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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34화


도연은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었다. 정말로 난감했다. 오른쪽 부분을 두어 번이나 샅샅이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던 것이다. 몸도 서서히 추워졌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 도연은 한 번 더 찾아보고 정 없으면 밖으로 나가서 몸을 좀 녹인 다음 다시 들어오기로 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찾아다니는 것이라 그런지 도연의 몸놀림은 신중했다. 야채들을 몇 번 뒤집어보던 도연은 야채 위에 놓여있는 고기 덩어리 하나를 다른 쪽으로 집어 던졌다. 이번에 찾는 것에는 꽤나 장시간을 투자했으나 도연의 입에서는 거친 소리가 튀어나왔다.

“제길…”

성과가 없었던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도연은 그만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나가기 전에 도연은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돌려 저장소를 한 번 돌아보았다. 이곳은 두 부분으로 분류가 되어 저장되어 있었는데 왼쪽은 고기류였고, 오른쪽은 야채와 과일류가 비치되어 있었다. 입맛을 다시며 밖으로 나가려던 도연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갑자기 신형을 멈추었다. 무언가가 부조화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뭘까..하고 곰곰이 머리를 굴리던 도연의 머릿속에 순간 번뜩이는 게 있었다.

‘고기?’

느린 동작으로 몸을 돌린 도연은 아까 야채 위에 홀로 놓여 있는 고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까는 무심코 그 고기를 왼쪽으로 던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곳에만 고기 한 덩어리가 놓여 있는 게 이상했던 것이었다. 도연은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 부분의 야채와 과일들을 미친 듯이 헤집어대던 도연은 옅은 미소를 흘렸다.

“찾았다…”

도연은 큼지막한 쥐꼬리를 잡았다. 딱딱하게 냉동되어 있어서 그런지 죽어있는 나무 가지를 잡은 느낌이 들었다. 도연은 그 쥐를 소중히 들고 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그냥 바닥에 질질 끌면서 쥐를 가지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그동안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수련이 도연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와아~! 가져왔어요? 그거 찾기가 쉬울 거라고 그러던데 왜 이렇게 늦었어요? 아? 그거예요. 그 녀석이 맞아요. 으으.. 좀 징그럽죠? 전 며칠 전에 그거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글쎄 갑자기 하늘에서 저게 떨어지지 않겠어요? 근데 저는 아쉽게도 그게 저 쥐인지도 모르고 두 손으로 가렸지 뭐예요. 아아… 내가 그때만 생각하면……”

시끄럽게 쫑알대는 소리에 도연은 절로 안색을 굳혔다. 도연은 잠깐 동안 수련의 말이 중단되자 얼른 말을 끊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궁금한 거요? 말해 보세요. 제가 모르는 것 빼고는 다 대답해 드릴게요. 뭐가 궁금한데요?”

도연은 고개를 동굴 쪽으로 저으며 말했다.

“저 안에서 타고 있는 기름의 종류가 뭐지? 신기하게도 저런 냉골에서도 잘 타던데…”

수련은 자신이 아는 질문이 들려오자 기쁘게 말해주었다.

“아아.. 그거요? 석유라는 건데 꽤나 비싼 건가 봐요. 예전에 푸른 눈을 가진 외국 상인이 저 기름을 가져왔는데, 잘 꺼지지도 않고 불도 잘 타서 사들인 거래요. 근데 저게 한 말에 얼마인지 아세요?”

알 리가 없었다. 도연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몰라.”

수련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호호호! 저도 몰라요. 어때요. 재미있죠?”

재미 하나도 없었다. 더 이상 이 소녀와 말을 나누다가는 자신도 이상해질까 봐 도연은 자신이 할 일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도연은 너덜해진 쥐를 가리켰다.

“그보다 이걸 이렇게 들고 갈 수가 없으니까 이것을 집어넣을 상자 좀 가져다주겠어?”

기분이 좋아진 수련은 도연의 부탁을 마다하지 않았다. 수련은 검지 손가락을 흔들며 말을 꺼냈다.

“잠깐만 기다려요.”

수련은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흥얼거리며 집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사라지자 한순간 주위가 조용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조금 후에야 작은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도연은 기다리는 김에 쭈그리고 앉아서 죽어 있는 쥐를 살펴보았다. 아가리를 흉측하게 벌리고 있는 쥐의 입안에는 시커멓게 죽어있는 피딱지들이 엉켜 있었다. 다리들은 평상시에는 취할 수 없는 자세로 변환되어 있었다. 도연은 주위에 있는 나무 가지로 쥐를 뒤집어 보았다. 등골의 한가운데가 심하게 파여 있었다. 아마도 쥐가 죽은 이유 중에 이 상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모양이었다.

‘내가 놓친 쥐……’

도연은 어떠한 일을 할 때 잘못한 일이 있거나 후회되는 일이 있으면 그것을 가슴에 담아두는 성격이었다. 뒤끝이 없는 호탕한 성격이 아니었다. 잠시 동안 쥐를 응시하던 도연은 품속에서 작은 단도를 꺼내 들었다. 도집을 벗긴 도연은 지체 없이 칼을 내질렀다.

-푹!

