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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11화


떼굴떼굴…

동천은 두 손으로 코와 입을 막은 다음 굴러서 방문 밖으로 탈출했다. 자신도 익히 알고 있는 냄새였지만 자기께 아닌 냄새를 맡는다는 건 곤욕이 아닐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온 동천은 오늘따라 상쾌한 공기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흐-읍! 휴… 흐-읍! 휴우…! 헥헥.. 주.. 죽는 줄 알았다!”

그때, 소연이 없기 때문에 주위에서 항상 대기하고 있던 시녀는 동천이 죽을상을 하고 기어나오자 당황해하며 재빨리 다가왔다.

“소전주님! 왜 그러십니까?”

이제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동천은 머리가 어지러운지 이마를 감싸며 얼른 자리를 떴다. 화정이의 영향권에서 멀어진 동천은 그제서야 안심을 했다.

“헉헉.. 가히, 살인적이로다….”

시녀는 멋도 모르고 고개만 조아리며 동천의 말을 기다렸다. 동천은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뒤를 돌아봤다. 웬 계집애가 자신의 뒤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넌, 뭐냐?”

“예? 그게.. 소전주님께서 갑자기 바닥을 기어.. 가 아니고, 힘겹게 나오시길래. 깜짝 놀라서 대령했사옵니다.”

“그래?”

“예.”

마침, 잘됐다 싶어 동천은 그녀에게 명을 내렸다.

“좋아. 가서 계집년들 두 명 더 데려와서 내 방에 있는 화정이 목욕 좀 시켜. 그리고 거기 바닥에 있는 가죽도 깨끗이 빨아서 뒷마당으로 갖다주고… 알겠냐?”

시녀는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알겠습니다. 소전주님.”

그러곤 재빠르게 사라졌다. 자신의 방쪽을 쳐다본 동천은 그 향기(?)가 아직도 콧가에 맴도는지라 헛구역질을 해댔다.

“우욱! 생각만 해도… 욱! 안 되겠다. 얼른 여기를 벗어나야지.”

동천은 서둘러 사부가 계시는 뒷마당으로 내달렸다. 잠시 기다렸던 역천은 제자가 다가오자 빙긋 웃어 주었다.

“오오.. 가져왔느냐?”

사부의 앞에서 걸음을 멈춘 동천은 좀 멋쩍어하며 말했다.

“헤헤.. 사부님. 제가 그걸 봤는데요. 너무 더럽더라고요.”

“그래서?”

“예. 그래서 지금 시녀보고 그 가죽을 빨아오라고 했으니까, 조금 있으면 대령할 거예요. 병균이 옮으면 안 되잖아요. 헤헤!”

역천은 제자가 생각하는 게 가륵해서 그 가죽을 얼른 보고 싶지만 참기로 했다.

“할 수 없구나. 그렇다면 그건 이따가 오는 대로 보기로 하고.. 자. 동천아. 뭐 하느냐? 다시 수련을 시작해야지. 얼른 저 물통에 들어있는 물을 퍼붓고 갖다 오너라.”

“예에..”

동천은 개미만한 목소리로 답해준 뒤, 물을 파놓은 구덩이에다 물을 퍼붓고 다시 움직였다. 조용히 밖으로 나온 동천은 사부가 안 보이자 또다시 투덜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휴..! 아깝다. 오늘은 뻔질나게 놀아보나 했는데… 하필이면 이때 사부님이 오실게 뭐람? 에이. 오늘 놀기는 글렀네. 그나저나 화정이 그년.. 우웩! 제길.. 걔만 생각하면 넘어오네? 으으.. 그만 생각하자…”

동천은 벌써 갔다 오는 시간이 늦는다면, 농땡이를 친다는 게 드러나기 때문에 투덜거리면서도 서둘러 우물가로 갔다. 가는 와중에 자신의 사형이 죽었다던 우물가가 보였다.

“음.. 그냥, 저기에 가서 물을 푼 뒤 잠시 놀다가 되돌아갈까?”

동천은 약간 갈등을 느꼈다. 그러나 아직 힘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동천으로써는 놀라운 의지력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래. 이게 다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인데, 그럴 수는 없지. 암.”

그 후로 동천은 아홉 번을 왕복했다. 아주 죽을 맛이었다. 내공의 효과도 다소 떨어졌는지 팔다리가 은근히 노곤해졌다. 그 시기에 맞추어 동천은 다시 자신의 사형이 죽었다던 우물가를 지나치게 되었다. 동천은 잠깐 멈추었다.

“헥헥.. 으음..!”

그의 뇌리에서 힘들게 가지 말고 그냥 여기에서 물을 퍼가지고 신호를 때리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심히 갈등을 느꼈다. 하지만 동천은 이내 결정을 내렸다.

“그래.. 이게 다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인데…”

그 말을 끝으로 동천은 사형이 죽은 우물가로 갔다. 그런데 점점 다가갈수록 자신의 왼팔에 쥐어져 있는 녹슨 물통이 무거워지는 현상을 느꼈다. 아울러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동천은 잠시 멈추었다.

“에이씨.. 이거, 느낌이 좀 그런데? 쳇. 할 수 없지.”

동천은 계속 다가갔다. 불안감보다 힘든 게 더 싫었기 때문이다.

