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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74화


저항군과 함께 야룬다 요새로 가고 있던 지크는 잠시 휴식이라는 바이나의 말에 웃으며 열의 뒤쪽으로 걸어갔다. 바이나는 다시 얼굴을 붉히며 그에게 소리쳤다.

“거기 너! 넌 빼고 휴식하란 말이야!!”

지크는 들은 체도 않고 계속 걸어갔다. 바이나가 앞을 가로막고서 삿대질을 하며 소리치기 전까지.

“넌 계속 놀았잖아! 말에게 먹이라도 주란 말이야 말라깽이!!”

지크는 그녀를 슬쩍 돌아서 계속 걸어갔다. 지크의 그러한 행동은 군인들 사이에선 이미 미워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지만 바이나의 눈엔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특히 자신이 말하는 것을 넘기고 지나갈 때….

“야! 내 말 안 들려!!”

지크도 못 참겠다는 듯 돌아서서 바이나를 내려다보았다. 바이나의 키도 여자치고는 컸지만 지크의 키도 꽤 컸다.

“들리니까 소리 좀 지르지 마, 빨간 누나. 계속 소리 지르면 얼굴만 계속 빨개진다구. 그리고 내 이름은 `너’가 아니고 지크야, 알았어?”

“뭐라고!!”

“어, 화났어 빨간 누나?”

바이나는 너무 화가 났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지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크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어깨를 으쓱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아, 이렇게 하면 우리 동네 여자들은 좋아했어. 어이, 빨간 누나, 이리 와 봐.”

지크는 씨익 웃으며 바이나에게 다가갔다.


란지크와 돌격대장 샤먼은 바이나의 걱정을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너무 어린 것 같지 않아요 샤먼?”

샤먼은 터번을 매만지며 란지크를 보았다.

“누구, 바이나 말인가? 실력은 좋잖아.”

“그래도, 19세 밖에 안 됐는데 이 독립 부대 대장에다 전 저항군 부대장 중 한명이니, 그 애에겐 너무 막중한 것이 아닌가 해서요.”

란지크의 우람한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샤먼은 웃었다.

“지금까지 잘 해왔지 않나. 태라트님과 직접 수도까지 갔다 온 호걸일세, 그 애도. 게다가 19세면 우리 부족에선 애가 아니라구.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란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불안한 표정은 지우지 못했다.

“그래도 지크에게 언제나 놀림받는 걸 보면….”

“으아아악!!”

란지크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바이나의 비명 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려왔다. 샤먼은 손을 머리에 가져가며 한숨을 쉬었다.

“…사실, 나도 거기에 대해선 걱정이야….”


“저리 가! 이 야만인!!”

“참나, 이젠 야만인으로 바뀌었군. 좋아 좋아, 이제 나도 흥이다.”

바이나는 돌아서서 어디론가 걸어가는 지크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란지크와 샤먼만이 아닌 다른 병사들까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샤먼이 한 병사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번엔 또 무슨 짓을 했나?”

병사는 웃음을 참아가며 샤먼에게 말했다.

“바이나님 이마에 키스했어요.”

란지크는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는 바이나를 달래면서 그녀를 마차 안으로 데리고 갔다. 란지크도 나오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샤먼은 란지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역시, 애는 애군. 자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슈는 간만의 휴식시간에 오랫동안 감지 못했던 머리를 감고 있었다. 언제나 가지고 다니던 말스 왕국 생상품인 비누로 머리를 감는 걸 그녀는 즐겼다. 한참 비누칠을 할 무렵, 지크가 그녀의 뒤로 다가왔다.

“어, 슈도 머리를 감네요?”

“그럼 안 감나요?”

당연하다는 듯 슈가 말했다. 지크는 슈의 옆에 앉아 그녀가 머리 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슈는 마음에 걸리는 듯 지크를 의식했다.

“뭘 봐요?”

“머리 감는 거요.”

물로 머리를 씻으며 슈가 살짝 웃었다.

“뭐 구경거리라고 봐요.”

지크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예쁘니까요.”

슈는 아무렇지도 않게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며 일어섰다.

“시간 엄청 많네요. 이럴 시간 있으면 바이나하고 놀아요.”

지크도 일어서며 양 손을 머리 뒤에 가져갔다. 떫은 표정이었다.

“벌써 혼이 났는걸요.”

슈는 그를 보고서 언제나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자유스러움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의 특징이기도 했다.

“리오나, 당신이나.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네요.”

지크는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아 넣으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

“리오는, 이상한 믿음과 박력으로 사람을 끌고, 또 당신은 자칭하는 것처럼 바람과 같은 자유분방함으로 사람들을 휘어잡고. 당신 가족들은 다 그런가요?”

지크는 그 말을 듣고서 씁쓸히 웃었다.

“형은 안 그래요. 저와는 반대로 보수적이거든요. 별로 활달하지 못해요.”

“그래요? 형은 어디에 있는데요?”

지크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긴 스포츠 머리를 흔들었다.

“이곳하고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좀 먼 곳이에요. 알아두면 편리해요, 나중에 만나면 전화… 아니 얘기라도 하시던가. 이름은 슈렌이죠. 불의 슈렌이라고….”

지크는 말하면서 멀리 보이는 광활한 밀밭을 보았다. 누가 키우는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자라나는 것이다. 하지만 땅들이 언젠가부터 왕실의 땅으로 묶여져 있어서 사람들은 이 비옥한 토지를 썩혀두고만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지크에겐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슈, 저기 저거. 안 보여요?”

