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73화
리오는 턱을 위로 살짝 올렸다. 위로 가자는 뜻이었다. 마침 구름이 짙게 깔려 있어서 구름 위로 올라가면 비스트 테이머의 눈을 속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저 조련사를 맡아줘.”
리오는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아르만도 있으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일행도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와 드래곤은 곧 구름 위로 치솟아 올라 보이지 않게 되었다. 비스트 테이머는 약간 이상하다는 눈빛을 비추었으나 다시 일행들에게 눈빛을 돌렸다.
“좋아, 너희들은 저 녀석이 내려올 때까지 이 발렌트님이 맡아주마!!”
비스트 테이머 발렌트는 자신의 허리에 준비되어 있는 두 개의 채찍을 꺼내었다. 다른 보통의 채찍보다 약간 길어 보였다. 일행은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 들어 그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발렌트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하아앗!”
파악!
눈 깜짝할 사이에 클루토의 지팡이가 뒤로 멀찌감치 날아갔다. 생각보다 굉장한 솜씨를 가진 사나이임에 틀림없었다. 클루토는 손이 저려왔지만 외우고 있던 스파크의 주문을 계속 외웠다. 그사이 아르만과 리카가 발렌트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먹어라―!!”
아르만은 그의 도끼, 화이어 브레이커를 가볍게 휘두르며 발렌트를 공격했다. 채찍의 약점 중 하나, 근거리에서 상대의 무기 공격을 완전히 방어할 수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거리가 떨어지면 무서운 무기가 채찍이었다.
발렌트는 아르만의 공격을 피하며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그러나 뒤에서도 누군가가 공격을 해왔다. 리카가 어느새 발렌트의 뒤로 돌아간 것이었다.
“이 꼬마가!!”
세 명이 이리저리 공방전을 벌이고 있을 때 키세레는 4급 주문인 [샤이닝 크로스]를 외우는 상태였다. 하지만 실전에서 써본 일이 한 번도 없어서 약간은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위력에 대해 아는 것은 단 한 가지, `세다’는 것뿐….
주문은 당연히 클루토가 먼저 끝났다.
“6급! 스파크!!”
근처에 있는 전기력이 모두 발렌트에게 집중되고, 곧 파지직 소리를 내며 그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몸부림치는 그를 보고 클루토는 됐다는 듯 일행에게 소리쳤다.
“잠시간 움직이지 못할 거예요! 지금 공격해요!!”
그러나 시간은 잠시가 아닌 잠깐이었다. 발렌트는 소리치며 자신을 괴롭히던 전기력을 떨쳐내었다.
“크아아아앗!!”
온몸에서 연기를 뿜으며 발렌트는 눈을 붉혔다. 자신에게 마법을 건 상대가 소년이라는 걸 알고는 굉장히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이까짓 마법으로 나를 건들 수 있을 것 같으냐, 꼬마 녀석!!
하지만 발렌트는 클루토에게 공격할 수 없었다. 아르만과 리카의 협동 공격이 거셌기 때문이었다. 발렌트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한 듯 약해 보이는 리카를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어깨로 밀어붙이는 발렌트를 보고 리카는 몸을 가볍게 날려 그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발렌트는 이 순간을 노렸다는 듯 바로 리카에게 자신의 채찍으로 공격을 가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채찍으로 세 번 공격을 당한 리카는 검을 떨어뜨리고 멀리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다음의 공격 목표는 클루토인 듯 채찍을 휘두르는 찰나. 머셀의 화살이 그의 코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머셀은 다음 화살을 발렌트에게 쏠 준비를 하였다. 발렌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보라색의 호른 하나를 꺼내어 불 태세를 취하였다.
“이걸 불면 근처에 있는 키라버스들이 모조리 이쪽으로 달려온다! 기대해도 좋아, 우하하하!!”
발렌트는 호른을 입에 대었다. 그러나 그는 호른을 불지 못했다.
“윽?!”
그의 눈앞에 거대한 십자가 모양의 섬광이 나타났고 그 빛의 십자가는 발렌트를 감싸 안았다. 폭발하는 듯한 불빛이 일행의 눈을 괴롭혔고 일행은 잠깐 눈을 감아야만 했다. 빛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건 겉옷이 너덜너덜해진 발렌트였다.
“젠장할…! 으윽!!”
그 말을 남기고 발렌트는 의식을 잃었다. 키세레는 이 마법의 위력이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는 듯 눈만 커다랗게 뜨고 있을 뿐이었다. 리카는 아까 전에 받은 공격에 팔을 다쳤지만 다른 곳은 이상이 없었다. 나머지 일행도 모두 이상은 없었다.
“역시, 사람이 많으면 좋다니까.”
머셀은 화살을 다시 넣으며 미소를 지었다. 키세레는 정신을 다시 가다듬고 다친 일행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리오는…?”
드래곤은 가만히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아래는 구름의 바다뿐, 최후를 마치기엔 더없이 좋은 경치였다.
