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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14화


역천은 어느 정도 화가 풀리자 자신의 뒤에 서 있던 도연에게 관심을 보였다.

“음.. 그게 쥐 때문에 생긴 상처냐?”

“예.”

“그래. 아까는 미안했다. 아무리 경황이 없어도 환자를 밀치는 게 아닌데…”

도연은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수그렸다.

“아닙니다. 제가 미처 피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역천은 도연의 대답이 마음에 든 듯했다.

“흐음… 그건 그렇고. 몸 상태는 어떠하냐. 움직일 만 하냐?”

“예.”

어째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자 동천은 서둘러 나섰다.

“얌마! 뭐가 ‘예.’야? 내가 보기엔 적어도 한 달간은 요양해야 나을 듯싶은데..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돌아가!”

도연은 자신의 뜻을 쉽사리 굽히지 않았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괜찮습니다. 이런 상처는 오히려 걸어 다녀야 낫는 상처입니다.”

도연의 대답에 동천은 너 말 한번 잘했다.는 듯이 도연을 설득했다.

“그래, 그러니까. 요양소에 가서 움직여. 여기서 알짱거리다가 일 날 수도 있으니까… 알았지?”

동천의 계속되는 설득에도 불구하고 도연은 끝까지 버텼다.

“문제 없습니다.”

<너나 문제없지. 이 씨팔아…! 어휴, 사부님 앞이라 대놓고 욕할 수도 없고… 으아악! 답답하다!>

마치 벽 보고 얘기하는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조잘대는데 도연이 자식은 간단하게 대꾸만 하니.. 동천의 성격에 속이 터질 일이었다. 그때 여지껏 말없이 이 상황을 지켜보던 역천이 끼어들었다.

“제자야. 웬만하면 이 녀석이 하자는 대로 하지 그러냐? 이 사부가 보기에도 약간씩 나돌아 다니는 게 상처 회복에 좋을 것 같구나.”

동천은 사부까지 나서서 도연을 지지하자 심한 위기감을 느꼈다. 만약에 도연의 뜻대로 된다면 자신의 원대한 계획이(농땡이.) 틀어지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뜻대로 되질 않는다. 아아.. 대세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단 말인가? 그런 것인가? … 그럴 순 없다! 난 하늘의 뜻을 역행하는 한이 있어도 이 더러운 운명은 거부해 보겠다!>

별 시답지 않은 일로 역행 어쩌구 했던 동천은 무슨 생각에선지 다소 굳은 얼굴로 사부에게 다가갔다.

“사부님!”

“그래. 말해 보거라. 제자야.”

“만약에 사부님은 제가 저녀석처럼 다쳐도 지금처럼 허락하셨겠습니까?”

제자의 물음에 역천은 생각해볼 것도 없었다. 역천은 펄쩍! 뛰면서 소리쳤다.

“당연히 아니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동천은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었음에도 안색을 피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바로 제가 지금 사부님의 심정인 것입니다. 제가 아끼는 직속 하인이 다쳤는데 어찌 위험천만하게 싸돌아 다니게 하겠습니까, 사부님!”

굳은 의지를 보여주며 눈가에 약간의 물막을 보여주는 제자의 모습에 역천은 장하다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오오.. 역쉬! 내 제자로다! 그래, 그런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좋다. 네 맘대로 하거라!”

동천은 숙연한 표정이었지만 속으로는 재빨리 다음 상황을 계획하고 있었다.

<히히! 사부는 해결했고… 다음은…..?>

“도연아…”

뜻밖의 사태에 미묘한 얼굴을 하고 있던 도연은 주인이 자신을 부르자 얼른 표정을 고쳤다.

“예, 말씀하십시오.”

동천은 도연에게 다가가 그의 두 어깨를 잡았다. 동천은 보기 드물게 푸근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내가 비록. 너에게 심한 말과 행동을 했어도 진심은 아니었어. 난 네가 탈 없이 커서 나를 잘 보필했으면 한다.”

도연의 표정이 별반 달라진 게 없자, 동천은 설득력이 너무 약했다고 생각했다. 잠시 뜸을 들인 동천은 다시 말을 이었다.

“음.. 이제부터 넌 하인이 아니다. 이제 나의 수하가 되거라!”

도연의 얼굴이 드디어 변했다. 한 방 먹은 표정이었다. 도연은 동천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의 의식 속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도연의 신형이 힘없이 무너졌다. 다친 곳의 아픔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도연은 고개를 들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존명….”

그제서야 동천은 환한 웃음을 지었다.

<좋아. 좋아.. 이놈도 해치웠다… 히히!>

도연은 불편한 몸임에도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도연의 오른쪽 발목에 감겨진 새하얀 붕대가 조금씩 피를 머금었다. 동천은 속으로는 쌤통이라고 좋아했지만 옆에서 사부가 보고 있기에 예의상 도연을 일으켜 주었다.

“야,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이제 요양소로 가.”

“명을 받듭니다.”

도연은 순순히 동천의 말을 따랐다. 그는 동천과 역천에게 인사를 건넨 뒤 쩔뚝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동천은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야! 마차 타고 가!”

역천은 마지막까지 환자에게 세심한 배려를 해주는 제자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도연이라는 아이… 굽힐 줄 모르고 대가 센 아이였는데, 제자 녀석이 저렇게 손쉽게 녀석의 마음을 휘어잡다니.. 음. 타고난 흡입력이로다.. 크헤헤헤! 내가 늘 생각하는 거지만 이번 제자는 정말 잘 들였어!>

동천은 사부가 갑자기 실실거리는 것을 보고, 또 혼자 생각하시는구나.. 했다.

“사부님.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

“응? 으응.. 별거 아니다. 그럼, 이만 나는 갈 터이니. 수련 열심히 하거라. 알겠냐?”

동천은 깍듯이 인사했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오냐, 오냐!”

그 말을 끝으로 역천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동천은 혹시 모를 사태(사부가 갑자기 돌아오는 것)에 대비해 조용히 방안을 거닐었다. 사부는 돌아오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 만족하게 끝이 나자 동천은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동천은 신나게 마당으로 나왔다.

“좋았어! 아자! 이 동천 하는 일에 문제는 없다! 아자! 하늘님이 보우하사!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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