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71화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내려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 땀방울이 눈 속에 스며들었다가는 큰일이 벌어졌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으으.. 개놈의 새끼.. 그만하고 눈 좀 감지 그게 뭐 대수라고, 계속 버티고 있냐…..’
아까 전의 눈싸움을 아직까지 하고 있던 두 사람은 햇빛이 동천을 향해 쏟아지면서 서서히 그 양상(樣相)을 드러내고 있었다. 동천의 눈동자는 나직이 흔들리고 있었고, 도연의 눈동자는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지면 안 돼… 절대로….!! 여기서 내가 진다면, 주인으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 저 녀석에게 나의 위대한 의지력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서는 내가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한다…. 크윽! 눈알이 저려온다… 안 돼! 참아야 해! 동천아… 조금만 버텨! 저 녀석은 지금 저러고 있어도 속으로는 나보다 더 미치고 있을 게 분명해! 그래.. 장하다.. 동천아.. 네 사전에 불가능은 없지 않으냐? 동천아……’
그렇게 한참을 속으로 나불대고 있을 때, 예기치 않던 목소리가 동천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제 발이 저린 동천이 뜨끔!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천상의 목소리나 다름없었다.
“동천아, 뭐 하니?”
그 누구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쉰 동천은 활짝 웃으며 뒤돌아보았다. 역시… 자신의 생각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수련이 보였다. 동천은 자신의 약간(?) 충혈된 눈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수련에게 반갑게 다가갔다.
“오오.. 그래. 너, 정말 오랜만이다. 우리가 만난 지 이틀이 넘었지? 그동안 안 보이길래 섭섭해서 죽는 줄 알았다야… 어떻게 왔어? 잠깐! 말하지 마.. 내가 맞춰볼게.. 히히! 나, 보고 싶어서 왔지? 그렇지?”
자신의 물음에 동문서답(東問西答)하는 동천을 말없이 바라본 수련은 원래 저런 이상한 성격이었으니까 자신이 참아줘야지… 하고, 군말 없이 넘어갔다. 동천의 말에 자신이 온 이유가 어느 정도 들어갔다는 것도 수련이 잠자코 넘어가는 데 한몫했다.
“맞았어.. 너한테 볼일이 있어서 온 거야.”
동천은 그것 보라는 듯이 히죽거렸다.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런데 무슨 일이야?”
“별일 아니구, 5일 후가 금요일인 거 알지?”
“응.. 그런데?”
“그때, 아가씨가 잠시 쉬시거든?”
수련의 입에서 아가씨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동천은 알 수 없는 불안감(不安感)을 느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런 종류의 불안감은 거의 들어맞는다는 것에 있었다.
“그…. 그래서?”
“아가씨가 점심쯤에 너보고 오시래.”
“뭐-어? 아가씨가?”
사정화가 오라는 말에 동천의 등에서는 알게 모르게 식은땀이 솟아 올라왔다. 대면(對面)하지도 않았는데도 이렇게 땀이 솟아오른다면, 나중에 가까이서 사정화와 말을 할 때 어떻게 될지는 자명한 일이었다. 천방지축(天方地軸)인 동천이 유난히도 사정화를 무서워한다는 것을 예전부터 눈치채고 있던 수련은 벌써부터 신이 나 있었다. 수련은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가며 다음 말을 이었다.
“그래. 아가씨께서 너 좀 보자고 하셔.”
동천은 사정화가 어째서 자신을 부르는가에 대해서 바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왜 나보고 오라는 거지? 무슨 일이 있었나? 갑자기 내가 보고 싶어진 건가? 아냐… 턱도 없는 소린 말자. 그렇다면.. 왜지? 음… 혹시, 며칠 전이 내 축하 연회였는데, 그때 못 와서 잠시 오라고 하는 건가?’
생각해보니 그도 그럴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대가리를 굴려본 건데 나중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시점에서 그보다 더 타당한 사유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동천의 생각일 뿐이었고, 진실을 알려면 눈앞의 수련에게 들어야만 했다. 동천의 질문은 간단했다.
“왜?”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나중에 동천이 잔머리를 굴려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수련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거짓말이었기 때문에 수련은 아주 능숙하게 말했다.
