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15화
두 팔을 하늘로 뻗치고 오랫동안 소리쳐댄 동천은 흥분이 가라앉자 팔을 내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몇몇 하인들이 도망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모습에 어깨를 한번 으쓱! 한 동천은 다시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막상 들어오긴 했는데 심심했다.
“음.. 뭘하고 놀까.. 뭘하고 놀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놀 궁리를 하던 동천은 마땅한 놀이가 없자 서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천은 거기에서 항광의 용독경을 꺼내들었다.
“그래. 오늘은 마음먹고 공부 해보자. 오늘 목표량은…. 욕독경 완전 정복이다! 좋아!”
동천은 침대 쪽으로 가다가 그 옆에서 글을 쓰고 있는 화정이를 발견했다.
“어? 너 여지껏 쓰고 있었냐? 어디….”
화정이의 옆에는 여러 장의 화선지가 놓여 있었다. 모두 화정이가 쓰고 밀어 놓은 것들이었다. 장수를 세어보니 모두 다섯 장이었다. 그것도 빽빽이 쓰인 것들이었다.
“햐~! 너 진짜 대단하구나? 손도 안 저리냐?”
화정이의 표정을 보니 괜찮은 것 같았다.
“잘했어. 이제 그만하고, 이리 와서 앉아봐.”
동천은 화정이를 침대로 이끌어 앉혔다. 그리고 그녀의 다리 위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 몇 번 고개를 좌우로 움직여 자리를 잡은 동천은 용독경을 집어 들었다.
“내가 어디까지… 옳지? 여기구나? 흐응…”
한 반각여를 읽었을까?
“쥐는 고양이를 무서워한다. 왜? 그야 당연히 천적이니까… 에이! 이 늙다리 영감이 미쳤나? 당연한 걸 가지.. 가만? 에.. 그러나 그런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종(種)이 있으니… 계면서(界面鼠)라고 칭한다. 보기 드문 종으로서 말 그대로 보통 쥐의 경계의 면에서 변이를 일으킨 종을 칭한다. 크기는 총 길이 한자 반.(90Cm)에 이르고 몸집은 고양이과 맞먹으며 먹이는 쥐의 습성과 똑같다. 에또..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덤벼드는 강인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계면서의 간과 심장은 청뇨로.. 명단(淸尿露命丹)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에이씨… 단환 이름이 뭐 이따위야? 발음하기 되게 힘드네. 가만.. 청뇨 어쩌구 제조법이 어디.. 에…. 여기 있다!”
단환 편이 쓰여 있는 끝 부분을 훑어 보다가 마침내 청뇨로명단을 찾아낸 동천은 서둘러 읽어보았다.
“필요 품목… 계면서의 간과 심장. 백년근 산삼 3 뿌리. 오십 년 이상 된 미늘버섯 6개. 동작풀 30개. 다면양류(多面楊柳(버들)).. 세 근. 백년근 매화약주(梅花藥酒) 한 병. 이상 모든 재료가 완벽히 갖춰진 상태에서 국을 끓인 다음 이틀을 굶긴 십 세의 여아에게 섭취를 시킨다. 국의 분량은 사흘치가 적당하다. 그리고 국을 먹는 동안 여아에게는 정기(精氣)가 뛰어난 산에서 받은 이슬을 제외하고 그 외에 어떠한 것도 추가 섭취를 시켜서는 안 된다. 제조 방법은…. 엑? 이런 씨필! 더럽게시리…. 에이! 괜히 읽었잖아?”
동천은 흥분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내던져 버렸다.
“방광. 그 인간 미쳤나? 그딴 걸로 단환을 만들어서 쳐먹게?”
안 만들어서 안 먹으면 될 일 갖고 동천은 무지하게 열 받았다. 왜냐하면 그거 만들어 먹으려고 흥미 있게 읽었던 건데 그 제조 방법이 좀 더러웠기 때문이었다.
“으아아! 열 받아! 씩.. 씩…!”
뭐, 때려 부술 게 없나 요리조리 살펴보던 동천은 모든 것이 비싼 것들이어서 아까운 나머지 건들지 못했다. 그러던 중 쥐고기를 담아 놓았던 상자가 보이자 그것을 마구 밟아댔다.
퍽! 퍽! 콰직… 콰지직…
힘없이 부서졌다. 한참을 밟아대던 동천은 무슨 이유에선지 발길질을 멈추었다.
