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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72화


사문(四文).

난, 지금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 다가설수록 멀어져만 가는 길…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본다. 계속 걸어가느냐.. 아니면, 이대로 멈추느냐…

아무도 나를 강요할 순 없다. 나는 그런 길을 걸어가고 있다..

『길 위에서…』

사장(四章).

첫 번째 공명(共鳴).. 그는 어이없게도 무공을 모르던 30대의 장한이었다. 그와 완전하게 공명하게 된 시간은…

30년(三十年)…

하지만, 상관없었다.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으므로… 천하(天下)를 주유한 지 어언.. 40년….. 그의 분신(分身)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으로 나의 첫 번째, 공명은 끝났다. 기다리리라….


문을 열고 나가니 수십 명의 인간들이 달박달박.. 개미 새끼들처럼 모여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 동천은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하인들은 동천이 나오자 서로들 잡담을 나누다가 얼른 부동자세(不動姿勢)로 움직임을 급히 멈추었다. 조용해지는 분위기 속에 동천은 이래서 신분의 상승이 좋다고 생각했다.

“잘 와주었다. 오늘 내가 너희들을 부른 것은 내가 그동안 너희들이 얼마나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일을 해왔는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너희들에게 약왕전에서 제일가는 안마사를 준비했으니 기대하기 바란다.”

동천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서로들 눈치를 보면서 저 꼬마 새끼가 왜 저러나… 했다. 자신들이 알기로는 소전주가 절대로 하인들에게 득이 될 행동을 안 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동천의 뒤에 말없이 시립해있는 약왕전의 떠오르는 안마술사 진악의 모습을 보고,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하인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는지 옅은 미소를 띈 동천은 자신의 방과 소연의 방 사이에 있는 빈 방으로 들어가더니 한 사람씩 들어오라고 시켰다. 첫 번째로 들어온 자는 노반(路盤)이라는 사내였다. 그는 처음이라 그런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동천이 보이자 얼른 황송하다는 듯이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 들어오긴 했는데 어떻할깝쇼?”

노반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는지 동천은 싱글벙글하며, 침대 위에 드러눕길 권했다.

“어떻하긴.. 안마를 받으러 왔으니까, 누워야지. 자, 침대 위로 올라가봐.”

노반은 동천의 눈치를 보면서 최대한으로 조심스럽게 자리에 누웠다.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던 노반은 소전주의 말에 얼른 눈을 감았다.

“얌마. 안마는 음미(吟味)를 하면서 받는 거야. 눈 감어.”

이윽고, 다가오는 진악의 손길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 노반이 기대에 차 있을 때, 밖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사내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도저히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야.. 무슨 바람이 불었다냐? 우리들한테 안마를 시켜주겠다니?”

그 말을 들은 옆의 사내는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글쎄.. 낸들 아나? 흐흐.. 그러지 않아도 온몸이 뻐근했었는데, 이 기회에 몸 좀 풀어봐야겠어. 으쌰.. 으쌰….!”

몸을 푸는 사내의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아니면 소전주의 속을 알 수 없는 특혜가 마음에 들었는지 같이 잡담을 나누던 다른 사내가 만족의 웃음을 띠었다.

“하하하! 역시, 오래 살고 볼일이야.”

신나게 떠들어대던 사내들의 웃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이유는 노반이 들어간 방 안에서 귀가 나쁜 황노인 빼고는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소름 끼치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끄아아아–악! 아-악!!”

그 소리에 보조를 맞춰서 동천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야, 이때야. 이제부터 네가 실력을 발휘할 때가 왔다구! 어서, 껴 맞춰봐!”

그리고, 곧이어 당황한 듯한 진악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예? 예.. 알겠습니다.”

“악-! 살려줘유~~! 크에엑!!”

노반의 절규에 찬 비명에 이어서 다시 진악의 떨리는 목소리가 방 안에서 흘러나왔다.

“저.. 저기, 자.. 자.. 잘못 맞췄나 봅니다. 다리가.. 여… 옆으로 뉘여졌는데요?”

“임마! 그럼, 뺐다가 다시 껴봐. 아프다잖아!”

“예.. 예. 이익..!”

“끄엑! 사.. 살… 꼬르르륵….”

결국, 고통에 못 이겨 노반이 거품을 무는 소리가 들리고, “우두-드득..!” 뼈가 맞물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더니 잠시 후에 안부를 묻는 동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밖에서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만 겨우 들릴 정도의 크기로 하인들의 귓가에 들려왔다.

“맞췄냐..?”

“휴우… 그런데로 맞추긴 했는데.. 결과는 이 사람이 걸어봐야 알겠습니다.”