단도는 정확하게 등 부분을 뚫고 들어가 심장을 관통했다. 도연은 금방 단도를 빼낸 다음 자신의 옷자락으로 칼을 닦았다. 그리고 피가 묻은 옷 부분을 과감하게 잘라 버렸다. 도연이 잘라 버린 옷자락을 바람에 날리고 있을 때, 수련이 나무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달려왔다.

“후우..! 오래 기다렸죠? 자요.”

“고마워.”

“헤에.. 뭘요.”

도연은 상자를 내려놓고 쥐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도로 내려놓고 수련을 보았다. 이에 궁금함을 느낀 수련은 도연에게 물어보았다.

“왜요? 뭐가 잘못됐어요?”

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못됐어.”

자신이 보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는데 도연이 잘못됐다고 하자 수련은 얕은 눈썹을 한 곳으로 모았다.

“뭐가 잘못됐는데요?”

도연은 상자를 집어 올렸다.

“작아.”

수련은 피식! 웃었다. 자신은 좀 심각한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흐응… 난 또 뭐라고. 할 수 없죠 뭐. 제가 가서 더 큰 걸 가져올게요.”

수련은 도연이 들고 있는 작은 상자를 받아서 들고 뛰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수련이 약간 가쁜 숨을 들먹이며 가슴에 상자를 안고 달려왔다. 수련은 도연에게 상자를 건네주고 가쁜 숨을 골랐다.

“후우..후우..! 꿀꺽. 아아.. 목 타. 후우. 그 정도 되겠죠?”

말없이 수련이 건네준 상자를 받아 쥔 도연은 다시 쥐를 집어서 상자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쥐가 약간 컸는지 빡빡하게 들어가며 기분 나쁜 소음을 들려주었다.

-끄그그그극….! 콰직-!

“이런…”

안 들어가는 것을 억지로 밀어 넣다가 상자가 부서지자 수련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으아..! 또 가져와야 해요?”

도연은 말하기도 미안했는지 조용히 수긍을 표했다. 수련은 아까와는 대조적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또 잠깐만 기다려요.”

왠지 힘이 없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사라진 수련은 전에 오던 시간보다 거의 두 배나 되는 시간을 소비하고서야 도연의 앞으로 당도할 수가 있었다. 수련은 거의 다 죽어 가는 얼굴로 다가와 도연에게 상자를 건네주고 그 자리에서 발랑! 자빠졌다.

“헉헉헉… 그.. 그 정도면….. 헉헉! 되겠죠?”

약간 풀린 눈으로 물어보는 수련이 안돼 보였는지 도연은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넣어봐야 알지..”

넣어봐야 안다는 말에 누워있던 수련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재빨리 일어나 앉았다. 그녀의 눈은 도연의 손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도연의 손이 서서히 들리고… 마침내 도연이 들어 올린 쥐가 무난히 상자 안으로 들어가자 수련은 하마터면 감격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와아~! 이제 됐지요? 그쵸? 그쵸?”

수련은 기쁘게 말했지만 도연의 안색은 쉽사리 펴지지 않았다. 그제서야 이상함을 느낀 수련은 불안에 떨며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왜.. 왜요? 잘 들어갔잖아요….”

수련을 빤히 바라보던 도연은 미약하게나마 웃어주었다.

“지금 니가 가져온 게 과일 상자지?”

“네. 그런데요?”

도연은 웃음을 거두었다.

“높이가 너무 낮아.”

“…….”

잠깐 동안 경직되어 있던 수련은 바람이 살랑거리자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풀썩….

“앗? 괜찮아? 이봐! 수련아!”

도연은 쓰러진 수련을 안아 들고 살짝 뺨을 때려가며 수련을 불러댔다. 효과가 있었는지 수련이 힘겹게 눈을 떴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수련은 도연이 보이자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

“나..나…. 힘들어요. 흑! 더는 못 갔다 오겠어요. 엉엉! 엄마….”

도연은 급기야 본격적으로 울어대는 수련을 달래려고 애를 썼다.

“그래. 알았어. 내가 직접 가지러 갈 테니까. 그만 울어.”

서러움이 복 받쳤는지 수련은 더욱 울어대면서 도연의 가슴을 마구 때렸다.

“엉엉! 그럴 거면서 왜 나한테 시켰어요! 흑흑.. 미워! 미워! 으앙!”

도연은 기가 막혔다. 지가 가져다준다고 촐랑댈 때는 언제고 힘들어지니까 그제서야 자신에게 모든 걸 떠맡기다니… 그러나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그녀가 힘들게 왔다 갔다 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도연은 그녀의 머리를 차분히 쓰다듬어주었다.

“알았어.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그만 울어.”

효과가 있었는지 수련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얼마 안 가 자신이 도연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수련은 빨개진 얼굴을 하며 재빨리 떨어졌다. 잠시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수련이었다.

“헤헤.. 아까 울 때 저 보기 흉했죠?”

그렇다고 진실을 말할까.. 아니면 그렇지 않다고 거짓말을 할까.. 이 두 가지 상황에서 잠시 갈등을 하던 도연은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그런대로…”

“피…”

듣기 좋은 대답을 기대했던 수련은 약간 삐졌는지 입을 샐쭉거렸다. 자신이 할 말은 다 했다고 생각한 도연은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쥐의 몸통이 반 이상이나 밖으로 나와있는 상자를 들어서 혼자 걸어갔다. 수련은 어쩔 수없이 도연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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