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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79화


“큰일? 무슨 일인가, 확실히 말해보게!!”

병사는 숨을 몰아쉬며 란지크와 바이나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앞서 샤먼 대장님과 출전했던 기마대가 대파 당했습니다! 샤먼님도 중상을 입으셨고 저항군 본대도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합니다!”

란지크와 바이나의 표정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가이라스 왕국에서 저항군 기마대와 본대를 간단히 요리할 수 있는 부대로선 템플 나이트와 아사신 나이트, 트로이 나이트 등의 정예부대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정보로선 그런 부대들은 수도 외에는 배치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결과가 생겼나! 설마 후속 부대가…?”

병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표정만 보아도 후속 부대는 결코 아니었다. 병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단… 한 명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지크의 표정은 변했다. 바이나와 란지크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을 사용해서 기마병의 반을 쓸어버리더니, 소름 끼치는 푸른색의 이상한 검으로 본대의 보병들을 살육해 나갔습니다. 보다 못한 로이슨님이 직접 나가시려고 했지만 부관이 그분을 제지하는 바람에 결국 후퇴만 하게 되었죠.”

지크는 병사의 멱살을 거칠게 휘어잡고서 물었다.

“확실히 말해. 그 사나이의 검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나?”

병사는 본 대로 또박또박 말했다.

“휘어진 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푸른색을 내더군요. 꽤 좋은 검인 것 같았습니다.”

“인상착의는 보았나?”

“아, 아주 차갑게 생긴 사나이였습니다. 얼굴은 회색빛이었고… 그것뿐입니다.”

지크는 그 병사를 놓아주고 팔짱을 끼며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란지크와 바이나는 궁금한 생각이 들었지만 병사로부터의 보고가 더 급했다.

“로이슨님은 무사하신가?”

“예, 무사하십니다.”

바이나와 란지크는 병사를 돌려보낸 후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저항군 대부대가 단 한 명의 전사에게 완패를 당했다는 건 믿기 힘든 일이었다.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지크가 팔짱을 풀면서 둘에게 말했다. 둘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우리 말고 원군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크는 고개를 내저었다.

“원군 따윈 필요 없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둘도 지크의 실력이 어떻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부대를 쓸어버린 그 사나이에겐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지크의 표정은 자못 진지했다.

“자신 있어 지크?”

바이나가 지크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은 내가 익히 들어온 녀석이야.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붙어볼 만은 할 것 같아. 일대일의 전투와 다대일의 전투는 상황이 다르니까 말이야.”

“좋아, 믿어보지. 자, 전군 속도를 높여라! 우리 대장님께서 기다리신다―!!”

신호를 보내며 란지크가 소리치자 군대의 진군 속도가 보통 때보다 빨라졌다. 지크는 허리에 매여있는 무명도를 만져보았다. 가녀린 떨림이 느껴졌다.

“다크 팔시온과의 대결이다, 베이비….”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지크는 미소를 지었다. 가즈 나이트로서의 투쟁 본능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었다.


“제길…! 이대로 끝인가!!”

바이론의 활약에 기세가 오른 가이라스 왕국군이 성문을 열고 저항군에게 돌격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기가 많이 떨어진 저항군은 균형을 잃고 쓰러지기 시작했고 결국엔 왕국군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예전에 수도에서 느꼈던 패배감을 다시 느끼는 것 같아 태라트는 몸을 떨었다.

“로이슨님! 더 이상의 저항은 무리입니다! 후퇴하셔야 합니다!!”

그의 부관이 막사 안으로 뛰어들어오며 소리쳤다. 태라트는 자신의 검을 집으며 부관에게 다가갔다.

“적은 어디까지 왔나.”

“예…?”

“어디까지 왔냐고 물었다!!”

부관은 태라트가 소리치자 고개를 숙이고서 대답했다.

“… 제2 방어 진까지 다가왔습니다.”

태라트는 검을 쥐고 있는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면서 그는 막사의 밖으로 나갔다.

“모두들, 이 보잘것없는 남의 나라 태자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주었다. 이대로 또 도망친다면 나 때문에 희생된 그들의 영령에 고개를 들 수가 없지.”

“로이슨, 아니 태라트님!!”

부관은 목소리만 높였을 뿐, 태라트를 말릴 순 없었다. 태라트는 한 발 한 발 제2 방어 진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바마마… 죄송합니다…!’

태라트는 소리를 지르며 난전이 벌어지고 있는 제2 방어 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굽히지 마라!! 여기서 쓰러진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가 없다!!”

병사들은 검을 들고 적군을 향해 돌격하는 태라트를 보았다. 언제나 모아왔던 그의 모습이지만 이번에는 마지막이 될 것만 같았다. 병사들은 소리쳤다.

“로이슨님!”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 대장님을 따라가자!!”

와 하는 함성 소리와 함께 저항군은 왕국군을 향해 최후의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태라트의 검이 빛을 발할 때면 왕국군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져 갔다. 그 용맹함과 의지는 왕국군 사이에서도 익히 알려져 온 것이었다. 태라트는 확실하게 병사들을 모아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특기인 중앙돌파를 위해서였다. 태라트를 중심으로 병사들은 한데 뭉쳐졌고 분산되어있던 전력이 다시 집결되었다. 사기가 높아진 저항군들은 제2 방어 진을 공격하던 왕국군의 선발대를 아까와는 달리 착실히 공격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공격하지 마라! 전력을 집중시켜라!”

