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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19화


이젠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언니가 자신을 보았으면 했지만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수련은 자신의 힘으로 움직여야 했다. 뒷뜰로 통하는 문이 있는 주방으로 기어간 수련은 문고리를 잡고 밀어 제쳤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문제의 그 이불보가 보였다. 수련은 갑자기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후다다-닥—!

수련은 복날에 톡끼는 개새끼처럼 네발(?)로 달려갔다. 곧이어 피에 절은 이불에 당도했다. 수련은 다시 힘이 빠지는 것을 체험해야만 했다. 몸이 다시 떨려왔다. 겁이 났던 것이다. 머릿속에서는 어서 이불을 펴보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었지만 정작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흑흑…아가씨이…무서워요. 잉…”

울음이 효과가 있었는지 수련의 팔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나 그 팔은 주책없이 좌우로 흔들렸다. 드디어 손안에 이불이 쥐어지자 수련은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이불을 들췄다. 겹겹이 쌓여져있는지 풀러도 풀러도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련의 초조함은 더해만 갔다.

“하. 하늘님…솔직히 말해서 동천은 하늘님을 믿지만…저. 전..저는 하늘님을 안 믿어요..그..근데, 이번만 저에게 자비를 베푸시면..제가 꼭! 개종(改宗) 할께요…하늘님…..제발…제발….”

동천이 믿는 하늘님께 빌 정도로 수련은 초조했다. 말을 하는 동안 드디어 마지막 한겹이 남았다. 이 정도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크기로 대충 짐작할 수 있었지만 수련이 워낙, 경황이 없는지라 그것까진 미처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수련은 눈을 딱 감고 이불을 쥐고 있는 두 손에 힘을 주었다.

“흑! 흑흑…제…발!!!”

수련은 마지막 말에 힘을 주며 두 팔을 위로 잡아당겼다.

티-잉….!

탄력적인 소리와 함께 안의 내용물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으잉?”

의외로 가벼운 물체에 수련은 두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빠르게 하강하는 것을 보았다.

“히익?”

그녀는 본능적으로 두 팔을 들어 사선으로 얼굴을 가렸다.

철푸덕-…..!

질퍽한 무언가가 수련의 얼굴로 떨어졌지만 그녀의 팔목에 걸려서 얼굴로 쏟아지지는 않았다. 다만, 차고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쉴새없이 수련의 얼굴 위로 떨어져 내렸다.

“흡! 읍…으읍…! 뭐..퇘퇘…뭐야?”

할 수 없이 수련은 감았던 눈을 떠야만 했다.

“…….”

순간 정적(靜的)이 일어났다. 수련은 피에 절어 자신을 노려보는 생물에 넋을 잃었다. 결코 좋은 뜻으로 넋을 잃은 게 아니었다. 그 생물은 빨간 눈을 하고 있었다. 그 눈에서 피고름이 흘러나와 그녀의 눈두덩이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다. 수련은 그 눈알이 움직였다고 생각했다.

“꺄아아-악――! 꺄악! 꺄아악!!!”

수련은 본의 아니게 닭을 대신해 아침을 알려주었다. 좀 시끄럽기는 했지만 효과는 탁월했다.


그로부터 두시진 후….

셋은 식탁에 앉아 있었다. 음식들은 진수성찬이었으나 먹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음식을 두어 번 건드리기만 할 뿐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은 없었다. 분위기도 썰렁했다. 소연은 뭔가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으로 그쳤다. 아가씨를 바라보니 창백한 안색에 얼굴조차 굳어 있었다. 얼굴은 원래 굳어 있어서 그렇다 치고 창백하긴 동생 수련도 만만치 않았다. 하긴..죽은 쥐를 뒤집어썼으니…더군다나 터진 북처럼 엉망진창이 된 쥐를 ‘직빵’으로 대했으니 오죽하랴. 비록, 기절하기는 했어도 다시 기억을 잃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분위기상 입을 열기가 적당치 않았다. 소연은 속으로만 생각을 늘어놓을 뿐 다른 행동은 감히 상상도 못했다.

‘휴..물통에 가득 찬 물을 버리기 위해 밖으로 나간 사이에 동생은 죽은 쥐를 뒤집어쓰고 소리를 지르다 기절하고, 저 아가씨는 덩달아 내려왔다가 쥐를 보더니, 마구 밟아대고…에휴..! 둘 옆에 끼어서 아주 죽겠네.’

