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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71화


다섯 번째의 드워프 마을에 도착한 일행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드워프 사람들이 오랫만에 찾은 인간을 보러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중에 중년의 드워프 두 명이 일행 속에 끼어있는 아르만을 보고 그에게 달려왔다.

“아르만! 무사히 왔구나 이 녀석!”

흰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는 드워프 남자가 아르만의 어깨를 두드리며 기뻐했다. 아르만은 두 드워프를 보고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 어머니!”

아르만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후 손을 부여잡으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우리는 이 고원에 괴물들이 나돌기 시작한 뒤 너를 영영 못 볼 줄 알았단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 돌아오다니, 꿈만 같구나…!!”

그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아르만을 부둥켜안았다. 아르만도 눈물을 글썽였다.

“손님들이 왔다고…? 뉘신가 이분들은….”

지팡이를 짚고 한 백발의 노인이 드워프 사이에서 나타났다. 드워프들은 그에게 예의를 갖추며 길을 내주었다. 그 노인이 바로 드워프족 족장이었다. 나이는 무려 117세….

리오가 허리를 굽히고 오른손을 가슴에 살짝 대며 예의를 갖추자 다른 일행도 그에 따라 예의를 갖추었다.

“안녕하십니까 족장님. 지나가던 여행객인데 이 마을에서 좀 쉬었으면 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리오의 말에 족장은 주름살이 가득한 눈을 가늘게 뜨며 온화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당연히 허락해 드려야죠. 그 엄청난 괴물들을 물리치시고 여기까지 오신 대단한 분들 이신데요, 허허허….”

살짝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표시를 한 리오는 아르만과 함께 그의 집으로 향했다. 몇 일간 묵어달라는 아르만의 부탁도 있었고 그것이 예의였다.


아르만은 자신의 부모에게 고원에서 있었던 리오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었다. 리오는 미소만 띠운 채 탁자 위에 차려진 음식을 먹고 있었고, 세 명의 아이들은 아르만의 여동생과 함께 드워프족 전통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키세레는 리오의 건너편에 앉아 가만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오오… 정말 대단하신 분이군요, 골렘 일곱 마리와 히드라를 혼자서 물리치시다니, 마치 가즈 나이트 같으시군요!”

리오는 움찔하며 눈을 크게 떴다. 아르만 아버지의 말을 듣고서 다른 사람들도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표정을 바꾸고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제가 가즈 나이트였다면 고원을 간단히 날아서 넘어가지, 힘들게 걸어서 넘어갈 리가 있겠습니까? 전 보통의 기사일 뿐이에요.”

아르만의 아버지도 리오의 말을 듣고서 크게 웃었다.

“하하, 저도 농담입니다 리오님. 제가 가즈 나이트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이 마을에 100년 전 마황제를 물리친 그 가즈 나이트와 같이 싸운 적이 있는 사람 중 유일한 생존자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언제나 그분의 자랑이셨죠.”

듣고 있는 리오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의 속은 뒤틀리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기도 했고 반갑기도 했다.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앞에 놓인 수프를 한 숟갈 떴다.

“그런데, 리오님은 어디서 오셨나요? 복장을 보니 말스 왕국이나 가이라스 왕국의 분은 아니신 것 같은데요.”

아르만의 모친도 예리한 질문을 리오에게 던져왔다. 순간순간 가슴이 뜨끔해왔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키세레도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말스 왕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작은 섬나라에서 태어났지만, 떠돌이 생활을 해서 국적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아르만의 어머니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왔다. 나이가 몇인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기사 작위는 어디서 받았는지 등등…. 거기에 리오는 차례대로 대답했다. 24세에, 가족은 형제 둘, 의형제 한 명에 동생 하나요. 기사 작위는 스승으로부터….

“검은 어디서 얻었습니까? 보통 검은 아닌 것 같던데….”

직업의식이 발동한 아르만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디바이너를 보고 물었다.

“제 스승님께서 주신 기사 자격의 증표이자 마지막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저의 분신이고 전 재산이라 할 수 있지요.”

“형제분들은 뭐하세요?”

“음, 둘 다 자신만의 일을 하고 있지요. 영역은 다르지만 비슷해요. 동생은 놀고.”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아르만 부모의 질문 공세는 끝이 났다. 리오가 곤란한 표정도 지었고 일행들과 아르만이 굉장히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였다. 그들이 안내해 준 방으로 들어간 일행은 침대에 바로 쓰러져 그동안의 피로를 잊고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리오는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족장을 만나기 위해 그의 집으로 향했다. 족장의 집은 약간 허름했으며 집에 딸린 대장간이 리오의 눈에 가장 처음 들어왔다. 계속 사용한 흔적이 있었다. 리오는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족장님?”

곧바로 족장의 증손자로 보이는 아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리오님이신가요?”

리오는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자 약간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들어오라는 말을 하고 리오를 안으로 안내했다. 안에선 족장의 가족들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름대로의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리오가 들어오자 하던 일을 멈추고 그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곧 족장이 방 안에서 나와 리오에게 인사를 했다.

“들어오시지요, 리오님. 오래 기다렸습니다.”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족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저를 알고 계십니까?”

