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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00화


그러나 그들과는 반대로 돌아가는 내내 소연은 불안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불안해하다가 마침내 암약전에 도착한 소연은 울상을 지으며 마부에게 동천의 방까지 두 상자를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마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동천의 방 앞에 도착한 소연은 숨을 고르고 난 후 방문을 두드렸다.

“주인님.. 저 왔어요.”

몇 번 인기척을 낸 소연은 안에서 묵묵부답이자 문을 살짝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화정이만 다소곳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이에 안심을 한 소연은 마부에게 상자를 탁자 위에 놓으라고 시켰다. 그다음 마부가 나가자 소연은 자기 혼자 끙끙! 앓다가 붓을 들어 화선지에 글을 써내려갔다. 글을 다 쓰자 작은 상자에 집어넣은 소연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화정이를 꼬옥.. 안은 다음 밖을 빠져나왔다.


소연이 나가고 얼마 안 있어 동천이 밖에서 뛰어놀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히히! 오랜만에 술래잡기를 하니까 재미있다.”

동천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있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즐거워했다. 여름이 밀려오는 시기라 땀이 예상외로 많이 났는지 벽에 걸려있는 수건을 집어서 얼굴이며 목을 훔쳐냈다. 동천은 그러던 중 어디선가 구수한 냄새가 자신의 코를 자극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맡을 수 있었다.

“잉? 이게 무슨 냄새야?”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동천은 탁자 위에 못 보던 상자 두 개가 놓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작은 것보다 큰 것을 선호(選好) 하는 동천은 어느 것 먼저 열어보느냐로 고심할 필요도 없이 큰 상자 위에 놓여진 작은 상자를 내려놓고 큰 상자 뚜껑부터 열었다. 안에는 기름을 한껏 먹은 종이가 무엇을 둘둘 말고 있었다. 저절로 군침이 돌게 하는 기름진 냄새가 동천을 행복하게 했다.

“흠흠..햐아~! 향기 죽이는데? 이게 오늘 저녁인가?”

기름진 종이를 꺼내서 탁자 위에 내려놓고 종이를 풀어헤친 동천은 노랗게 잘 익은 고기를 볼 수 있었다. 혓바닥으로 타는 입술을 간간이 축인 동천은 뒷다리를 잡고 쭈욱.. 찢어 한 입 베어 물었다.

“크으.. 죽인다! 냠냠.. 오호? 이런 신기한 맛이? 이건 여기서 처음 먹어보는 고기 맛인데? 토끼 고긴가? 그건 아닌 것 같고.. 개고기도 아닌데? 뭐지?”

손에 번들거리는 기름을 쪽쪽 빨던 동천은 그냥 먹기로 했다. 사실 동천이 여기 와서 안 먹어본 고기 종류(種類)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라 그런지 매일마다 그의 밥상에는 다른 고기를 올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자연히 주방장은 고심했고 별의별 고기를 다 갖다 바쳤다. 그러다가 쥐고기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걸 줬다가 걸리면 죽는 날이기에 지저분한 동물들은 빼놓고 대신 날마다 양념을 다르게 해서 올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런 이유로 쥐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는 동천에게 쥐고기는 새로운 맛을 주었던 것이었다.

“끝내 주는데? 이거 내일 아침에도 다시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야겠는걸? 으적으적..”

마침내 살이란 살은 전부 깨끗이 발라 먹은 동천은 배가 터질 것 같자 혁대를 느슨히 풀어놓으며 트림을 했다.

“끄-윽! 음.. 맛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포만감에 젖어있던 동천은 그제서야 또 다른 상자에 눈길을 주었다. 고기 기름이 묻어있는 손을 자신의 옷자락에 문질러 닦아낸 동천은 상자를 집어 들어 천천히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검은 가죽과 그 가죽 위에 잘 접혀진 서찰이 들어있었다.

동천은 서찰을 펴서 읽어 보았다.

  • 존경하는 주인님께 소연이가…-

주인님, 지금 이 글을 의아한 마음으로 보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도저히 주인님 앞에서 이 말을 드릴 수가 없기에 글로 적어 간접적으로나마 말하려 합니다. 지금 읽고 계시는 종이 아래에 있는 가죽을 보셨겠지요… 그걸 한 번 펴 보시기 바랍니다.

“응? 이걸 말하는 건가?”

동천은 소연의 글대로 서찰을 우선 내려놓고 안에 들어있는 시꺼먼 가죽을 들어 올려 펼쳤다. 동천은 가죽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가죽이라 처음에는 이게 뭘까? 하고 한참 고민을 했다. 그런데 대가리 부분을 보고서야 그게 쥐의 가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천은 깜짝 놀라 내팽개쳤다.

