다. 눈물을 닦으려고 손을 들어 올리려던 소연은 팔에 뭔가 부딪히자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사방이 어두 컴컴하기는 했지만 사물을 구별할 정도는 되었다. 옆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으음…!!”

소연은 다시 꿈나라로 가서 아빠와 엄마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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