족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림이었다. 리오는 그 그림을 보고서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림 안에선 붉은 머리의 건장한 청년과 에메랄드빛 머리를 가진 미인이 리오를 향해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설마…. 버틀렌…?!”

족장은 입술을 가볍게 떨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그의 주름진 눈엔 눈물이 글썽였다. 리오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100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리오님….”

<버틀렌 크라이브. 드워프 중에서 최고의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으며 현재 족장이기도 한 그는 17세 때 가즈 나이트, 드래곤 로드와 말스 1세 일행을 도와 마황제 가스트란을 쓰러뜨렸던 인물 중 유일한 생존자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제 누님께서 그려주신 이 그림…. 레나님과 리오님의 모습이 담겨 있는 유일무이한 물건이지요. 그림으로만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가 않군요, 허허허….”

“훗, 그림이 아직까지 남아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걸? 아직 색도 다 바래지 않았고 말이야.”

“리오님은 하나도 변하신 게 없으시군요.”

족장의 부러운 듯한 목소리에 리오는 쓴웃음을 지었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네. 입장을 바꿔놓으면 이 직업은 할 일이 못 된다구….”

족장과 리오는 그동안에 쌓였던 얘기를 털어놓으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쯤 지나자 족장이 한숨을 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레나님의 묘지 말입니다….”

리오도 그 말이 나오자 표정을 바꾸었다. 족장은 계속 말했다.

“20여년 전부터 레나님의 영령이 나타나질 않았어요. 그때까지 마을 사람들에게 여신으로 추앙받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셨는데요.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자연히 주민들 틈에서 잊혀져 버리더군요. 오히려 다행인지도….”

리오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서 덤덤히 대답했다.

“환생했나 본데…. 어딘가에서, 어떤 생물로 다시 태어나 있겠지.”

족장은 그때 괜한 이야기를 꺼냈다고 생각했다. 100년 전에 리오에게 닥쳐왔던 그 일을 다시 일깨운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때 족장이 본 것은 가즈 나이트의 또 다른 면이었다. 지나친 정의감에서 온 잔악성… 바로 그것이었다.

“예쁠 거야….”

그 말을 들은 족장은 리오를 바라보았다. 리오는 천정을 바라본 채 족장에게 말했다.

“레나는 무엇으로 태어나도 말이지…. 그 아름다움으로 누군가에게 또 다른 평안함을 주고 있을 거야. 그렇지 않나?”

족장은 리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가 100년 전 리오를 따라다니며 느꼈던 가즈 나이트의 또 한 가지 면이었다.

참 안타까워, 나에게 흘릴 눈물이 없다는 것 말이지. 이미 600년 전에 말라버렸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가끔 만나는 내 형제들도 같은 말을 하더라고. 후훗….

100년 전에 그가 리오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그 말이 다시금 되뇌어왔다. 리오는 족장의 표정을 보고서 아무 얘기나 다시 꺼내었다.

“나, 배고픈데? 식사를 안 하고 나와서 말이지.”

족장은 미소를 다시 띠우며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마침 저도 들지 않았답니다. 같이 드시지요.”

리오도 의자에서 일어서며 씨익 웃었다.

“나 때문에 안 먹은 거 아닌가? 그럼 미안한데…”


식사를 하며 리오는 족장에게 태라트에 관한 일을 물어보았다. 족장은 그에 관해선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항군의 1차 수도 공격이 완전 실패로 끝난 후 태라트님은 몇 안 남은 휘하 장수들과 함께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셨죠. 오신 것도 거의 기적에 가까우셨습니다. 누구와의 전투였는지는 말씀을 안 하셨는데 굉장한 부상을 입으셨더군요. 그 후 흩어진 저항군과 여기저기에 살고 있는 인재들을 모아 다시 한번 수도로 향하셨답니다. 소문에 의하면 현재 저항군 인사들이 많이 잡혀있는 야룬다 요새를 공격하고 계시답니다. 하지만 물자와 병력이 충분치 못해 몇 번의 위기 상황을 넘기고 계시다는군요. 큰일입니다.”

리오는 숟가락을 놓고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그렇게 말스 1세와 성격이 똑같지?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키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걸까?”

족장도 식사를 다 한 듯 물을 마신 후 웃으며 말했다.

“그분의 모습을 보시면 더 놀라실 겁니다. 허허허….”

“흠… 그런가? 그럼, 야룬다 요새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나?”

“고원을 넘어서 보루브 마을을 지나면 바로입니다. 마을에 저항군의 독립 부대가 주둔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있으면 가시는 데 불편함이 없으실 겁니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족장은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대장간으로 걸어갔다. 리오는 그를 따라 대장간 안에 들어섰다.

“죄송하지만 태라트님께 이 검을 전해주십시오. 예전에 급해서 그분께 철검밖에 전해드리지 못했거든요.”

족장은 보자기에 둘러싸인 검을 리오에게 전해주었다.

“봐도 되겠나?”

“당연하지요.”

리오는 보자기를 풀어 검을 들어 보였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수공예품이었다. 은은한 광택이 검신에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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