“윽! 이 싸발년이 이 더러운 걸 나한테 펼쳐보라고 해? 이 계집애 오기만 해봐라! 으으..”

동천은 얼른 나가서 물에 손을 씻었다. 다시 들어온 동천은 글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에.. 어디였더라..? 아하? 여기구나?”

아시겠죠? 예. 바로 쥐가죽이에요. 원래는 주인님의 부탁대로 죽은 쥐를 가져다 놓아야 하지만 제가 잘못해서 부득이하게 쥐의 가죽과 밑에 있는 큰 상자의 쥐고기를….

‘쥐고기? 큰 상자에 있는 게… 에.. 그러니까, 그게 쥐고기라면…..’

“팔랑…”

동천의 손아귀에서 서찰이 허무하게 떨어져 내렸다. 아울러 동천의 얼굴도 허무(虛無).. 그 자체였다. 동천의 안색이 서서히 하얗게 탈색 되어갔다.

목젖이 천천히 울리기 시작했다.

“흐-으으윽-!”

격한 숨소리가 동천의 목에서부터 치고 올라왔다. 찢어질 듯이 벌어진 두 눈은 작은 상자를 내려 보았다. 동천은 그걸 부여잡고 지체 없이 내용물을 토해냈다.

“우웩! 우우-욱.. 우워엑-! 개.. 우욱.. 개 같은 년! 웁.. 우웩! 넌, 주.. 죽었다.. 죽었다구!!”

작은 상자 안에 거의 들어찰 정도로 내용물을 게워낸 동천은 헛구역질을 몇 번 해대다가 더 이상 나오는 것이 없자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너무 토악질을 하는 바람에 가슴이 뻐근했던 것이다.

“이년..! 감히, 나에게 쥐고기를 먹게 하다니.. 크윽! 웁! 우엑! 으으 가슴 아파 죽겠네..”

한 번 더 헛구역질을 한 동천은 벌게진 두 눈을 들어 서찰을 마저 읽었다.

가져오게 됐습니다. 부디 온전한 쥐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화내시지 마시고, 쥐가죽을 보시고 그 쥐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화내시지 마세요.

추신: 저 수련이한테 가 있을게요.

글을 다 읽고 난 동천은 고개를 숙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흐흐흐.. 그래. 남은 쥐고기 먹게 해놓고 지는 도피했다.. 이거지? 네가 오래 살고 싶지 않은가 보구나? 킬킬…”

자기가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쳐먹었으면서 모든 책임은 소연에게 전가시켰다. 동천은 쥐고 있던 서찰을 있는 대로 구겼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박박! 찢어 발겼다. 휘날리는 종이 사이로 화정이가 다소곳이 앉아있는 게 보였다.

동천은 화정이에게 다가갔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소연이 그년, 나쁜년이지?”

화정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자신의 말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는 화정이를 못마땅했던 동천도 이번 만큼은 자신의 말에 긍정을 표하는 화정이가 그렇게 이뻐 보일 수가 없었다.

“킥킥.. 그래, 너 아주 착하다. 히히!”

화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동천은 몸을 돌려 자신의 토사물이 담긴 상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작은 상자에는 비릿한 냄새와 진득한 국물(?)에 뒤덮인 고기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걸 보자 다시 토할 것 같았다. 동천은 입을 가리며 상자 뚜껑을 닫았다. 그러곤 밖으로 뛰쳐나갔다. 상쾌한 바깥 공기에 속이 느글거리는 게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동천은 서서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초승달을 바라보았다.

“진정하자. 진정, 진정.. 이는 화부터 낼 일이 아니니까. 우선 냉정하게 사태를 추이(推移)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군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내가 나쁜 놈이라서? 아서라.. 이런 말을 꺼내지도 말자. 나는 깨끗함 그 자체니까. 그렇다면 내가 오늘 액운(厄運)이 끼어서? 그래.. 그것 같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신비한 놈이다. ……. 훗! 썰렁하니 넘어가고… 이 세상은 나로써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똥 싸고 밑을 닦아야 하는데 닦을 게 없는 일.. 산적질 하려고 산에 올라가다가 다른 산적들에게 돈 털리는 일….. 미인 이란 소리 듣고 맞선 보러 갔다가 메주한테 코 꿰인 일.. 바람난 년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는데 알고 보니 지 여편네 이야기였다는….. 등등… 아아~~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그 일들 중에 내가 끼어있다면 나는 손을 놓고 그러려니 해야 하는가… 아니면, 당당하게 맞서야 하는가. 내 성격에 당연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그렇다면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동천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더니 음산한 목소리가 조용하게 주위에 울려 퍼졌다.

“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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