“나도 몰라. 아가씨께서 느닷없이 너를 불러오라고 하시기에 온 것뿐이야. 그리고 그건, 네가 금요일 날 와보면 알 텐데 뭐가 그렇게 궁금하니?”
찔리는 게 없었다면, 수련의 말을 듣고 그런가 보다.. 넘어갔겠지만 워낙 벌여놓은 일이 많았던 동천은 자신이 벌여놓고 까먹어버린 그 어떤 일이 들킨 건가? 하는 걱정을 했다. 이래서 사람은 나쁜 짓을 하고 살면 안 되나 보다.
“그게.. 궁금하다는 것보다… 에이, 알았어. 모르면 관둬. 내가 금요일에 꼭, 간다고 아가씨께 말씀드려…”
결국, 물어보기를 포기한 동천은 시간도 많이 남아있으니, 그때가면 알아서 대처할 수 있을 거라는 무사안일한 생각을 했다. 일이 잘돼서 속으로 좋아하던 수련은 누군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얼굴에 수많은 멍 자국과 붓기가 절정에 이른 도연을 쳐다본 수련은 그의 강렬한 시선에 눈길을 피했다.
“뒤에… 누구니?”
뒤를 힐끗! 쳐다본 동천은 곧이어 무시하고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어쩐다? 간다고는 했지만 왠지 예감이 안 좋은데… 가지 말까? 휴우.. 안되지. 그랬다가 또, 직살 나게 얻어맞으면 나만 손해니까… 그년은 그렇게도 내가 보고 싶은 건가? 하긴.. 나처럼 잘생기고 천재성이 번뜩이는 아이를 그 누가 좋아하지 않겠어? 그래.. 이게 다 내가 너무, 잘나서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자. 응? 근데, 쟤는 왜 나한테 눈깔을 부라리는 거지?’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수련은 무려 세 번이나 씹힌 자신의 질문에 대해서 무척이나 열받아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동천의 이상한 성격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보고 있는 앞에서 자신의 말이 씹히고 나니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동천.. 이번이 네 번째야… 뒤에 누구지..?”
폭발하려는 화를 애써 억누르며 말하는 수련의 질문에 때맞춰, 다행인지 몰라도 동천의 사색이 끝을 맺었다. 동천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다시 뒤를 힐끗! 쳐다보았다.
“으응.. 얘? 내 새로운 하인이야. 내 말도 안 듣고, 성격도 더럽고, 싸가지가 바가지가 되도록 얻어맞아야 정신을 차릴 놈이라 내가 잠시 손을 봐줬어.”
동천의 성격을 아는지라 동천의 말을 거꾸로 뒤집어본 수련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은 도연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안녕? 들었는지 몰라도 나는 수련(睡蓮)이라고 해.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될 테니까, 잘 지내보자.”
도연은 고개를 살짝 수그렸다.
“예.”
도연의 태도에 머쓱해진 수련은 원래, 성격이 저런가 보다.. 하고, 동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나 갈 테니까 시간 맞춰서 와야 해. 알았지? 나야 뭐, 상관은 없지만 아가씨께서 기다리시면 네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자신이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이유를 콕! 집어서 다시 상기시켜준 수련의 말에, 사정화한테 안 가는 방법을 계속 구상(構想) 중이던 동천은 이내 포기하고야 말았다.
“알았어.. 가라.”
도연도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어? 응.. 잘 있어.”
말을 놓아도 된다고 말하려던 수련은 도연의 싸늘한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서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걸어나갔다.
- 나는 일어났다. 왜? 당연히 깨어났으니까.. 그동안 땅만을 죽어라고 파기만 하던 나는 이틀 동안 팔다리가 쑤시고, 허리가 결리는 바람에 아주 죽는 줄 알았다. 사흘째 되는 날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부님께 달려갔다.
“사부님!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팔, 다리, 허리, 안 아픈 데가 없다구요. 그중에서 허리가 가장 아픈데, 이렇게 가다가는 동 씨 가문의 맥(脈)이 끊길 위험이 있는 거 아닌가요?”