“사형. 혹시, 보고 계시면 잘 좀 봐주세요. 히히!”

이제 어느 정도 시간 벌기가 가능해진 동천은 신이 나서 기분 좋게 노래를 불렀다.

“랄라랄라~! 우리우리 착한 사형.. 재빨리도 잘 죽었지~! 랄라랄라~ 우리우리 둘째 사형.. 착하게도 반신불수~! 랄라랄라~ 우리우리 셋째 사형.. 고맙게도 비관자살~! 랄라랄… 억?”

일절이 끝나고 이절을 마저 부르려던 동천은 한번 물을 다 푸고, 두 번째 물통에 물을 담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물속에서 무언가가 자신의 물통을 거세게 잡아당기는 것을 보았다.

“이이…! 뭐!? 으-엑!”

물 밑은 칠흑 같아서 사람의 인영(人影)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만 물 위로 올라온 두 손만이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게 해주었다. 한쪽 손은 무엇에 심히 긁힌 듯 상처가 이리저리 나 있었고, 다른 한 손은 붕대가 감겨져 있었던지 풀어진 몇 가닥만이 하늘하늘 물결을 따라 묘한 곡선을 탔다. 동천은 그 붕대를 보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사.. 사형? 으으으!”

자신이 말해놓고도 믿을 수 없는지라 동천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밑에서 잡아끄는 악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자신의 내공은 넉넉잡아 일갑자 반.. 비록 힘이 빠져 제 힘을 다 못 낸다 하더라도 한순간에 낼 수 있는 위력은 근 일갑자에 달하는데 그런 자신이 오히려 우물 속으로 딸려 들어갈 판이니…

“너, 뭐야? 이이익..! 씨발!”

물통을 놓으려고 해도 무엇에 홀린 양, 놓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동천은 공포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동천은 자신이 들고 있는 물통이 바로 사형이 머리통을 처박고 죽었다던 그 물통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동천의 몸은 상반신이 우물 속으로 거의 딸려 들어간 형국이었다.

“이 새꺄… 님! 그만.. 땡겨… 요!! 윽!”

버티고 있는 손아귀에 잡혀진 돌덩이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동천은 완전한 귀의흡수신공을 운용했다. 순간 내공이 비약적으로 급상승했다. 평소와 거의 같은 정도의 수준이었다. 동천은 그것을 이용해 재빨리 팔을 끌어올렸다. 헌데, 그와 비례해서 동천이 버티고 있는 부근이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다급함을 느낀 동천은 이를 악물고 딸려 들어가는 팔에 내공을 집중시켰다.

“으아-아! 이 시키이…!”

조금은 상황이 반전되는가 싶더니, 결국은 힘이 딸리는 동천이 물속으로 빠지고야 말았다.

“억?”

풍-덩!

동천은 그 경황 중에서도 숨을 깊게 들이켰다. 나름대로 방어 자세를 갖춘다고 몸을 움츠렸지만 물통을 쥐고 있는 손은 여전히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동천은 재빨리 자신을 끌어내린 알 수 없는 사내를 찾았다.

<으으.. 도대체, 누구…???????? 크-헉?>

-부그르르르….

동천은 보았다. 음침한 인상에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사내를… 그거 봤다고 동천이 아까운 공기를 내뱉었겠는가? 동천은 또 보았다. 그 사내의 오른쪽에 나 있는 커다란 사마귀를…. 동천이 움직일 수 있는 한쪽 손으로 공기가 빠져나가는 입을 막고 있을 때, 물속을 타고 보기와는 달리 산뜻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제.. 우리 같이 가세나…..”

전음이 아니었다. 그 느낌을 설명할 순 없지만 말 그대로 물속을 타고 전해오는 목소리였다. 동천은 전신의 모공이 하나하나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사형으로 보이는 아니, 확실히 먼저 간 사형에게 처절하게 말했다.

<살려-줘유~! 큽! 숨.. 숨 막혀!>

“사제.. 힘들지 않나? 같이 가세나…..”

동천은 사형이 약간 웃었다고 생각했다. 일어났던 모공들이 순간적으로 쪼그라들었다. 아울러 자신의 심장도 멎는 줄 알았다.

<사형! 난, 아직 청춘이라고요! 헉헉.. 억울해요!>

사형은 말이 없었다. 동천은 급했다.

<에이, 씨발놈아! 크으윽! 나.. 나 죽어….>

그제서야 동천의 사형은 말했다.

“난… 너무 외로워…. 사제. 같이 가세나……”

<개.. 개새끼!! 너.. 너나 가 새꺄! 헉! 숨이…>

동천은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밑으로 하강하는 속도가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동천은 죽는 마당에 지금까지 자신이 괴롭혔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많아서 모두 기억하기가 힘들었다.

<음…. 그냥, 죽자…..>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로 생각했다.

<부교주님.. 데려와줘서 고마웠고요.. 소연아… 내 뒷바라지해주느라 고마웠다. 내가 쥐고기 먹게 한 거 용서해 줄게… 그리고, 도와준 건 별로 없지만 도연아. 수고했다. 그리고… 사! 부! 님-!>

그 순간 동천의 몸이 약간 정지했다. 그리고 사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부…….”

사형을 바라보니 마치, 무언가에 젖어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동천은 거기에서 한줄기 빛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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