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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70화


에누오는 괴성을 지르며 리오에게 달려들었다. 리오는 꼼짝도 하지 않고 에누오의 공격을 받아 넘겼다. 점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리오는 역시 자리를 이동하지 않고 에누오를 공격했다. 에누오도 쉽게 리오의 공격을 피했다. 키세레는 어째서 리오가 둔한 공격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사실은, 리오가 자리를 이동하며 싸우게 되면 만에 하나 키세레가 에누오의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에누오는 형체가 일정치 않은 기형 생물이다. 어떠한 공격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제기랄!”

리오는 왼쪽 아대로 에누오의 공격을 막아 내었다. 에누오는 리오의 왼팔을 강하게 죄어왔다. 피가 통하지 않는지 리오의 손이 붉다 못해 푸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검을 휘둘러 에누오의 신체를 자른 리오는 이렇게 싸우면 끝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왼팔에 기를 돌리며 시간을 벌었다.

“두고 봐라 이 자식, 끝내주마!”

치고 받으며 왼팔에 기를 다 모은 리오는 왼손으로 에누오의 중심을 쳤다. 리오의 주먹은 깊숙이 들어갔고 빠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리오는 그 상태로 에누오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구워어어어!!”

에누오도 괴성을 지르며 밀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점액 덕분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구석에 에누오를 밀어 넣은 리오는 팔에 모아두었던 기를 팽창시켰다.

“크아아앗!!”

감싸고 있던 에누오의 피부가 밀려나자 리오는 팔을 뽑고 양손에 검을 거머쥐었다.

“죽이진 않지, 이거나 먹어라! 공압파(空壓波)―!!”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에누오를 향해 검을 휘두르자 에누오는 분단되었고 주위의 공기도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검을 휘두를 때 미묘한 손의 움직임으로 대상 주위의 기체 압력을 수십 배로 높여 충격을 주는 고급 기술이었다. 공압으로 인하여 동굴의 벽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리오는 머리를 흔들며 마법 검을 해제시킨 디바이너를 거두었다.

“아앗!”

키세레는 무너져 내리는 돌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그녀의 허리를 리오가 강하게 감싸 안았다.

“뭐하는 거예요! 놔요!!”

키세레가 발버둥 치자 리오는 인상을 찌푸렸다.

“죽고 싶을 정도로 내가 싫은 거예요?”

키세레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리오는 여전히 찡그린 채 위의 구멍을 바라보았다. 그의 점프력이라면 충분히 나갈 수 있는 높이였다.

“쳇,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이 바이칼이면 영원히 이곳에서 에누오나 돌봐주고 있어야 할 거요.”

리오는 투덜대며 자신의 친구 이름을 댔다. 그리고 나서 키세레와 함께 구멍을 가볍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뒤에서 나지막이 에누오의 침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키세레는 걷지도 않고 가만히 바위에 등을 기댄 채 앉아만 있었다. 리오도 옆에 서서 팔짱만 끼고 있었다. 십 분째 둘은 그러고 있었다.

“…….”

“후우….”

리오는 호흡을 크게 쉬어 보았다. 아래에서 빠졌던 기를 보충하는 숨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주위가 조용하니 재미가 없었다.

“…미안해요….”

키세레가 나지막이 말했다. 리오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키세레를 쳐다보았다.

“뭐가요? 아, 이곳에 빠진 거요. 그런 일이면 누구나 있을 수 있지요. 클루토 녀석이 안 빠진 게 이해가 안 가네요. 후후후….”

“그런 게 아니에요.”

낮게 깔린 그녀의 목소리에 리오도 웃는 표정을 지웠다. 뭔가 심각한 분위기였다.

“숲속에서 당신이 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저도 알고 있어요. 뭔가 이상했었죠. 젊은 남자가 여자의 자는 모습을 보고서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겠죠. 하지만, 전 그때 수녀였어요. 그리고 그 직업을 좋아했고요. 그 일로 인해서 저는 영원히 수녀를 할 수 없게 되었지요….”

리오는 올 것이 왔다는 듯 눈을 꼭 감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기뻤었다. 해명할 기회가 왔으니…. 키세레는 쉬지 않고 얘기를 계속했다.

“그렇게 해서 전 당신을 속으로 미워하고 있었어요, 저의 유일한 안식처로부터 저를 떼어 놓았으니까요. 그런데, 몇 일 동안 클루토, 리카, 머셀과 같은 아이들이 리오와 행동하는 모습, 그리고 누구를 막론하고 지켜주려는 리오의 모습, 단순한 투쟁 본능일지 모르겠지만 리오는 저를 포함한 모두를 무사히 지켜주었어요. 오늘에야 터놓고 얘기할 수 있겠네요 리오. 사실은 전 당신을…”

“어이, 키세레님. 마지막 말을 하기 전에 잠깐만요.”

리오는 검지 손가락을 펴 보이며 윙크를 했다. 그리고서 얘기를 시작했다.

“만약, 당신이 …일을 당하지 않았다고 확인되었을 때 어떻게 할 거예요?”

“예?”

키세레는 흠칫 놀라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리오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떠날 건가요, 아니면 계속 우리랑 함께 다닐 건가요?”