동 씨는 내가 처음이라 당연히 이어져왔던 맥도 없었지만, 나의 항의를 잠자코 지켜보시던 사부님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시더니,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너, 운기조식을 안 했구나?”
“엥?”
후후후…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나는 사부님에게 운기조식의 중요성을 자세히 듣고는 바로 가서 허리띠를 풀고 운기조식을 취했다. 그랬더니.. 오오! 놀라워라. 온몸의 피로가 그냥, 풀리는 게 아닌가? 운기조식의 오묘함을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다시 허리띠를 착용했을 때 이각 동안 쓰러져 있었지만 그게 대수인가? 나는 절대로 쓰러져있는 동안 씨발씨발.. 이라고 중얼거리지 않았다.
“야, 화정아. 너, 거기 있지 말고 내 다리나 주물러라.”
멀찌감치서 나를 쳐다보는 화정이에게 나는 다리를 주무르라고 시켰다. 이틀 전에 생각 없이 명령을 내렸는데, 신기하게도 내 말을 이해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잘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내 다리를 주무를 때는 너무 세게 주물러서 “뚜-둑..” 이라는 소리와 함께 내 무릎 관절이 탈골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때, 다리 병신이 되는 줄 알고 걱정했던 걸 생각하면… 으으.. 지금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다행히도 사부님의 능숙한 솜씨로 인해 금방 뼈를 맞출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히히히.. 다리를 다쳤으니까, 이제 며칠 동안 놀고먹고 할 수 있겠구만? 아이고, 좋아라..’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제자야. 일어나서 걸어 보아라.”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일어난 나는 걷는 데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데에서 충격을 먹었다. 제기랄.. 이래서 너무 솜씨가 좋은 사부가 있는 것도 그리 좋은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고따위로 화정이에게 다리를 그만 주무르라고 하겠는가… 당연히 그만하라고 했다. 내가 미쳤어? 그 고통을 또 당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화정이에게 다리를 주무르라고 시킬 수 있는 이유는 어제 운기조식을 마치고 허리띠를 다시 차서 기진맥진해 있을 때, 화정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동천은 힘이 빠져 침대에 누워있는데, 화정이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어제 일도 있고 해서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자꾸 나 쳐다보면 한 대 친다!”
동천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화정이는 다시 웃었다.
“관둬라. 내가 너한테 너무 무리한 부탁을 했다. 야, 그러지 말고 거기 있는 주전자 있지? 그거 들어봐.”
동천의 시선을 따라 같이 눈길을 돌렸던 화정이는 동천의 시선이 주전자에서 멈추자 따라서 멈추었다. 그리고, 명령이 떨어지자 걸어가서 주전자를 집어 들었다. 동천은 화정이가 자신의 말을 잘 따르는 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거기까지 잘했어. 그럼… 또 그 옆에 있는 컵을 집어봐. 그래. 그거야. 그다음에는 왼손의 주전자를 기울여서 오른손의 컵에 따르는 거야. 옳~지..! 잘한다.. 그만!! 휴.. 넘칠 뻔했잖아. 그다음에는 주전자를 내려놔. 그래. 여태까지 아주 잘했어. 자… 이제부터가 중요해. 그 컵 들고 이리 가져와. 흘리면 안 돼. 좋아.. 이제 네 왼손으로 내 뒷머리를 들어 올리고, 오른손에 들고 있는 컵을 조심스럽게 내 입에다 갖다 대줘..”
결론은 물 따라서 자신에게 먹여달라는 말이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못 알아들을까 봐, 자세하게 설명해준 것이었다.
“꿀꺽… 꿀꺽! 크~어… 좋았어!! 물 맛 좋다. 간만에 말 잘 듣는구만? 그런데 어제는 왜 그따위였냐? 이렇게만 하란 말야, 이 바보야.”
아무리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화정이가 이해를 한다 해도 말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데 똥고집이었던 동천은 어제 일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화정이에게 다시 안마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민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동천의 고민은 끝났다.
“흐흐흐… 화정아. 가서 소연이 좀 불러와라.”