지크의 턱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슈는 시력을 집중했다. 하지만 밀들이 움직이는 것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뭐가요?”

“이 정도의 바람으로 저 밀들이 열을 지어서 움직일 리가 없잖아요.”

슈는 다시 한번 자세히 보았다. 지크의 말대로 밀들이 규칙적인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오신 것 같은데요, 내가 다 처리해볼 테니 슈는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 있어요. 아무래도 저번에 만난 암살자들이 떼거지로 온 것 같아요.”

지크는 말을 마치고 조용히 밀밭 쪽으로 몸을 숙이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슈는 그가 걱정되는 듯 물었다.

“괜찮겠어요?”

지크는 말없이 모습을 감추었다. 슈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도 신경을 집중하며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칫! 멍청한 말라깽이!!”

바이나는 아직도 얼굴을 붉힌 채 마차 안에 쭈그려 앉아 화를 내고 있었다. 갑자기 기습을 당한 것에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잇, 왜 이러지!”

한 번 묶어 내린 자신의 머리를 세차게 쥐어박으며 머리를 정리하려는 바이나는 조용히 무릎을 모으고 앞을 바라보았다. 깊이 생각할 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그녀의 행동이었다. 그때―

사삭.

갑자기 들려온 나지막한 소리에 바이나는 귀를 세웠다. 드래곤 킬러에 손을 가져갔다.

“기척이… 안 느껴지는데?”

바이나는 검을 놓고서 다시 쭈그려 앉았다.

“바람 소리겠지….”


노란 복장의 사나이가 옆의 사나이에게 물었다.

“이봐, 두 명 모두 잠입에 성공했나!”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보초들은 둔한 녀석들이라 그리 걱정하시진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봐, 저리로 가!”

이상한 말도 섞여 들려왔지만 노란 복장의 사나이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계집애만 없애면 야룬다 요새는 충분히 방어할 수 있게 된다!”

“그 계집애가 그렇게도 무섭습니까?”

“그 계집은 보통이 아니야! 태라트와 같이 있을 때는 특히…. 엄청난 지휘력을 발휘하게 된다. 눈에 가시야!”

“오, 그래? 열아홉밖에 안 됐는데?”

황색 복장의 사나이는 깜짝 놀라면서 자신의 부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부하는 목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대신 얘기를 받아준 건 금발의 괴 사나이였다.

“윽! 넌 누구…?!”

사나이는 황색 복장 사나이의 목을 틀어 잡았다.

“말해주기 싫은데?”

“자, 잠깐…?!”

푸웃!

그 사나이의 장도에 의해 황색 복장의 암살자 역시 목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다. 금발의 사나이는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자신의 파란색 바지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 밀밭에도 거름은 줘야겠지? 후후후…. 자, 빨간 누나를 구하러 갈 차례군.”

한번 머리를 쓸어 넘긴 후 지크는 밀밭 사이로 다시 사라져갔다.


바이나는 자꾸만 졸음이 쏟아져 몸을 가눌 수 없었다. 향기로운 냄새가 마차 안으로 들어온 후였다.

“일어서야지…?”

그러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검에 의지하여 일어서려고 했으나 팔이 떨려왔다. 눈이 점점 감겨왔으나 참아가며 마차의 입구로 기어갔다. 향기는 좋았으나 몸에는 좋지 않은 것만은 확실한 향수였다. 입구에 거의 다가갔을 때, 마차의 밑부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바닥에 누군가가 구멍을 뚫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드래곤 킬러를 자신의 가까이에 가져가며 그쪽을 경계했다.

“으으윽…?!”

말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구멍이 뚫리고 있는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눈에 띄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책에 나올 법한 위기 상황이었다.

구멍이 다 뚫리고 검은 그림자는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단도 두 개를 꺼내 그녀에게 들어 보였다. 그리고 나서 현란하게, 하지만 규칙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최면…!’

바이나는 암살자들의 기술에 대해선 조부에게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당해보니 둘도 없는 무서운 것이었다. 두 개의 단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단도는 자신의 심장을 향해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아…!”

소리쳐보려고 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미 최면에 걸린 것이었다. 여태까지 뽑히지 않던 드래곤 킬러가 자신의 손으로 뽑혀 나왔다. 그리고 드래곤 킬러의 날카로운 날은 자신의 목을 향해서 다가왔다. 강하게 저항하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갑자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이 마차를 향해 뛰어오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아아아앗!!”

마차의 천막이 찢어지며 거대한 섬광 두 줄기가 괴 사나이와 바이나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바이나의 목을 치려던 바이나의 손이 정지했다.

“쳇! 방해를 하다니…!!”

괴 사나이는 단도를 휘두르며 안으로 들어온 바이나의 아군에게 공격을 가했다. 그, 아니 그녀의 거대한 나이프는 간단히 그 공격을 튕겨내었고 두 개의 단도는 곡선을 그리며 마차의 바닥에 박혔다.

“위험했어요, 암살자 아저씨.”

가벼운 목소리로 나이프를 든 여자―슈는 말했다. 괴 사나이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작은 알을 꺼내어 마차의 바닥에 던졌다. 펑 소리와 함께 연기가 슈와 바이나의 시야를 가렸다. 괴 사나이는 마차 밖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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