“어? 어째서 하나가 비지?”
분명히 두 개의 통이었는데 하나가 비는 것이었다. 동천은 얼마 안 있어 왜 통이 하나밖에 없는지를 생각해냈다.
“아아.. 맞아. 내가 정화년 집에다 놓고 왔지? 그래.. 이왕 생각난 김에 소연이 년을 데려와야겠다. 설마하니 정화 그년이 계속 있을 리 만무하고… 히히!”
동천은 자신의 생각을 금세 행동으로 옮겼다. 동천은 마부를 불러서 마차를 타고 사정화의 집으로 갔다.
하루 전….
소연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에휴….”
옆에서 저녁밥을 하고 있던 수련은 부엌에서 고개를 낼름! 내놓은 채 소연을 위로했다.
“언니, 그렇게 우울한 표정으로 있지 말고 웃어요. 동천 걔는 당분간 어쩌지 못할 거예요.”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동생의 말대로 당분간일 뿐이었다. 그런 생각에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는 소연이었다. 소연은 동생에게 잠깐 웃어준 후 동생이 고개를 집어넣자 다시 한숨을 쉬었다. 조금 후에 수련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언니, 뒤로 돌아가면 땔감이 있거든요? 거기서 나무 두 토막만 갖다 줄래요?”
“알았어.”
소연은 부엌을 지나 뒤쪽으로 걸어갔다. 한쪽 구석에 일정하게 잘라진 나무토막들이 어른의 두 배 키만큼 쌓여 있었다. 약간 놀람을 표시한 소연은 끝쪽에 있는 나무토막을 집어 들었다. 그때 꼭대기에서 약간의 소음이 들렸다.
“응? 뭐지?”
눈살을 찌푸리며 위를 올려다보았지만 날이 어두웠기 때문에 사물을 제대로 구별할 수가 없었다. 사정화의 명으로 이곳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서둘러 돌아갔다. 어두운 곳에서 혼자 있었기 때문에 소연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소연이 사라진 후 장작 더미 위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그 물체는 두 개의 빠알간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후우. 후우… 수련아. 가져왔어.”
안으로 들어가니 구수한 냄새가 부엌에 들어차 있었다. 수련은 국자로 간을 보다가 들어오는 언니를 일별하고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이리 주세요. 아궁이에다 집어넣어야 하니까.”
소연의 시선이 아궁이로 옮겨졌다. 불의 세기가 자신이 봐도 알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장작을 건네받은 수련은 천천히 하나씩 아궁이 안으로 밀어 넣었다. 소연은 동생이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작은 솥에서 끓고 있는 음식을 보았다.
“지금 하고 있는 게 뭐야?”
“아? 이거요? 헤헤.. 사슴고기에다 왕소금을 뿌려서 절인 다음 제비집과 함께 각종 조미료를 넣어 끓인 녹연육탕(鹿燕肉湯)이에요.”
좀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는 수련이었지만 소연은 감탄에 감탄을 마지하지 못했다.
“와아..! 너, 대단하구나? 어떻게 그런 음식까지 만들 수가 있니?”
수련의 부끄러움은 절정(絶頂)에 달했다. 그녀의 몸은 쉴 새 없이 좌우로 꼬이고 있었다.
“아이..! 심심하면 하나둘씩 배워 놓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너무 그러지 마요! 쑥스러워요… 헤헤.”
소연은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그래, 알았어. 호호. 어서 만들기나 해.”
수련은 신이 나서 부엌을 싸돌아다녔다.
“……”
사정화는 하늘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보이는 것은 어슴푸레한 저녁 하늘뿐. 초저녁이라 그런지 아직 별들이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녀는 무슨 생각에선지 창가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곳에는……’
아련하게 젖어드는 그녀의 눈가에 미세한 흔들림이 보였다. 곧이어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문 쪽이었다.
-똑똑…
“들어와.”
“식사 왔습니다..”
사정화는 의외의 표정을 보였다.
“왜 네가 왔지?”
소연은 송구스러운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저기.. 걔가 이층은 무섭다고 해서…..”
사정화는 아까 수련이 이층에는 쥐가 있어서 올라가길 꺼려했던 것을 상기시켰다. 그녀는 그러려니… 했다.
“놓고 가.”
“예. 아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