동천은 음흉스러운 표정으로 명령을 내렸다. 말을 알아들었는지 횡.. 하니 나갔던 화정이는 재빠르게 소연을 안고 들어왔다. 당연히 소연이가 지랄했음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꺄-악! 뭐 하는 거야! 놔! 내려달라고…”
“야, 조용히 해! 이놈의 계집애가 목청은 커 가지고…”
동천의 고함에 소연은 찍! 소리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소연은 동천의 얼굴 표정을 슬그머니 보면서 화정이에게 말했다.
“화정아.. 내려줘….”
소연이가 화정이의 품에서 내려오자 동천은 소연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야, 지금 이곳에 있는 남자 하인들 전부 대기시키고, 뼈를 잘 맞추는 의원 하나 내 방으로 데리고 와.”
소연은 주인의 명령에 아무런 토도 달지 못하고 조용히 나갔다. 간 덩이가 붓지 않은 이상 동천이 인상을 쓰고 있는데 뭐라고 말대꾸를 하겠는가… 소연은 동천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가 돼서야 방에 들어왔다. 젊은놈도 같이 따라 들어왔다.
“쟤, 뭐야?”
동천이 시큰둥한 투로 물어보자 소연이의 뒤에 서있던 청년은 얼른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부르심을 받고 온 수련생(修練生) 진악(眞惡)입니다.”
‘짜식.. 인사성은 바르군. 그런데… 수련생? 이게 뭔 소리지? 나는 수련생을 부른 적이 없는데..?’
당연히 동천의 시선은 소연을 향했다. 소연도 동천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눈치챈 것 같았다.
“저기요.. 제가 가보니까, 뼈를 전문적으로 맞추는 분들은 모두 암흑 대련장으로 가셨더라구요. 거기서는 요즘, 교도들의 대련이 한창이기 때문에 부상자가 너무 심해서 그들을 이곳 약왕전으로 데려오기보다는 몇몇 전문적인 의원님들께서 아예 거기로 가셨다고 그러길래.. 그래서, 남아 계시는 분들 중 가장 실력이 높으신 분을 데려오게 된 거예요.”
‘암흑대련장(暗黑對練場)이라고? 음..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좀 더 나은 실력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는 곳.. 일단, 그곳에 들어가면 어느 누가 자신을 지목하더라도 자신은 거부할 의사가 없는 곳이다. 대련장을 열어 놓는 시기는 매년 4월에서 5월로 그동안 실력을 갈고닦은 실력자들이 높은 분들에게 눈에 띄이고 싶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한마디로 동천 같은 부류가 가는 곳이 아닌 지위 상승을 원하는 사람이나, 진정으로 실력을 갈고닦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서 생각을 마친 동천은 진악이라는 수련생을 잠시 아래위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치료를 받을 게 아니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건, 그렇고… 하인들은?”
“말씀대로 대기시켜 놨어요. 지금 마당에서 모두들 기다리고 있는데… 나가보실래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본 동천은 움직이는 데 불편은 없다는 걸 재차 확인하고, 진악이라는 수련생을 다시 쳐다보았다. 진악은 멋쩍은 듯이 소전주의 눈길을 피했다.
“아직, 수련생이라고? 그럼.. 모자란 것이 많겠네?”
진악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진악의 모습에 동천은 마치 그의 속마음을 다 아는 것처럼 눈을 감고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네 맘 다 안다. 네 입으로 ‘저 모자라요..’ 라고 말하기가 좀 그럴 거라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내가 오늘 네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마. 으히히히…’
속으로 마음껏 웃어젖힌 동천은 나중에 속마음이 겉으로까지 드러났다는 것을 알고, 얼른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에.. 어쩌면 오늘 네가 마음껏, 실력을 쌓을 수 있는 날이 될는지 모르겠다. 정신 바짝 차리고 나를 따라와라. 그리고.. 이제부터 소연이 네가 할 일은 없으니까 수련이하고 놀든지 말든지 밖에 나가서 놀아. 화정이는 나를 따라오고..”
이에 알았다는 듯이 소연이는 먼저 밖으로 나갔다. 며칠 전에 수련이한테 놀러 가기로 했는데 이제서야 시간의 여유가 생겨났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