“무슨 소리죠, 리오?”

리오는 시원하다는 듯 웃으며 그때의 상황을 얘기해주었다.

“모포를 덮고 주무시질 않아서 새벽녘에 키세레의 체온은 정상 이하로 훨씬 떨어져 있었어요. 하지만 당신을 깨우는 건 마음에 내키지 않았어요, 잘 알지도 못하는데. 술도 쓸 수가 없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극단적인 방법을 쓴 거죠. 아, 오해하지는 말아요, 그냥 상체만 안고 있었으니까요. 완전히 벗겨드린 기억은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당신의 심장을 치료하고, 제 망토를 덮어 드렸죠. 그걸로 끝이에요.”

키세레는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자신만이 그런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에 부끄러워졌다. 리오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옆에 애도 있는데 그런… 짓을 어떻게 합니까? 수행이 깊지 않으셨어요, 후후후… 하하하핫…!”

키세레는 리오가 계속 웃자 화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만 좀 웃어요!”

“아, 그리고 원장님께서 낯 뜨거운 부탁을 하셨어요. 그것도 아무 말 않고 당신을 모셔온 이유가 될지도…, 당신에게 좋은 남자를 소개시켜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애정결핍증인가… 뭔가. 키세레님 그런 병도 걸려 있다면서요? 그것도 치료할 겸… 뭐 대충 이런 거예요.”

키세레는 두 손을 모으고 일어서서 리오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리오는 눈을 돌리고 멋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자, 애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어서 가요 키세레.”

키세레는 그제야 뭔가 잊은 것이 생각났다. 에누오에게 쫓길 때 방한복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리오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제기랄, 이쪽으로 와봐요.”

“네?”

“와보라니까요.”

키세레는 조용히 리오의 곁으로 다가갔다. 리오는 망토를 넓게 펼치며 오른팔로 키세레의 어깨를 안았다. 키 차이로 해서 키세레는 리오의 망토 안으로 쏙 들어가는 형식이었다. 키세레는 안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망토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오해하지 말아요, 그리고 그리 더러운 망토도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키세레는 머뭇거렸다.

“뭐해요, 그대로 얼어서 애들에게 돌아갈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망토의 안으로 들어온 키세레는 망토 안이 방한복보다 따뜻한 것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리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유를 설명했다.

“비싼 건 다 그래요.”

둘은 간헐천 지역을 천천히 빠져나갔다. 리오는 언제나처럼 미소만 띠우고 있었어도 키세레는 그에 대한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리오는 사람들을 좋아하나요?”

리오는 키세레가 어지간히 할 말이 없었구나 생각하고 대답해주었다. 마침 그도 심심한 참이었다.

“사람들이라…. 좋아하죠. 싫어할 이유도 없고, 저도 사람이니까요.”

“부모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다시 표정을 풀었다.

“어떻게 생각할 것도 없지요. 사람들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떠한 경우에라도 부모라는 존재는 소중한 것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인간적인 질문은 왜 하는 거죠?”

“아, 그렇다면 죄송해요. 당신과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나 많았거든요….”

리오는 흘끔 하늘을 쳐다보았다. 약간 기분이 이상해서였다.

“리오와 이야기할 시간은 많이 남아 있겠죠. 제가 너무 성급했네요.”

리오는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었다.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는 키세레의 말이 그에게 미소를 띠우게 만들었다. 아마도 키세레란 여성은 그런 이야기를 오랫동안 마음속 깊이 묻어왔을 거라 리오는 생각했다.

“거의 다 빠져나왔네요, 키세레님.”

증기가 옅어지고 있었다. 이제 이곳으로 갈 일은 없겠지 하고 리오는 한숨을 쉬었다.

“어? 저건… 사람들 같은데요?”

키세레의 말대로 뿌연 그림자 네 개가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쪽에서도 리오와 키세레를 보았는지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저 녀석들, 안 갔군… 후후.”


“나온다! 역시!!”

클루토는 주먹을 힘껏 쥐며 뛸 듯이 기뻐했다. 다른 일행도 모두 기뻐했다.

“키세레님! 괜찮아요!”

머셀과 아르만이 리오와 키세레를 향해 뛰어갔다. 키세레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자초지종은 나중에 설명해주지. 그보다도 방한복 한 벌 남는 것 없나? 이대로 둘이 걸어가는 건 좀 불편한데 말이야.”

리오가 눈을 살짝 찡그리며 아르만에게 말했다.

“물론 있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리오.”

아르만은 두툼한 배낭에서 여벌의 방한복을 꺼내어 키세레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섭섭하시진 않아요 리오님?”

리오는 아르만을 보며 낮게 말했다.

“무슨 뜻인가…?”

아르만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키세레는 방한복을 입으며 더욱더 절실히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리오란 남자의 강함… 아마도 물리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강함일까…?’

종족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이상한 힘. 그리고 그들에게 강한 믿음을 주는 육체의 강력함, 자신마저도 그것에 확실히 끌리고 있다고 키세레는 느꼈다. 그녀는 다시 한번 그를 오해한 것에 내심 미안함도 느꼈다.

“자, 마지막 마을이다 친구들! 가자!”

리오는 팔을 힘껏 쳐들며 일행에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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