“…….”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던 사람들은 이제 없었다. 다만 알 수 없는 공포감으로 앞으로 겪게 될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는 이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노반이 들어간 방문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을 때, 천천히 방문이 열렸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던 진악은 문을 열고 나와 얼른 이마를 훔쳤다. 그는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하인들의 시선 속에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는 이내, 그런 마음을 털어버리고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꿀…꺽!”

어느 누군가가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듯 절박하게 넘어가는 침 음 소리를 냈다. 그들은 서로들 얼굴만 쳐다보면서 온갖 표정을 다 찡그렸다. 가면 죽는다는 생각이 그들의 뇌리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진악은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소전주의 성격을 아는지라 이대로 시간을 끌었다간 자신이 날벼락을 맞게 되므로 마음을 단단히 고쳐 잡았다.

“어서, 다음 차례인 사람. 나와!”

그러나 처음부터 순번을 정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을 뿐,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악 또한, 지켜보고 있을 처지가 아니라서 할 수 없이 무작위로 뽑을 수밖에 없었다. 진악은 아까 몸 풀기 운동을 하던 한종도(韓鐘逃)를 손가락으로 찍었다.

“너.. 따라와!”

한종도는 눈을 부릅떴다.

“예? 저… 저요?”

눈을 있는 대로 떴다가 곧이어 절망의 표정을 짓는 한종도를 바라보며, 진악은 가차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 마당에 어떻게든 이 위기를 벗어나보려던 한종도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울상을 지었다.

“지.. 진악님. 저는, 집에 거동을 못하시는 불쌍한 노모가 계십니다요. 제발….”

가슴 찡한 한종도의 말을 듣고, 진악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을 때, 누군지는 모르지만 뒤에서 모여있던 하인들 중 하나가 작게.. 그러나 진악의 귀에는 정확히 들릴 정도로 말했다.

“거짓말…”

그걸, 한종도가 못 들었을 리가 없다. 그는 울상을 짓다가 순간적으로 눈을 부라리더니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어떤 새끼야!”

여러 하인들 중에서 제법 힘을 쓰던 한종도이기에 눈을 치켜뜨며 소리치는 그의 앞에서 모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하인 주제에 자꾸만 질질 끌자 화가 난 진악은 험악한 인상을 쓰며 고함을 질렀다.

“이놈! 어서, 들어와!”

그제서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종도는 터덜터덜 걸어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온 한종도는 침대 아래에서 처절한 표정으로 엎어져있는 노반을 볼 수 있었다. 눈알은 돌아가서 흰자위밖에 안 보였고, 입가에는 금세 말라버린 거품 자국이 있었다. 한종도가 노반을 멍청히 보고 있을 때, 동천은 멍해있는 한종도에게 친근한 인상을 지어 주었다.

“어서 와.. 방금 전에 조금, 시끄러웠지? 자자.. 개념치 말고, 침대 위에 올라가서 누워봐.”

조금이 아니라 기둥이 뿌리째 흔들릴 정도로 시끄러웠지만 한종도는 아무 말도 못하고, 긴장을 하며 침대에 누웠다. 잠깐 동안 동천을 실눈으로 쳐다본 한종도는 동천의 뒤에서 차분한 신색으로 서있는 동화정을 볼 수 있었다.

‘저 여자가 소문으로만 듣던 강시인가? 꿀꺽… 고것, 한 입 거리도 안 되겠구만…? 으으.. 만약에 저 강시가 나긋나긋한 손으로 안마를 해준다면 하늘을 나는 기분일 텐데..’

화정이의 미모에 홀려버린 한종도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태마저 잊어먹고 있었다. 그는 안마는 눈을 감고 음미하면서 받아야 한다는 소전주의 목소리에 꿈결에 젖으며 눈을 감았다. 한종도는 눈을 감으려는 순간 소전주가 강시를 쳐다보며 말하는 것을 보았다.

“자.. 화정아. 이번에는 좀 더 힘을 빼고, 하는 거야. 알았지?”

소전주가 하는 말을 들은 한종도는 너무나 기쁜 마음에 지금 자신이 헛것을 들었나? 했다. 주제넘게 생각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었다. 소전주의 말을 제대로 해석했다면 곧이어 아름다운 여자 강시의 손길이 자신의 다리에 묻어날 것이다.

‘으흐흐흐…. 제발, 꿈이 아니기를… 오오..!’

야릇한 생각에 마음속으로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던 한종도는 자신의 다리를 나긋하게 쥐는 부드러운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제발.. 제발.. 꿈이…….’

“우두-드득!”

“악~~! 으악! 내.. 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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