그나마 다행인 게 있었다. 바로 짓이겨진 쥐를 뒤로 빼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쥐를 가져다주면 주인이 얼만큼 화를 풀지 모르겠으나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깨작거리며 식사를 끝마쳤다. 소연은 동생을 도와 얼른 모든 음식들을 치우고 차를 내왔다. 다행히 차는 마셨다. 아침부터 못내 궁금한 게 있었던 소연은 분위기가 다소 풀리는 듯하자 사정화의 눈치를 보면서 입술을 열었다.

“저기…”

수련과 사정화가 동시에 소연은 바라봤다. 엄청 부담이 가는 시선이었다. 소연은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서 당황해했다. 그녀는 자신이 들고 있는 차를 급히 들이마셨다.

“앗뜨! 앗따따따….헤헤..저. 저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소연은 여전히 무심한 그녀들의 시선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픈 심정이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단연코 없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매우 불안했다. 상대가 뭐라고 말이라도 꺼내줬으면 좋겠지만 매정하게도 동생조차 반응이 없었다. 소연은 차를 내려놓고 애꿋은 옷자락을 비벼대며 겨우 말을 꺼냈다. 상대는 사정화였다.

“궁금한게….”

“말해봐.”

어제보다 더욱 차가운 목소리였다.

‘난 몰라…괜히 말을 꺼냈나 봐……’

소연은 속마음과는 달리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왜 물독이 깨졌는지…아시냐고……”

순간 사정화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건드려서는 안될 부분을 건드린 것 같았다. 소연은 도망가고만 싶었다. 그러나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사정화가 약간 어눌한 말투로 음성을 흘렸다.

“몰라..”

소연은 그제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젠 절대로 입을 열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러나 사정화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두질 않았다.

“또!”

소연은 얼떨결에 대답했다.

“예?”

사정화는 소연이 반문했음에도 대꾸없이 소연을 바라봤다. 아니, 노려봤다는 말이 더욱 정확한 표현이었다. 말을 들어보니 또 질문을 하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소연은 더 이상 질문할 것이 없었다. 있어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새로운 질문이 터져 나왔다.

“그러니까..욕조 안이 왜 난장판이 됐는지….”

사정화가 답했다.

“몰라.”

“예에..그러시군요…”

소연은 등줄기를 타고 땀방울들이 쉴새없이 미끄럼을 타는 것을 조용히 방관해야만 했다. 소연은 이쯤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곳만 아니라면 어디든지 좋았다. 그러나 상황은 소연을 도와주지 않았다.

“또!”

‘흑흑..뭘 또야…더 얘기할 게 있어야지……..주인님. 도와주세요…’

오죽했으면…소연이 더없이 불쌍해 보였다.

“그..그러니까……”


같은 시각….

동천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을 감고 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천의 입가에 가느다란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차가 돌 위를 지나가는지 심하게 덜컹거렸다. 동천이 당황해하며 눈을 떴다.

“앗? 뭐, 뭐야?”

눈을 똥그랗게 뜨고 좌우를 열라게 돌아보던 동천은 갑자기 화를 냈다.

“이, 씨발. 야! 마차세워!”

마부는 급히 마차를 세웠다. 마부는 자신의 뒤에 마련된 작은 창문에 얼굴을 돌렸다.

“무슨 일입니까?”

창문에서 대답 대신 주먹이 날아왔다.

-퍽!

“악! 아이쿠..!”

마부는 얼굴을 부여잡고 아파서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작은 창문 사이로 동천의 얼굴이 보였다.

“이새꺄! 마차 잘 몰아! 너 땜시 깼잖아, 임마! 에이씨….”

동천은 심히 기분 나빠하며 다시 제자리로 가 앉았다. 마부는 고작 그것 때문에 자신을 때린 동천을 속으로 욕하면서도 고분고분 말을 따랐다. 마부는 그 후로 돌 위를 피해 가느라고 다소 천천히 말을 몰았다. 그런데 그 바람에 마부는 난데없이 뒤통수를 얻어맞아야 했다. 힘없이 신음을 흘리는 마부의 뒤로 다시 동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얌마! 왜 이렇게 늦어? 너, 내가 얼매나 바쁜 분인지 알아? 너 한번 죽어볼래? 야! 빨랑 몰아!”

마부는 혼미한 상태에서도 죽고 싶지 않았는지 마차를 빠르게 몰면서 돌까지 피해가는 신기(神奇)를 보여줬다. 마차가 사정화의 집에 도착하자 마부는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렸다. 무방비 상태에서 맞았던 뒤통수가 아무래도 타격이 컸던 것 같았다. 후일, 이 마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체험했던 놀라운 일을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아 글씨, 그 속도에서 돌들이 속속들이 보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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