“그건 그렇고, 너희들을 가사 상태까지 몰아넣을 수 있는 존재란 도대체 뭐지? 그게 궁금한데?”
루브레시아 공작을 아십니까…?
리오는 기억을 더듬었다. 자신의 기억 속에는 루브레시아란 이름은 없었다.
“모르는데…, 그놈이 도대체 뭐지?”
4730여년 전에 일이니 모르시는 게 당연하실지도…. 저도 조부님께 듣기만 한 것이지만 믿지는 않았습니다. 루브레시아는 선왕께 반정을 일으킨 마룡 중에 우두머리였습니다. 다른 생물들의 피를 즐겨서 다른 용족들에겐 반감을 많이 사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반정을 일으켜 다른 용족들과 전쟁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세력 비가 1대 7이었으니 이길 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다른 용족들이 자신에게 협조해줄 것이라고 믿었었나 봅니다. 하지만 반정을 일으킨 것 때문에 더더욱 반감을 사고 말았지요. 결국, 그는 수세에 몰렸고 모든 마룡들도 투항하여 자신을 지켜줄 동료는 한 사람도 없이 홀로 남게 된 것입니다.
“별거 아니잖아, 혼자 수세에 몰릴 정도면 강하진 않은 것 같은데…?”
자신의 성이 무너짐과 동시에 그의 피 속에 잠재되어 있던 또 다른 무언가가 발동한 겁니다. 바로 초룡(超龍)이 된 것이지요.
“초룡?”
마룡들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힘이 폭발한 상태입니다. 그 상태면 용제님과 맞설 수 있지요. 그래서 그는 성을 무너뜨리던 용병대 5개 부대를 전멸시키고 드래고니스까지 들어왔지요. 결국 선왕과 1대 1의 대결이 벌어져 그는 봉인을 당한 겁니다. 사지가 잘리고, 날개가 꺾이고, 혀를 뽑혔지요. 폐룡이 된 채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리오는 일이 이상하게 심각해짐을 느꼈다. 가스트란 추종자인 육마왕의 부하 세력도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는데 또 다른 강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그가 나타났다, 이 말이지?”
예, 힘을 반도 되찾지 못했다는데, 드래곤 두 마리는 간단히 이기더군요. 결국엔 이 꼴이 된 겁니다.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푸른색의 에너지 구체가 손바닥 안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자, 이름을 말해라. 바이칼에게 전하면 그 녀석이 너희 가족에게 전해줄 거야.”
감사합니다…. 저는…….
모두는 앉아서 리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클루토와 리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놀고 있었고 아르만과 머셀은 무기에 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키세레는 바위에 기대어 무언가 생각하는 듯했다.
“후우―.”
키세레는 한숨을 쉬었다. 다른 모두는 걱정이 없는 태도였다. 자신만 빼놓고….
“왜 그러세요 키세레님?”
클루토가 명랑하게 물었다. 키세레도 가볍게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냐, 아무것도.”
“리오가 걱정되세요?”
“…….”
키세레는 고개를 돌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클루토는 웃으며 다시 땅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리오는 임자가 있는데요….”
키세레는 움찔했다.
“리오의 궁극적인 목적도 아마 그분을 구하기 위해서일 거예요. 하지만 모르죠, 그분을 좋아한다는 표현을 한 적이 없으니까요. 안아준 적도 없고…, 헤헤. 이건 제 예상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키세레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이상한 점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그녀의 속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정신도 말끔하게 해주는 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쿠우우웅!!
짙게 깔려있던 구름층이 한 줄로 밀려나며 그 사이로 푸른색의 섬광이 잠깐 비추었다. 열 때문에 구름들이 순식간에 기화가 된 것이다.
“어, 눈이네?”
클루토는 이 계절에 눈이 내리는 것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은 내린 후 바로 사라져갔다.
“눈이 아니야 바보야.”
리오가 팔을 주무르며 절벽에서 내려왔다. 일행은 역시 하면서 다시 눈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눈이 아니라니요?”
키세레도 궁금한 듯 물었다.
“용이 죽었을 때 그 시체가 어떤 물질로 변형되며 사라지는 거예요. 인체에는 아무런 해가 없지만요. 꼭 눈처럼 보이지요?”
키세레는 가만히 흰색의 가루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녀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아름답네요….”
그 말을 들은 리오는 피식 웃었다. 그도 잠시간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일행에게 소리쳤다.
“어이, 구경 그만하고 이제 가자고.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어.”
일행은 억지로 몸을 돌려 리오를 따라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리카는 계속 보지 못한 것에 심통이 난 듯 아무 생각 없이 머셀에게 시비를 걸었다. 머셀도 이미 이런 일에는 익숙한 듯 가만히 받아주면서 걸어갔다.
리오 일행 중 아무도 생각해 내지 못한 일이 있었다. 아니, 정리하지 못한 일이라고 해도 옳을 것이다. 옷이 다 타버린 한 사나이가 차가운 돌바닥 위에 누워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