그렇게 외치면서도 태라트는 자신의 앞에 있는 왕국군 병사를 확실히 상대했다. 왕국 내에서도 검성 슐턴과 맞먹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그였다.

갑자기 저항군의 반격이 거세어지자 왕국군 선발대의 대장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태라트의 목을 벨 절호의 기회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으나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결국 자신의 앞까지 왕국군이 역으로 돌파당하자 그는 결국 후퇴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목숨 한번 질긴 녀석이군! 전군 후퇴다! 듣고 있나, 전군 후퇴…!”

그러나 그의 입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가슴이 곡선을 그리고 있는 푸른색 검에 의해 관통당해 있었다.

“후퇴는 없다. 죽을 때까지 싸우는 거다.”

바이론은 차갑게 식어가는 대장의 시신에게 말했다. 그는 검을 뽑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왕국군 병사 중에 그와 몸을 충돌한 병사들은 목숨을 보존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무차별 학살이었다. 이윽고 바이론은 철검을 들고 있는 태라트를 앞에 둘 수 있었다. 태라트는 바이론을 보고서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너, 너는?!”

그 말과 함께 태라트는 뒤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다. 바이론은 어느새 태라트의 뒤쪽에 서 있었다.

“…! 운이 좋은 녀석이군….”

태라트는 인상을 쓰며 검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검은 깨끗이 잘라져 있었다. 반사신경으로 바이론의 검을 겨우 막아낸 대가였다.

“말은 필요 없다….”

그때 바이론의 몸을 누군가가 뒤에서 껴안았다. 한 병사였다.

“대장님! 어서 공격하세요, 이 녀석은 제가 잡고 있겠습니다!! 어서…!!”

바이론은 가볍게 팔을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병사의 팔에서 우두둑 소리가 들려왔다. 팔의 관절이 모조리 박살 난 것이었다.

“너 같은 하등한 인간에게 잡힐….”

바이론은 말하기가 귀찮아졌는지 그 병사를 기로 산산조각 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태라트는 자신의 무력함에 치를 떨었다.

“나도 어서 죽여라! 이 악마 같은 녀석아!!”

“원한다면… 그러나 넌 두 번째로 바뀌었다….”

바이론은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태라트도 그곳을 바라보았다.

“리오 녀석…. 드디어 만나는구나…!!”

붉은 장발의 사나이…. 그를 보자 태라트는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증조부에게서 들어왔던 가즈 나이트의 생김새가….

붉은 눈썹, 덥수룩한 장발은 위로 묶어서 아래로 내려뜨렸고 입고 있는 망토는 허름해 보여도 신룡의 날개 가죽으로 만들어진 살아있는 갑옷이다. 그 사나이의 눈은 푸른색으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기가 오르면 오를수록 안광의 색이 달라진다고 한다. 검은 특이한 보라색, 검신의 아래쪽엔 검은색의 코어가 붙어있다. 그 검도 검기가 흐르면 빛을 내뿜는다.

증조부가 말한 가즈 나이트의 이름도 생각났다.

“리오 스나이퍼…?!”

리오는 천천히 바이론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도중에 왕국군 병사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으나 리오는 그 병사의 머리를 잡고 다른 곳으로 밀쳐내었다.

곧 둘은 서로 마주 섰다.

“오랫만이군, 리오 스나이퍼….”

“나 역시, 레프로베이트 가즈 나이트(Reprobate Gods Knight)…!”

바이론은 피식 웃으며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그 R·가즈 나이트 얘기는 그만할 수 없나? 나도 가즈 나이트잖아.”

“넌 세계를 다섯 개나 파괴한 녀석이야! 다른 가즈 나이트들과 용사들이 피를 흘려가며 지킨 세계를!!”

“너희들도 파괴한 건 마찬가지잖아…?”

“그곳은 이미 균형이 깨어진 곳이었어!”

“그래도 그곳에 선한 사람들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

리오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바이론은 리오의 그런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계속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곧, 그의 미소도 사라졌다.

“난 가즈 나이트의 그러한 양면성이 싫었다. 지금은 이 세계를 지킨다고 날뛰고 있을지 몰라도, 이 세계 사람들이 지식을 알 때쯤이면 이 세계를 무차별로 파괴할 것이 뻔한 거 아니냐…?”

“그런 결과가 나오기 전에 균형을 잡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는 걸 잊었나…?”

바이론은 다시 리오를 보고 피식 웃었다.

“이렇게 얘기하려고 네가 내 앞에 나타난 건 아닌 것 같은데…? 이제 결말을 지으려고 하는 건가?”

리오는 디바이너에 손을 가져갔다. 다른 때와 다른 살기가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원래 내 임무에는 들어있지 않은 일이지만 처리하지 않을 수 없겠지. 네가 왜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넌 끝이다…!”

바이론도 응한다는 듯 자신의 곡도, 다크 팔시온을 꽉 잡으며 자세를 취했다.

“이런 상황이 전에도 있었지…. 그때는 누가 이겼더라…?”

그 질문에 리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확실하게 그도 느끼고 있는 건 어느 때보다도 지금의 전투가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힘의 비율은 100 대 100, 유리하게 이끌 상황도, 불리하게 끌려질 상황도 아니었다.

“시작이다…. 하하하하하…!”

바이론의 차가운 웃음소리로 대전은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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